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권모
칼럼니스트
최신기사
-
양권모 칼럼 국민의힘, 먼저 극우 세력과 결별하라 미래통합당이 ‘국민의힘’으로 간판을 바꾼다. 강경 보수의 색채를 들어내려 이념색 없는 당명을 택했다고 한다. 처음으로 당명에서 ‘당’도 빠졌다. 탈이념과 실용 정당으로의 변화를 도모하는 통합당이 새 당명에 그 지향을 반영하려 한 결과일 터이다. 격세지감이다. 엊그제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의 기자간담회 회의실 배경에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문구가 내걸렸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의 기치를 당당히(?) 내세울 만큼 통합당은 유연해졌다, 유연해지려 하고 있다.
-
양권모 칼럼 서울은 여전히 만원이다 아무리 땅을 넓히고 주택 공급을 늘려도 서울은 만원(滿員)일 수밖에 없다. 사람 나면 서울로 가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시절부터 ‘서울은 만원’이다. “서울은 넓다. 아홉(현재 스물다섯) 개의 구에 가, 동이 대충 잡아서 380개(현재 522개)나 된다. 굉장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넓은 서울도 370만명(현재 972만명)이 살아 보면 여간 좁은 곳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꽉 차 있다. 집은 교외에 자꾸 늘어서지만 연년이 자꾸 모자란다.”(1966년 이호철 장편 <서울은 만원이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문화권력은 물론 모든 가치가 비정상적으로 집적된 서울은 쉼없이 사람과 돈, 자원을 빨아들였다. 이미 서울은 만원이던 1966년 370만명이던 인구가 1970년 500만명을 넘어섰고, 1988년에는 1000만명을 돌파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택지를 개발하면서 외연을 확장했으나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곽 찼다. 급기야 경기도에 열서너 개의 신도시를 개발해 밀려드는 인구를 분산했지만 서울은 여전히 만원이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95%를 넘어섰지만 1966년 때처럼 ‘연년이 자꾸 모자란다’. 집값과 전셋값 때문에 서울 밖으로 이주한 가구들은 기회만 되면 서울로 진입을 준비한다. 특히 서울 부동산은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압도하는 시장이다. 서울 부동산에 대한 잠재 수요가 날로 확대되는 이유다. 역대 정권에서 10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서울의 집과 집값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서울과 수도권 초집중 체제를 바꾸지 않고서는 부동산 모순을 원천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양권모 칼럼 이러면 부동산이 정권을 잡는다 그때의 기시감이 엄습한다. 참여정부 시절 2004년을 기점으로 집값이 폭등하고 대통령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국정 동력이 급속히 소진한 때다. 민생의 핵심인 부동산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정권은 순식간에 위기에 빠진다. 당시 여당이 2007년 대선에서 500만표 차이의 참패를 당한 데는 분명 ‘부동산 실패’도 자리하고 있다. 급기야 여권에서 참여정부의 ‘부동산 트라우마’가 소환되고, 사과에 인색한 여당 대표가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만큼 작금의 부동산 민심이 사납다.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설계자인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언젠가 ‘부동산 정책은 그 자체가 정치’라고 했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락하며 변곡점을 맞이한 때는 어김없이 ‘부동산’이 있었다. 집값이 폭등할 때 지지율이 급락했다. 80%대까지 오르내린 지지율이 처음 50%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8년 9월이다. 걷잡을 수 없이 치솟은 집값 문제가 ‘남북 평화’ 성과마저 밀어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사상 최저인 40%대 초반으로 내려앉은 지난해 12월도 집값 폭등과 청와대 참모들의 부동산 불로소득이 쟁점화됐던 때다. 4·15 총선 이후 고공행진을 이어오던 국정 지지율이 속절없이 꺾여 다시 50%선을 위협받고 있다. 거래허가제까지 도입된 ‘6·17대책’에도 불구, 집값은 잡히지 않고 전셋값 상승 등 부작용이 도드라지면서 민심이 격동한 결과다.
-
양권모 칼럼 국가보안법은 살아 있다 국가보안법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그걸 확인시키는 기록이다. 그는 정당 행사에서 민중가요를 제창했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지난 5월14일 유죄가 확정되었다. 2012년 옛 통합진보당 행사인 출마자 결의대회에서 ‘혁명동지가’를 제창한 게 국가보안법 제7조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혁명동지가 제창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며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문제 삼은 ‘혁명동지가’는 가수 백자가 1991년 만든 민중가요로 그간 진보 행사에서 수없이 불렸던 노래다. 수도권 유일의 진보정당 3선 기초의원인 안소희 파주시의원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중형에 처해졌고, 시의원직을 잃었다. 시인 김수영이 “김일성 만세”를 인정할 수 있어야 언론자유의 출발이 이뤄진다고 갈파한 때가 60년 전이다. 아직도 만주의 무장독립투쟁을 형상화한 민중가요를 제창했다고 보안사범이 되고 시의원직을 박탈당하는 세상이다.
-
양권모 칼럼 정의당은 거리로 돌아가야 한다 벌써부터, 정의당이 보이지 않는다. 의석 분포가 질적으로 달라진 21대 국회에서 정의당의 정치적 존재감은 깃털처럼 가볍다. 진보정당의 공간은 2004년 원내 진출 이후 가장 협소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독자적으로 패스트트랙이 가능한 절대 의석을 확보했고, 미래통합당은 야당 지위를 독점했다. 두 당의 의석을 더하면 전체 의석의 94%로 역대 최대치다. 20대 국회에서는 6석의 정의당이 법안 심의와 협상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성과를 낼 수도 있었지만, 21대 국회의 6석짜리 정의당에는 그럴 여지가 ‘전혀’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
양권모 칼럼 “그놈이 그놈이라고 투표를 안 하면” 마침내, 어느새, 21대 총선 투표날이다. 코로나19가 드리운 잿빛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지독한 ‘깜깜이’ 선거였다. 3대 총선(1954년)부터 투표에 참여해온 구보씨는 여태 이렇게 조용한(?) 선거는 처음 봤다고 토로한다. 지역구에서 유권자가 가장 많은 아파트 단지에 살지만, 선거기간 후보를 본 것은 딱 두 차례였다. 그것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 표정조차 읽을 수 없다. 점퍼 색깔로서야 어느 당 후보인지를 구분할 따름이다. 다시 출마한 현역 의원은 그나마 어떤 인물인지 가늠하지만, 새로 나온 신인은 도통 알 도리가 없다. 누구를, 왜 공천했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선택해야 할 판이다. 선거일이 닥쳤지만, 구보씨처럼 저마다의 이유로 무력감을 느끼는 유권자들이 적잖다.
-
양권모 칼럼 ‘위성정당’은 빼고 선거제 개혁을 향한 기나긴 도정을 돌이켜보면 너무도 허망한 결말이다. 천신만고 끝에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와 목표는 무너지고 증발했다. 연동형이 적용되는 비례대표 30석의 ‘도둑질’을 노린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전용 위성정당 때문이다. 기득권 거대 정당에 불리한 선거제 개혁을 꼼수와 변칙의 ‘위성정당’ 협공으로 단숨에 무력화시켰다. ‘더티한 승리’ 혹은 ‘원칙 없는 패배’만을 택한 나쁜 정치다. 선거제 개혁의 지향은 분명하다. 거대 정당의 과잉 대표성을 막고 정치생태계의 다양성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해 민의가 좀 더 온전히 반영하는 국회를 구성하자는 취지다. 선거제 개혁은 ‘노무현의 꿈’이었고, 고 노회찬 의원의 필생의 정치적 과제였다. 패스트트랙 충돌 과정에서 후퇴를 거듭한 끝에 제한적이나마 비례대표 30석에 연동형이 도입되었다. 30년 넘게 이어져온 기득권 정치의 성채를 허물 30석의 진지가 마련된 것이다. 정치를 바꿀 그 30석의 희망의 터전마저 유린하는 게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놀음이다.
-
양권모 칼럼 야당 복 vs 여당 복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패했을 때마다 나온 반성문의 8할은 “오만과 독선”에 대한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정권 출범 해에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 정도를 빼고는 이변이 아닌 경우가 없었다. 여론조사에도 잡히지 않던 표심이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막상 뚜껑을 여는 순간 판을 뒤집어엎은 결과다. 이변의 연속에서도 검증된 철칙이 있다. ‘선거는 오만한 쪽이 진다.’ 2016년 20대 총선은 여당인 새누리당이 대세를 잡고 있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유지하고, 새누리당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의 2배에 달했다. 과반은 물론 개헌선까지 호언하던 새누리당은 그러나 제1당마저 빼앗기는 참패를 당했다. 오만과 독선의 끝장을 보인 소위 ‘진박’ 공천 파동이 결정타였다.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다는 것은 ‘남이 잘해서가 아니라 내가 잘못해서’를 전제한다. 선거 뒤 새누리당은 국민 눈높이에서 패배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찾자는 취지에서 외부에 집필을 맡겨 ‘국민백서’를 만들었다. 패배 원인을 계파·공천 갈등, 불통, 자만, 무능, 공감 부재, 진정성 부재, 선거구도 등으로 분석했다. 내린 결론은 “극치에 달한 오만과 불통이 패인”이다.
-
여적 자객 공천 김대중 정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 ‘손톱 밑의 가시’ 같은 존재가 있었다. 정권 초부터 간단없이 DJ를 향한 폭로전을 주도하고 ‘암’ ‘공업용 미싱’ 같은 독설을 퍼부으며 공격의 선봉에 섰던 이들이다. ‘DJ 저격수’라는 별명이 붙었던 정형근·이신범·이사철·이규택·안상수·김문수·김홍신 의원 등이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DJ 저격수’들이 여의도 한 음식점에 모였다. 여권이 ‘표적 공천’을 공식화하자 공동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실제 16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DJ 저격수들에 대해 타깃 공천을 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신범·이사철 의원을 ‘저격’하는 데만 성공했다.
-
여적 폴리널리스트 언론과 정치 간 인적 이동은 뿌리 깊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제헌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국회의원 중 언론인 출신은 모두 377명이다. 제헌국회 20.5%를 시작으로 18대 국회까지 15% 안팎을 유지했다. 19대 국회에서 처음 한 자리 대인 8.7%로 떨어졌고 20대에도 같은 8.7%를 기록했다. 과거에 비해 비중이 줄었다지만, 일본(2%), 미국(2.8%), 프랑스(1.2%) 독일(3.9%) 영국(5.4%) 등에 비하면 여전히 높다. “언론의 높은 정치 병행성과 낮은 전문직주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분석된다(김세은, <한국 ‘폴리널리스트’의 특성과 변화>).
-
양권모 칼럼 ‘인재 영입’ 쇼쇼쇼 물갈이, 본디 ‘수족관이나 수영장 등의 물을 간다’는 뜻이다. 국어사전에는 ‘기관이나 조직체의 구성원을 큰 규모로 바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가 들어 있다. 매번 총선 때마다 ‘물갈이’가 최고의 승리 공식이 되어 대규모 현역 의원 교체가 반복되었기에 사전에까지 등재된 것이다. 16대부터 20대 국회까지 초선의원 비율은 절반에 육박한다. 현역 의원이 4년마다 절반 가까이 바뀌는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초선의원 비율이 최고로 높다. 기성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을 넘어설 수 있는 유력한 선거 무기로 ‘물갈이’가 동원되어온 결과다.
-
여적 ‘NY’ 이낙연 백범(김구) 우남(이승만) 해공(신익희) 인촌(김성수) 유석(조병옥) 죽산(조봉암) 해위(윤보선)…. 1960년대까지는 거물 정치인들은 아호(雅號)로 불렸다. 이름을 부르는 건 불경으로 여겨, 품위도 있고 예우의 뜻이 담긴 아호로 통칭된 것이다. 1970년대 들어 영문 이니셜 호칭이 등장했다. 원조는 박정희 정권의 2인자였던 김종필이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애칭 ‘JFK’를 원용해 ‘JP’라는 약칭이 만들어졌다. DJ(김대중)·YS(김영삼) 등장은 결을 달리한다. 독재 시절 탄압받는 인물을 부르는 은어로 시작해 국민적 열망을 담은 애칭으로 자리잡았다. ‘3김’을 거치면서 이니셜로 불리는 것 자체가 한 시대를 풍미한 ‘거대한 정치’를 상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