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동
논설실장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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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미국 대통령의 DMZ 방문 한국전쟁은 미국이 이기지 못한 ‘불명예스러운 전쟁’이자 ‘잊혀진 전쟁’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년 뒤 극동의 조그만 반도에서 벌어진 국지전인 데다, 베트남전처럼 전쟁을 성찰할 계기를 제공하지도 못했다. 전쟁 1년 만에 전선이 고착된 뒤에는 소모전을 되풀이하다 멈춰 드라마틱한 요소도 부족했다. 보통의 미국인들이 야전병원을 무대로 한 시트콤 <매시(MASH)>를 통해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저술가 시어도어 리드 페렌바크는 <이런 전쟁>(1963)에서 미국은 당시 며칠 혹은 몇달 안에 끝날 분쟁 정도로 여기고 참전했다가 수렁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준비 안된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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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우리는 김원봉을 얼마나 알고 있나 오스트리아는 나치의 독일제국에 합병된 상태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패전국이 돼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4개 연합국의 분할통치를 받게 됐다. 38선 남북을 미·소가 분할 점령했던 한반도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연합국의 군사정부와 오스트리아 임시정부가 공존했다는 점이 달랐다. 패전 직전 노(老)정객 카를 레너가 친나치 계열을 뺀 모든 정파를 아우른 임시정부를 세운 것이다. 소련을 제외한 3개 연합국은 사회주의 정치가 레너가 주도하는 임시정부를 경계했으나 얼마 안 가 승인했고, 임시정부는 오스트리아 전역에 관할권을 행사하게 됐다. 그해 11월 총선에서 50%를 득표해 제1당이 된 보수계 국민당은 단독정부 수립 대신 사회당, 공산당과 ‘대연정’을 구성했다. 분단 위기를 딛고 통일독립을 이루려면 정치권이 기득권을 버리고 단합해야 한다는 시국인식이 좌우합작을 가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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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대북소식통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에게 단서를 제공한 소식통은 ‘딥 스로트’로 불렸다. 우드워드 기자가 빨간 깃발이 있는 꽃화분을 자신의 아파트 발코니 뒤편으로 옮겨 ‘만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면 딥 스로트는 그의 아파트로 배달되는 신문에 시계를 그려 넣어 응답했다. 30여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이 소식통은 미 연방수사국(FBI) 간부인 윌리엄 마크 펠트(1913~2008)였다. ‘소식통’들은 한국에서는 북한 관련 보도에 자주 등장한다. 대북소식통에는 국가정보원, 외교안보 부처 고위인사, 북한이탈주민, 대북사업가, 주한 외교관, 북한현지 주민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북한체제 특성상 다른 분야보다도 더 취재원 보호가 필요한 만큼 불가피하게 ‘대북소식통’으로 얼버무려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역이용해 특정 목적하에 설익은 첩보를 흘리는 경우도 있고, 이를 그대로 받아쓰다가 오보를 내기도 한다. 대북소식통들은 남북관계가 악화될 때, 보수언론의 보도에 등장하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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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미국과 중국의 ‘콩 전쟁’ 중국인들의 돼지고기 사랑은 유별나다. 돼지고기 요리가 1500종이 넘을 정도다. 송나라 문인 소동파가 만들었다는 둥포러우(東坡肉)는 양념한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긴 뒤 술, 파, 간장 등을 넣고 졸여낸 요리다. 중국식 삼겹살 조림인 훙사오러우(紅燒肉)는 마오쩌둥이 즐기던 요리로 유명하다. 한국의 족발요리와 흡사한 바이윈주서우(白雲猪手)는 여름철 보양식으로 인기다. 돼지사육에는 콩(대두)이 필수다. 콩에서 기름을 짠 뒤 남은 콩깻묵이 사료가 된다. 콩은 두부, 콩국, 간장 등의 재료일 뿐 아니라 튀기고 볶는 요리가 많은 중국 요리에 기름으로도 요긴하다. 식생활에 필수적인 만큼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물가 급등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걸 보면 콩은 ‘정치적 작물’인 셈이다. 중국의 콩 소비량은 2012년 7485만t에서 2017년 1억1218만t으로 급증했다. 경제성장으로 윤택해진 중국인들이 육류 소비를 늘린 영향이다. 하지만 국산은 수요의 10%대에 불과해 대부분 수입해야 한다. 특히 미국 수입 비중이 커 미국 수출물량 중 60%가 중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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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밀크셰이킹 1991년 6월3일 한국외국어대 캠퍼스에 총학생회의 교내방송이 울렸다. “학우 여러분, 전교조 선생님들을 학살한 정원식이 지금 학교에 있습니다.” 국무총리 서리에 지명된 정원식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은 이날 외대 대학원에서 예정된 마지막 강의를 하던 중이었다. 그는 강의를 서둘러 마치고 학교를 빠져나가려 했지만, 흥분한 학생들이 에워싼 채 계란과 밀가루를 퍼부으며 폭행했다. 얼굴과 전신이 밀가루 범벅이 된 정 총리의 흉한 몰골이 다음날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그해 4월 명지대생 강경대가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고, 성균관대생 김귀정이 시위현장에서 압사당했다. 공안정국에 저항하던 대학생들이 잇따라 희생되면서 정권 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잇따랐다. 그런 와중에 장관 시절 전교조를 불법화한 정원식을 총리로 지명한 것은 학생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하지만 ‘밀가루 사건’으로 정국은 급반전됐다. 정부는 “체제수호 차원에서 대처하겠다”며 대반격에 나섰고, 대학생들은 ‘스승을 모욕한 패륜아’로 몰렸다. 대학가 시위는 한순간에 사그라졌고 집권 민자당은 2주 뒤 지자체 선거에서 압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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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원자로 제어봉 1999년 6월18일 일본 이시카와현에 있는 시가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연료봉 사이에 삽입돼 있던 제어봉 5개가 아래로 빠지면서 방사선과 열이 급격히 방출되는 임계사고가 발생했다. 관할 호쿠리쿠(北陸)전력은 이를 내내 감춰오다 8년 만인 2007년 3월15일에야 공개했다. 이후 며칠 간격으로 각지 원전의 과거 사고가 차례로 공개됐다. 도쿄전력은 1978년 11월2일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에서 제어봉 5개가 빠져 7시간 반이나 임계상태가 지속된 사실을 무려 29년 만에 털어놓기도 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대규모 방사성물질이 유출된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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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바둑과 한·일관계 일본이 바둑의 최강국이던 1960~1970년대엔 한국의 바둑 인재들이 일본으로 줄줄이 유학을 떠났다. 1962년 세계 최연소(9세) 프로기사가 된 조훈현 9단(66·현 자유한국당 의원)도 열살이던 1963년 일본에 갔다. 당시 한·일 간 기력 차가 상당해 한국에서 프로 입단을 했는데도 일본에서는 연구생 4급으로 시작해야 했다. 조훈현은 원로인 세고에 겐사쿠 9단의 내제자가 됐다. 이국 생활의 어려움을 견뎌가며 바둑 공부에 정진해 일본 바둑계의 촉망받는 신예기사로 성장했다. 9년 만에 귀국한 조 9단은 얼마 안 가 국내 기전을 휩쓸며 정상에 올랐다. 동갑내기 국내파 서봉수 9단과 라이벌전을 펼치며 바둑팬들을 열광시켰고, 또 다른 ‘바둑계의 별’ 이창호 9단을 길러냈다. 한국 바둑은 어느덧 실력에서 일본을 압도하면서 이제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오고 있다. 일본의 8세 소녀 나카무라 스미레가 지난해 바둑유학을 왔다. 나카무라는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공부한 뒤 지난 4월 일본 기원에서 최연소로 프로에 입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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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말리 언니 ‘한국 치즈의 아버지’ 지정환 신부(1931~2019). 벨기에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1958년 가톨릭 사제가 된 뒤 이듬해 부산항에 발을 디뎠다. 1964년 임실에 부임해 가난에 찌든 산골마을 농민들을 위해 산양을 기르고 산양유를 생산했다. 하지만 잘 팔리지 않자 치즈 생산에 도전했고, 곡절 끝에 성공해 1969년부터 치즈를 본격 생산했다. 제대로 된 치즈공장 하나 없던 당시 임실 치즈는 서울의 특급호텔에 납품될 정도로 인기였다. 지정환 신부는 치즈공장의 운영권, 소유권을 주민협동조합에 넘긴 뒤 장애인을 돕는 일에 남은 생을 보내다 지난 4월13일 선종했다. 그는 가수 노사연의 ‘만남’을 좋아해 장례식에서도 불러 달라고 했다. “우리들의 만남은 하나라도 우연이 없다. 그렇게 귀하게 만났으니 서로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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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북·일 정상 못 만날 까닭 없다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던 2002년 9월17일 동북아는 난기류에 휩싸여 있었다. 그해 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이자 “선제공격으로 정권을 교체시켜야 할 대상”으로 지목했다. 부시 행정부의 등장 이후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도 탄력을 잃었다. 그해 4월 평양에 특사로 간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면서 소강상태이던 남북관계가 풀렸지만,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북한을 궁지에 몰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이런 시점에서 미국의 맹방인 일본 총리의 방북은 ‘일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런 사정 탓인지 고이즈미 총리는 최대한 건조하게 회담에 임했다. 당일치기로 방문한 평양에서 그는 시종 표정을 풀지 않았고, 방북단은 오찬 대신 일본에서 챙겨온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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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미국과 이란·북한 핵 갈등 2001년 미국에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한·미 외교가에서는 ‘ABC’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ABC는 ‘Anything but Clinton(클린턴만 아니라면)’의 약자로, 전임 빌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은 일단 부정하고 보는 태도를 가리킨다. 클린턴 대통령과 궁합을 맞춰 대북 햇볕정책을 추진해온 김대중 정부에 네오콘(신보수주의)을 표방하는 부시의 집권은 재앙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시는 9·11테러사건을 계기로 이라크, 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더니 클린턴 행정부의 ‘북·미 제네바 합의’를 파탄내고 2차 북핵위기를 촉발시켰다. 제네바 합의는 북한은 핵을 동결하고 미국은 그 대가로 경수로형 원자력발전소 2기를 건설해주는 한편 장기적으로 국교정상화를 하기로 한 합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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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넌-루거법 북한 핵문제를 들여다보면 영어 이니셜로 된 여러 개념들과 마주친다. 지난해 북·미협상이 본격화되면서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CVID가 대표적이다. 2차 북핵위기 이후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제시한 CVID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 방식을 가리킨다. 리비아 핵폐기 과정에 적용된 CVID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재등장하자 북한은 ‘패전국에나 적용하는 방식’이라며 반발했다. 결국 지난해 북·미 1차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는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로 후퇴했지만 강경파들이 호되게 비판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다시 CVID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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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일본 미야자키(宮崎)현 지사를 지낸 히가시고쿠바루 히데오(東國原英夫·61)는 코미디언 출신이다. 기타노 다케시가 이끄는 ‘다케시 군단’에서 만담으로 인기를 얻은 그는 지사가 된 뒤에도 방송에 나와 구수한 입담으로 지역 홍보에 발 벗고 나섰다. 그 덕에 미야자키의 토산품 판매가 껑충 뛰었고, 그가 ‘태양의 달걀’이라고 이름 붙인 미야자키산 망고는 유명 브랜드가 됐다. 비효율적인 공공사업을 통폐합하는 등 혁신행정으로 지지율이 한때 90%까지 치솟았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시장을 지낸 욘 그나르(52)는 정치인 풍자공연을 해오다가 친구들 권유로 ‘베스트당’을 창당했다. 그는 선거에서 시의 재정위기를 비꼰 무리수 공약을 내건 뒤 ‘공약을 지키지 않겠다’는 공약을 추가했는데 이유가 걸작이다. “다른 정당들이 거짓말을 숨기는 것과 달리, 우리는 그것을 숨기지 않을 거니까요.” 그는 4년간 시장직을 훌륭하게 수행한 뒤 정계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