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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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손바닥 속 ‘王’자 2001년 7월이었다. “개띠 정치인이 누구 있지?” “왜요?” 고위 당직을 지낸 동교동계 의원은 “용한 사람이라고 해 가보니 ‘내년 대선 해엔 개띠가 좋다’ 한다”며 이인제(쥐띠), 한화갑·김중권(토끼띠), 이회창·김근태(돼지띠)도 다 아니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찾아보니 두 사람이 있었다. “노무현이 개띠던데요. 이한동도.” “에이 설마.” 마음속에 ‘이인제 대세론’을 품고 있던 그로서는 뜻밖이었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신년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이 1~2% 나왔으니, 2001년 여름의 노(老)정객의 머릿속에 그가 있을 턱이 없었다. -
여적 대선 ‘예능 정치’ 대선 주자들이 섭외가 들어오길 학수고대하는 TV 무대가 있다. 젊은층의 시청률이 높은 예능 토크쇼와 주부들이 많이 보는 아침 시사·교양 프로의 ‘초대손님’이 되는 것이다. 딱딱한 뉴스나 TV토론과 재미·웃음이 가미된 예능의 정치적 효능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인간미나 인생·가족사를 보여줄 수 있고, 무엇보다 ‘독상’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주목도가 높은 유력 주자만 설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
여적 5·18 5인방의 침묵 사람마다 5월 광주의 진실을 맞닥뜨린 때가 다를 것이다. 나는 대학 입학 후 맞은 첫 5월이었다. 사복경찰이 캠퍼스에 숨어 있던 36년 전 5월, 대형 강의실 외벽에 ‘광주학살 원흉 지도’가 붙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정점으로, 수십명의 신군부 지휘체계가 넓은 벽을 가득 메웠다. 올해 아흔이 된 전씨의 육사 동기들(11기)과 선배들, 5·18 당시 광주에 내려간 장세동(특전사 작전참모)·박준병(20사단장)씨, 전씨의 수족 ‘스리 허’(허삼수·허화평·허문도)는 그 위치까지 생생하다. 다음날 학생회관에서 5·18 동영상을 봤다. 중·고교에서 배우지 못하고, 언론에서 접하지 못한 5·18의 첫 기억은 지금도 그 대형지도와 동영상으로 남아 있다. -
이기수 칼럼 2002년 ‘광주 노무현’과 2021년 ‘충청 이재명’ 대선의 첫 투표함이 까졌다. 여론조사 면접원이 늘 응답자를 채우는 속도가 더뎌 고생하고, 선거 출구조사원에게 “될 사람 찍었겠쥬~”라며 속마음을 잘 안 비치고 지나간다는 충청도였다. 중원의 요충지이고, 지역 맹주도 없고, 당원들의 생각은 어떨지 몰라 더 주목했다. 그리고 모두 알 듯이 한쪽으로 기운 투표함이 열렸고, 그 숫자는 더불어민주당 경선의 추와 물줄기를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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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노란봉투의 꿈 옛 시골에서 우편배달부가 집에 노란봉투를 떨구면 바로 아버지에게 들고 갔다. 편지 담긴 흰봉투와 달리 노란봉투엔 행정·학교 고지서가 자주 담겼다. 색다르게 보낸 우편물이었다. 노란봉투는 1990년대 초까지 지폐·동전을 담아준 월급봉투였고, 해고통지서도 그 봉투로 보냈다. 은행 계좌가 낯설고 휴대폰 문자가 없던 1970~80년대 소설·시엔 노란봉투가 곧잘 등장한다. 삶의 애환과 희망이 그 노란 빛깔에 물들어 있을 때였다. -
이기수 칼럼 윤석열·이준석의 동상이몽, 한 달이 가른다 7월30일, 윤석열(전 검찰총장)이 가세하며 제1야당 대선은 급류로 바뀌었다. “줄을 서시오.” 1위 캠프는 가장 빠르게 몸집을 불렸고, 1위 대선 주자는 당이 부른 봉사활동·상견례에 연거푸 빠졌다. ‘윤파’ 정진석은 복심을 드러냈다. 돌고래와 고등어와 멸치는 생장(生長) 조건이 다르다고…. 큰 물고기를 당 행사에 가두지 말라고…. 이준석(대표)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돌고래 대접’을 바란 윤석열과 ‘어장 흥행’을 우선한 이준석의 동상이몽이 빚은 첫 불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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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윤석열을 보는 ‘거친 눈빛’과 ‘불안한 시선’ 대권은 4개의 관문(關門)을 넘어야 쥘 수 있다. 다자구도 여론조사로 보면, 5-10-20-30의 선이다. 5%는 대다수가 오르지 못하는 ‘마의 벽’이다. 두 자릿수 10%는 경쟁력을 인정받아 ‘중(中)’자가 붙고, 20%는 강자의 반열에 서는 분기점이다. 그 위로 30% 언저리에서 여야 유력주자의 대세론이 점화된다. 대선 지형이 요동친 7월, 윤석열은 그 길을 거꾸로 갔다. 보수 대선 주자들의 지지율 합도 여권에 멀찌감치 뒤처졌다. 야권의 ‘대장주’ 윤석열을 보는 시민들의 거친 눈빛과 지지층의 불안한 시선이 쌓인 결과다. 남 탓할 것 없이, 정치 데뷔 첫달에 그가 자초한 일이다. 설화(舌禍)는 세 각도에서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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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대사 부인 소환령 최고 외교관 직급인 대사는 한자로 ‘사(使)’자를 쓴다. 의사·목사에도 쓰는 스승 사(師), 판검사에 붙이는 일 사(事), 전문·기술직에 가장 널리 달리는 선비 사(士)와 달리 국가·국왕이 보낸 대리자·파견자의 뜻이 담겼다. 정식 명칭은 ‘특명전권대사’이다. 1961년 비엔나 협약에 따라 대사와 가족은 주재국 법률과 공권력을 적용받지 않는 면책특권이 주어진다. 배우자와 자녀까지도 민간 외교사절로 지낼 수 있게 보호막을 쳐준 것이다. 포털 검색창에 ‘대사’를 치면 며칠째 압도적으로 뜨는 말이 있다. ‘벨기에 대사 부인’이다. -
여적 충청대망론 여의도에서 연고(緣故)는 ‘현찰’로 부른다. 표를 구하는 정치에선 다다익선인 까닭이다. 일찍이 혈연 마케팅을 한 사람은 전주이(李)씨 양녕대군 16대손인 초대 대통령 ‘리승만’이다. 그는 성을 ‘리’로 하고, 영문명도 ‘Lee’가 아닌 ‘Rhee’를 썼다. 지역주의는 박정희가 TK에서 먼저 촉발했고, YS·DJ·JP가 확장시켰다. 그 위에 동문수학한 학연이 똬리를 틀고, 요즘엔 재경부·검찰같이 일터의 직연(職緣)도 회자된다. -
이기수 칼럼 대선, 역사 논쟁과 한방으로 시작하다 대선 ‘슈퍼위크’가 지나갔다. 여야의 ‘1강’ 이재명(경기지사)과 윤석열(전 검찰총장)이 공식 등판했고, 국민의힘 대선 리스트에 오른 최재형은 감사원장을 그만뒀다. 여당 경선은 그새 이광재가 빠져 ‘8룡’이 됐다. 보수야권 잠룡은 벌써 11명이다. 정의당을 더하면, 마지막에 서너 축으로 좁혀질 내년 3·9 대선의 첫 얼개가 짜인 것이다. 시소처럼 오르내리는 콜라·사이다의 점유율 다툼이 꼭 그렇다. 정권을 겨루는 단체전과 그 속에서의 개인전이 동시에 닻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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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마지막 의경 군사훈련소 마지막 날 체감하는 말이 있다. “군대는 줄이다.” 배치 부대나 보직(주특기)이 달라진 병사들은 연병장에 여러 줄로 세워진다. 저마다의 군 생활이 갈리는 순간이다. 그렇게 찾아간 자대에선 또 웃고 우는 일이 벌어진다. 선임병과의 거리는 멀수록, 후임병은 빨리 올수록 좋다. 서열 따라 맡는 일과 내무생활이 달라지는 까닭이다. 군 계급보다 ‘신참·중고참·고참·왕고’의 위치가 더 지배하는 게 병영생활이다. -
이기수 칼럼 ‘이준석’을 읽는 코드 넷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 그것도 일국의 지도자 반열에 섰다. 신문·방송·유튜브를 덮고 있는 ‘36세 젊치인’ 이준석의 이야기다. 멀리서 바람이 일 때부터 정치는 빨라지고 몸을 낮췄다. 여당 대표는 조국 사태를 재차 사과했고, ‘40년 지기’에게 농지법 위반 의혹을 털고 오라고 탈당을 권했다. 제1야당은 부동산 전수조사를 풀 길 없자 두 달 전 거부한 국민권익위에 막차로 손을 내밀었다. 깨고 반성하고 답하는, 파(破)·참(懺)·통(通)의 정치와 경쟁이 시작됐다. 이준석과 이준석 바람은 얼마간 동행하고, 그 어디쯤에서 이준석 정치와 이준석 현상은 갈라질 수도 있다. 내년 3·9 대선 변곡점으로, 그 훗날의 정치까지 흔들 메기로, 언젠가 대한민국이 맞닥뜨렸을 ‘이준석’이 지금 엄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