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수
경향신문 기자
영화를 보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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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소나무의 위기, 사람의 위기 한국인은 유독 소나무를 좋아합니다. 애국가 2절의 첫 소절(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에 나오듯이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꼽았습니다. 예전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에 생솔가지를 꽂아 부정을 쫓았습니다. 국립 산림과학원이 2022년 한국의 대표 수종 12개를 제시하고 선호하는 나무를 조사했을 때도 1위로 꼽혔다고 합니다. 이런 소나무를 50년 뒤엔 남한, 1세기 후엔 한반도 전체에서 보기 힘들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옵니다. 한반도가 점차 침엽수는 살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나무는 겨울에도 수분 공급이 많이 필요해 적절한 눈이 필요한데 최근에는 가을 가뭄이 심해지고 겨울철 눈의 양도 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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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세월호를 이야기합니다 이번 호 표지 이야기를 어느 기사로 할지 고민했습니다. 주간경향 기사 마감일 오전에는 최종 결과가 나오는 총선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이달 16일에 10주기를 맞는 세월호 이야기를 할지 한참 생각했습니다. 결국 한동안은 전국민적 관심사로 자리할 총선을 선택했습니다. 대신 제가 쓰는 이 글에서는 세월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벌써 10년입니다. 아직도 그날, 2014년 4월 16일 점심때 제가 누구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납니다. 회사 근처 김치찌갯집에서 회사 선배와 “세월호란 배에 사고가 났는데 전원 구조라 다행이다”라는 이야기를 했고, 점심을 먹다가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때의 그 당혹감이 머릿속에 지금도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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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그래도 정치가 필요합니다 뒤늦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회고록을 읽고 있습니다. 개인의 호오나 평가를 떠나서 역사에 기록될 자리에 머물렀던 사람은 의무적으로 회고록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필자의 주관적 의견, 일방적인 주장이 많이 담기겠지만 그 자체로 사료가 될 테니까요. 1~2권을 합쳐 700쪽이 넘는 <이회창 회고록>(김영사·2017년)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띈 일화는 달랑 5쪽가량으로 정리한 2000년 ‘의약분업과 의료대란’입니다. 자연스럽게 요즘 상황이 겹쳐집니다. 김대중 정부는 논란이 많던 의약분업을 2000년 7월 1일부터 강행하기로 방침을 정합니다. 명분은 의료시스템 개혁입니다. 야당인 한나라당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광역시와 도 중 몇 군데 표준지를 선정해 6개월간 시범 실시하고 거기에서 실제로 생기는 문제점을 추출해 이를 보완한 후 전면 실시하자’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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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2017년에 굿윌스토어라는 가게를 취재해 기사를 썼습니다. 서울 송파점에 찾아가 현장을 둘러보고 직원도 인터뷰했습니다. 굿윌스토어는 기업과 개인에게 물품을 기증받아 판매하는 ‘사회적기업’입니다. 당시 송파점의 전체 직원 74명 중 51명이 장애인이었습니다. 지적장애인이 35명, 자폐성 장애인이 12명 등이었고 모두 무기계약직으로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았습니다. 7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송파점 직원들은 한 해에 한 번씩 2박 3일간 여행을 가는데 그동안에는 장애인 직원의 부모들이 ‘자원봉사’로 가게를 지켰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부모들은 기꺼이 나섰고, 되레 여행기간이 너무 짧다며 아쉬워했습니다. 부모들이 발달장애 자녀를 온전히 남의 손에 맡긴 채 마음 편히 지내는 기간이 1년 중 이때뿐이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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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가수 구하라씨는 2019년 11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느새 4년이 훌쩍 넘었네요.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구하라란 이름을 찾고 있습니다. 그를 추모하는 공간이 아니라 국회에서 말입니다. 구씨는 사망한 뒤에도 편히 쉬지 못했습니다. 20년 전 곁을 떠난 친모가 사후에 나타나 상속권을 주장하면서 남은 사람 간 분쟁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구하라법’에 관한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양육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부모는 상속에서 배제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구씨의 사연이 알려지고 여야 의원과 정부가 잇따라 구하라법(민법 개정안)을 쏟아냈습니다. 2021년 4월 정부가 발표한 제4차 건강 가정 기본계획에도 관련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그러나 구하라법은 올해로 4년째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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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역사전쟁의 안타까운 이면 ‘역사전쟁’이라고 하면 대개 국가 간의 일을 지칭합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한 주변국과 갈등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 논란 등이 쉽게 떠오릅니다. 그런데 한국 지방자치단체 간에도 역사전쟁이 진행 중입니다. 새만금 사업으로 바다를 메워 만든 땅, 정확히는 그 앞에 들어설 신항만을 둘러싸고 인근 지자체 간 분쟁이 생겼고, 급기야 역사전쟁으로 번졌습니다. 새만금 사업은 갯벌을 메워 땅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 전라북도 군산-군산 관할의 고군산군도-부안으로 이어지는 방조제를 만들었습니다. 이 방조제는 구간별로 주인이 따로 있는데 1방조제는 부안군, 2방조제는 김제시, 3~4방조제는 군산시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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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더 큰 상상력이 필요하다 장애인, 그리고 농업.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두 단어가 연결될 일이 있을까요. 한국에서 장애인은 그들이 차지하는 규모에 비해 작게 보입니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여전히 길에서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이들이 대부분 집에만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발달장애인 등 주간 보호시설이 필요한 장애인은 20만명인데 수용 가능한 인원은 1만명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이들을 돌봐야 하는 가족도 ‘집 말고 갈 곳’이 절실한데 말입니다. 장애인과 가족에게 농촌, 정확하게는 농업 현장을 ‘치유의 공간’으로 제공하는 사업이 있습니다.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작물을 수확하면서 심리적 만족감을 얻으면 거친 행동도 바뀌고, 사회성과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장애인 일자리로 가장 적합한 분야도 농업입니다. 제품 불량이 치명적인 제조업과 달리 농업은 실수와 느림도 품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농업은 장애인을 일터로 끌어내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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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이름의 의미 이름이란 무엇일까요. 조금 더 나아가 이름이 남거나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이름의 첫 번째 풀이는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입니다. 두 번째 풀이는 “사람의 성 아래에 붙여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부르는 말”입니다. 국립국어원이 알려주듯이 이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다른 사람(것)과의 구별’입니다. 한명 한명이 하나의 우주나 마찬가지인 사람을 다른 우주와 구분 짓게 하는 첫 번째 조건이 이름입니다. 그러니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시인 정현종이 시 ‘방문객’에서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표현한 ‘사람이 오는’ 절차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결이 좀 다르긴 하지만 김춘수의 시 ‘꽃’도 이름의 중요성을 노래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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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서울과 부산의 격차 한국의 수도 서울과 제2 도시 부산의 격차는 얼마나 될까요. 정도에 관한 생각은 다를지언정 격차가 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 지난 1월 벌어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서울과 부산의 막연한 격차를 수면 위로 드러냈습니다. 목을 다친 이 대표는 부산대병원에서 응급치료만 받은 뒤 헬리콥터를 타고 서울에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갔습니다. 부산대병원은 연간 수백 명의 외상환자를 치료하는 외상센터지만, 이 대표의 가족은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기로 했습니다. 이 대표의 집과 가깝다는 이유 외에도 ‘서울’이라는 이름이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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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방심위 직원들을 응원한다 한국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라는 민간독립기구가 있다. 홈페이지에 나온 설치 목적은 ‘방송 내용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보장하고, 정보통신에서의 건전한 문화를 창달하며 정보통신의 올바른 이용환경 조성’이다. 방송 관계자 외에 이런 기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름이 비슷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구분을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방통위가 2020년 11월 두 기관을 혼동하지 말라고 자료를 낸 적도 있을 정도다. 이렇듯 존재감이 없던 방심위가 지난해 가을부터 무서운 기세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요즘은 대통령 직속 중앙행정기관인 방통위보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이 더 많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류희림 방심위원장의 역할이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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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레드팀보다 언론 먼저 마음이 조막만 한 편이라 다른 사람에게 비판받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 드러내서 남을 비판하지 않으려 노력하기는 한다. 그런데 직업이 직업인지라 항상 내 마음이 편한 대로 일을 할 수는 없다. 지난 7일은 종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날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달 16일 치른 2024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를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시행 150일 정도를 앞두고 갑자기 “킬러 문항을 배제하라”고 지시한 그 수능의 결과다. 정부는 채점 결과를 발표하면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면서도 변별력을 확보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경향신문은 정부가 발표한 대로만 쓰지 않았다. 그날 수능 채점 결과를 전한 기사의 제목은 “‘역대급 불수능’…킬러 빼고 변별력 잡으려다 ‘적정 난이도’ 잃었다”였다. 입시 전문가의 “평가원은 올해 수험생들의 실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는 말을 인용했고, ‘킬러 문항 배제’의 목적이었던 사교육 약화는커녕 사교육 심화를 불러오게 생겼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기사는 교육을 담당하는 취재기자가 썼지만 최종 검토와 전송은 내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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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지난달 28일 서울에 기반을 둔 종합일간지들은 오랜만에 ‘대동단결’했다. 종이신문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1면에 같은 주제로 기사를 썼는데, 비판하는 대목까지 똑같았다. 바로 전날인 10월27일 정부가 발표한 ‘국민연금 개혁안’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신문사들까지 한목소리를 내도록 만들었다. 1면 기사의 제목만 봐도 신문들이 의도와 상관없이 ‘의기투합’했음을 알 수 있다. 경향신문은 “‘숫자’ 빼고 방향만 제시/국민연금 ‘맹탕 개혁안’”으로 제목을 뽑았다. 동아일보는 “‘내는 돈-받는 돈’ 숫자 다 빠져/정부, 국민연금 개혁안 ‘맹탕’”, 세계일보는 “내는 돈·받는 돈 수치 다 빠진 ‘맹탕 개혁안’”, 중앙일보는 “총선 의식 몸 사리나/국민연금 개혁 ‘맹탕’”, 한국일보는 “국민연금 개혁 ‘빈 답안지’ 제출한 정부”라고 제목을 달았다. 토요일 자에 표지 기사가 따로 있는 한겨레는 5면 머리기사로 “숫자는 모두 빈칸 … 정부 국민연금 개혁 ‘책임 회피’”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