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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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좌동훈 우상민 정권 실세를 부르는 말이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와 김대중 정부 말기 박지원 비서실장, 윤석열 정부 한동훈 법무장관에게 ‘소(小)통령’이 붙었다. 대통령 복심이고, 여론 창구이고, 당대의 국정주도력이 큰 사람을 표현한 것일 게다. 왕(王)자도 곧잘 붙는다. 전두환 정부 철권통치를 이끈 장세동 전 안기부장, 노태우 정부 북방밀사로 움직인 박철언 전 정무1장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세상을 자주 논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왕의 남자’ 별칭을 얻었다. 박근혜 정부의 우병우 민정수석과 문재인 정부의 조국 민정수석은 ‘왕수석’으로, 이명박 정부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은 ‘왕차관’으로 불렸다. ‘만사형(兄)통’으로 칭한 이상득 전 의원과 이 전 대통령을 보좌한 박 전 차관은 지금도 ‘MB계 중심’ 소리를 듣는다. 실세의 힘은 직급·위치보다 대통령과의 거리·신임 정도로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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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어깨동무체 ‘원훈석’ 국가정보원이 원훈(院訓)을 바꾸려고 직원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한다. 6번째 원훈 교체다. 첫 원훈은 1961년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이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였다. 이 원훈은 1998년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뀌었다. 휘호를 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불행했던 안기부 역사의 표본이 바로 나”라며 다신 이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했다. 그 원훈은 2008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2016년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로, 창설 60주년인 지난해 6월 ‘국가와 국민을 위한 무한한 헌신’으로 고쳐졌다. 그러곤 꼭 1년 만에 국정원 내 원훈석 교체 움직임이 재연됐다. 가을을 알리는 오동잎처럼, 원훈석이 정권교체 시금석이나 전리품이 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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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대통령이 해선 안 될 말 “대통령직 못해먹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5월21일 청와대에서 5·18행사 추진위원들에게 한 말이다. 사흘 전 한총련 시위대가 광주에서 대통령 차량을 막아선 소란을 대신 사과하러 온 자리였다. “그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넘긴 노 전 대통령의 화두는 화물연대·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집단행동과 정부 인사안·법안이 꽉 막혀 있는 국회로 이어졌다. 그러곤 “전부 힘으로만 하려고 하니 이러다…”라며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격정을 쏟아냈다. 취임 석 달 만에 나온 이 넋두리는 앞뒤 맥락은 잘린 채 숱한 패러디·유머·칼럼의 소재가 됐다. 두고두고 회자된 대통령의 직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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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총선, 참 오묘한 위치에 있다 선거는 세상을 당겼다 놓는다. 활시위같이…. 세 숫자가 강렬했다. 뚝 떨어진 투표율 50.9%, 광역단체장 12 대 5, 김동연 경기지사의 0.15%포인트 차 역전극이다. 시간 순서가 주는 착시도 있을 게다. 경기도의 반전은 윤석열 정부를 긴장케 하고 거야의 새벽잠도 깨운 죽비(竹비)였다. 한 표 한 표가 모인 민심은 가차 없이 매섭고, 이번에도 오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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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대통령의 시야 그도 “우스갯소리”라고 했으니, 지금도 누구라고 말하긴 그렇다. 2001년 12월,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서 노무현 돌풍이 불기 전이다. 한 경선 주자가 안경 얘기를 꺼냈다. “(당시까지) 윤보선·최규하를 빼면 안경 쓴 대통령이 없었다”고. 모름지기 대통령은 시야가 넓고, 멀리 보고, 역사적 통찰력이 깊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하고픈 말은 대통령의 눈이 아니라 됨됨이였다. 안경을 빗댄 건 누가 봐도 엉뚱하고 억지스럽지만, 자칭 “개똥철학”엔 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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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대통령의 출근길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자택에서 용산 대통령실까지 출근했다. 서울성모병원 4거리와 반포대교를 거친 7㎞ 출근길이었다. 오전 8시22분 집을 떠난 대통령 차량 행렬은 2개 차선을 달려 8시30분 용산 미군기지 13번 게이트로 들어갔다. 집에서 집무실까지 13분 걸렸고, 도로는 8분간 달렸다. 경찰이 순차적으로 30초~1분씩 신호통제를 해 교차로·반포대교에선 차 운행이 지연됐으나, 이날 대기 줄이 아주 길진 않았다고 한다. 전날엔 윤 대통령이 국회 취임식장에서 집무실로 이동했다. 경무대·청와대 시절에는 볼 수 없었던 대한민국 대통령의 첫 출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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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이재명의 두 승부 보고 싶을 때까지 나타나지 마라. 비우고 더 채워라. 역사가 부르는 곳에서 시작해라. 오래전부터 정가에서, 때로 논객들이 대선 패장에게 권하는 금칙(禁飭)들이다. 일수무퇴일 첫 착점을 섣불리 작게 사사롭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2009년 탈당까지 해 전주 선거에 나섰다가 대선 꿈을 잃어버린 정동영과 1992년 정계은퇴 후 외유-아태재단 이사장-지방선거로 집권 디딤돌을 쌓은 DJ 사례가 곧잘 비교된다. 몇 달 만에 당대표로 복귀한 이회창·홍준표가 있었고, 4년간 ‘비주류 대주주’로 살다 비대위원장으로 부활한 박근혜가 있었다. 사람 따라 제각각인 이 논쟁은 이재명의 정치 복귀에서도 예외 없이 불거졌다. “지방선거를 끌어달라”는 지지자의 열망과 당의 호출이 있었지만, 대선 두 달 만의 빠른 컴백은 뜻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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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문재인의 귀향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6시 청와대를 걸어나왔다. 집무실에서 관저로 가던 퇴근길이 오늘은 바깥세상을 향했다. 국정의 짐을 내려놓은 마지막 날, 청와대 정문 앞에선 박수와 꽃다발이 그를 맞았다. 이것으로 5년 전 촛불혁명과 대선을 거쳐 인수위도 없이 시작한 ‘문재인 정부’는 마무리됐고, 세상은 여야가 바뀌었다. 문 대통령은 마지막 날 회견에서 “(새 정부가) 성공하는 대한민국 역사를 이어나가길” 기대했다. “저의 퇴임사는 위대한 국민께 바치는 헌사”라며 고마움도 표했다. 그리고 “나라다운 나라를 요구한 촛불광장 요구에 우리 정부가 얼마나 부응했는지 숙연한 마음”이라고 했다. 해외가 먼저 인정한 선진국 진입과 코로나19 방역이 공(功)이라면 부동산 가격 폭등은 명백한 과(過)이다. 한반도 평화와 권력기관 개혁은 평이 엇갈리고, 탄소중립과 지역균형발전은 이제 씨앗만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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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윤석열은 지금도 검찰주의자인가 시간은 사람마다 속도감이 다르다. 대선 후의 첫 주와 첫 달이 유독 그렇다. 뉴스도 보기 싫은 쪽은 한 달이 1년 같고, 이긴 쪽은 하루하루가 새롭고 마디지게 흐른다. 인지상정이다. 보수·진보 논객들의 글엔 걱정도 쌓인다.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치 세우고)로 부동산·물가·재정의 험로를 헤쳐갈 수 있을지, 왜 ‘늙은 내각’과 ‘닥치고 한·미동맹’으로만 가는지, 최저임금과 52시간제는 어찌 바뀔 건지…. 새 정부 출범까지 다시 한 달, 길찾기 부산한 세상엔 큰 불덩이도 하나 던져졌다. ‘검란(檢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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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ㄱㅂㅈㄱ(가보자고) 큰 선거, 대선(大選)이 끝났다. 1639만표 대 1615만표. 당선인 윤석열과 패자 이재명은 헌정사에서 13번의 직선제 대선을 완주한 92명 중에 득표 1·2위에 올랐다. 대선 득표차 24만표(0.73%)는 총선에서 240표와 비슷할 게다. 그렇게 길은 다시 꺾였다. 5년 만에 오른쪽으로…. 세상은 인수위와 비대위로 분주하다. 해질녘 저 멀리 언덕 너머 나타난 실루엣이 개인지 늑대인지 모르겠는 시간이다. “겨울이 오고 있다”는 이와 “봄을 기다린다”는 이가 갈린다. 대선은 저마다 다르게 맺히고 지나간다. 내게도 아린 것, 걱정스러운 것, 아쉬운 것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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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3·9 대선 신기록과 징크스 선거와 스포츠는 여러모로 닮았다. 전쟁과 바둑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온갖 기록과 징크스가 명멸한다. 표와 룰로 싸우는 게 다를 뿐, 승부가 쌓여 역사가 되는 것도 흡사하다. 20대 대선도 새 기록을 쏟아냈다. 윤석열 당선자는 1987년 직선제 도입 후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첫 ‘0선(選)’ 대통령이 됐다. 지난해 6월29일 정치 데뷔 후 불과 252일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는데, 이 역시 최단 시간이었다. 헌정사 처음으로 대선 승패가 1% 이내 소수점으로 갈렸고, 1·2위 간 득표율 차(0.73%포인트, 24만7077표)는 이전 최소인 1997년 김대중·이회창의 차이(1.53%포인트, 39만557표)보다 작다. 인구와 투표율 증가로 윤 당선자가 얻은 1639만여표(48.56%)는 대선 사상 최다 득표이고, 득표율은 박근혜(51.55%)·노무현(48.91%)·이명박(48.67%)에 이은 4위였다. 네거티브가 판친 대선에서 5년 전보다 3.4배 많은 431명의 선거사범이 허위사실 공표로 입건됐고, 윤 당선자는 부인과 따로 투표한 첫 대통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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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DJ정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3일 “저와 국민의힘이 이재명의 민주당보다 ‘김대중정신’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이 말은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 유세에서 꺼냈고, 보수정당 대선 후보로는 처음 찾았다는 하의도 생가에서도 재론했다. DJ와 이재명 후보 지지자의 틈을 벌리면서 호남으로 서진(西進)하고 싶다는 뜻이다. 논란은 작심한 것일까. ‘DJ정신을 이어받겠다’는 다짐을 넘어 ‘내가 더 가깝다’는 자평은 여야의 말싸움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