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혁
논설위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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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이 대통령의 ‘X-정치’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하는 걸로 유명했다. 성남시 정책,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SNS를 통해 수시로 알리고 소통했다. 거기에 대중이 호응해 중앙정치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갖기 시작했으니, 성남이라는 변방의 장수를 대통령으로 키운 건 8할이 SNS 정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적 기반이 취약했던 단기필마 이재명에게 SNS는 매우 효과적인 정치적 무기였다. -
여적 깃털같은 판결, 태산같은 훈계 1심 법원이 김건희씨 주가조작과 ‘명태균 게이트’ 혐의에 무죄를 선고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본다. 김씨가 주가조작에 가담한 정황이 수두룩하고 김영선 전 의원의 재보선 공천에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육성 녹음파일도 귓가에 쟁쟁한데 설마 무죄를 주랴 싶었을 것이다. 상식과 법리의 아득한 괴리를 보여주는 판례가 추가된 셈이다. -
경향의눈 장동혁과 극우의 악마적 거래 공수처가 윤석열의 체포·수색 영장을 집행하려 한 지난해 1월, 한국은 내전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윤석열은 경호처를 사병화해 영장 집행을 막았고, 윤석열을 지지하는 극우 군중은 그걸 도왔다. 그 대열에 국민의힘 의원들도 있었다. 1차 집행 시도 때는 45명이, 2차 집행 때는 30명이 한남동 관저 앞에서 “영장 집행은 불법”이라며 ‘인간 방패’ 노릇을 했다. 집권여당 의원들도 대거 가세한 영장 집행 방해는 법질서를 깔아뭉개는 분위기를 조장했고, 며칠 뒤 서울서부지법 폭동으로 이어졌다. -
경향의 눈 개혁입법 전 ‘윤석열 테스트’를 권한다 문재인 정부 말기에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직접 수사를 확 줄이겠다며 ‘검찰 수사권 축소법’ 입법을 주도했다. 검찰의 수사 개시 범위를 6대 범죄에서 2대 범죄(부패·경제)로 줄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으로 이 법을 간단히 무력화했다. 법무부는 시행령을 바꿔 부패·경제 범죄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검찰은 예규를 뜯어고쳐 검찰이 직접 수사 중인 사건과 범인·범죄사실·증거 중 하나라도 공통되면 수사할 수 있게 했다. 이 예규를 근거로 윤석열 명예를 훼손했다며 언론사를 대대적으로 수사했다. 명예훼손 혐의를 직접 수사할 수 없으니 대장동 사건과 억지로 엮은 것이다. 내용인즉슨 명예훼손인데 압수수색영장은 배임수재로 받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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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내란 그 후 1년, 지금 민심이 말하는 것 윤석열 외환 혐의 공소장에는 12·3 내란의 기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적혀 있다. 윤석열이 처음 비상대권을 언급한 건 취임 6개월 뒤인 2022년 11월이다. 그는 “나에게는 비상대권이 있다. 내가 총살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다 싹 쓸어버리겠다”고 했다. 여소야대에서 여야 대치가 가팔랐을 뿐 비상대권 운운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한동수 전 대검 감찰부장의 몇년 전 폭로가 떠올랐다. 윤석열은 검찰총장이던 2020년 3월19일 대검 회식 자리에서 ‘육사에 갔으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다’ ‘쿠데타는 검찰로 치자면 부장검사인 당시 김종필 같은 중령급이 한 것’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 삶의 터전인 이 나라를 제 영웅활극 무대쯤으로 여기는 그의 일그러진 공직관과 독재적 기질이 만악의 근원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치를 해서는, 더더욱이나 대통령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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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피의자 추경호’ 내란특검 출석 2024년 12월3일 밤 10시27분, 대통령 윤석열이 느닷없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놀란 시민들이 여의도 국회 앞으로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모인 4000여명의 시민은 “위헌 계엄 철폐하라”고 외쳤다. 국회로 이동하는 장갑차나 군 차량을 맨몸으로 막아서는 시민들도 있었다. 이들은 국회로 복귀하는 국회의원이 보일 때마다 “계엄을 해제해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
경향의 눈 검찰의 황혼과 문지석 검사의 눈물 문지석 광주지검 부장검사는 국정감사에 두 차례 참고인으로 나와 자신이 인천지검 부천지청 부장검사로 있을 때 지청장·차장이 쿠팡의 일용직 노동자 퇴직금 미지급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라는 압력을 가했다고 눈물의 양심고백을 했다. 이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특히 ‘퇴직금 200만원’이라는 액수가 감정선을 건드렸다고 본다. 일용직 노동자에게 이 돈이 얼마만큼의 무게를 지니는지 깊이 공감하지 않았다면 거기에 검사직을 걸지도, 국감장에 나와 울먹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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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김건희의 왕놀이 사적 117호인 경복궁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가장 먼저 지은 궁궐이다. 조선의 정궁이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270년 넘게 방치된 궁을 고종 재위기에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중건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여기저기 소실·훼손된 걸 복원해 현재에 이른다. 왕이 연회를 하거나 외국 사신을 접견한 경회루가 있고,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왕이 어좌에 앉아 법령 반포나 국가 중요 의식을 거행한 근정전은 사극에 등장하는 조선 궁궐의 대표 이미지가 되었다. -
여적 여당 대변인의 ‘추석 자성’ 일가친척이 모처럼 만나 정담을 나누는 명절은 전국 각지, 남녀노소의 민심이 교차하고 섞이는 용광로다. 명절 상을 앞에 두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여론조사로는 알 수 없는 바닥 민심을 실감할 수 있다. 그래서 정치권은 설과 추석 민심을 항상 무겁게 보고, 언론은 무엇이 명절 대화 소재가 될 것인지 예측하는 기사를 쏟아낸다. 명절 연휴가 끝날 즈음에는 ‘여야가 전하는 명절 민심’과 같은 기사가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
여적 검사들의 ‘집단 항명’ 검찰개혁을 본격적으로 실행하기 시작한 건 노무현 정부다. 상명하복 등을 규정한 검사동일체 원칙을 검찰청법에서 삭제했다. 무엇보다, 검찰개혁이 국민적 화두로 떠올랐다. 그 계기가 된 것이 2003년 3월9일 TV로 생중계된 ‘검사와의 대화’였다. 노 전 대통령과 평검사 대표들이 검찰 인사 문제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 검사들의 태도는 무례했고,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민정수석으로 그 자리에 배석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검사들의 태도는 목불인견이었다”고 했다. -
경향의 눈 민주당은 다수연합의 길을 가고 있는가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해 이재명 대통령 당선으로 막을 내린 6개월의 내란 국면은 두 가지 미스터리를 남겼다. 하나는 한덕수 미스터리다. 바람 부는 대로 눕는 한덕수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더니 평소 처세와 다른 행보를 연발했다. 야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아 윤석열 탄핵심판을 교착상태에 빠뜨리더니 대선에 나서려고 했다. 이 돌연한 변신을 두고 해석이 구구했는데, 내란 특검 수사로 의문이 풀렸다. 내란에 부역한 그는 탄핵심판이 지체되고 대선에서 국민의힘 후보, 이왕이면 자신이 당선되기를 바랄 생존 동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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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국민의힘이라는 정치적 추문 1.5선인 장동혁의 정치적 자산은 한동훈 체제에서 국민의힘 사무총장·수석최고위원을 지낸 것, 탄핵 정국에서 윤석열을 강성 옹호하는 새로운 얼굴로 떠오른 것 정도일 것이다. 장동혁은 전당대회 기간 전한길씨 등과 만나 극우적 발언을 쏟아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키려고 했던 자유민주주의 체제, 굳건히 하려고 했던 정신에 대해 계엄 이후에도 목소리가 높아졌는데 우리는 대선 국면에서 제대로 끌고 가지 못했다”고 했고, “사전투표를 없애고 본투표 기간을 늘리겠다. 현장에서 직접 수개표하는 것으로 제도를 바꾸겠다”며 부정선거 음모론에 동조했다. “제가 당대표가 된다면 적절한 시점에 (윤석열) 면회를 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