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권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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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모 칼럼 “그날 국가는 무엇을 했나요” 분명 “확실히 막을 수 있었다(Absolutely Avoidable).”(뉴욕타임스 10월31일 이태원 참사 보도 제목) 대형 재난 뒤에 ‘만약에’라는 가정을 붙여 ‘막을 수 있었던 참사’를 복기하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다. 그럼에도 이태원 참사를 두고는 ‘만약에’를 뼈아프게 되뇌게 한다. 참사 이전, 참사 발생 순간, 참사 이후 구조·수습 과정에서 너무도 부실하고 무능한 정부의 대응이 드러난 때문이다. 희생자 유족들에게는 너무나 안타까운 이 ‘만약에’가 확인시키는 건 이태원 참사에서 ‘국가는 없었다’는 냉혹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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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모 칼럼 윤석열 대통령의 염치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은 부박(浮薄)하고 무치(無恥)한 대통령의 언행을 각인하는 참사로 길이 남게 됐다. 애초 비속어 발화자인 윤 대통령이 쿨하게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비판은 좀 받더라도 넘어갔을 사안이다. 기대는 난망했지만, 대통령 언행의 중함을 벼리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더할 나위 없었을 터이다. 하지만 적반하장, 거꾸로 갔다. 보도된 영상을 통해 비속어가 확인됨에도, ‘이 ××’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윤 대통령이 앞장서 거짓과 억지로 잘못을 덮으려 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외교 현장에서 비속어를 썼다는 사실보다 이후 대처 과정에서 뾰족해진 몰염치한 태도가 더 분노를 불러왔다. 왜 이리 어이없는 대응이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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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모 칼럼 ‘검사 대통령’ 본색 ‘검사 대통령’은 바뀌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변화는 과오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전제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 지지율을 폭락시킨 여러 국정 난맥과 인사 실패, 비선 논란, ‘김건희 의혹’ 등에 대해 여태까지 한 번이라도 성찰과 자성, 사과의 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 최소한 국민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정도의 되돌아봄도 없었다. 윤 대통령은 수도권 집중호우 피해와 관련, “불편을 겪은 국민께 정부를 대표해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물난리에 고통을 겪고 정부의 대처에 실망한 국민에게 “죄송한 마음”이라고 한 게 최대치의 사과다. 언젠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씨가 “검사들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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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모 칼럼 취임 100일, 윤 대통령의 두 갈래 길 야권 일각에서 탄핵을 거론하는 것보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을 ‘개고기’에 빗댄 만큼 윤석열 정권 출범 100일의 일그러진 초상을 보여주는 것도 없다. 20%대 지지율은 ‘내부 총질’로 쫓겨난 여당 대표가 다시 대통령을 향해 총질을 주저하지 않게 만든다. 레임덕 수준의 지지율이 고착되면, 관료사회는 더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국정운영의 동력은 갈수록 소진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백일도 지나지 않아 심대한 지도력 위기에 봉착했다. 이준석 대표가 호명한 ‘윤핵관’과 더불어 ‘양두구육’은 아마도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통치자들의 ‘자격없음’을 조롱하는 언어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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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모 칼럼 이준석의 국민의힘, 윤핵관의 국민의힘 부족 정치를 떠올리게 하는 ‘윤핵관 브러더스’의 등장은 자못 자극적이다. 하필 조폭 영화의 단골 대사인 ‘한번 형(동생)은 영원한 형(동생)’이 앞세워졌다. 여당 대표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형 윤핵관(권성동 원내대표)과 무관의 동생 윤핵관(장제원 의원)이 손을 맞잡고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다짐했다. 당초 계획과 달리, ‘윤핵관 브러더스’가 여권의 실질 권력임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퍼포먼스를 벌인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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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모 칼럼 지금 ‘이재명 당대표’가 최선일까 차기 주자로 부상한 김동연 경기지사가 도정 자문을 하려 남경필 전 경기지사를 만나는 장면만큼 야권의 지체된 세대교체를 보여주는 것도 없다. 8년 전 49세 나이로 경기지사에 당선된 남경필(57)과 김동연(65)은 세대가 다르다. 남경필이 소장·개혁파 활동으로 보수정당에 신풍을 불어넣던 게 20여년 전이다. 정치적 나이로도 김동연과 남경필의 간격은 참으로 멀다. 민주당의 86세대가 “아랫세대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오랫동안 세대교체론을 독점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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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모 칼럼 윤석열 대통령도 ‘야당 복’ 필시 대선 연장전으로 매김된 6·1 지방선거가 더불어민주당으로 하여금 후진 페달을 밟게 했을 것이다. 한동훈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했음에도,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하던 민주당이 한덕수 총리 후보자 인준 가결로 전격 선회했다. 협치로 포장했지만, 억지춘향으로 읽힌다. 민주당 지지율이 20%대로 폭락하는 등 악화되는 여론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터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파놓은 함정에 안 빠지려고 임명 동의를 해줬다”(윤호중 비대위원장)고 했지만, 정작 스스로 함정을 판 건 민주당이다. 한동훈 법무장관 임명과 총리 인준을 연계시켜 대책 없이 시간만 끌다가 발목잡기 프레임에 포획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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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모 칼럼 오로지 ‘윤석열’이 기준인 내각 인선 실로 인사가 만사(萬事)다. 한국갤럽의 지난주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직무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45%)가 긍정(42%)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부정적 평가를 내린 이유로는 ‘인사 잘못’(26%)이 첫 순위에 꼽혔다. 이런 추세라면 ‘레임덕’이 아니라 ‘취임덕’에 빠질 판이다.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자 19명 중에서 온갖 ‘아빠 찬스’와 특혜, 대형 로펌과 사외이사 회전문, 이권 개입, 병역 면제, 세금 탈루, 위장전입 등 크고 작은 의혹이나 추문에 휩싸이지 않는 경우는 두세 명뿐이다. 인맥과 학맥, 경력을 고리로 세습적 ‘찬스’와 특혜를 누리는 기득권층의 부조리한 실상이 매일 연속극처럼 펼쳐지고 있다. 윤 당선인의 첫 인사에 대한 비등한 실망 여론은 단지 국무위원 후보자들의 비리나 의혹 때문만은 아니다. 새 정부의 비전이자 얼굴이어야 할 내각 진용이 희망과 감동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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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모 칼럼 0.73%만큼만 쇄신할 텐가 대선 승패를 가른 24만7077표(0.73%포인트)는 승자보다는 패자에게 실로 마약과 같은 지표다. 사생결단의 진영 대결이었기에 더 그렇다. ‘석패’에 집착하다보면 종국에는 대선 결과를 ‘운칠기삼’으로 치부하거나, ‘졌지만 잘 싸웠다’는 정신승리를 구가하기 십상이다. 그러고선 반성과 쇄신을 회피할 구실로 삼는다. 전국 단위의 선거, 그것도 대선에서 패배한 정당이 이토록 안온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필수적인 대선 평가 작업도 안 하고 어물쩍 넘어갔다. 패인 평가를 외면하니 반면교사 삼을 교훈이 나올 리 없다. 가뭄에 콩 나듯 불거진 대선 패배에 대한 쓴소리는 ‘배신자’ 공격으로 초장에 제압됐다. ‘배신자’ 딱지를 붙여 성찰 요구를 차단했다. 사실 ‘졌잘싸’로 만족하면 패배를 성찰할 까닭도 없어진다. ‘일사불란’과 ‘이재명 지키기’가 지상 목표가 된 상황에서 대선 패배를 복기하고 책임을 따지는 건 기득권에는 한없이 불편한 사안이다. 결국 반성도, 쇄신도, 변화도 0.73%만큼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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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모 칼럼 이번 대선은 망했다, 결선투표제라도 도입하자 처음엔 가짜 뉴스인 줄 알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조원진 우리공화당 후보에게 국민통합정부 참여와 정책연대를 제안했다고 했을 때다. 민주당과 우리공화당의 아득한 거리, 믿기지 않았다. 정치연합과 연립정부가 보편화된 유럽 국가에서도 극단 세력과의 연대는 금칙이다. ‘심상정’(정의당)에서 ‘조원진’(태극기부대)까지 아우르는 통합·연대라면 정치사를 새로 써야 할 사건이다. 가치와 이념, 정체성은 몰각되고 날것의 승리지상주의만 활개 치는 선거판이다. ‘닥치고 정권교체’ 못지않게 ‘묻지마 반윤연대’도 허망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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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모 칼럼 이재명이 처한 ‘신뢰의 위기’ 엊그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맨바닥 큰절 사과를 했다. “부족함에 대해 사죄드린다”며 반성의 언어가 절절하다. 지지율 급변에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빼닮은 장면이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선대위 신년하례식(1일)에서 “저부터 바꾸겠다”며 큰절을 올렸다. 지지율이 급락, 대놓고 후보교체론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나온 큰절 사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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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모 칼럼 반동적인 ‘박근혜 사면’ 돌연한 ‘박근혜 사면’이 발표된 날, 왠지 광화문의 ‘그들’이 떠올랐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시사철 ‘박근혜 무죄’ ‘탄핵 무효’를 목놓아 외쳐온 그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은사(恩赦)를 어찌 받아들일까.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입원 중인 병원 앞으로 달려간 그들은 맘껏 승리를 구가했다. “박근혜 대통령 석방은 정의를 되찾는 국민의 승리”라며 작약했다. 거짓 촛불, 사기 탄핵, 불법 인신감금이라 찰떡같이 믿었으니 ‘박근혜 석방=정의와 진실의 승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박근혜부터 과오를 추호도 인정 않고, “정치 보복”이라는 입장과 함께 사법절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왔다. 진정한 반성도 사과도 없는 상황에서 이뤄진 사면은 그들에겐 ‘박근혜 무죄’ ‘정치 보복’의 확인증일 터이다. 사면을 통보받은 박근혜는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여러분께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민 여러분께 사과가 아니라 감사 인사다. 무엇을 뜻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