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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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빛바랜 아베의 최장수 총리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07년 9월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하자 1년 만에 물러났다. 후임인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등 자민당 총리들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총선 패배로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 하지만 민주당 정권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집권 3년3개월간 3명의 총리가 등장했다. 6명의 ‘단명 총리’를 거치면서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주요 7개국(G7) 회의 같은 국제 행사장에서 일본 총리들은 외톨이 신세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무려 5명의 일본 총리에게 “미·일 동맹은 굳건하다”고 다짐해야 했다. 미 국무부 관리들이 새 일본 총리의 이름을 헷갈려하는 장면에 일본인들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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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제2차 토지개혁’ 더 미룰 수 없다 이승만 정부의 토지개혁은 “불꽃이 튀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화약통’ ”(미 군정 정치고문 배닝호프) 같던 한국 사회를 진정시켰다. 이승만 대통령은 초대 농림부 장관에 사회주의자 조봉암을 파격 기용했고, 조봉암은 당시 정부가 용인 가능한 가장 급진적인 인물로 토지개혁팀을 구성했다. 농림부의 초안은 지주세력이 중심이던 민국당의 반발로 좌초했지만 이승만은 전국 각지에서 청문회를 개최하는 등 대중동원 선풍을 일으키며 지주들을 압박했고, 개혁은 모처럼 언론과 농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추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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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토지공개념 노태우 정부는 군사쿠데타 주역이라는 비판이 무색할 만큼 시대흐름에 부응한 여러 정책들을 추진했다. 공산권 및 북한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북방정책이 그랬고, 부동산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시도한 ‘토지공개념’도 혁신적이었다. 1980년대 후반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으로 시중에 돈이 흘러넘치자 여유자금이 부동산에 몰려들었다.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풀린 돈들도 땅값을 밀어 올렸다. 부동산 투기에 따른 집값폭등으로 서민들의 불만은 임계점으로 치솟았다. 집권 첫해인 1988년 13대 총선에서 패배해 정국 주도권을 상실한 노태우 정부에 부동산 문제는 정권의 존립을 위협했다. 조순 부총리, 문희갑 경제수석 등 경제관료들은 연일 “개혁이 없으면 혁명이 일어난다”고 경고(경향신문 1989년 9월4일자)했다. 1989년 12월18일 국회를 통과한 택지소유상한법,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법 등 ‘토지공개념 3법’은 이런 배경 속에 등장했다. 노태우 정부는 1990년 5월8일에는 초법적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매각 명령을 내려 재벌기업의 부동산 사재기에 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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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오프 에어(off air)’ 발언 기자들은 취재원들을 만날 때 취재수첩을 꺼내 메모하거나 녹음기를 켜놓는 경우가 많다. 취재할 내용이 많거나 복잡한 경우 불가피하게 쓰는 방법이지만, 취재원들은 수첩과 녹음기 같은 소도구에 의외로 긴장한다. 그래서 인터뷰가 끝나 녹음기를 끄고 수첩을 집어넣을 때 취재원은 안도감에 긴장을 푼다. 이때 ‘오프 에어(off air) 발언’에서 허심탄회한 속내가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명민한 기자는 이 ‘진실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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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한강 ‘블랙호크 다운’ 미국은 베트남전쟁을 거치며 다목적 헬기의 필요성을 깨닫고 개발에 착수했다. 이런 요구에 따라 미국 시코르스키사가 개발한 헬기가 ‘블랙호크’로 불리는 UH-60다. 1978년부터 도입된 블랙호크는 1950년대 말부터 운용돼온 UH-1이 로쿼이를 대체하며 특수전, 정보수집, 전투구출, 의무후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실전에는 1983년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을 시작으로 파나마 침공, 걸프전 등에 투입됐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의 거처를 급습하는 과정에서도 특수작전용 블랙호크가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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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결국 대북전단이 문제였다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북한의 불만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 폭파로 이어진 6월의 격동은 남북관계의 ‘흑역사’로 남게 됐다. 그 바람에 ‘한국전쟁 70년’의 현재적 의미를 차분히 성찰할 기회도 사라졌다. 그렇다 해도 지난 한 달간 북한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를 짚어보는 일마저 생략해선 안 된다. 4·27 판문점선언은 2조 1항에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지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한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이는 애초부터 지켜질 가능성이 낮은 ‘거품’ 조항이었다. 반북주의가 뿌리 깊은 한국 사회에서 대북전단 규제는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 이상으로 풀기 힘든 난제이기 때문이다.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가 안 되는 것은 미국 탓이라도 할 수 있지만, 전단 규제는 한국 정부의 역량과 의지, 여론 설득 능력과 직결돼 변명의 여지도 없다. 대북전단은 북한에 대한 극도의 증오와 저주를 담고 있고, 음란비디오 표지에 최고지도자 부인 얼굴을 합성하는 따위의 저속한 지라시도 있다. 규제가 마땅한 ‘헤이트 스피치’(증오표현)의 일종이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허울 아래 보호돼 왔다. 북한에 대해서라면 명예훼손도, 거짓말도 용서되는 ‘반북무죄’ 사회이니 대수로울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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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남북 ‘갈라서기’로 70년 전쟁 마침표 찍자 미국이 코로나19 이후의 국제 질서를 미·중 신냉전 구도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원맨쇼’가 아니다. 미국 백악관과 국방부가 지난 21일 의회에 제출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 보고서는 미·중 갈등이 미·소 냉전기 이상으로 장기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1979년 미·중관계 정상화 이후 40년간 중국의 발전이 미국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났다”는 대목에서 미·중관계를 송두리째 부정하고픈 미국 집권세력의 인식이 드러난다. 굴기하는 중국을 냉전시대 ‘죽(竹)의 장막’ 안으로 되몰아 봉인하겠다는 기세다. 미국의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중국봉쇄 기조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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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마스크 외교 지난 3월4일 인천의 자매우호 도시인 중국 웨이하이시가 마스크 20만개를 보내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확진자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마스크 품귀현상이 빚어지던 당시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웨이하이시는 “인천시에서 보내주신 응원과 지원에 감사드리며 인천시를 돕기 위해 마스크를 보낸다”는 감사 편지도 동봉했다. 국내 감염자가 급증하기 전인 2월 중순 인천시가 웨이하이시에 보낸 마스크 2만개가 10배로 불어나 되돌아온 것이다. 일주일 뒤인 11일에는 중국 정부가 보낸 N95 등급의 방역마스크 10만장과 의료용 마스크 100만장, 방호복 10만벌이 한국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코로나19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등 중국 전역에 500만달러 규모의 지원에 나선 데 대한 보답이다. ‘마스크 품앗이’는 최근 서먹했던 양국 간에 모처럼 온기를 불어넣은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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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녹여 낫을 지난주 벌어진 일 중에서 총선 결과보다도 더 눈길을 끈 것은 국회에 제출된 2차 추가경정예산 내역이다.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국방비에서 9000억원을 삭감하기로 한 것이다. F-35A 스텔스 전투기, 해상작전헬기 같은 미국산 첨단무기 구매 예산을 깎겠다는 발표에 구약성서의 한 구절을 떠올린 이도 있었을 것 같다. “칼을 쳐서 보습(쟁기의 날)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미가서 4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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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개방형 통상국가’ 한국을 덮친 팬데믹 한국은 개방형 통상국가다. 남북 분단과 전쟁이 없었다면 다른 형태의 발전 전략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1960년대 수출입국(立國)으로 방향을 정한 이후 수십년의 세월을 거치며 좋건 싫건 틀이 굳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주요국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과격한 형태의 경제협정을 체결하면서 시스템을 한껏 열어젖혔다.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세계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올라탄 것이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보호무역주의가 대두하면서 이 전략에 물음표가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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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심은경의 일본 영화상 수상 일본에서 지난해 6월 개봉된 영화 <신문기자>의 주연을 한국 배우 심은경이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영화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총리관저(官邸)로 불리는 권부의 비리를 정면으로 파헤치는 신문기자 요시오카 에리카 역할에 일본 배우들이 부담을 느끼다 보니 한국 배우에게 배역이 돌아갔다는 일본 주간지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한국 개봉 때 방한한 가와무라 미쓰노부 프로듀서는 “일본 여배우에게는 전혀 출연 제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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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김여정의 독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한국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8년 2월9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인사들과 함께 비행기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다. 다음날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고,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을 함께 관람하는 등 2박3일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갔다. 고전적인 헤어스타일에 수수한 옷차림의 ‘백두혈통’ 김여정은 방한기간 중 품격 있는 태도로 한국 사회에 깊은 인상을 심었다. 2018년 세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분주히 움직이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내는 모습에 ‘신스틸러’ ‘열일하는 김여정’ 같은 수식이 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