사과도, 배상도 없었다…일본에 완벽히 ‘면죄부’ 준 정상회담

유정인 기자    도쿄 | 유설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의장대 사열에 앞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의장대 사열에 앞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정상회담으로 강제동원(징용) 배상 문제를 양국 정부 차원에서 일단락 지었다.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배상 문제를 해결하는 안을 두 정상이 공식 확인하며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배상안에 쐐기를 박았다.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총리의 직접 사과, 진전된 과거사 인식 표명, 적극적 배상 참여 입장 등은 없었다. 과거사 관련 핵심 사안 세 가지가 모두 빠진 ‘3무 회담’으로 피해자 반발 확산 등 후폭풍이 기정사실화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강제징용 배상 문제 관련 핵심은 일본 측 입장을 전적으로 수용한 한국 정부안을 두고 일본 측이 얼마나 ‘성의있는 호응’을 하느냐였다. 한국 정부가 지난 6일 밝힌 배상안은 한국 정부가 만든 재단이 2018년 대법원에서 승소가 확정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게 골자다. 민간의 자발적 참여로 재원을 모으되 일본 피고기업의 참여는 명시하지 않았다. 일본은 이날 회담으로 강제징용 관련 명시적 사과와 피고 기업 참여에 선을 그으며 한국 정부안이 ‘반쪽 해법’임을 확인시켰다.

기시다 총리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 사과는 없었다. 이번 사안을 두고 새롭게 ‘사과’나 ‘사죄’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의 과거사 관련 인식은 일본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데 그쳤다. 기시다 총리는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 배상안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 발표한 일·한 공동선언을 통한 역사인식과 관련해 역대 내각 인식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계승해나갈 것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배상안 발표한 지난 6일 “한·일 공동선언을 비롯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고 말한 것을 되풀이한 셈이다. 기시다 총리가 말하는 역대 내각의 인식에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내놓은 전향적인 입장은 물론 아베 신조 전 정부의 극우적 인식도 포함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담이 김대중-오부치 선언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했다고 밝혔지만 사실과 다른 주장이다.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사죄’가 빠졌기 때문이다.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은 “(오부치 총리대신이)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일본의 배상 책임 면제는 한국의 구상권 청구 가능성을 일축하는 것으로 한 발 더 나아갔다. 한국 측 재단이 ‘제3자 변제’ 형식으로 피해자에게 판결금을 지급한 뒤 일본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할 가능성에 대해 윤 대통령이 명확히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구상권 청구와 관련한 일본 기자 질문에 “구상권이 행사된다면 모든 문제를 원위치로 돌려놓는 것”이라며 “구상권 청구는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국과 일본은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협력 파트너라고 말했다. 자유·인권·법치를 내세우면서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존엄과 인권, 일본 피고 기업 배상책임을 확정한 한국 사법부의 최종 판결을 외면하는 모순적 행보를 보였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2018년에 그동안의 정부 입장과 다른 내용의 판결이 선고됐고, 우리 정부는 이를 방치할 게 아니라 정부 일관된 태도와 이 판결을 조화롭게 해석해 해법을 발표했다”고 대법원 판결 수용을 재차 거부했다. 행정부의 판단으로 사법부의 판결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으로 3권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일본의 진전된 입장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면서 강제징용 문제는 ‘끝나지 않은 문제’로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 배상안에 부정적인 국내 여론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확산 기류를 탈 가능성이 높다. 한·일관계를 두고 윤 대통령의 정치적 시험대가 회담 이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논리를 수용한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이어 한·일 ‘위안부’ 합의가 또다른 뇌관으로 부상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교도통신은 이날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기시다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형해화된 한·일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윤 대통령에게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기시다 총리는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외무상으로서 윤병세 한국 외교부 장관과 함께 합의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도쿄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늘 논의 주제는 강제징용 문제를 비롯해 미래지향적으로 한·일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겠다”며 기시다 총리의 요청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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