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동
논설실장
최신기사
-
경향의 눈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녹여 낫을 지난주 벌어진 일 중에서 총선 결과보다도 더 눈길을 끈 것은 국회에 제출된 2차 추가경정예산 내역이다.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국방비에서 9000억원을 삭감하기로 한 것이다. F-35A 스텔스 전투기, 해상작전헬기 같은 미국산 첨단무기 구매 예산을 깎겠다는 발표에 구약성서의 한 구절을 떠올린 이도 있었을 것 같다. “칼을 쳐서 보습(쟁기의 날)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미가서 4장 3절)
-
경향의 눈 ‘개방형 통상국가’ 한국을 덮친 팬데믹 한국은 개방형 통상국가다. 남북 분단과 전쟁이 없었다면 다른 형태의 발전 전략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1960년대 수출입국(立國)으로 방향을 정한 이후 수십년의 세월을 거치며 좋건 싫건 틀이 굳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주요국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과격한 형태의 경제협정을 체결하면서 시스템을 한껏 열어젖혔다.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세계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올라탄 것이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보호무역주의가 대두하면서 이 전략에 물음표가 붙고 있다.
-
여적 심은경의 일본 영화상 수상 일본에서 지난해 6월 개봉된 영화 <신문기자>의 주연을 한국 배우 심은경이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영화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총리관저(官邸)로 불리는 권부의 비리를 정면으로 파헤치는 신문기자 요시오카 에리카 역할에 일본 배우들이 부담을 느끼다 보니 한국 배우에게 배역이 돌아갔다는 일본 주간지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한국 개봉 때 방한한 가와무라 미쓰노부 프로듀서는 “일본 여배우에게는 전혀 출연 제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
여적 김여정의 독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한국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8년 2월9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인사들과 함께 비행기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다. 다음날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고,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을 함께 관람하는 등 2박3일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갔다. 고전적인 헤어스타일에 수수한 옷차림의 ‘백두혈통’ 김여정은 방한기간 중 품격 있는 태도로 한국 사회에 깊은 인상을 심었다. 2018년 세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분주히 움직이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내는 모습에 ‘신스틸러’ ‘열일하는 김여정’ 같은 수식이 붙기도 했다.
-
여적 착한 임대료 서울은 나날이 새로워진다. 이건 찬사가 아니라 비아냥이다. 오래된 거리와 가게를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을 오랜만에 찾은 외국인들이 예전 들렀던 가게를 찾아갔다가 사라져 낙심하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임대료가 턱없이 오르기 때문이다. 철거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노포(老鋪) 냉면집 ‘을지면옥’도 결국 철거될 운명이다. 숱한 근대유산들이 표지석 하나 달랑 남기고 스러졌다. 지대추구라는 불가사리는 600년 도시 서울에 쌓인 ‘세월의 더께’까지 남김없이 먹어 치운다.
-
여적 언택트 사회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지난해 여성들과의 부적절한 신체접촉으로 구설에 오르자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스트레이트 암 클럽(straight arm club)에 가입하라”고 충고했다. 한쪽 팔을 뻗은 정도로 상대방과 거리를 두라는 의미다. 재일코리안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樹)의 소설 <GO>에서 왕년의 복서였던 아버지는 권투를 배우려는 아들을 걱정하며 말한다. “지금 네 주먹이 그린 원의 크기가 대충 너란 인간의 크기다. 그 원 안에서 꼼짝 않고 앉아서, 손 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에만 손을 내밀고 가만히만 있으면 넌 아무 상처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
여적 트럼프의 ‘기생충’ 헐뜯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하던 지난해 6월 트럼프를 형상화한 6m 크기의 대형 풍선이 런던 국회의사당 상공에 떠올랐다. 알몸에 기저귀를 찬 채 잔뜩 찡그린 ‘아기 트럼프’가 한 손에 휴대전화를 쥔 모습이다. 무릎을 칠 만큼 트럼프의 특징을 잘 잡아낸 ‘베이비 트럼프’ 풍선은 영국은 물론, 미국 내 반(反)트럼프 시위대의 인기 아이템이다.
-
경향의 눈 일본의 ‘국민 버리기’ 작전 일본인들은 ‘미즈기와(水際·물가) 대책’으로 불리는 일본 정부의 대응방침에 안심했을 것이다. 해안을 경계로 방어선을 쳐 코로나19의 상륙을 막겠다는 ‘쇄국(鎖國)작전’은 섬나라에 익숙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예전부터 이런 식으로 나라의 안전을 지키고 평화를 누려왔다. 그러나 이런 대처법은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예측불허의 리스크가 커지는 글로벌 시대엔 잘 먹히지 않는다. 더구나 경직된 거버넌스(통치구조)와 결합할 경우 ‘기능부전’에 빠지기 십상이다.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대한 미즈기와 작전은 일본형 시스템의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
여적 BBC와 NHK 영국과 일본은 대륙에 인접한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징 외에도 왕실제도, 차량 좌측통행 등 닮은 것들이 꽤 많다. 1926년 창립된 NHK와, 4년 앞서 개국했다가 1927년 왕실특허를 받고 공영기업이 된 BBC도 운영구조가 흡사하다. BBC와 NHK는 오랜 기간 공영방송의 대표 격이었지만, 최근에는 둘 다 형편이 썩 좋지 못하다. 영국 정부가 지난 5일 BBC 수입의 근간인 수신료 제도에 대한 재검토에 착수했다. 수신료 미납을 형사처벌하는 현행 제도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조사로, 자칫 수신료 폐지로 이어질 개연성도 있다. 이번 조사가 보리스 존슨이 이끄는 보수당 정권과 BBC 간의 마찰에서 비롯된 정치보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영국인들의 BBC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높다. 왕실, 군대, 의료보험제도와 더불어 영국을 대표하는 존재로 친다. 신뢰의 근간은 공정성과 중립성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된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영국 정부의 문건이 이라크 위협을 과장하는 쪽으로 윤색됐다는 보도로 BBC는 토니 블레어 정부와 전면전을 치러야 했다. 이때도 영국인들은 법관 허튼 경이 이끈 진상조사단이 정권을 편드는 내용으로 작성한 최종보고서 대신 BBC를 더 신뢰했다. 그레그 다이크 전 BBC 사장은 “집권당은 언제든 자신들 노선을 지지해 주도록 압력을 넣었지만 이를 거부해온 게 BBC의 역사”라고 했다. BBC가 이번 위기도 어떻게든 극복하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근거다.
-
여적 시노포비아 아시아에 대한 유럽인들의 공포는 기원후 5세기 아틸라가 이끈 훈족의 침략에서 비롯됐지만, 유럽이 세계패권을 틀어쥔 근대 이후에는 서양 주도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색채를 띠어갔다. 19세기 말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주창한 ‘황화론(黃禍論)’은 급부상하는 일본을 견제하고, 유럽의 중국 침략을 뒷받침하는 국제정치적 담론이었다.
-
경향의 눈 도로시의 북한 여행 패러글라이딩 도중 토네이도에 휩쓸려 북한 땅에 불시착한 여성 기업인 윤세리와 북한군 장교 리정혁이 사랑에 빠지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한국 드라마의 ‘운동장’을 넓혀 놨다. “일단 못 보던 광경이 풍물지적 흥미를 유발”한다는 평(대중문화평론가 황진미)대로 북한이라는 금단의 공간을 무대에 편입시킨 것이 우선 득점 포인트다. 북한군 장교, 그것도 군부서열 1위인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아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설정도 전무후무하다. 상대는 재벌 2세인 여성 CEO. 남녀 주인공이 남북 체제의 파워집단 출신이라는 배역설정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
여적 기후 행동주의 투자 지난해 1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25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인류 공동의 과제인 기후대응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체제가 얼마나 무력한 ‘거버넌스(지배구조)’인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 총회의 목표는 2015년 채택된 파리협정을 이행하기 위한 17개 규칙을 완성하는 것이지만, 회기를 이틀 연장하고도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기후대응이 차일피일 늦어지는 가운데 세계 곳곳의 자연은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희생돼가고, 자연은 기후이변으로 복수하고 있다. 세계정부 대신 국가들 간의 연맹체를 만들자는 칸트의 구상은 세계평화는 물론 기후대응에도 무력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