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경
교열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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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실뭉치’와 ‘실몽당이’ 뜬금없지만 질문 하나 하자. ‘실뭉치, 실타래, 실몽당이, 토리’ 중 표준어가 아닌 말은 어느 것인가? 이 중 비표준어는 실뭉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실뭉치를 찾아보면 ‘실몽당이’의 잘못으로 나온다. ‘실타래’는 실을 쉽게 풀어 쓸 수 있도록 한데 뭉치거나 감아 놓은 것을 말한다. ‘토리’는 실몽당이를 세는 단위다. ‘실몽당이’는 실을 꾸려 감은 뭉치를 뜻한다. ‘몽당이’가 노끈, 실 따위를 공 모양으로 감은 뭉치다. 결국 ‘실몽당이’가 ‘실뭉치’인 것이다. -
알고 쓰는 말글 고급진(?) 음식 지난주 토요일 을 봤다.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는 요리연구가 ‘백주부’ 백종원씨가 요리하는 장면이 나왔다. 요리하면서 채팅창에 올라오는 글을 통해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장면이 재미나고 참신했다. 방송 중 ‘고급진 재료’ ‘고급진 음식’이란 말이 나왔다. ‘고급지다’라는 말은 사전에 없다. ‘품질이 뛰어나고 값이 비싼 듯하다’를 뜻하는 말은 ‘고급스럽다’이다. ‘고급하다’도 같은 의미다. ‘고급지다’는 사전에 없는 말이지만 비표준어는 아니다. ‘지다’는 명사 뒤에 붙어 ‘그런 성질이 있음, 또는 그런 모양임’의 뜻을 더한다. 따라서 ‘값지다’나 ‘기름지다’처럼 ‘고급’에 접미사 ‘지다’를 붙여 ‘고급지다’라는 단어를 만들 수 있다. -
알고 쓰는 말글 유명세(有名稅) 어느 신문에서 요리사가 요리 프로그램에 나온 후 유명해져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기사를 봤다.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식당을 찾은 손님들은 헛걸음하기 일쑤란다. 그러면서 기사는 요리사가 기쁨에 겨워하는 모습을 ‘한 달 전에 예약해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유명세를 타고 있다’로 묘사했다. -
알고 쓰는 말글 ‘재연’과 ‘재현’ 경향신문 근처 덕수궁 주변은 늘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특히 덕수궁 앞 조선시대 수문장 교대의식이 ‘재연/재현’되는 시간이면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런데 요즘은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문인지 거리가 한산하다. ‘재연’과 ‘재현’은 발음과 의미가 서로 비슷해 헷갈리기 쉬운 말이다. 똑 부러지게 구별하기도 쉽잖다. 재연(再演)은 ‘한번 행하였던 일을 되풀이하는 것’을 뜻한다. ‘범인은 현장 검증에서 태연히 범행을 재연했다’처럼 동작이나 행위가 되풀이될 때 쓴다. -
알고 쓰는 말글 금도(襟度) “정치공세성 발언이 금도를 벗어났다.” ‘금도’에 눈길이 간다. 무슨 뜻인가. 언제부터인가 일부 정치인들이 상대를 공격하거나 상대의 말을 반박할 때 한자말인 ‘금도(襟度)’를 즐겨 쓴다. 아마도 ‘금도’를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나 ‘한계’ 정도의 뜻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말에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란 뜻의 ‘금도’는 없다. 본래 쓰이는 ‘금도(襟度)’는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이나 아량’을 가리키는 말이다. 해서 ‘금도’는 ‘금도를 베풀다’ ‘금도가 있다’처럼 써야 한다.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란 뜻과는 전혀 상관없다. 따라서 ‘금도를 벗어나다’나 ‘금도를 넘어서다’는 단어의 본뜻과는 다르게 쓰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
알고 쓰는 말글 애급과 출애굽기 얼마 전 독자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이집트의 음역어가 애급(埃及)인데 창세기 다음 제2장에 나오는 ‘출애굽기’는 왜 ‘출애급기’로 표기하지 않는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헬라어(그리스어)로 이집트를 아이귑토스라고 한다. 아이귑토스를 음역화한 게 ‘애급’이다. 불란서(프랑스), 이태리(이탈리아), 화란(네덜란드) 등은 널리 쓰이는 음역어다. 영국(英國)은 ‘잉글랜드’의 음역어 ‘영란(英蘭)’에서 온 말이다. 영(英)이 중국어 발음으로 ‘잉’이다. 음역어는 한자를 가지고 외국어의 음을 나타낸 말이다. -
알고 쓰는 말글 8부능선, 8분능선, 8푼능선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김태곤의 노래 ‘송학사’ 첫 소절이다. 산에 혼자 자주 간다. 가고 싶은 속도대로, 가고 싶은 만큼 갈 수 있어 혼자 가는 걸 좋아한다. 산기슭에서 시작해 ‘8부능선’쯤 있는 ‘깔딱고개’를 넘어 가쁜 숨을 내쉬며 산마루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기분은 오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산모퉁이’는 산기슭의 쑥 내민 귀퉁이를 말한다. ‘산기슭’은 산의 아랫부분이고 ‘산비탈’은 산기슭의 비탈진 곳에 해당한다. 또 ‘산마루’는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이다. ‘마루’는 정상을 일컫는 우리말이다. 산 정상이 산마루다. ‘능선’은 산의 등줄기인 ‘산등성이’를 가리킨다. -
알고 쓰는 말글 마음에 안 드니 ‘시쁘다’ “좋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승리를 얻어 그 어느 승리보다 뜻깊고 시쁘다.” 어느 신문에 난 기사다. 뜻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이 문장을 자연스럽게 읽고 넘어갔다면 여러분도 ‘시쁘다’의 뜻을 잘못 알고 있다. 글자 모양만 보면 뜻을 오해할 수 있는 순우리말이 있다. ‘시쁘다’도 그중 하나다. ‘시쁘다’는 ‘기쁘다’ ‘예쁘다’ 등 때문인지 좋은 뜻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한데 ‘시쁘다’는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시들하다’ 혹은 ‘껄렁하여 대수롭지 않다’란 의미다. 즉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시쁜 웃음’ 하면 ‘마음에 차지 않아 웃는 웃음이나 씁쓸한 웃음’을 말한다. ‘기쁜 웃음’처럼 기뻐서, 좋아서 웃는 웃음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뜻깊고 시쁘다’는 ‘~뜻깊고 기쁘다’처럼 바꾸어 써야 적확한 표현이 된다. -
알고 쓰는 말글 아사리판 “네놈이 눈이 멀어 뵈는 게 없으니 세상을 이리 아사리판으로 만들어놨구나.” 영화 에서 공길(이준기)이 장생(감우성)에게 한 말이다. ‘아사리판’에 눈길이 간다. “네가 죽냐 내가 죽냐 하는 아사리판에 다른 사람의 생명은 알아 모셔서 어쩌겠냐는 세월이었다.” 이정환의 소설 에도 아사리판이 나온다. 아사리판을 일본말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아사리판은 ‘질서가 없이 어지러운 곳이나 그러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아사리판은 ‘개판’ ‘난장판’처럼 한 단어로 국어사전에 올라 있진 않다. 사전은 ‘아사리’를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행위를 바르게 지도하여 그 모범이 될 수 있는 승려’로 풀이하고 있다. 하여 영화나 소설 속 의미와는 다른 듯하다. 어원전문가인 조항범 충북대 교수는 승려를 뜻하는 ‘아사리’와 일이 벌어진 자리를 의미하는 ‘판’이 붙어 ‘아사리판’()이 된 것으로 본다. 아사리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의견이 다를 경우 격론이 벌어졌는데 이 모습이 소란스럽고 무질서해 보인 데서 ‘질서 없이 어지러운 현장’이란 비유적 의미가 생겨났다고 한다. -
알고 쓰는 말글 꼬불친 돈, 꿍친 돈 검찰의 기업 비자금 수사가 한창이다. 검찰의 비자금 수사의 칼끝이 어디까지 미칠지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비자금’은 거래에서 관례적으로 생기는 리베이트와 커미션, 회계 처리의 조작으로 생긴 부정한 돈을 일컫는다. ‘비자금’을 쉽게 풀어쓰면 ‘꼬불친 돈’이 된다. ‘꼬불치다’가 사투리인지 표준어인지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다. ‘꼬불치다’는 ‘돈이나 물건 따위를 몰래 감추다’라는 뜻이다. 속된 말이기는 하지만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아내 몰래 비상금을 꼬불쳐 두었다’란 예문과 함께 표제어로 올라 있다. -
알고 쓰는 말글 안갚음과 앙갚음 까마귀는 새끼가 알에서 부화한 이후 일정 기간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새끼가 다 자라면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한다. 그래서 까마귀를 효조(孝鳥)라고도 부른다. 반포지효(反哺之孝)의 근거다. 이러한 까닭으로 반포지효는 자식이 자란 후에 부모의 은혜를 갚는 효성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반포지효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이 ‘안갚음’이다.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안갚음’이라고 한다. -
알고 쓰는 말글 놀래키다 ‘세계를 놀래킨 대한민국.’ 이와 같이 ‘놀래키다’는 사람들이 널리 쓰는 말이다. 그런데 글쓴이는 ‘놀래키다’만 보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나라 국어사전은 모두 ‘놀래키다’를 ‘놀래다’의 충청 방언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표준어가 아니니 쓰지 말라는 소리다. 따라서 ‘세계를 놀랜 대한민국’이라고 고쳐 써야 바른 문장이 된다. 한데 ‘세계를 놀랜’이라고 쓰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너무 어색하다. 해서 글쓴이는 차선책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대한민국’ 정도로 쓴다. ‘놀라게 하다’를 줄인 말이 ‘놀래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