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제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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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12·3 내란 심리부검 윤석열은 특유의 장광설로 가득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 “전시·사변에 못지않은 국가 위기 상황”이라 12·3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야당의 방위사업법 개정 추진, 국방예산 삭감, 검사·감사원장 등 줄탄핵 시도를 근거로 들었다. 입법, 예산안 처리, 공직자 탄핵은 입법부 고유 권한이다. 윤석열 주장대로라면 모든 여소야대는 망국적 위기 상황이고, 계엄은 일상이 될 것이다. 윤석열이 국가적으로 비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상대권을 휘둘렀다는 뜻이다. 12·3 내란이 발생하고 석 달 넘게 지났지만 이 돌연한 난행의 심층 동기는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혹자는 ‘명태균 게이트’가 방아쇠가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그러나 이 가설은 명씨 사건이 불거지기 6~7개월 전부터 윤석열이 비상대권을 입에 올린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한 가지 전제할 것은 국가적 위기 상황은 아닐지언정 윤석열 나름으로는 모종의 절박한 사정이 있었으리라는 점이다. 그게 아니라면 비상계엄은 미치광이 권력자의 순수한 난동이고, 그 동기를 밝히는 건 정치학이 아니라 심리학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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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저항언어의 품격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고,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라고 했다. 그 사람의 언어가 곧 그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유명한 경구들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는 대선을 앞둔 2016년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막말을 일삼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겨냥해 “그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격 있게 가자”고 했다. 좋은 정치가 좋은 사회를 만들고, 좋은 정치는 좋은 언어로 발현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언어는 사회의 거울이다. 갈등이 심한 사회에선 언어부터 거칠어진다는 걸 매일 실감하는 요즘이다. 집권당이자 주류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의원 입에서 “헌재를 부숴버려야 한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대통령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선 “빨갱이는 죽여도 돼”와 같은 섬뜩한 말이 예사로 나온다. 한 극우 유튜버는 탄핵 찬성 발언을 하는 여학생에게 “최신 야동(음란물)이나 추천해 달라”는 성희롱성 발언까지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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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김건희에 ‘밉보인 죄’ 권력은 타인에게 무언가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이다. 기업이나 조직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상당수가 권위주의 정권 때 음으로 양으로 특혜를 받아 성장했다. 반면 재계 순위 7위이던 국제그룹은 전두환 정권에 밉보여 삽시간에 공중분해됐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권력은 누군가를 끌어줄 수도, 망가뜨릴 수도 있다. 살생부란 말이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인치가 법치를 압도하는 후진적 사회일수록, 사유화된 권력일수록 그 정도가 더하다. 김건희 여사가 윤석열 정권의 실질적 1인자라는 말이 처음 나올 때만 해도 상당수 사람들이 ‘그래도 설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보니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김 여사를 등에 업고 잘나간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명태균씨 주장과 통화 녹취록을 보면, 김 여사는 김영선 전 의원이 2022년 5월 창원 의창의 보궐선거 공천을 받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뿐인가. 2024년 총선 앞엔 김 전 의원에게 ‘김상민 전 검사의 (창원 의창) 당선을 도우면 장관이고 공기업 사장이고 시켜주겠다’는 제안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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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김건희·명태균의 ‘총선 전망’ 지난해 11월15일 구속된 정치브로커 명태균씨는 “날 잡으면 한 달 만에 대통령이 탄핵될 텐데 감당되겠나”고 호기를 부렸다. 그로부터 18일 뒤 대통령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내란을 일으켰고, 국회는 12월14일 그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명씨가 구속되고 한 달이 채 안 된 때였다. 명씨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 명씨가 지난 18일 김건희 여사의 또 다른 공천개입 의혹을 폭로했다. 녹취록 제목은 ‘김건희와 마지막 텔레그램 통화 48분’이었다. 명씨가 지난해 2월16~19일 김 여사와 5~6번 통화한 내용을 복기한 것이라고 한다. 녹취록에서, 김 여사가 김상민 전 검사가 국회의원이 되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명씨는 그런 사람 공천하면 총선에서 진다고 난색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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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최소한의 합의마저 깨진 헌정질서 위기…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12·3 내란’은 대통령 윤석열의 독선적 기질과 극단적으로 양극화한 정치 상황이 맞물려 발생한 사건이다. 정치 양극화는 비상계엄 실패 이후 더 심해지고 있다. 체포·구속·기소·탄핵소추안 가결을 거치는 동안 윤석열과 그 추종 세력은 헌법기관인 법원·헌법재판소·선거관리위원회 권위를 흔들며 법치주의를 공공연히 무시했고, 여당도 그 영향권에 끌려들어가고 있다. 민주화 이후 국가 운영의 근간이 되었던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깨진 것이다. 정치학자인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은 “이게 헌정질서의 위기”라며 “2016년 박근혜 탄핵 때와 다른 점”이라고 했다. 그는 “무정부 상태에선 진보든, 보수든 존재할 수 없다. 헌정질서 안에서 민주주의라는 게임을 해보자, 그 게임에서 진보든 보수든 국민에게 호소해서 이기는 쪽이 통치하기로 하자고 약속을 한 것”이라며 “그 룰을 지키는 건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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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헌재,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윤석열 탄핵안’ 100% 인용할 것”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는 사노맹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7년간 복역하다 김대중 정부 때 사면복권됐다. 그는 고려대 로스쿨 초빙교수로 국내에 체류하던 지난 3일 오후 10시28분 대통령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접했다.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수괴 혐의로 기소돼 장기 복역한 그에게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을 내건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숨이 막히고 칼날이 가슴을 겨누는 느낌”을 주었다. 백 교수의 이력을 아는 해외 학계 지인들은 그가 계엄군에 체포·구금될까 걱정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후 국회가 있는 여의도로 달려가려고 짐을 쌌다. “더 큰 비극을 막기 위해 지금 나서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 계엄의 불법성을 알리는 게 더 급하다고 여겨 페이스북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백 교수는 그날 밤 올린 글에서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헌법과 법률을 정면으로 위반한 범법행위”라며 “원천무효”라고 했다. 헌법과 계엄법의 관련 조문을 근거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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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통계도 안 잡히는 ‘이주노동자 죽음’ 1970년 11월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노동자 전태일이 평화시장의 참혹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먼저 한 일은 실태조사였다. 평화시장 노동자 126명에게서 받은 설문지를 토대로 이 시장 2만여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건강 실태를 고발했다. 126명 중 96명(77%)이 폐결핵 등 기관지 계통 질병을, 102명(81%)이 신경성 위장병을 앓았다. 이런 사실이 그때 경향신문 사회면에 보도돼 커다란 사회적 파문이 일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은 실태조사가 무엇보다 강력한 고발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업턴 싱클레어는 1906년 발표한 소설 <정글>에서 미 시카고 지역 육가공업체들의 비위생적인 작업 환경을 생생하게 폭로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지시로 정부가 실태를 조사한 결과 현실은 더욱 심각했고, 이를 계기로 순수식품 및 의약품법과 육류검사법이 만들어졌다. 정확한 실태조사야말로 현실을 바꾸고 바로잡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태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에 이미 무언가를 개선하려는 결의가 담겨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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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과거와는 다른 김정은, 다른 트럼프…북·미 직접대화 당장은 없을 것”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실무를 담당했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서 재당선돼 미국은 2기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롤러코스터를 타던 시기 1기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해본 최 교수는 트럼프 체제의 속성을 외교 최일선에서 직접 경험한 학자이다. 최 교수는 “트럼프가 1기 때처럼 당장 북한과 직접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속히 성과를 낼 수 있는 우크라이나전 종전에 집중할 거고, 한반도 주변 정세도 북·미 대화가 쉽지 않은 구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한국에는 북한 문제 때문에 트럼프 당선인의 귀환을 바란 분들도 많은 것 같은데, (북·미 대화가 급물살 탔던) 2017·2018년의 잔상을 걷어내야 된다”면서 “그때와는 다른 김정은이고, 다른 트럼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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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대통령 당선인의 ‘법적 신분’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현직 대통령 임기가 만료되기 전 70일 이후의 첫번째 수요일에 치러진다. 대통령 당선 후 취임까지 대략 70일을 대통령 당선인으로 지낸다. 대통령 당선인은 헌법·법률상 신분이다. 헌법 68조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돼 있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총리·국무위원 후보자를 지명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대통령에 준하는 경호와 예우도 받는다. 언론의 관심도 대통령 당선인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린다. 실질적인 국가 권력 서열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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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민주당, 중도화 전략 성급…특정 후보 전제 말고 ‘다수연합’ 틀 짜야”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지난 총선 때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 전략을 들고나와 성공을 거뒀고, 야권 전체의 파이도 키웠다. 그때도, 그 이후에도 조 대표 행보는 더불어민주당과의 경쟁보다 ‘동지적 관계’에 방점이 찍혔다. 그런 조 대표가 지난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조국혁신당이 12석짜리 작은 정당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민주당을 직격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검찰개혁 4법을 통과시키자”고 민주당을 압박하기도 했다. 10·16 재·보궐선거 후 민주당 일각에서는 혁신당의 지역구 출마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터다. 조 대표의 작심 발언은 일차적으로 그 반응이겠으나, 근저에는 민주당이 최근 보이는 모습 전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깔린 걸로 보인다. 조 대표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금융투자소득세·종합부동산세 완화, 검찰개혁 속도조절 움직임을 ‘중도화’로 규정했다. 예컨대 민주당이 검찰개혁 법안을 제출하지 않은 것을 두고 “수권을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면서 “검찰개혁을 세게 하면 수권에 방해가 된다, 오해를 일으킨다는 고도의 정무적 판단을 한 걸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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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개혁하려고 협치도 하는 것…국회·대통령의 대립, 결국 민심이 해결” 역대 국회의장의 활동 반경은 대체로 원내에 머물렀다. 국회 운영을 책임진 입법부 수장이고, 의회주의 국가에서 입법부가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을 테니 그게 당연해 보였다. 그런 점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의 행보는 독특하다. 지난 6월 22대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취임한 우 의장은 “국회를 사회경제적 대화의 플랫폼으로 만들자”며 양대노총을 만났다. 방송4법 입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를 해소하자며 범국민협의체 구성을 제안했고, 의·정 갈등 해결을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도 만들자고 했다. 국회는 사회적 갈등 해결의 명실상부한 중심이 되어야 하며, 그러자면 국회는 바깥 현장으로 나가고 외부 이익집단 목소리는 원내에 들어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 의장이 사회적 대화를 자신의 고유 의제로 삼은 데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아 사회적 갈등을 조정해본 경험이 작용했겠으나, 근저에는 사회적 갈등 조정이야말로 정치의 본령이라는 정치관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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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퇴임 대통령의 사저 대한민국 헌법 85조는 “전직 대통령의 신분과 예우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한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6조는 전직 대통령 또는 유족에게 ‘필요한 기간의 경호 및 경비’ 등 예우를 할 수 있도록 했고,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4조는 퇴임 후 최장 15년 이내의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도 대통령경호처의 경호 대상으로 정한다. 이런 법률에 근거해 퇴임한 대통령을 위한 경호시설에 국고가 지원되는데, 정부는 통상 대통령 임기 3년차에 관련 예산을 편성한다. 전직 대통령 사저는 곧잘 반대 정파의 공격 소재가 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국회의원이던 2008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 주변에 1000억원이 들어갔다며 “노 전 대통령처럼 아방궁을 지어서 사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인근 웰빙숲 조성 등은 사저 공사와 무관했고, 사저 땅값·공사비 등으로 쓰인 12억여원은 노 전 대통령이 개인 돈에 대출받은 돈을 보태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