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경
교열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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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하릴없다 우리말 중 ‘하릴없이’라는 표현이 있다. 발음이 비슷해서인지 이 ‘하릴없이’를 ‘할 일 없이’와 혼동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릴없이’는 ‘하릴없다’에서 나온 부사다. ‘하릴없다’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다. 그런데도 ‘해야 하는 일 없이’ 또는 ‘하고자 하는 일 없이’라는 뜻으로 많이들 쓴다. 물론 ‘하릴없다’에는 ‘일이 없어서 한가하게 지내다’란 의미가 없다. ‘하릴없다’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고 방도가 없다’는 뜻이다.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렸으니 꾸중을 들어도 하릴없는 일이다”에서 보듯 어쩔 수 없거나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나타낼 때 흔히 쓸 수 있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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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채신없다 ‘채신’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져야 할 몸가짐이나 행동을 말한다. ‘채신’은 단독으론 거의 쓰이지 않는다. 주로 ‘없다’나 ‘사납다’와 짝을 이루어 ‘채신없다’ ‘채신사납다’ 형태로 사용되며, 부정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채신없다’는 ‘말이나 행동이 경솔하여 위엄이나 신망이 없다’란 뜻이다. ‘채신머리없다’ ‘채신머리사납다’와 같은 표현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채신머리’는 ‘채신’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머리’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비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싹수머리’ ‘안달머리’ ‘인정머리’ ‘주변머리’ ‘주책머리’의 ‘머리’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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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문외한 한때 머리가 텅 빈 사람을 벌레에 빗대어 이르는 말로 ‘무뇌충’이 널리 쓰였다. 그 기세로 ‘무뇌충’은 국립국어원 신어사전에도 올랐다. ‘무뇌충’을 떠올려서인지 사람들 사이에서 ‘무뇌한’이란 말도 많이 쓰인다. 물론 ‘무뇌한’이란 말은 없다. 한데 소리가 정확히 ‘무뇌한’으로 난다. 그 때문인지 ‘무뇌한’으로 참 많이들 쓴다. 무엇을 잘 모를 때,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아님을 밝힐 때 흔히 하는 ‘~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러는데’ 대신 쓰는 말이다. ‘문외한’ 이야기다. ‘무뇌한’은 ‘문외한’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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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겉잡다 ‘겉잡다’는 접두사 ‘겉’과 동사 ‘잡다’가 결합해 만들어진 말이다. ‘겉잡다’에서 ‘겉’은 양이나 정도를 나타내는 단어 앞에 붙어 ‘겉으로만 보아 대강한다’는 뜻을 더하는 말이다. ‘겉가량, 겉대중, 겉어림, 겉짐작’의 ‘겉’이다. 이들은 모두 ‘겉잡다’와 의미가 상통한다. ‘겉’은 일부 명사나 용언 앞에 붙어 실속과는 달리 ‘겉으로만 그러하다’는 뜻을 더하기도 한다. ‘겉멋, 겉치레, 겉핥다’의 ‘겉’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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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딴전 ‘명태 한 마리 놓고 딴전 본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하고 있는 일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이다. ‘딴전’은 ‘부리다’ ‘피우다’와도 짝을 잘 이룬다. ‘딴전 보다’ 대신 ‘딴전 부리다’ ‘딴전 피우다’로 바꾸어 써도 의미가 상통한다. ‘딴전’은 순우리말이 아니다. ‘딴전’의 ‘딴’은 ‘다른’의 옛말이다. ‘딴마음, 딴사람, 딴살림, 딴판’의 ‘딴’과 같다. ‘전’은 한자어로 가게 전(廛)을 쓴다. 물건을 사고파는 가게를 말한다. 쌀과 그 밖의 곡식을 파는 가게를 이르는 ‘싸전’, 생선 따위의 어물을 파는 가게를 의미하는 ‘어물전’의 ‘전’이다. 허가 없이 길에 함부로 벌여 놓은 가게를 가리키는 조선시대 ‘난전’의 ‘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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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한참 “한참 동안 너를 기다렸다.” 여기서 ‘한참’은 ‘시간이 상당히 지나는 동안’이란 의미다. 꽤 오랫동안을 뜻하는 ‘한동안’과 한뜻이다. ‘한참’의 ‘참’은 한자로 참(站)이다. 이 ‘참’은 ‘역참(驛站)’의 준말이다. 역참은 중앙 관아의 공문을 지방 관아에 전달하거나 벼슬아치가 여행이나 부임을 할 때 말을 공급하던 곳을 말한다. 요즘처럼 교통이 발달하기 전엔 공문을 전달할 때 말을 이용했다. 이때 지친 말을 새로운 말로 갈아타거나 사람들이 잠깐 동안 머물러 쉴 수 있도록 일정한 거리마다 마련하여 놓은 장소가 바로 역참이다. 지금의 기차역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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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선소리 ‘선소리’는 이치에 맞지 않은 서툰 말을 의미한다. 엉뚱한 말을 일컫는 ‘생(生)소리’와 뜻이 비슷하다. ‘선소리’의 ‘선’은 ‘선무당’ ‘선밥’ ‘선웃음’ ‘선잠’의 ‘선’과 같은 뜻이다. ‘선’은 ‘익숙하지 못하다’ ‘빈틈이 있고 서투르다’를 뜻하는 ‘설다’에서 왔다. ‘설다’의 관형형인 ‘선’이 접두사가 된 것이다. ‘선’은 ‘서툰’ 또는 ‘충분치 않은’의 뜻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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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뇌졸중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갑자기 터져 뇌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나타나는 여러 신경 증상을 일컫는다. 졸중(卒中)은 졸중풍(卒中風)의 줄임말이고, ‘뇌졸중’은 ‘뇌졸중풍’이 줄어든 말이다. 요즘은 그냥 ‘뇌중풍’이라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뇌졸중’을 ‘뇌졸증’으로 잘못 알고 있다. 아마도 ‘합병증’ ‘통증’ ‘우울증’ 등 질병이나 증상을 나타내는 대부분의 단어에 ‘증’이 붙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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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바쁜 와중에 ‘바쁜 가운데’처럼 형용사나 동사 뒤에 ‘ㄴ/는 가운데’를 붙여 쓰면 ‘어떤 일이나 상태가 이루어지는 범위의 안에서’라는 뜻이 된다. 한데 ‘ㄴ/는 가운데’를 써야 할 곳에 ‘바쁜 와중에’처럼 ‘ㄴ/는 와중에’를 쓰는 것을 적잖게 볼 수 있다. 단어의 정확한 뜻을 모른 채 사람들이 많이 쓰는 표현을 따라 하다 보니 ‘와중’이란 말을 잘못 쓰는 경우가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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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겻불과 곁불 따뜻한 햇볕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우리말 속담 가운데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궁하거나 다급해도 체면 깎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친다’는 속담과 한뜻이다. 그까짓 체면이 뭐길래, 양반은 체면에 목숨까지 거는 걸까? ‘겻불’은 곁에서 얻어 쬐는 불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겨를 태우는 불’이다. ‘겨’는 벼, 보리, 조 따위의 곡식을 찧어 벗겨 낸 껍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겨를 태운 불은 뭉근하게 타오르기 때문에 불기운이 약하다. 해서 ‘겻불’에 ‘불기운이 미미하다’란 의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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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너무 많잖아 “가진 게 많지 않다.” 가진 게 충분치 않다는 얘기다. ‘-지 않다’는 앞말이 의미하는 행동이나 상태를 부정하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게 ‘-지 않다’의 자연스러운 쓰임새이고 본뜻이다. 한데 요즘 ‘-지 않다’가 글말과 입말에선 달리 쓰이기도 한다. “이건 너무 많지 않아?” 많다는 뜻이다. 의문형으로 바꾸었을 뿐인데 반대 의미가 되었다. 의문형으로 끝난 ‘-지 않다’에선 부정의 뜻을 찾기 힘들다. 단순히 ‘많다’를 강조하는 역할만 한다. ‘않다’의 본래 뜻을 잃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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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조바심 ‘조바심’은 조의 이삭을 떨어서 좁쌀을 만드는 일이다. 이게 ‘조바심’의 본디 뜻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조바심’의 의미와는 많이 다르다. ‘조마조마하여 마음을 졸임. 또는 그렇게 졸이는 마음.’ 그렇다. 대부분 조바심을 이런 뜻으로 알고 쓴다. 세월이 변했다. 흔하디흔했던 것들이 지금은 많이 사라져가고 있다. 가꾸는 농작물도 마찬가지다. 오곡 중 하나인 조도 이젠 이 땅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조바심의 의미도 달라졌다. 아니 조바심의 본뜻에 새로운 뜻이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