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동
논설실장
최신기사
-
서의동 칼럼 계엄이 정당화한 ‘적대적 두 국가론’ 12·3 비상계엄 시기 소집된 HID(북파공작원) 요원들에게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을 체포·심문하는 것 외에 어떤 임무가 부여됐는지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정보사가 구입한 북한군복 170벌 용도도 분명치 않다. HID 동원 총책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 메모 조각들을 맞춰보면 정치·노동·종교·법조·언론계 ‘문제 인사’들을 체포한 뒤 배에 태워 북방한계선(NLL) 근처 해상에서 선박째 폭파시키는 그림이 그려진다. 노상원은 2016년 대북 임무를 마친 요원들에게 원격 폭탄조끼를 입혀 귀환 전 폭사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북한군으로 위장한 HID 요원들에게 ‘반윤 인사’들을 처리토록 한 뒤 요원들까지 제거해 증거를 없앤 다음 이를 북한 소행으로 모는 ‘북풍공작’을 시도했을 것이란 극단적 추론도 성립한다.
-
여적 한남동의 ‘키세스 시민들’ 지난 4일 밤 서울 한남동 관저 앞 도로. 자정 가까운 시각에도 많은 이들이 도로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무대에 올라온 참가자들 연설에 귀 기울이며 구호를 외치거나 응원봉을 흔들었다. 노숙 채비를 든든히 한 듯 두툼한 깔개들이 보였고, 대열을 오가며 도시락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도 눈에 띄었다. 일행과 무대 가까이 비어 있는 곳에 자리 잡자 집회장을 떠나는 이가 은박담요를 건네줬다. ‘수고하라’ ‘이제부터 내가 지킨다’는 무언의 바통터치가 곳곳에서 이뤄졌다. 은박담요를 휘감은 시민들의 몸은 야간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물방울 모양의 내용물을 은박지로 포장한 초콜릿처럼 보여 ‘키세스 시위대’란 별명이 붙는다. 새벽 눈발에도 꿈쩍 않고 자리 지키는 모습은 등신불(等身佛)과도 닮았다.
-
여적 로제의 눈물 대중문화 예술인들은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다. 악플이나 루머의 표적이 되기 쉽고 얼굴이 알려져 사생활에도 제약이 많다. 대중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가 늘 충돌하면서 내면의 갈등도 극심하다. 100점이나 정답이 없는 예술 세계에선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하기 어렵고, 그런 탓에 대중들의 비판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K팝 아이돌에서 글로벌 아티스트로 성장한 로제가 미국 뉴욕타임스와 최근 한 인터뷰는 화려한 조명의 사각지대에 꾹꾹 감춰진 아티스트들의 고단한 내면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35분 분량의 팟캐스트로 지난 23일 공개된 인터뷰에서 로제는 아침 9시반 기상해 새벽 2시까지 보컬·댄스, 어학 훈련이 반복되는 연습생 과정이 얼마나 혹독한지 외부인들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낙담할 때도 있었지만, 호주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실패한 과정을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결국 “살아남았다”고 했다. 데뷔 초기 몇해가 어려웠지만 “실은 아직도 힘들다”며 이런 감정은 아마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
서의동 칼럼 대격차 시대 만든 윤석열의 ‘양극화 해소 쇼’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후반 국정 목표로 ‘양극화 해소’를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가 직접 개입을 해서라도 임기 후반기에는 소득·교육 불균형 등 양극화를 타개하기 위해 전향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서민·청년·중소기업을 지원할 정책 리스트를 만들고 있고, 국회 예산안 심사에서 여야의 양극화 관련 사업을 수용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느닷없는 태세전환이다. 2년 반 동안 국정운영을 하면서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국민살림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몰랐단 말인가. 분노가 치밀 정도로 어이가 없다.
-
여적 이시바의 ‘26일 천하’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뒤 미군정 지배를 받다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한 다음날 ‘미·일 안보조약’을 맺었다. 국권 회복과 동시에 미국의 ‘기지국가’가 된 일본이 외교안보에서 미국이 그어둔 선을 넘는 일은 드물었다. 그 선을 넘다 몰락한 대표적 인물이 다나카 가쿠에이(1918~1993)다. 1970년대 초 미·중 데탕트가 무르익자 다나카 총리는 미국보다 7년 앞선 1972년 중국과 깜짝 수교를 단행했다. 미국은 일본의 ‘추월’이 괘씸했다. 다나카는 내친걸음으로 시베리아 유전 개발을 목적으로 소련에 접근했다. 다나카의 ‘자원외교’는 동서 대립이라는 냉전질서를 훼손하는 것이어서 또 다시 미국의 노여움을 샀다. 그는 결국 미국 록히드 항공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기세가 꺾였다.
-
서의동 칼럼 통일은 평화의 반대말이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끝나기 무섭게 38선으로 분단된 뒤 남북은 각자의 근대 국민국가를 세웠다. 같은 정체성을 가진 ‘국민’이 될 기회도, 유일한 통치기구가 일정한 영토를 통제하며 물질적 복리를 제공하는 단일 ‘국가’의 경험도 남북 주민들은 갖지 못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언어와 출판문화를 공유함으로써 국민의 집단 정체성이 형성된다고 봤지만, 분단 이후 남북 주민들은 같은 신문·잡지와 방송을 접할 수 없었다. 같은 한글을 쓰되, 그에 담긴 사상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한국전쟁 3년간 경남 일부와 제주도를 제외한 전역에서 전쟁으로 가족, 이웃, 친척을 잃지 않은 한국인은 없다시피 했다. 북한은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남북의 적대성은 극단화됐고, 한쪽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으면 통일이 불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통일은 평화의 반대말이 됐다. 이 엄연한 사실을 모른 체하며 남북은 수시로 ‘통일론’을 띄웠다. 전후 한국보다 앞서 경제성장을 달성한 북한이 먼저 통일 공세를 펼쳤으나 1980년대를 거치며 한국이 역공에 나섰다. 통일 공세의 본질은 ‘힘자랑’이었다.
-
서의동 칼럼 한·일 ‘아베 유훈 체제’의 등장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지난주 서울 방문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3월 강제동원 배상 제3자 변제를 시작으로 ‘아낌없이’ 내줬지만 기시다는 물컵의 ‘나머지 반’을 채우지 않은 채 돌아갔다. 이는 2019년 7월 아베 신조 총리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한·일 역사전쟁이 한국의 굴복으로 일단락된 것이자, 다시는 사과하지 않겠다는 ‘아베 독트린’이 관철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일관계를 승패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이 과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적어도 과거사 문제에선 ‘제로섬’ 관계가 존재한다고 본다.
-
서의동 칼럼 사도광산, ‘위생처리’되는 역사 지난달 20일 독일 베를린 국방부 청사에서는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 총통 암살을 기도했다가 희생된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등에 대한 독일 정부 추모식이 열렸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숄츠 총리 등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의인들을 기렸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2008)로도 알려진 사건은 프로이센 귀족 출신 군인들로 구성된 비밀결사 ‘크라이사우 서클’이 주도했다. 슈타우펜베르크는 1944년 7월20일 히틀러가 작전을 주재하던 회의실에 폭탄이 든 가방을 두고 나온다. 폭발을 확인한 뒤 공모자들과 쿠데타 계획(발키리 작전)을 실행했지만, 부상에 그친 히틀러 측 반격으로 그날 밤 붙잡혀 즉결 처형된다.
-
서의동 칼럼 여권발 ‘핵무장 논의’의 공허함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 가능성이 커지면서 여권 일각에서 핵무장론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트럼프가 집권하면 북한 핵을 묵인하는 방향으로 북·미가 타협할 것이고,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도 있어 안보 불안이 커진다는 가정이 주된 전제다. 그러나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핵개발을 이처럼 떠들썩하게 공론화할 일인지 의문이 든다. 어느 나라건 핵개발은 극비리에 추진돼왔기 때문이다. 북한, 인도,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도 핵개발 착수부터 알제리에서 핵실험을 마칠 때까지 십수년간 비밀을 유지했다. 미국이 눈치를 챘지만 샤를 드골 대통령이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회담하기 전까지는 공론화하지 않았다.
-
서의동 칼럼 ‘침 뱉기’ 말고 할 줄 아는 게 뭔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최근 펴낸 회고록에는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에 담기지 않은 구두 합의가 나온다. 당시 남북 정상은 공동성명에 담긴 ‘영변 핵시설 폐기’를 북한과 미국의 전문가·기술자들이 공동 작업으로 하는 방안에 뜻을 모았다고 한다. 이는 이듬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후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기자회견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 영변의 핵활동 이력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고, 따라서 다른 쪽으로 분산돼 있을지 모를 핵물질이나 핵무기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북한 핵의 전모를 미국이 들여다볼 기회이니 투명성 면에서도 ‘핵 리스트’ 제출에 버금가는 효과라고 할 수 있다.
-
여적 라인사태 ‘국가의 배임’ [여적] 라인사태 ‘국가의 배임’ 2011년 3월11일 동일본대지진 발생 직후 도쿄 시내 공중전화 부스는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순간적인 통신망 과부하 탓에 휴대전화가 먹통이 돼 통화·문자메시지 다 불가능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인터넷 기반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가족·친지 생사를 확인했다. 3개월 뒤 네이버의 일본 법인 NHN재팬이 출시한 메신저 ‘라인(LINE)’은 재난이 잦은 일본에서 절실한 서비스였다. 간 나오토 당시 총리가 한일병합 100년 사죄 담화를 발표하는 등 순탄했던 한·일관계도 라인 탄생 배경으로 꼽힌다.
-
서의동 칼럼 윤석열의 ‘중산층 죽이기’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스윙보터가 많은 중산층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의 ‘중산층 죽이기’ 정책에 대한 위기의식이 컸던 것이다. 세수결손으로 쪼그라든 재정의 상당 부분을 ‘부자를 더 부유하게’ 만드는 데 돌리면 중산층·서민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든다는 건 초등학생들도 아는 ‘제로섬’ 산식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뭘 알고, 모르는지’를 모르는 데다 툭하면 격노하는 통에 교정받을 기회도 없던 윤석열 대통령은 ‘감세가 중산층 정책’이라는 희대의 망언을, 선거를 코앞에 두고 쏟아냈다. 사람들의 ‘분노 뚜껑’이 열리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