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경
교열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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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말글 개구진 아이 장난이 심한 아이를 가리켜 ‘개구쟁이’라고 한다. ‘개구쟁이’가 하는 행동을 두고 ‘개구지다’란 표현을 쓴다. ‘개구지다’는 참 널리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개구지다’는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왜 이 재미난 낱말이 사전에 없는 걸까? ‘개구지다’는 ‘짓궂다’의 사투리 취급을 받는다. ‘개구지다’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개궂다’도 ‘짓궂다’의 방언이다. 우리말에서 ‘지다’는 명사 뒤에 붙어 ‘그런 성질이 있음. 또는 그런 모양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따라서 ‘개구지다’가 단어로 인정을 받으려면 명사 ‘개구’가 있어야 한다. 한데 ‘개구지다’의 어근 ‘개구’가 문장에서 단독으로 쓰이는 사례가 없다. 해서 방언이다. -
알고 쓰는 말글 으르고 어른다 으르고 달랜다. 문장이 낯설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어르고 달랜다’의 잘못된 표현으로 느낄 법도 하다. 한데 아니다. 둘 다 바른말이다. ‘어르다’와 ‘으르다’는 의미가 완전히 다른 말이다. ‘어르다’와 ‘으르다’는 소리가 비슷하다보니 헷갈리게 쓰는 사람이 많다. ‘얼르다’나 ‘을르다’로 아는 사람도 있다. ‘어르다’는 ‘아이를 달래거나 기쁘게 하여 주다’를 뜻한다. ‘어떤 일을 하도록 사람을 구슬리다’란 의미도 있다. 하여 ‘잠을 재우려고 아기를 어르고 달랬다’ 따위로 쓸 수 있다. 한마디로 ‘어르다’는 상대를 그럴듯한 말로 만족시켜 꼬신다는 의미다. ‘어르다’는 어르고, 어르니, 얼러 등으로 활용한다. -
알고 쓰는 말글 귀 잡수시다 “한번 잡솨 봐. 다음날 아침에 반찬이 달라져. 애들은 가라.” 그 옛날 장날이면 찾아오는 ‘떠돌이 뱀장수’가 있었다. 뱀장수의 현란한 말과 차력 쇼에 정신이 팔려 늦도록 장터에서 놀다가 집에서 혼이 나곤 했다. 이젠 다 옛말이 되었지만. ‘잡솨 봐’는 ‘잡숴 봐’가 바른말이다. ‘먹다’의 높임말이 ‘잡수다’이고, ‘잡수다’의 존대어는 ‘잡수시다’이다. 우리말은 높임말이 발달해 있다. 한데 공손이 지나쳐 잘못 쓰는 높임말도 많다. ‘귀먹다’를 높여서 말한답시고 ‘귀 잡수시다’라고 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귀 잡수시다’는 ‘귀를 음식으로 먹는다’란 뜻이다. 이땐 ‘먹다’에 ‘으시’를 넣어 ‘귀먹으시다’라고 해야 한다. -
알고 쓰는 말글 십상과 숙맥 보통 그렇게 되기가 쉽다는 뜻으로 ‘쉽상’이 널리 쓰인다. 주로 ‘무엇하기 쉽상이다’ 꼴로 많이 쓴다. 순우리말일 것 같은 ‘쉽상’은 정작 사전에 없다. ‘쉽상’은 한자말 ‘십상’이 바른말이다. 사람들이 한자말인지도 모르고 우리말 ‘쉽다’에서 온 것으로 생각해 ‘쉽상’으로 쓰는 듯하다. ‘십상’은 십상팔구(十常八九)의 준말이다. ‘열에 여덟, 아홉으로 거의 예외가 없음’을 이른다. 요즘은 십중팔구(十中八九)란 말을 더 많이 쓴다. 한데 ‘십중팔구’는 ‘십상팔구’의 일본식 표현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강점기 이전 문헌에서는 ‘십중팔구’란 표현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십상’이란 말은 지금도 자주 쓰지만 ‘십중’의 쓰임새는 없다. 하여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다. -
알고 쓰는 말글 푸닥거리 옛날 군대에서 선임들이 후임들의 군기를 잡을 때면 으레 “푸닥거리 한번 하자”고 했다. 그러면 후임들은 바로 표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행동이 재빨라졌다. 최근 아들을 군에 보낸 선배 말에 따르면 요즘은 예전과 달라 일부러 군기 잡는다고 푸닥거리하는 일은 거의 없단다. ‘푸닥거리’는 무당이 하는 굿에서 유래된 말이다. 무당이 간단한 음식을 차려놓고 부정이나 살 따위를 푸는 것을 가리켜 ‘푸닥거리’라고 한다. ‘푸닥거리’를 ‘푸다꺼리’ ‘푸닥꺼리’로 잘못 아는 이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푸닥거리’는 한글맞춤법 규정에서 조금 벗어난 표현이다. -
알고 쓰는 말글 볼 장 보다 ‘볼 장 보다’는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다’란 의미다. 일상생활에선 부사 ‘다’가 붙은 ‘볼 장 다 보다’꼴이 더 많이 쓰인다. ‘일 때문에 잠은 다 잤네’에서 보듯 ‘다’는 실현할 수 없게 된 앞일을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반어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볼 장 다 보다’는 ‘일이 더 손댈 것도 없이 틀어지다’란 뜻을 담고 있다. 주로 부정적인 상황일 때 쓴다. 그런데 ‘볼 장’을 ‘볼 짱’ 또는 ‘볼짱’으로 쓰는 사람이 많다. ‘볼 장’의 발음이 ‘볼 짱’이기 때문일 터다. 우리말에 ‘볼짱’이나 ‘짱’이란 명사는 없다. -
알고 쓰는 말글 왕호감에서 급호감 ‘가희에게 급호감.’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는 글의 제목이다. ‘급호감’은 젊은이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호감이 간다’란 뜻으로 통하는 말이다. 10대들의 통신언어로 쓰이던 ‘급호감’ ‘급실망’ ‘급당황’ ‘급피곤’과 같이 접두사 ‘급’을 붙여 만든 말이 최근 신문·방송에 자주 나온다. ‘급짜증’ ‘급궁금’처럼 순우리말과 결합한 말도 눈에 띈다. -
알고 쓰는 말글 님과 함께?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한 백년 살고 싶어~.” ‘임’이나 ‘님’은 귀하거나 높은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임금’의 ‘임’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임’이 그렇다. ‘회장님, 해님, 공자님’처럼 명사 뒤에 붙여 쓰는 ‘님’도, ‘홍길동 님’과 같이 이름 뒤에 띄어 쓰는 ‘님’도 그러하다. ‘님’은 ‘씨’보다 높임의 뜻을 더하는 말이다. -
알고 쓰는 말글 깜깜이 포커 게임에서 자기 패를 보지 않고 아무 패나 손 가는 대로 뒤집는 것을 흔히 ‘깜깜이’라고 한다. 도박판의 은어처럼 쓰일 법한 이 ‘깜깜이’가 신문·방송에 자주 등장한다. ‘깜깜이 선거’ ‘깜깜이 인사’ 등에서 보듯 명사 앞에 수식어처럼 붙는다. 의미도 ‘마구잡이’ ‘예측하지 못하는’ ‘꼭꼭 숨기는’ 등 한두 가지로 정의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쓰임새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깜깜이’는 포커판에서 쓰는 용어여서인지, ‘깜깜하다’가 연상되어서인지 부정적인 상황에서 쓰이는 경향이 있다. -
알고 쓰는 말글 ‘존영’이 뭐길래 대통령 ‘존영’ 논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 방송사 진행자는 ‘존영’을 ‘영정’으로 잘못 말해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린다. 일상생활에서 보통 사람들이 쓰지 않는 단어를 선택해서일까? 왕조시대의 사고, 심지어 ‘어진’을 들먹이는 이도 있다. 도대체 ‘존영’이 뭐길래. ‘영정’이 아니라 ‘존영’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
알고 쓰는 말글 ‘초접전’과 ‘접전’ 총선 판세를 전하는 기사가 부쩍 눈에 띈다. 이번 선거는 ‘초접전’ 지역이 승부를 가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접전’은 ‘서로 힘이 비슷해 승부가 쉽게 나지 아니하는 경기나 전투’를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 접두사 ‘초’가 붙어 ‘초접전’이 되었다. ‘초접전’은 무슨 뜻일까? ‘초’는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어떤 범위를 넘어선’ 또는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하는 말이다. 접두사 ‘초’는 생산성이 높다. 하여 ‘초대형, 초만원, 초고가, 초당파, 초고속, 초음속, 초호화’처럼 명사와 결합하여 수많은 단어를 만들어낸다. -
알고 쓰는 말글 ‘막장’ 공천 ‘막장 드라마, 막장 국회, 막장 정치, 막장 공천….’ 요즘 신문·방송에 ‘막장’이란 단어가 자주 오르내린다. ‘막장’은 어디에서 온 말이며 무슨 뜻일까? 문맥상으로 그 뜻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이때의 ‘막장’은 ‘갈 데까지 간’이란 의미다. 부정적인 뜻이 강하다. 한데 ‘막장’의 사전적 의미는 이와 다르다. ‘막장’은 갱도의 막다른 곳을 뜻한다. ‘갈 데까지 간’이란 뜻과는 관련이 없다. 사람들이 캄캄한 ‘막장’의 이미지만 떠올려 부정적인 상황에 쓰는 듯하다. 하나 ‘막장’은 폭력이나 불륜, 부정이 난무하는 곳이 아니다. ‘막장’은 누군가의 아버지 혹은 자식이 일하는 삶의 터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