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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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대통령다움, 그 무거움에 대하여 윤석열 정부 출범 다섯 달 뒤다. 2022년 10월, 홍준표 대구시장이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검사 곤조(근성)를 빼야 제대로 된 정치인이 된다.” DJ 저격수로 정치를 시작한 그도 그걸 빼는 데 국회의원 3선, 8년이 걸렸다고 했다. 상대 약점만 좇고, 물면 놓지 않고, 한번 당하면 잊지 않고 되갚아주고, 사과를 모르고, 선악으로만 보는 정치를 ‘검사의 곤조’라 했을 게다. 당시 법무장관 한동훈을 겨눴겠지 싶으나, 2년이 흘러 ‘검찰국가’와 ‘검사 대통령’을 반추해도 정곡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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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윤석열의 ‘난세’, 나라가 다 섰다 6·15와 6·25. 한반도 평화와 전쟁을 상징하는 두 날이다. 2000년 6월15일 남북 정상의 첫 회담이 열렸고,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터졌다. 북 탱크가 밀고 내려온 개성·철원·금강산 길은 50년 뒤 경협·관광·이산상봉 길이 되었다. 지금, 그 육로엔 지뢰가 재매설되고, 철도 침목이 뽑히고, 벽이 쳐지고 있다. 그 하늘로는 전단·오물 풍선·확성기 소리가 오간다. 핫라인 끊기고, 두 적대국이 험담하며, 9·19 군사합의는 파기됐다. 6월 한반도는 ‘정전(停戰)의 땅’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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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검찰 정권’의 균열이 시작됐다 전고후저(前高後低). 시청률도 이럴 게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보다 말았다는 이가 많다. 국정 방향은 옳다고, 그래도 특검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디올백 선물에 ‘박절하지 못한’ 아내는 ‘현명하지 못한’ 이로 바뀌었다. 달라진 게 없구나! 사람들은 TV를 껐다. “채 상병 사건 수사에 격노했느냐.” “이종섭 국방장관에게 전화했느냐.”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전언대로, 대통령에게 물어야 할 즉문즉답 두 개는 빠진 휑한 회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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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윤석열과 지는 벚꽃이 닮았다 표는 준엄했다. 108 대 192. 보수여당이 대참패했다. 1988년 ‘1노3김’이 겨룬 13대 총선 이래 여당 지역구 의석이 처음 두 자릿수(90석)로 쪼그라들고, 그 의석마저 셋 중 둘은 영남(59석)이었다. 2년 전 대선에서 이긴 한강·금강에서 완패하고, 낙동강과 서울 강남에서 명줄만 부여잡았다. 중대선거구제와 비례제 확대를 반대한 여당은 누굴 탓할 것도 없다. 윷 던지듯 한 소선거구 진검승부에서 ‘모 아닌 도’를 잡았다. 그 투표함이 까진 4월10일 밤, 한국 정치는 또 한 번 개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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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더 늦기 전, 이재명은 청룡언월도를 들라 총선 공기가 달라졌다. 설 전후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지지율(한국갤럽)이 ‘35 대 34’에서 ‘31 대 37’로 역전됐다. ‘김건희 디올백’ 파장은 끝난 건가. 여론조사 전문가 3명에게 물었다. 답이 재밌다. 그렇진 않을 거라고…. 설 전후엔 지역구 공천 여론조사·발표가 많았던 여당 표가 더 반응했을 수 있다고…. 여당의 ‘김무성 불출마·김성태 낙천 수락’ 뉴스와 민주당의 ‘친명·비명·친문 싸움’ 뉴스를 대비시킨 이도 있다. 선거 공학이든 몸부림이든, 셋의 총선 평은 모아졌다. 여당 상승세, 야당 내림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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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V2’의 디올백, 용산은 오늘도 잠 못 든다 엿새 전 새벽 2시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평 변호사의 페이스북 자작시에 ‘좋아요’를 눌렀다. 제목은 ‘슬픔의 의미’. “이제는 나의 때가 지나갔다고/ 헛헛한 발걸음 돌리니…”로 시작하는 시다. 대선 때 일찌감치 공개 지지해 ‘윤석열 멘토’로 불린 그는 얼마 전 “임금님놀이” “수직적 당정관계” “검찰정권”이라며 대통령을 직격했다. 왜 좋아요를 눌렀지? 시가 좋다는 건가? 세상을 멀리하겠단 말이 좋았나? 그러다 사람들의 눈이 다시 꽂힌 건 새벽 2시다. 대통령은 왜 깨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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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서울민국’, 그들만의 떴다방 정치 빛의 속도로, 대한민국과 한류는 압축성장했다. 반대로, 그 속도로 무너지는 게 있다. 46개월째 주는 ‘인구’, 브레이크 풀린 ‘기후위기’, 감사원이 100년 뒤 8개 시군구만 살아남는다고 경고한 ‘지역소멸’이다. 이 세 가지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고, 다 ‘서울공화국’과 맞닿아 있다. 그 수도 서울을 집권당이 다시 넓히자고 해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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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강서에서, 한국 정치가 리셋된다 설은 형 집에서, 추석은 우리 집에서 지낸 지 두 해 됐다. 친지들도 여럿 모인다. 그 추석상엔 금칙을 정했다. 정치 얘기 않기로…. 소주 떨어져 슈퍼 갔다 오는 길, 어느 집에선 대낮부터 정치 언쟁이 붙었다. 툭 웃음이 터졌다. 하나, 두더지게임 같은 게 정치다. 술 한 순배 돌 때마다 “그런데~” 하며 튀어나오고, “그만요~” 하며 덮는 두 이름이 있었다. 윤석열과 이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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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오른쪽 날개가 앞으로 가고 있는가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다.” 8월을 휘저은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다. 논객들의 글도 한 달째 그 말을 붙들고 있다. “국가 지향점을 이념”으로 잡은 첫 대통령이어서일 게다.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맹종·추종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틀 짓고, 그들이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반일 감정을 선동한다고 공격했다. 대통령이 곧 국가였고, 말끝은 야당·비판언론·진보적 시민사회를 겨눴다. 세상은 그날로 두 동강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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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윤석열의 ‘무책임장관제’ “지금부터 대한민국 중앙정부가….” 지난 4일 한덕수 국무총리의 잼버리 담화는 다급했다. 중앙·지방 정부를 갈라친 속은 바로 읽혔고, 그 자체로 유체이탈이었다. 일국의 장관 셋이 공동조직위원장, 총리가 정부지원위원장이다. 열달 전 국회에 “태풍·폭염 대책 다 세워놓았다”던 김현숙(여가부 장관), 개막 3일 전 새만금에서 “사고 없도록 최선의 준비해왔다”던 이상민(행안부 장관), 연관어 ‘청소년’을 빼면 존재감 희미했던 박보균(문체부 장관)은 다 허깨비였나. 그러곤 목도한대로다. 냉방버스가 투입됐고, 화장실 청소에 1400명이 가세했다. 새만금엔 긴급 예산 99억원이, 대원들 전국 분산에 또 수백억원이 쏘아졌다. 세수 펑크난 나라에서 무슨 일인가. 총리가 할 게 걸레질인가. 그래야 움직이는 나라가 됐나. 왜 처음부터 못했나. 이 처참한 블랙코미디에 물을 게 끝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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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2년째 물난리, 국가는 또 없었다 “세숫대야로 들이붓네.” 물난리 난 16일, 부여 고향 친지는 전화 너머로 “비가 무섭다”고 했다. 예부터 하늘 뚫린 큰비를 세숫대야로 비유했었다. 친지는 그땐 한나절이고, 지금은 온종일 퍼붓는다고 했다. 백마강 벌판의 논·축사·비닐하우스는 다 흙탕물에 잠겼다고 했다. 나흘간 600㎜ 쏟아졌다니 눈에 선하다. 부여 비는 많이 온 축이다. 아니어도, 이 장맛비는 셌다. 산사태가 노부부·납골당·이주노동자를 덮쳤다. 오송 지하차도에선 수몰 참사가 또 벌어졌다. 50명이 세상 뜨고, 시·군·구 110곳에 이재민 나고, 여기저기 인재라니, 수해 민심은 펄펄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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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정녕 이동관뿐인가 2015년 8월27일자 경향신문 1면엔 ‘하나고, 남학생 늘리려 입시 조작’이 단독 톱기사로 실렸다. 사회면 톱 제목엔 ‘하나고, MB정부 청와대 고위인사 아들 교내 폭력 은폐’가 달렸다. 서울시의회 하나고 행정사무조사에 참석한 이 학교 교사 전경원씨 증언과 인터뷰를 담은 것이다. 학폭 사건엔 피해자가 4~5명이란 진술서, 교사 2명이 학폭위 안 열리는 걸 문제 삼은 교직원회의, 이사장이 이 실세의 전화 받은 걸 실토한 게 적시됐다. 며칠 후, 언론계 선배 전화가 왔다. “여기 밥자리에 통화하고 싶어 하는 사람 있어 바꿔줄게.” 이 기사 데스크(부장)를 보던 때였다. “이동관입니다.” 사실관계와 입장을 되묻는 말이 사무적이고 딱딱했는지, 통화는 짧게 끝났다. “4년 전 일”이고, “학교에서 공식 대응할 거”라던 말이 기억난다. 이동관을 옥죄는 학폭 사건은 8년 전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