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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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사람 잡는 UPH(unit per hour) 1936년에 공개된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주인공 리틀 트램프(찰리 채플린 역)는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하는 제품의 나사를 조이는 것이 업무다. 잠시 쉬려 해도 사장이 텔레스크린에 등장해 호통친다. 일에 치인 트램프는 모든 사물을 조이려는 강박증에 걸려 한바탕 소동을 벌이다 정신병원에 끌려간다. 컨베이어 벨트는 조립생산 방식(assembly line)을 구현하기 위해 고안됐다. 미국 미시간주의 포드 자동차 공장(하이랜드 파크)은 4층에서 시작된 작업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자동차가 점차 완성되는 구조로 설계됐다. 노동자들은 제자리를 지키며 할당 업무만 완수하면 되는 방식으로 노동효율을 극대화했다. 포드 자동차의 모델 T는 이런 방식을 통해 730여분의 조립시간이 93분으로 단축됐다. 테일러리즘, 포디즘 등 과학적 경영관리법은 시간·동작연구를 바탕으로 설계한 표준작업량을 도입해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인간을 기계의 일부로 전락시켰다는 비판, 노동자들에 대한 불신에 기초한 ‘저신뢰 체제’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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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평화어’ 한글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는 일제강점기 조선 지식인들을 매료시켰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는 ‘조선 최초의 에스페란토인’이라는 뜻을 담은 ‘벽초(碧初)’를 호로 했다. 청록색은 에스페란토의 상징색이다. 벽초는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절 지면에 고정란을 만들어 논객들의 글을 에스페란토로 실었다. 1920년 창간된 문학동인지 ‘폐허’ 표지에는 한자 ‘廢墟’와 에스페란토 ‘La Ruino’가 나란히 쓰였다. 1925년 창립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즉 카프(KAPF)는 에스페란토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의 약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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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항미원조 유감 한국전쟁 당시 동부전선의 고지 쟁탈전을 그린 영화 <고지전> 후반부에 등장하는 중국군과의 전투신은 인상적이다. 비가 내리는 칠흑 같은 한밤의 전장에 돌연 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며 중국군의 야습이 시작됐다. 조명탄 불빛으로 사위가 밝아지자 끊임없이 밀려드는 중국군의 엄청난 규모에 국군은 경악한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은 중국군의 인해전술에 호되게 당했다. 1950년 11월 개마고원 출입구 황초령 인근의 장진호 일대에서 중국군 12만명과 미군 2만명이 마주쳤다. 중국군의 대규모 참전을 알지 못했던 미군이 해병대 1사단을 장진호 지역으로 침투시켰다가 중국군에 포위되면서 전투(장진호 전투)가 벌어졌다. 미 해병대는 영하 30도의 혹한 속에서 사투를 벌이며 가까스로 흥남으로 철수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과정에서 2500여명이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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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구글의 반독점법 피소 19세기 후반 미국에는 기업들의 경쟁제한 행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철강과 석유, 철도 등 대부분 영역에서 시장을 독점하는 기업 형태인 트러스트들이 속출했다. 트러스트의 대표 격인 인물이 ‘석유왕’ 존 데이비스 록펠러다. 남북전쟁 때 곡물사업으로 돈을 번 록펠러는 1870년 석유회사 스탠더드오일을 세운 뒤 이듬해엔 뉴욕, 필라델피아, 피츠버그 등에 있던 정유사 27개를 인수·합병한다. 1873년 세계 금융공황 와중에 석유회사들을 줍다시피 사들인다. 1880년 스탠더드오일의 시장 점유율은 90%를 넘었고, 급기야 ‘독점 괴물(The Monster Monopoly)’로 불렸다. 독점 기업들은 생산량 조정·가격 인상 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면서 경쟁기업의 사다리를 걷어찼다. 1904년에는 300여개의 거대 트러스트들이 미국 전체 산업자본의 3분의 2를 통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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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조성길 부인, 북한식당 종업원들, 김련희 지난해 7월 입국한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의 부인 이모씨는 처음부터 한국행을 내키지 않아 했다고 한다. 부모와의 동행을 거부하고 북한으로 돌아간 딸의 안위 때문이다.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 이씨가 그간 겪었을 고통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오죽하면 입국 사실이 누설될 위험을 무릅쓰고 언론사의 문을 두드렸을까. 북으로 보내달라는 간청이 당국에 묵살된 뒤로는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씨의 송환은 법 테두리 안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입국과정에서 보호신청서에 자필 서명을 하고 대한민국 국민이 된 만큼 현행법상 북송(北送)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다른 나라라면 몰라도 ‘반국가단체’인 북한으로 보내는 것은 국가보안법에도 위배된다. 그렇다고 ‘북송 불가’로 결론짓고 묻어버리는 것은 천륜(天倫)에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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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상왕 아베 일본의 전통 인형극 분라쿠(文樂)를 공연하는데 ‘구로고(黑衣)’는 필요불가결한 배역이다. 검은 옷으로 전신을 가린 채 인형을 뒤에서 붙잡고 조종하거나 무대에 소도구를 옮기는 역할을 하는 이가 구로고다. 관객들은 극에 집중하기 위해 구로고를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구로고 덕분에 인형들은 인간 못지않은 섬세한 동작을 펼쳐보일 수 있다. 과거 일본 정치도 총리(인형)를 실세 정치인과 관료들이 뒤에서 조종하는 ‘구로고 정치’였다.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자기 파벌을 움직이며 막후에서 실권을 휘두르는 상왕(上王)들이 드물지 않았다. 1972년부터 2년 반 총리를 지낸 뒤에도 10년 이상 일본 정계를 주무른 다나카 가쿠에이가 대표적이다. 다나카는 1982년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총리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 때문에 ‘다나카소네 내각’으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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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경항모는 되고 재난지원금은 안 된다’는 재정 형편 2차 재난지원금이 선별지급으로 낙착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자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재정상 어려움이 크다”면서 “한정된 재원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재정 형편은 현실적인 이유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재정지출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세수는 제자리걸음이어서 내년에도 적자살림이다. 허리끈을 조이자는 설명을 이해 못할 건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군비에 뭉텅이로 돈을 쏟아붓는 걸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정부는 지난달 ‘국방중기계획’에서 향후 5년간 방위력 개선에 100조원을 포함해 301조원의 국방비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규모도 천문학적이지만, 경(輕)항공모함과 극초음속 미사일, 북한 장사정 포탄 요격용 아이언돔 등 타당성과 현실성이 떨어지는 무기 도입에까지 돈을 쓰겠다는 데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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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관방장관 지난 28일 전격 사의를 표명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후임으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부상하고 있다. 스가 장관은 2012년 ‘제2차 아베 정권’ 출범 때부터 관방장관을 맡아 내각 운영을 총괄해온 핵심 인사인 만큼 아베 총리의 공백을 메울 적임자라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에서 내각관방은 총리를 보좌·지원하는 조직으로, 정부 주요 정책의 기획, 조정 및 정보 수집 등을 담당한다. 그 수장인 관방장관은 국정 현안을 해당 부처 및 여당과 조율하고, 현안에 대한 정부의 공식 견해를 발표한다.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비서실장, 정책실장과 대변인을 합친 막중한 자리다. 2014년에는 내각 인사국이 설치되면서 관방장관이 각 부처 국장급까지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 본래 관방(官房)은 군주의 측근이 사무를 보는 방이라는 뜻으로, 근대화 초기 일본이 프로이센의 관료제도를 차용하면서 도입된 직제다. 옛 공산권의 서기국, 비서국과도 닮은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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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빛바랜 아베의 최장수 총리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07년 9월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하자 1년 만에 물러났다. 후임인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등 자민당 총리들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총선 패배로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 하지만 민주당 정권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집권 3년3개월간 3명의 총리가 등장했다. 6명의 ‘단명 총리’를 거치면서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주요 7개국(G7) 회의 같은 국제 행사장에서 일본 총리들은 외톨이 신세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무려 5명의 일본 총리에게 “미·일 동맹은 굳건하다”고 다짐해야 했다. 미 국무부 관리들이 새 일본 총리의 이름을 헷갈려하는 장면에 일본인들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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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제2차 토지개혁’ 더 미룰 수 없다 이승만 정부의 토지개혁은 “불꽃이 튀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화약통’ ”(미 군정 정치고문 배닝호프) 같던 한국 사회를 진정시켰다. 이승만 대통령은 초대 농림부 장관에 사회주의자 조봉암을 파격 기용했고, 조봉암은 당시 정부가 용인 가능한 가장 급진적인 인물로 토지개혁팀을 구성했다. 농림부의 초안은 지주세력이 중심이던 민국당의 반발로 좌초했지만 이승만은 전국 각지에서 청문회를 개최하는 등 대중동원 선풍을 일으키며 지주들을 압박했고, 개혁은 모처럼 언론과 농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추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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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토지공개념 노태우 정부는 군사쿠데타 주역이라는 비판이 무색할 만큼 시대흐름에 부응한 여러 정책들을 추진했다. 공산권 및 북한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북방정책이 그랬고, 부동산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시도한 ‘토지공개념’도 혁신적이었다. 1980년대 후반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으로 시중에 돈이 흘러넘치자 여유자금이 부동산에 몰려들었다.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풀린 돈들도 땅값을 밀어 올렸다. 부동산 투기에 따른 집값폭등으로 서민들의 불만은 임계점으로 치솟았다. 집권 첫해인 1988년 13대 총선에서 패배해 정국 주도권을 상실한 노태우 정부에 부동산 문제는 정권의 존립을 위협했다. 조순 부총리, 문희갑 경제수석 등 경제관료들은 연일 “개혁이 없으면 혁명이 일어난다”고 경고(경향신문 1989년 9월4일자)했다. 1989년 12월18일 국회를 통과한 택지소유상한법,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법 등 ‘토지공개념 3법’은 이런 배경 속에 등장했다. 노태우 정부는 1990년 5월8일에는 초법적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매각 명령을 내려 재벌기업의 부동산 사재기에 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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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오프 에어(off air)’ 발언 기자들은 취재원들을 만날 때 취재수첩을 꺼내 메모하거나 녹음기를 켜놓는 경우가 많다. 취재할 내용이 많거나 복잡한 경우 불가피하게 쓰는 방법이지만, 취재원들은 수첩과 녹음기 같은 소도구에 의외로 긴장한다. 그래서 인터뷰가 끝나 녹음기를 끄고 수첩을 집어넣을 때 취재원은 안도감에 긴장을 푼다. 이때 ‘오프 에어(off air) 발언’에서 허심탄회한 속내가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명민한 기자는 이 ‘진실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오프 에어’ 발언은 파장을 낳는다. 2012년 3월26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단독 정상회담을 끝낸 직후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나눈 대화가 그대로 공개됐다. 당시 미국이 유럽 일원에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을 구축해온 것과 관련해 오바마는 “선거가 끝나면 더 많은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대선을 7개월 앞둔 시점에서 그는 이 발언으로 핵심 안보현안을 선거와 연계하려 했다는 야당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지난해 5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당·정·청 회의에 앞서 관료들을 비판하는 사담을 나눈 것이 그대로 방송됐다. 두 사람은 ‘온 에어(on air)’ 상태인 줄 모르고 “관료들이 말을 잘 안 듣는다”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들을 한다”는 등 공개하기 민망한 말을 여과 없이 노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