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경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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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말본새 일상생활 속에서 가끔 들을 수 있는 표현으로 ‘말본새’라는 말이 있다. 주로 “말본새가 왜 그래?”처럼 사용된다. 소리는 ‘말뽄새’로 나지만 글로 적을 때는 어원을 밝혀 ‘말본새’로 써야 한다. ‘말본새’는 발음 때문에 일본어 잔재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말하는 태도나 모양새’를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말과 관련된 표현 중에 ‘입바르다’와 ‘입빠르다’도 소리가 모두 ‘입빠르다’로 같아 말로 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글로 쓸 때 잘 헷갈리는 말이다. ‘입바르다’는 ‘바른말을 하는 데 거침이 없다’는 뜻이다. 주로 ‘입바른 소리’ ‘입바른 말’과 같이 사용되는 ‘입바르다’는 ‘입이 도끼날 같다’와 한뜻이다. ‘입바른 소리’는 자칫 마음에도 없이 겉치레로 하는 말인 ‘입에 발린 소리’와 헷갈리기 쉬운데 뜻이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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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폭염과 선잠 혹독한 더위다. 입추가 지났지만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불더위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잠을 자다가도 자주 깨게 된다. 해서 ‘괭이잠’이나 ‘개잠’을 자기 일쑤다. 보통 이런 날은 늦잠을 자 허둥지둥 출근을 서두르게 된다. 잠이 보약이라는데 ‘귀잠’을 자본 게 언젠지 모르겠다. 우리말에는 ‘잠’을 나타내는 말이 많다. ‘귀잠’은 아주 깊이 든 잠을 가리킨다. ‘속잠’ ‘단잠’과 한뜻이다. 편안하고 기분 좋은 잠을 말한다. 반대로 깊이 들지 않아 자주 깨면서 자는 잠은 ‘괭이잠’이다. ‘괭이’는 고양이의 준말이다. ‘괭이잠’은 다른 말로 ‘선잠’ 혹은 ‘겉잠’이라 한다. ‘개잠’은 일찍 일어나려고 알람을 맞춰 놓았지만 알람이 울리면 끄고 다시 자는 잠을 말한다. ‘개잠’의 ‘개’는 개(犬)가 아니라 고칠 개(改)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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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치맥과 치느님 한국인은 ‘치킨’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맛있는 치킨을 하느님에 빗댄 ‘치느님’이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이니 말이다. 일과 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치맥’은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한다. ‘치느님’은 ‘치킨’과 ‘하느님’, ‘치맥’은 ‘치킨’과 ‘맥주’를 줄여 만든 표현이다. ‘치맥’은 ‘치킨’과 ‘맥주’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준말이다. 이런 말을 ‘두자어’라고 한다. 단어 전체를 이루는 각각의 단어에서 첫 글자만 따서 만든 말이라는 뜻이다. 합성어와는 다르다. 우리말에서 두자어는 ‘노동조합’을 ‘노조’로 줄이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한자말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다. 한데 ‘치맥’은 이런 규칙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치킨’은 외래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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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대노일까 대로일까 어떤 한자말은 환경에 따라 표기가 달라진다. 한자말이 두 가지 이상의 음을 가지고 있는 것도, 두음법칙이 적용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때문에 글로 쓸 때 자주 헷갈린다. ‘노(怒)’가 그런 한자말이다. ‘격노’ ‘분노’는 ‘노’로 적는다. 그런데 ‘크게 화를 내다’를 뜻하는 말은 ‘대노’가 아니라 ‘대로’다. ‘희로애락’도 ‘희노애락’으로 쓰면 틀린다. 똑같이 성낼 노(怒)자를 쓴다. ‘노’는 한자의 본음이고 ‘로’는 속음이다. ‘낙(諾)’도 마찬가지다. ‘허락’ ‘수락’을 보면 ‘승락’ ‘응락’으로 써야 할 것 같지만 ‘승낙’ ‘응낙’이 바른말이다. ‘낙’이 본음이고 ‘락’은 속음이다. ‘속음’은 어법에는 어긋나지만 본음보다 발음하기 편해 널리 쓰이는 습관음을 말한다. 말하기 쉽고 듣기에 좋다는 이유 때문에 속음으로 적는 것이다. 한글맞춤법은 ‘한자말에서 본음으로도 나고 속음으로도 나는 것은 각각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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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닥달? 닦달! “‘닦달’ 좀 그만해! 내가 알아서 할게.” 말로 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안되지만 글로 적을 때는 어떤 것이 맞는지 헷갈리는 말이 있다. ‘닦달’이 딱 그런 말이다. ‘닦달’에서 ‘닦’의 받침이 ‘ㄱ’인지 ‘ㄲ’인지 헷갈려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까딱하다가는 ‘닥달’로 쓰기 십상이다. ‘닦달’은 ‘남을 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란 뜻이다. 따라서 ‘닦달’에서 나온 말인 ‘몸닦달’은 몸을 튼튼하게 단련하기 위해 견디기 어려운 것을 참아가며 받는 훈련을 일컫는다. ‘몸닦달’은 곧 ‘극기 훈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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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헹가래 경기에서 이겼을 때 선수들이 감독을 번쩍 던져 올렸다 받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의 몸을 번쩍 들어 던져 올렸다 받았다 하는 일을 뜻하는 말은 ‘헹가래’이다. ‘행가래’ ‘행가레’ ‘헹가레’는 모두 틀린 말이다. ‘헹가래’는 기쁘거나 좋은 일이 있는 사람에게 한다. ‘헹가래’가 외래어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헹가래’는 순우리말이다. ‘헹가래’는 여러 명이 힘을 합해 ‘가래’란 농기구를 사용하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흙을 파헤치거나 떠서 던지는 기구인 ‘가래’는 혼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힘을 보태야 한다. 이 때문에 작업 전 가래질을 하는 사람들끼리 손이 맞나 맞춰보곤 했는데, 이를 ‘헹가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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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외곬과 외골수 ‘곬’은 한쪽으로 트여 나가는 방향이나 길을 일컫는다. 일상생활에서 이 ‘곬’이 단독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주로 접두사 ‘외’와 결합해 ‘외곬’ 형태로 쓰인다. ‘외’는 ‘혼자인’ ‘하나인’ 또는 ‘한쪽에 치우친’의 뜻을 더하는 말이다. 외곬, 외골수, 외고집, 외길 등이 ‘외’가 붙어 만들어진 말이다. ‘외곬’은 단 한 곳으로만 트인 길을 말한다. ‘외통’과 같은 뜻이다. ‘외곬’은 단 하나의 방법이나 방향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이때는 “그는 너무 외곬으로 고지식하기만 하다”에서 보듯 주로 ‘외곬으로’의 형태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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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배꼽과 눈곱 배에 있는 배꼽은 ‘배꼽’으로 읽고 ‘배꼽’으로 쓴다. 눈에 끼는 눈곱은 ‘눈꼽’으로 발음하고 ‘눈곱’으로 적는다. 둘 다 뒷말이 ‘꼽’으로 소리 난다. 소리는 같은데 하나는 ‘배꼽’, 다른 하나는 ‘눈곱’으로 달리 적는다. 왜 그런 걸까? 이는 우리말 된소리 적기 규정 때문이다. 탯줄이 떨어지면서 배의 한가운데에 생긴 자리인 ‘배꼽’은 둘로 나눌 수 없는 한 단어이다. 한글맞춤법은 이처럼 한 단어 안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나는 된소리는 어원을 밝히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소리 나는 대로 ‘배꼽’으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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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턱과 무턱 ‘그건 턱도 없는 일이다’ 할 때의 ‘턱’은 마땅히 그리하여야 할 까닭이나 이치를 일컫는다. ‘그럴 턱이 있나’처럼 ‘있다’와 어울려 반어적 의미로도 쓰이지만 ‘턱’은 주로 ‘없다’와 짝을 이루어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뜻을 나타낸다. ‘턱없는 거짓말’ ‘턱없는 소리’에 쓰인 ‘턱없다’도 ‘이치에 닿지 아니하거나, 그럴 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 ‘턱없다’는 사람에 따라 조금 달리 쓰이기도 한다. ‘택도 없다’가 그것이다. 이는 ‘턱도 없다’가 사실과 다르게 전해져 잘못 쓰이는 것이다. ‘턱도 없다’는 ‘턱없다’에서 나왔다. ‘턱없다’에 강조의 보조사 ‘도’가 붙어 ‘턱도 없다’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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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아재와 아줌마 ‘아재 개그’가 유행이다. 직장인 사이에서 유행하던 썰렁 개그, ‘부장님 개그’가 ‘아재 개그’란 이름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상에선 ‘아재 개그’뿐만 아니라 ‘아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아재 구별법’도 쉽게 볼 수 있다. ‘아재 개그’와 함께 우리말 ‘아재’가 새삼 관심을 받고 있다. ‘아재’의 쓰임새는 참 다양하다. ‘아재’는 ‘부모와 항렬이 같은 남자’를 이른다. ‘아재비’ ‘아저씨’와 한뜻이다. ‘아재’는 결혼하지 않은, 아버지의 남동생을 말하기도 한다. 아버지의 결혼한 남동생을 가리키는 말은 ‘작은아버지’다. 일상생활에선 잘 모르는 사람을 ‘아재’로 부를 때도 많다. 이때 ‘아재’는 나이 든 남자를 편하게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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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개구진 아이 장난이 심한 아이를 가리켜 ‘개구쟁이’라고 한다. ‘개구쟁이’가 하는 행동을 두고 ‘개구지다’란 표현을 쓴다. ‘개구지다’는 참 널리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개구지다’는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왜 이 재미난 낱말이 사전에 없는 걸까? ‘개구지다’는 ‘짓궂다’의 사투리 취급을 받는다. ‘개구지다’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개궂다’도 ‘짓궂다’의 방언이다. 우리말에서 ‘지다’는 명사 뒤에 붙어 ‘그런 성질이 있음. 또는 그런 모양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따라서 ‘개구지다’가 단어로 인정을 받으려면 명사 ‘개구’가 있어야 한다. 한데 ‘개구지다’의 어근 ‘개구’가 문장에서 단독으로 쓰이는 사례가 없다. 해서 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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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으르고 어른다 으르고 달랜다. 문장이 낯설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어르고 달랜다’의 잘못된 표현으로 느낄 법도 하다. 한데 아니다. 둘 다 바른말이다. ‘어르다’와 ‘으르다’는 의미가 완전히 다른 말이다. ‘어르다’와 ‘으르다’는 소리가 비슷하다보니 헷갈리게 쓰는 사람이 많다. ‘얼르다’나 ‘을르다’로 아는 사람도 있다. ‘어르다’는 ‘아이를 달래거나 기쁘게 하여 주다’를 뜻한다. ‘어떤 일을 하도록 사람을 구슬리다’란 의미도 있다. 하여 ‘잠을 재우려고 아기를 어르고 달랬다’ 따위로 쓸 수 있다. 한마디로 ‘어르다’는 상대를 그럴듯한 말로 만족시켜 꼬신다는 의미다. ‘어르다’는 어르고, 어르니, 얼러 등으로 활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