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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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결국 대북전단이 문제였다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북한의 불만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 폭파로 이어진 6월의 격동은 남북관계의 ‘흑역사’로 남게 됐다. 그 바람에 ‘한국전쟁 70년’의 현재적 의미를 차분히 성찰할 기회도 사라졌다. 그렇다 해도 지난 한 달간 북한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를 짚어보는 일마저 생략해선 안 된다. 4·27 판문점선언은 2조 1항에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지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한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이는 애초부터 지켜질 가능성이 낮은 ‘거품’ 조항이었다. 반북주의가 뿌리 깊은 한국 사회에서 대북전단 규제는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 이상으로 풀기 힘든 난제이기 때문이다.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가 안 되는 것은 미국 탓이라도 할 수 있지만, 전단 규제는 한국 정부의 역량과 의지, 여론 설득 능력과 직결돼 변명의 여지도 없다. 대북전단은 북한에 대한 극도의 증오와 저주를 담고 있고, 음란비디오 표지에 최고지도자 부인 얼굴을 합성하는 따위의 저속한 지라시도 있다. 규제가 마땅한 ‘헤이트 스피치’(증오표현)의 일종이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허울 아래 보호돼 왔다. 북한에 대해서라면 명예훼손도, 거짓말도 용서되는 ‘반북무죄’ 사회이니 대수로울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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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남북 ‘갈라서기’로 70년 전쟁 마침표 찍자 미국이 코로나19 이후의 국제 질서를 미·중 신냉전 구도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원맨쇼’가 아니다. 미국 백악관과 국방부가 지난 21일 의회에 제출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 보고서는 미·중 갈등이 미·소 냉전기 이상으로 장기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1979년 미·중관계 정상화 이후 40년간 중국의 발전이 미국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났다”는 대목에서 미·중관계를 송두리째 부정하고픈 미국 집권세력의 인식이 드러난다. 굴기하는 중국을 냉전시대 ‘죽(竹)의 장막’ 안으로 되몰아 봉인하겠다는 기세다. 미국의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중국봉쇄 기조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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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마스크 외교 지난 3월4일 인천의 자매우호 도시인 중국 웨이하이시가 마스크 20만개를 보내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확진자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마스크 품귀현상이 빚어지던 당시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웨이하이시는 “인천시에서 보내주신 응원과 지원에 감사드리며 인천시를 돕기 위해 마스크를 보낸다”는 감사 편지도 동봉했다. 국내 감염자가 급증하기 전인 2월 중순 인천시가 웨이하이시에 보낸 마스크 2만개가 10배로 불어나 되돌아온 것이다. 일주일 뒤인 11일에는 중국 정부가 보낸 N95 등급의 방역마스크 10만장과 의료용 마스크 100만장, 방호복 10만벌이 한국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코로나19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등 중국 전역에 500만달러 규모의 지원에 나선 데 대한 보답이다. ‘마스크 품앗이’는 최근 서먹했던 양국 간에 모처럼 온기를 불어넣은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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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녹여 낫을 지난주 벌어진 일 중에서 총선 결과보다도 더 눈길을 끈 것은 국회에 제출된 2차 추가경정예산 내역이다.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국방비에서 9000억원을 삭감하기로 한 것이다. F-35A 스텔스 전투기, 해상작전헬기 같은 미국산 첨단무기 구매 예산을 깎겠다는 발표에 구약성서의 한 구절을 떠올린 이도 있었을 것 같다. “칼을 쳐서 보습(쟁기의 날)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미가서 4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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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개방형 통상국가’ 한국을 덮친 팬데믹 한국은 개방형 통상국가다. 남북 분단과 전쟁이 없었다면 다른 형태의 발전 전략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1960년대 수출입국(立國)으로 방향을 정한 이후 수십년의 세월을 거치며 좋건 싫건 틀이 굳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주요국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과격한 형태의 경제협정을 체결하면서 시스템을 한껏 열어젖혔다.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세계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올라탄 것이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보호무역주의가 대두하면서 이 전략에 물음표가 붙고 있다. 이런 한국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몇 겹의 충격을 받아야 하는 것은 개방형 통상국가로서 갖는 숙명이다. 통상국가는 물자와 사람이 자유롭게 오가야 기회가 생기지만, 접촉에 의해 확산되는 감염병은 이를 차단한다. 전 지구적으로 구축된 연결 회로를 타고 번지는 감염병은 한국엔 치명적인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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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심은경의 일본 영화상 수상 일본에서 지난해 6월 개봉된 영화 <신문기자>의 주연을 한국 배우 심은경이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영화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총리관저(官邸)로 불리는 권부의 비리를 정면으로 파헤치는 신문기자 요시오카 에리카 역할에 일본 배우들이 부담을 느끼다 보니 한국 배우에게 배역이 돌아갔다는 일본 주간지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한국 개봉 때 방한한 가와무라 미쓰노부 프로듀서는 “일본 여배우에게는 전혀 출연 제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신문기자>는 아베 신조 정권을 뒤흔든 ‘가케학원 의혹’과 흡사한 사학 스캔들을 소재로 한다. 정부가 가케학원 산하의 오카야마 이과대학에 수의학부 설치를 허가하는 과정에 아베 총리가 개입한 사건이다. 스캔들에 연루된 고위 관료의 자살, 총리와 가까운 기자의 성폭력 사건(이토 시오리 사건) 등 실제 사건이 줄줄이 등장해 리얼리티를 높인다. 이렇듯 아베 정권을 정면에서 직격한 영화이다 보니 권력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고, TV홍보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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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김여정의 독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한국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8년 2월9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인사들과 함께 비행기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다. 다음날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고,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을 함께 관람하는 등 2박3일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갔다. 고전적인 헤어스타일에 수수한 옷차림의 ‘백두혈통’ 김여정은 방한기간 중 품격 있는 태도로 한국 사회에 깊은 인상을 심었다. 2018년 세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분주히 움직이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내는 모습에 ‘신스틸러’ ‘열일하는 김여정’ 같은 수식이 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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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착한 임대료 서울은 나날이 새로워진다. 이건 찬사가 아니라 비아냥이다. 오래된 거리와 가게를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을 오랜만에 찾은 외국인들이 예전 들렀던 가게를 찾아갔다가 사라져 낙심하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임대료가 턱없이 오르기 때문이다. 철거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노포(老鋪) 냉면집 ‘을지면옥’도 결국 철거될 운명이다. 숱한 근대유산들이 표지석 하나 달랑 남기고 스러졌다. 지대추구라는 불가사리는 600년 도시 서울에 쌓인 ‘세월의 더께’까지 남김없이 먹어 치운다. 저금리하에서 대량으로 풀린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한국 경제의 밑동이 썩어간다. 자발적인 근로의욕과 창의력, 높은 저축열, 모험적인 기업가정신이 넘치던 성장시대의 다이너미즘은 말라붙은 지 오래다. 지금은 어린 학생들조차 ‘강남 건물주’를 꿈꾼다. “‘지대추구 경제’가 현재 대한민국 경제를 설명할 수 있는 적합한 표현이다.”(하승수 <배를 돌려라-대한민국 대전환>) 자영업이나 소규모 창업이 ‘개미지옥’이 돼가고, 청년들이 창살 없는 감옥 같은 방에서 버텨야 하는 것도 턱없는 임대료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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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언택트 사회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지난해 여성들과의 부적절한 신체접촉으로 구설에 오르자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스트레이트 암 클럽(straight arm club)에 가입하라”고 충고했다. 한쪽 팔을 뻗은 정도로 상대방과 거리를 두라는 의미다. 재일코리안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樹)의 소설 <GO>에서 왕년의 복서였던 아버지는 권투를 배우려는 아들을 걱정하며 말한다. “지금 네 주먹이 그린 원의 크기가 대충 너란 인간의 크기다. 그 원 안에서 꼼짝 않고 앉아서, 손 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에만 손을 내밀고 가만히만 있으면 넌 아무 상처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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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트럼프의 ‘기생충’ 헐뜯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하던 지난해 6월 트럼프를 형상화한 6m 크기의 대형 풍선이 런던 국회의사당 상공에 떠올랐다. 알몸에 기저귀를 찬 채 잔뜩 찡그린 ‘아기 트럼프’가 한 손에 휴대전화를 쥔 모습이다. 무릎을 칠 만큼 트럼프의 특징을 잘 잡아낸 ‘베이비 트럼프’ 풍선은 영국은 물론, 미국 내 반(反)트럼프 시위대의 인기 아이템이다.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언행을 유아행동론으로 분석한다. 떼쓰기의 절정기인 ‘미운 두 살(terrible two)’의 행태라는 것이다. “두 살 때는 세상에 대한 인식이 제한돼 이랬다저랬다 하고, 자신의 힘을 착각해 무모한 실험을 하며, 타협과 양보를 할 줄 모르며, 남을 괴롭히고도 억울하다고 주장한다”(워싱턴포스트). 이런 트럼프를 상대해야 하는 미 의회의 고충도 여간하지 않을 것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지난해 6월 트럼프가 관세 부과 위협으로 멕시코와 불법이민 방지 협상을 타결하자 비판 성명을 내고 “위협과 유아적 분노발작(temper tantrum)은 외교 협상의 방법이 아니다”라고 했다. ‘tantrum’은 주로 유아들이 발작적으로 성질을 부리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다. 두 사람의 대립은 지난 4일 트럼프의 국정연설이 열린 미 하원 회의장에서 극적으로 표출됐다. 펠로시 의장이 관례상 악수를 청했으나 트럼프가 무시했고, 펠로시는 연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설문 사본을 북북 찢어버렸다. 펠로시도 심했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그간 얼마나 힘들면 저랬을까’ 하는 동정론도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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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일본의 ‘국민 버리기’ 작전 일본인들은 ‘미즈기와(水際·물가) 대책’으로 불리는 일본 정부의 대응방침에 안심했을 것이다. 해안을 경계로 방어선을 쳐 코로나19의 상륙을 막겠다는 ‘쇄국(鎖國)작전’은 섬나라에 익숙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예전부터 이런 식으로 나라의 안전을 지키고 평화를 누려왔다. 그러나 이런 대처법은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예측불허의 리스크가 커지는 글로벌 시대엔 잘 먹히지 않는다. 더구나 경직된 거버넌스(통치구조)와 결합할 경우 ‘기능부전’에 빠지기 십상이다.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대한 미즈기와 작전은 일본형 시스템의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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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BBC와 NHK 영국과 일본은 대륙에 인접한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징 외에도 왕실제도, 차량 좌측통행 등 닮은 것들이 꽤 많다. 1926년 창립된 NHK와, 4년 앞서 개국했다가 1927년 왕실특허를 받고 공영기업이 된 BBC도 운영구조가 흡사하다. BBC와 NHK는 오랜 기간 공영방송의 대표 격이었지만, 최근에는 둘 다 형편이 썩 좋지 못하다. 영국 정부가 지난 5일 BBC 수입의 근간인 수신료 제도에 대한 재검토에 착수했다. 수신료 미납을 형사처벌하는 현행 제도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조사로, 자칫 수신료 폐지로 이어질 개연성도 있다. 이번 조사가 보리스 존슨이 이끄는 보수당 정권과 BBC 간의 마찰에서 비롯된 정치보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영국인들의 BBC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높다. 왕실, 군대, 의료보험제도와 더불어 영국을 대표하는 존재로 친다. 신뢰의 근간은 공정성과 중립성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된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영국 정부의 문건이 이라크 위협을 과장하는 쪽으로 윤색됐다는 보도로 BBC는 토니 블레어 정부와 전면전을 치러야 했다. 이때도 영국인들은 법관 허튼 경이 이끈 진상조사단이 정권을 편드는 내용으로 작성한 최종보고서 대신 BBC를 더 신뢰했다. 그레그 다이크 전 BBC 사장은 “집권당은 언제든 자신들 노선을 지지해 주도록 압력을 넣었지만 이를 거부해온 게 BBC의 역사”라고 했다. BBC가 이번 위기도 어떻게든 극복하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