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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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35층 룰과 50층 룰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 전망대는 478m 높이에 있다. 그곳에서 사방을 보며 놀란 게 있다. 서쪽으로 지평선, 남쪽은 청계·관악산, 북쪽은 북한산, 동쪽은 시 경계까지 아파트 물결만 보인다. 한 동은 성냥갑, 단지는 두부모처럼 보이고 한강변엔 병풍이 쳐 있다. 왜 고층아파트는 지은 시기 따라 천편일률적으로 15·20·35층인지, 그 아파트숲에서도 전·월세 가구가 51%나 되는 서울을 곱씹게 된다. -
이기수 칼럼 못 믿을 게 ‘선의’와 ‘사람’이다 8월의 첫날, ‘조세저항 국민집회’가 열렸다. 세입자 거주권을 4년으로 늘리고, 전·월세 인상을 5% 내로 묶은 임대차 3법이 화두였다. 비 뿌리는 하늘로 신발을 던졌다. 포털 검색창엔 ‘사유재산 강탈정부’라고 썼다. ‘황구징포(黃口徵布)’란 말도 회자됐다. 조선시대 아이에게까지 군포를 물리던 짓을 비유한 것이다. 다주택자가 약자인가. 되묻는 머릿속에 ‘선의(善意)’라는 글자가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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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단기노동자 보상 임금 한국엔 여러 갈래의 임금이 있다. 정부가 해마다 책정해 강제하는 ‘최저임금’, 지자체가 최저임금보다 20~30% 높게 조례로 정하는 ‘생활임금’, 사용자가 기본급·상여금·수당 등을 합쳐 퇴직금 산정 때도 기준 삼는 ‘통상임금’이 있다. 여기에 새로운 임금이 하나 더해진다. 경기도가 내년부터 1년 이내 직접고용 노동자에게 근무 중에 받은 총임금의 5~10%를 지급하기로 한 ‘보상임금’이다. 불안정 노동자에게 주는 퇴직금 성격의 보상이자 ‘취업지원금’으로 볼 수 있다. -
여적 유명을 달리함 신문·방송엔 근래 ‘극단적 선택’이 많이 쓰인다. 스스로 생명을 끊는다는 ‘두 글자’를 제목·기사 속에 쓰지 말라는 한국기자협회 권고기준에 따른 것이다. 이 기준에선 엄밀히 ‘극단적 선택’도 ‘스스로 목숨 끊다’ ‘목매 숨져’ ‘투신 사망’과 함께 자제할 표현으로 예시했다. 행위를 암시하거나 방법·도구·장소·동기를 구체적으로 담지 말라는 권고이다. 모방을 유발하는 ‘베르테르 효과’를 막기 위해서다. ‘사망하다’ ‘숨지다’같이 사실만 전하라고 하지만, 성격이 다른 죽음의 표현을 두고 언론의 딜레마는 계속되고 있다. 1990년대 사건기자 시절, 검은 바탕에 선명한 제목이 뽑히고 시시콜콜한 팩트를 넣도록 했던 때와는 천양지차다. ‘두 글자’가 지면·방송에서 사라지고 정부 통계도 줄었다니 계속 지켜가야 할 방향이다. 대안은 동사가 있는 객관적 표현으로 ‘유명(幽明)을 달리하다’를 생각해본다. 누가 집에서 유명을 달리했다는 식으로. -
이기수 칼럼 산 자의 몫이 된 ‘두 개의 유산’ 새벽 3시. 휴대폰엔 박원순 서울시장 주검이 발견됐다는 속보가 떠 있었다. 툭, 한숨이 터졌다. 생전의 그가 주마등처럼 흘렀다. 성폭력으로 피소된 일도 포개졌다. “박원순마저~”로 시작될 격랑의 높이를 그 밤엔 잴 수 없었다. 정신만 말똥말똥해졌다. 동이 튼 세상은 팽팽했다. 고인에겐 긴 추모행렬이 섰고, 피해자 곁엔 연대의 손이 모였다. 조문을 하니마니 정치는 갈라졌다. 미화해선 안 될 삶의 끝, 그렇다고 가벼이 지워질 수 없는 한평생의 헌신과 선 굵은 족적, 사람들은 그 사이를 오가며 힘들어했다. 비보를 접한 그 새벽, 두 글자를 새겼다. ‘균형’이다. 있는 대로 기억하고, 있는 대로 책망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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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안치환의 ‘아이러니’ 그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16년 전이다. 경향신문이 처음 라디오 광고를 해보자고 배경음악을 수소문했다. 여러 가수의 노래를 ‘염가’로 섭외했지만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 짧은 공익광고에 나가도 무너지면 안 될 ‘공정가격’이 있다고 매니저에게 상담을 넘겼다. 그때 “나중에 신문사 잘되면 소주 한잔 사주세요”라고 웃으며 허락한 사람이 있었다. 안치환이다. 그는 ‘내가 만일’이란 노래 끝에 “응원해주세요. 대한민국 새 신문 경향신문”이라는 육성도 직접 더했다. 사원주주들이 만드는 독립언론으로 새 길을 갈 때였다. 그의 이름 석 자가 소탈하고 커 보였다. 고마웠다는 말 다시 전한다. -
이기수 칼럼 임진강은 폭풍전야였다 느낌표 4개 있는 펼침막은 처음 봤다. “왜! 민통선 주민을 죽음으로! 당장 행동을 멈추라! 하지 말라!” 대북전단 경계령이 떨어진 20일, 파주시 문산4거리에 걸린 격문은 단호하고 절박했다. 첫 목적지로 잡은 파평면 율곡습지공원에도 “주민들은 불안하다”고 호소하는 펼침막이 3개나 보였다. 폭풍전야였다. 풍선 띄울 만한 공터나 야산엔 경찰이 24시간 배치됐고, 임진각엔 순찰차가 계속 돌았다. 익어가는 청보리밭에서 사진 찍던 율곡공원의 50대 부부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고, 통일동산 앞 식당 주인은 “돼지열병과 코로나19로 고생하는 땅에서 웬 전단 소동이냐”고 역정을 냈다. 그래도 숨바꼭질은 진행 중이다. 지난달 31일 새벽 1시 김포 월곶마을에서 전단 풍선을 띄운 탈북단체들은 지난 8일 강화 석모도에서 쌀페트병을 바다로 보내려다 주민들에게 막힌 뒤 25일 전후로 전단 100만장을 보내겠다고 한 터다. 문산-파평-통일대교-임진각-탄현으로 이어 달린 파주 들판과 임진강엔 긴장이 서려 있었다. 주말엔 바람개비가 돌지 않았다. 탈북단체들이 바람 불길 원하는 24~26일엔 장맛비가 예보됐다. 하늘도 전단을 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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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생태전환교육 지난해 9월20일 지구에선 가장 큰 ‘기후파업’이 일어났다.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가 열린 미국 뉴욕시를 축으로, 160여개국 수천개 도시에서 450만명이 거리를 행진했다. “즉각 행동하라”는 함성은 어리고 젊었다. 탄소 배출이 없는 태양광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한 스웨덴 16세 소녀 툰베리는 “아무것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고 선언했고, “기후야 바뀌지 마, 내가 바뀔게”라며 시위를 이끈 것도 10대와 청년들이다. 행동이 굼뜬 각국 정상들보다 미래 기후위기 당사자들의 호소와 압박이 더 큰 반향을 이끌어냈다. -
여적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 깔딱고개를 오를 때다. 1941년 1월6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은 의회 연두교서에서 “우리가 다져나갈 미래는 네 가지의 본질적이고 인간적인 자유에 기초를 둔 세계”라며 언론(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역설했다. 30번이나 국민들과 노변정담(爐邊情談)을 한 루스벨트 생애에서도 손꼽히는 명연설이다. 세번째 궁핍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Want)는 빈곤층·실업자의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보듬자는 것이다. 그 말을 3일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초선들에게 옮겼다. 김 위원장은 “궁핍으로부터 자유를 찾아야 한다”며 “이 실질적인 자유를 당이 어떻게 구현할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대공황과 코로나19의 공명(共鳴)일까. 뉴딜(New Deal)도 그랬고, ‘루스벨트 소환’이 이어지고 있다. -
이기수 칼럼 ‘2단계 개헌’은 어떠십니까 나흘 전 사라진 20대 국회를 소환한다. 부질없이 네 살 더 먹은 ‘1987년 헌법’ 얘기를 짚고 싶어서다. 1만5002개 법안이 자동 폐기된 20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엔 마지막까지 2개의 헌법개정안도 올라 있었다. 하나는 2018년 야당이 불참해 투표불성립 처리된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이고, 또 하나는 지난 3월 여야 의원 148명이 발의한 뒤 본회의 상정이 무산된 국민발안제 원포인트 개헌안이다. 1987년 9차 개헌 후 국회에 처음 발의된 두 개헌안은 표결도 없이 생명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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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직업의 변천 한국의 직업은 1만6891개로 파악됐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8일 국내 일자리를 집대성해 발간한 ‘한국직업사전 5판’에 실린 숫자다. 1986년 첫 직업사전에 실린 1만600개보다는 6291개 늘었고, 2012년 4판이 나온 뒤로는 5236개 많아졌다. 34년간 늘어난 직업의 83%가 최근 8년간에 몰려 있음을 보여준다. 새로 등장한 직업은 8년 새 270개이고, 나머지는 ‘관련직업’이거나 기존에 있다가 새로 발굴된 직업들이다. -
여적 거짓 국민청원 20여년 전 인터넷도 포털도 없을 때다. “거기 신문사죠?” 편집국엔 밤마다 온갖 전화가 걸려 왔다. 주로 사회부·편집부 야근자가 받았다. 대통령 나이부터 도개걸윷모가 어떤 동물인지 묻고, 미 대선에서 공화당·민주당 중 어느 쪽이 더 많이 이겼는지 즉답하기 힘든 질문도 있었다. 깔깔 소리가 들리면 십중팔구 술자리 내기였다. 편집국엔 “사람 싸운다” “불났다”는 전화가 왔고, 하소연·제보나 격정 토로도 이어졌다. 신문사는 모든 걸 알고, 어떤 얘기도 듣고 대처해주는 곳으로 아는 사람이 많을 때였다. 방송사도 물론이다. 지금은 제보를 빼면, 신고는 112·119로, 지식은 포털 검색창으로, 하소연이나 격정은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옮겨졌다. 억울하고 놀랍고 화난 세상 얘기는 이제 국민청원에 모이고 말을 낳고 기사로도 만들어지는 세상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