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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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북한의 노동당 규약 개정 ‘우리의 람홍색 깃발 창공높이 날릴 제’로 시작하는 북한 노래 ‘우리의 국기’는 2019년 보급됐다. 이 노래는 북한의 제8차 당대회 기간인 지난 1월14일 열병식의 국기 게양식에서도 연주됐다. 당이 국가를 이끄는 북한의 당대회에 조선노동당 깃발이 아닌 국기가 게양되고, 국기를 찬양하는 노래가 울려 퍼지는 장면은 낯설다. ‘국가’를 앞세우는 것은 김정은 시대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북한은 지난 4월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의 명칭을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으로 바꿨다. 최고지도자를 체제와 동일시하면서 단체 등의 명칭에 김일성 부자 이름을 넣는 관행에서 벗어나 국가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는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8차 당대회에서 ‘우리국가 제일주의시대’를 공식 선포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의 ‘우리민족 제일주의’에서 민족을 빼고 국가를 넣은 것이다. 이런 변화가 남북관계에 어떻게 반영될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북한이 ‘투 코리아’ 노선으로 전환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통일이 “가장 중대하고 절박한 과업”이라던 김정은이 8차 당대회에서 “통일의 꿈은 더 아득히 멀어졌다”고 한 것은 이런 관측과 연결된다. -
경향의 눈 보수야당이 띄운 ‘사상의 시장개방’ 국민의힘의 4·7 재·보선 승리에 대해서는 ‘이제 표를 줘도 될 만한 당이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장 그럴듯하다. 여권에 아무리 실망했더라도 극우와 손잡은 황교안 대표의 자유한국당이었다면 표를 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들이 주위에 꽤 있다. 지난해 총선 이후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행보가 당의 이미지를 중화(中和)시켰는데 그중 5·18묘지 앞 ‘무릎사죄’가 컸다. 한여름 뙤약볕 돌바닥에 무릎을 꿇은 80대 노정객의 모습은 빌리 브란트 총리의 ‘역사적 사죄’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의힘을 일으켜 세우기엔 족했다. 그가 떠났으니 ‘도로한국당’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요즘 그 당의 움직임을 보면 ‘글쎄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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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최종단계’를 왜 미리 걱정하나 미·중 갈등 정세를 놓고 보수성향의 지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한국도 이제 미국 쪽에 확실히 서야 할 때 아닌가. 균형외교도 좋지만 종국에는 미국과 함께 가는 게 맞지, 중국과 함께 갈 수 있나?” 그의 말을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갈등의 최종단계(end state)를 미리 당겨와 당장 양자택일하라는 태도에는 위화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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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올림픽 보이콧 박정희의 유신시대가 막을 내린 1979년은 국제적으로도 격동의 해였다. 중동 최대의 친미 국가 이란의 팔레비 정권이 이슬람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끈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졌다. 이란 혁명의 파장은 동쪽 아프가니스탄으로도 번져 무장 게릴라 무자헤딘이 ‘좌파 세속주의’를 강요하는 소련에 맞서 봉기했다. 친소 정권이 위태로워지자 소련군은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24일 새벽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었다. -
경향의 눈 존엄을 지키는 한·일 화해 방안 2+2 회담차 한국을 찾은 미국 국무·국방장관이 청와대를 예방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에게 “한·일관계 복원에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11년 만에 미국 주요 장관들이 방한한 진짜 목적이 한·일관계 복원임을 시사하는 장면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구축 중인 다자 연대에서 가장 약한 고리를 주요 장관들의 첫 순방지로 정했다는 분석대로다. 며칠 뒤 서욱 국방장관도 “한·일 안보협력이 가치 있는 자산”이라고 했다. 한·일의 불화가 북한 위협보다 더 걱정이라던 바이든 행정부로선 흐뭇해할 만한 상황 전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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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불황형 가계 흑자 1990년대 경제 거품이 빠지면서 장기불황의 초입에 들어선 일본에서는 기업들의 가격파괴 경쟁이 치열해졌다. ‘게키야스(激安·매우 쌈)’ ‘고쿠야스(極安·극도로 쌈)’ 표시 상품들이 진열대를 메우기 시작했다. 일본 맥도널드는 1998년 130엔이던 햄버거 가격을 반값인 65엔으로 내렸다. 과도한 할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판매량이 1년 전의 10배에 달할 정도로 대박을 쳤다. 100엔숍, 저가 의류업체 유니클로, 규동(소고기덮밥) 체인 요시노야(吉野屋) 등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기업들이다. 요시노야가 후발업체 스키야, 마쓰야와 벌인 할인경쟁은 ‘규동전쟁’으로 불릴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덮밥 가격이 180엔(약 1870원)까지 하락했다. -
여적 포털 종합상사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한창이던 1974년 일본의 세지마 류조(瀨島龍三·1911~2007) 이토추(伊藤忠)상사 회장이 방한해 이낙선 상공부 장관에게 ‘한국에서의 종합상사 설립에 대한 계획서’를 건넸다. 중소 섬유수출업체 이토추상사를 세계적인 종합상사로 성장시켜 ‘전설의 상사맨’으로 통하는 세지마는 한국이 ‘수출입국(立國)’을 하려면 종합상사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이듬해 정부는 상공부 고시로 종합상사 제도를 도입하고 대우실업, 삼성물산, 쌍용, 국제상사 등 7개사를 지정했다. -
경향의 눈 ‘헬조선’과 ‘국뽕’을 넘어서려면 1980년대 중반의 ‘사회구성체 논쟁’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신식국독자’(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인가, ‘식반’(식민지반봉건사회)인가를 둘러싼 논전이 대학가를 달궜다. 어떤 쪽이건 한국 경제가 대외종속적이고 전근대성을 면치 못하니 변혁이 필요하다는 인식론이었다. 하지만 당시 경제는 1970년대 말 불황과 1980년대 초반 외채위기를 딛고 재도약하던 참이었다. 이론이 미처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경제가 역동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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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유럽의 마녀사냥은 15~18세기의 광범위한 기간에 걸쳐 이뤄졌다. 이웃들의 신고로 붙잡힌 마녀들은 특별재판소에서 이단심문관에게 죄를 추궁당하는 과정에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살아남더라도 처형되기 일쑤였다. 마녀를 가리는 기준은 야간 집회인 ‘사바트’에 참가했는지 여부였다. 사바트에서는 악마숭배, 유아살해, 인육섭취 등이 저질러졌다고 당시 사람들은 믿었다. 마녀사냥의 극성기인 1560~1660년대는 종교개혁이 한창이었다. 종교개혁의 거센 도전에 위기감을 느낀 가톨릭 교회는 중세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 마녀재판과 마녀사냥에 매달렸다. 흑사병을 비롯한 감염병, 경제위기 등으로 흐트러진 민심을 다잡는 데 마녀사냥은 안성맞춤의 제의(祭儀)였다. -
여적 개성공단 폐쇄 5년 ‘유감’ 개성공단 가동 초기이던 2006년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 광저우와 선전을 시찰했다. 1979년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후 괄목상대하게 성장한 선전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저개발국의 경제특구는 초기 노동집약적 위탁가공업에서 시작해 기술집약적 산업을 거쳐 하이테크 산업으로 옮겨 가는데 선전이 그 대표 사례다. 선전과 개성은 닮은 점이 많다. 홍콩과 인접한 선전이 초기 화상(華商)자본으로 성장했듯 개성공단도 남한 기업들 투자가 자양분이다. 홍콩에서 관광객들이 버스로 1시간 거리의 선전을 찾는데, 서울 은평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개성도 관광 여건이 그 못지않다. -
여적 손정의의 ‘경계넘기’ 재일동포 기업인 손 마사요시(孫正義·64)는 고교 시절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료마가 간다>를 읽고 에도시대 말기의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에 매료됐다. 시코쿠의 하급무사였던 료마는 시대를 뛰어넘는 혜안과 지략으로 일본 근대화의 길을 연 인물이다. 료마가 탈번(脫藩·자신이 속한 제후국을 벗어남)의 결행을 통해 새 시대를 연 것처럼 손 마사요시도 16세의 어린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오름으로써 ‘경계를 넘는’ 인생을 펼쳐갔다. -
경향의 눈 ‘먹방’ 대신 배달을 해보라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3일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어묵을 먹었다. 민주당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들이다. 국민의힘 나경원 예비후보는 같은 날 양천구 신월시장에서 호떡을 먹었다. 선거철임을 알리는 정치인들의 ‘먹방’ 사진들이 포털 뉴스난을 장식했다. 그런데 올해 먹방투어는 안 하느니만 못해 보인다. 코로나 시대에 예비후보와 수행원, 기자 수십명이 비좁은 시장통로에 뭉쳐 있는 것부터 우선 거슬린다. ‘국민들은 5명도 못 만나게 하면서 정치인들은 떼로 몰려다니냐’는 기사 댓글들은 틀린 게 없다. 모처럼 시장까지 와놓고 상인들과 제대로 대화하는 것 같지도 않다. 경기가 바닥이니 딱한 사정들을 꽤나 들을 법한데도 동영상을 보면 ‘어묵이 진시황 때 만들어졌다’ 따위의 ‘알쓸신잡’성 한담을 주고받는 장면만 도드라진다. 상인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긴 하지만, 왜 현장까지 와서 날것 그대로의 민생을 듣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왕정시대 민정시찰의 유습’이란 조롱을 받는 것이다. “높은 분이 왕림해 ‘밑엣것’들의 음식을 한번 잡수셔 보시고 ‘민심’을 살피신 뒤 선정을 베푸시는, 이런 세팅이죠.”(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페이스북) 시장 방문으로 ‘서민 이미지’를 만들기는커녕 ‘서민’들과의 간극만 더 벌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