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동
논설실장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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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북한에는 과거로, 한국에는 미래로 가자는 일본 일본의 한반도 외교는 이율배반적이다. 한국에는 미래로 가자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과거를 추궁한다. 일본과 북한은 2002년 정상회담에서 과거사를 서로 인정하고 청산한 다음 국교수립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이 취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본인 납치사실을 시인했고, 피해자 13명 중 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자’는 북·일 평양선언의 취지가 무색하게 납치문제에 집착했고, 일본으로 일시 귀국한 생존자 5명도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납치문제가 복잡하게 꼬인 이유는 ‘가해자’ 일본이 ‘피해자’의 처지에 설 모처럼의 기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후나바시 요이치의 표현을 빌면 이런 처지의 바뀜에서 일본인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듯 하다. ‘우리도 한국이나 중국만큼 당하고 살았다. 납치문제가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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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야마모토 다로의 정치실험 지난 21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은 아베 신조 총리가 아니라 배우 출신 정치인 야마모토 다로(45)일 것이다. 그가 결성한 정치단체 ‘레이와 신센구미’는 이번 선거에서 비례대표 2석을 획득했고, 득표율 2%를 넘기면서 정당요건을 충족했다. 비례 1번에 루게릭병 환자인 후나고 야스히코, 비례대표 2번으로 중증장애인 기무라 에이코를 당선시켰다. 비례 3번으로 입후보한 야마모토는 무려 99만표의 전국 최다 득표를 하고도 낙선했지만 ‘레이와 신센구미’가 정식 정당이 된 만큼 당대표 자격으로 정치활동을 이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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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일본 참의원 선거 일본 국회는 상원인 참의원(參議院)과 하원인 중의원(衆議院)으로 구성된다. 참의원은 근대화 초기인 메이지 시대 왕족, 화족 등으로 구성된 귀족원이 뿌리다. 일본 정부는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귀족원을 ‘특의원(特議院)’으로 바꾸고 보통선거가 아닌 방식으로 선출하려고 했으나 미군정청의 반대로 보통선거로 선출되는 참의원으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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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한·일관계 10년의 회한 일본은 10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2009년 자민당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쥔 민주당 정권은 동아시아 중시 노선을 들고 나왔다. 요즘도 가끔씩 한국을 찾는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한·중·일과 아세안, 인도, 호주, 뉴질랜드가 참가하는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내놨다. 간 나오토 총리는 2010년 한일병합 100년 사죄담화를 발표했다. “한국인들 뜻에 반해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냈다. (중략)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심정을 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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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미국 대통령의 DMZ 방문 한국전쟁은 미국이 이기지 못한 ‘불명예스러운 전쟁’이자 ‘잊혀진 전쟁’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년 뒤 극동의 조그만 반도에서 벌어진 국지전인 데다, 베트남전처럼 전쟁을 성찰할 계기를 제공하지도 못했다. 전쟁 1년 만에 전선이 고착된 뒤에는 소모전을 되풀이하다 멈춰 드라마틱한 요소도 부족했다. 보통의 미국인들이 야전병원을 무대로 한 시트콤 <매시(MASH)>를 통해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저술가 시어도어 리드 페렌바크는 <이런 전쟁>(1963)에서 미국은 당시 며칠 혹은 몇달 안에 끝날 분쟁 정도로 여기고 참전했다가 수렁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준비 안된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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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우리는 김원봉을 얼마나 알고 있나 오스트리아는 나치의 독일제국에 합병된 상태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패전국이 돼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4개 연합국의 분할통치를 받게 됐다. 38선 남북을 미·소가 분할 점령했던 한반도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연합국의 군사정부와 오스트리아 임시정부가 공존했다는 점이 달랐다. 패전 직전 노(老)정객 카를 레너가 친나치 계열을 뺀 모든 정파를 아우른 임시정부를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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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대북소식통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에게 단서를 제공한 소식통은 ‘딥 스로트’로 불렸다. 우드워드 기자가 빨간 깃발이 있는 꽃화분을 자신의 아파트 발코니 뒤편으로 옮겨 ‘만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면 딥 스로트는 그의 아파트로 배달되는 신문에 시계를 그려 넣어 응답했다. 30여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이 소식통은 미 연방수사국(FBI) 간부인 윌리엄 마크 펠트(1913~2008)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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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미국과 중국의 ‘콩 전쟁’ 중국인들의 돼지고기 사랑은 유별나다. 돼지고기 요리가 1500종이 넘을 정도다. 송나라 문인 소동파가 만들었다는 둥포러우(東坡肉)는 양념한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긴 뒤 술, 파, 간장 등을 넣고 졸여낸 요리다. 중국식 삼겹살 조림인 훙사오러우(紅燒肉)는 마오쩌둥이 즐기던 요리로 유명하다. 한국의 족발요리와 흡사한 바이윈주서우(白雲猪手)는 여름철 보양식으로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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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밀크셰이킹 1991년 6월3일 한국외국어대 캠퍼스에 총학생회의 교내방송이 울렸다. “학우 여러분, 전교조 선생님들을 학살한 정원식이 지금 학교에 있습니다.” 국무총리 서리에 지명된 정원식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은 이날 외대 대학원에서 예정된 마지막 강의를 하던 중이었다. 그는 강의를 서둘러 마치고 학교를 빠져나가려 했지만, 흥분한 학생들이 에워싼 채 계란과 밀가루를 퍼부으며 폭행했다. 얼굴과 전신이 밀가루 범벅이 된 정 총리의 흉한 몰골이 다음날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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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원자로 제어봉 1999년 6월18일 일본 이시카와현에 있는 시가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연료봉 사이에 삽입돼 있던 제어봉 5개가 아래로 빠지면서 방사선과 열이 급격히 방출되는 임계사고가 발생했다. 관할 호쿠리쿠(北陸)전력은 이를 내내 감춰오다 8년 만인 2007년 3월15일에야 공개했다. 이후 며칠 간격으로 각지 원전의 과거 사고가 차례로 공개됐다. 도쿄전력은 1978년 11월2일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에서 제어봉 5개가 빠져 7시간 반이나 임계상태가 지속된 사실을 무려 29년 만에 털어놓기도 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대규모 방사성물질이 유출된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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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바둑과 한·일관계 일본이 바둑의 최강국이던 1960~1970년대엔 한국의 바둑 인재들이 일본으로 줄줄이 유학을 떠났다. 1962년 세계 최연소(9세) 프로기사가 된 조훈현 9단(66·현 자유한국당 의원)도 열살이던 1963년 일본에 갔다. 당시 한·일 간 기력 차가 상당해 한국에서 프로 입단을 했는데도 일본에서는 연구생 4급으로 시작해야 했다. 조훈현은 원로인 세고에 겐사쿠 9단의 내제자가 됐다. 이국 생활의 어려움을 견뎌가며 바둑 공부에 정진해 일본 바둑계의 촉망받는 신예기사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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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말리 언니 ‘한국 치즈의 아버지’ 지정환 신부(1931~2019). 벨기에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1958년 가톨릭 사제가 된 뒤 이듬해 부산항에 발을 디뎠다. 1964년 임실에 부임해 가난에 찌든 산골마을 농민들을 위해 산양을 기르고 산양유를 생산했다. 하지만 잘 팔리지 않자 치즈 생산에 도전했고, 곡절 끝에 성공해 1969년부터 치즈를 본격 생산했다. 제대로 된 치즈공장 하나 없던 당시 임실 치즈는 서울의 특급호텔에 납품될 정도로 인기였다. 지정환 신부는 치즈공장의 운영권, 소유권을 주민협동조합에 넘긴 뒤 장애인을 돕는 일에 남은 생을 보내다 지난 4월13일 선종했다. 그는 가수 노사연의 ‘만남’을 좋아해 장례식에서도 불러 달라고 했다. “우리들의 만남은 하나라도 우연이 없다. 그렇게 귀하게 만났으니 서로 사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