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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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도백 잠룡 한국 대선에서 ‘용들의 전쟁’은 1997년 시작됐다. 영입파(박찬종·이수성·이홍구·이회창), 민주계(김덕룡·이인제·최형우), 민정계(김윤환·이한동)가 할거한 ‘신한국당 9룡’의 쟁투였다. 김영삼 대통령을 배출한 보수에서 먼저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역동적인 경선을 한 것이다. 당사에서 선거를 치른 ‘3김(金)’ 시절과 달리 종로·마포·여의도에 당사 밖 대선캠프를 차린 것도 그때부터다. 9룡 대전의 승자는 이회창이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에게 져 미완의 레이스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을 낳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 국민참여경선도 7룡의 승부가 드라마틱했지만, 용들의 각축은 1997년 9룡이 원조였다. -
이기수 칼럼 다시 대선, “진짜 공정이 뭡니까” 두 달 전, 수습기자 논술시험 답지를 채점했다. 누가 썼는지는 가려진 글이다. 십중팔구는 선택 문항 중에 ‘공정’ 논제를 골랐다. 평창 올림픽 남북단일팀, 조국 일가의 아빠·엄마 찬스, 윤미향과 LH 특혜…. 여러 논술 소재가 등장했지만, 압도적인 예시는 ‘인국공’이었다. 1년 전 인천공항 보안검색요원 정규직 전환이 일으킨 갑론을박은 여전했다. 그때도 취업준비생은 ‘공채 숫자가 영향 받을지’ 따지고, 공항 정규직은 ‘직고용’을 막고, 비정규직은 ‘희망사다리를 끊지 말라’고 맞선 논쟁적 사안이었다. 한 답지가 흥미로웠다. 공정(公正)과 공평(公平)을 떼서 보자고 했다. 제한된 경쟁 플랫폼 위에 올라선 사람들은 ‘공정의 잣대’로, 그 플랫폼 밖에 사는 대다수 청년들은 ‘공평의 눈’으로 살피자고 했다. 쉽잖겠지만 세상은 그렇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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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확장하는 ‘들불상’ 유신 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78년 7월23일, 광주 광천동성당에서 노동야학 ‘들불’이 시작됐다. 교사는 ‘강학(講學)’으로, 또 노동자는 ‘학강(學講)’이라 불렀다. 가르침과 배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지향한 것이다. 그러나 1980년 5월의 광주는 들불 야학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그와 영혼결혼식을 올린 야학 창시자 박기순, 손글씨로 9번의 ‘투사회보’를 찍어낸 박용준, 단식투쟁하다 옥사한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빈민·학생·문화운동가 김영철·신영일·박효선…. 항쟁에 뛰어든 야학 활동가들은 그 5월에 생을 마치거나, 고문 후 투병 생활과 사회운동을 이어가다 세상을 떴다. 향년 25~50세. 야학도 항쟁 다음해에 문을 닫았다. 그 7인을 기린 들불열사기념사업회가 2004년 설립되고, 2006년 민주·인권·평등·평화 기여자에게 주는 ‘들불상’이 제정됐다. -
이기수 칼럼 탄핵의 강과 조국의 강 선거는 세상을 들었다 놓는다. 그때마다 정치는 착해진다. 잘못했다고, 달라지겠다고, 기회를 달라고…. 서울·부산에서 맞부딪친 4·7 보궐선거도 그랬다. 여당은 노여움을 풀어달라며 읍소했고, 야당도 우리가 잘했다는 게 아니라며 표를 구했다. 집권세력의 부동산 무능과 위선이 철퇴를 맞은 지 한 달, 민심은 다시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표를 오독(誤讀)하냐고, ‘누가 누가 더 못하나’ 경쟁하냐고…. 진 쪽도 이긴 쪽도 다 정신 못 차렸다고 보는 것이다. 매섭기로는 4·7 선거 보름 후의 여론조사(NBS 전국지표조사)도 다르지 않다. 여당과 제1야당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답이 모두 60%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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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70대 알바’ 노조 한국에서 70대는 해방 전후나 한국전쟁 중에 태어났다. 65세 노인에 갓 접어든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바로 앞세대이고, 2차 베이비부머(1968~1974년생)의 부모 세대다. 대다수는 농촌에서 보릿고개를 겪고, 도시에선 저임금 노동자와 수출 역군으로 일했다. 배움은 기회조차 없거나 짧고, 배곯으면서도 자녀들은 공부시킨 현대사의 ‘고생 세대’였다. -
이기수 칼럼 대선 리셋, ‘선거 공식’이 깨졌다 방송사 출구조사가 주는 ‘시각적 쇼크’가 있다. 4월7일도 그랬다. 60초 카운트다운 후 뜬 표차는 역대급이고, 야당 압승의 여론조사 흐름 그대로였다. ‘샤이 진보’는 없거나 투표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을 찍다 처음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는 지인(56)도 딱 그 경우였다. 선거 공식도 다 깨졌다. 보수야당이 처음으로 서울 25개 구를 독식했고,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후 10년째 민주당을 민 20~40대의 진보·중도 연합도 무너졌다. 여야를 놀래키고 발버둥치게 한 선거의 승자는 늘 그렇듯 국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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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기억 앞에 겸손’ 기억력 비상한 사람이 유독 많은 곳이 정계다. 사람의 특징이나 대화 내용을 명함에 적어 놓는 정치인도 곧잘 본다. 사람 만나는 게 일이자 경쟁력이고, 깜박 실수하기 좋은 것도 사람인 까닭이다. 그쪽으로 인상 깊은 사람이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다. 10여년 전 그는 1970년대 서강대 교수 시절 박정희 정부 차관·국무회의에서 재형저축·의료보험 제도를 브리핑한 일이나 정객들과 만난 일화를 떠올리며 30년도 지난 연월일시를 줄줄 꿰었다. 자서전에도 다 쓰지 않은 머릿속 숫자들이다. 민주당 쪽에선 권노갑·김상현 전 고문의 기억력이 군계일학이었다. -
이기수 칼럼 LH와의 전쟁, 진흙에서 연꽃이 필 수 있다 ‘전쟁’이라 한 것만 벌써 세 번째다. 1989년 1기 신도시 발표 후 8개월 만에, 2003년 2기 신도시 지정 후 2년 뒤에 합동수사본부가 차려졌다. 2018년부터 3기 신도시를 선보인 문재인 정부도 2021년 2월 광명·시흥지구 추가 공표 후 한 달 만에 합동수사본부를 출범시켰다. 1기 땐 토지공개념 3법, 2기 땐 종합부동산세가 뒤따랐다. 신도시는 언제나 ‘전격’ 공개됐지만, 삼세판 모두 투기 광풍이 일고 수사→단죄→제도개혁의 뒤틀이 짜인 것이다. 약방의 감초처럼 공무원들이 투기·유착으로 수십·수백명씩 구속된 흑역사도 반복됐다. 소 잃고 난리쳐도 그때뿐이니, 외양간은 뚫린 데서 또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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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도처에 ‘상왕’ 살아서 왕좌를 내주고 물러난 임금을 ‘상왕(上王)’이라 부른다. 한국에선 옥저를 정복한 고구려 6대 태조와 통일신라 진성여왕이 첫 남녀 기록자이다. 이 말이 대중화된 것은 KBS 사극 <용의 눈물>(1996~1998)에서다. 태조 이성계는 정종의 상왕이다가 태종의 태상왕이 됐고, 극의 주인공 태종은 세종의 상왕으로도 4년 더 머물렀다. “모든 악업은 내가 지고 갑니다. 저의 죄를 탓하시고….” 태종이 곡기를 끊은 채 비를 내려달라며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마지막 대사는 지금도 곧잘 회자된다. 상왕이란 말에 실권을 넘긴 후견인부터 막후실력자·옥상옥·권력암투까지 여러 이미지가 중첩된 데는 피 묻은 조선 개국사를 159부작으로 풀어낸 이 사극의 영향도 컸다. -
이기수 칼럼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요 근래 부쩍 듣는 말이 있다. 여야 정객을 만나도, 지인들과의 밥자리에서도 오가는 얘기다. “대통령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정가의 뒷얘기를 곧잘 풀어주던 친문 원로도 도통 모르겠단다. 아는 거 없냐고 여기저기서 물어온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짧고 모호한 말’과 ‘침묵’이 낳은 풍경이다. 설 직후에 터진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표 파동은 철회도 반려도 없이 3월을 맞았다.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에 나와 “나는 사표를 수리하면 안 된다고 건의했고, 아마 수리가 될 수도 있다”며 “(후임자 물색은) 설혹 하고 있더라도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알쏭달쏭 무슨 말인지…. 어차피 거취를 일임받고 아무 말이 없는 ‘대통령의 시간’임을 알린 것이다. 사태의 얼개는 나왔다. 인사안 보고부터 승인·발표·전자결재·발령까지 ‘통상절차’는 밟았다 하고, 박범계 법무장관이 조율 중인 인사안을 밀어붙이자 신 수석이 직을 던졌다는 게 골격이다. 사달은 신 수석이 윤석열 검찰총장 요구도 담은 인사를 중재하다 막판에 터진 걸로 짐작된다. 사표 내고 날린 “저의 동력을 상실했다”는 문자가 그것일 테다. 모종의 구상이나 역할이나 언약이 흔들렸을 때 하는 말이다. 그것이 뭘까. 법무장관의 인사안도, 민정수석의 중재도 어디까지가 대통령의 생각인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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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대통령의 조문 대통령이 망자에게 갖추는 예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곧잘 보는 것이 ‘대통령 ○○○’라고 쓴 조화이다. 대통령은 국무총리나 비서실장·수석비서관·장관을 국내외에 보내 조전이나 조의를 전하고, 훈장을 추서하기도 한다. 직접 빈소를 찾는 일은 역대 대통령마다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그 흔치 않음은 각별함의 동의어일 수 있다. -
이기수 칼럼 설 상에 오르는 ‘시즌2’ 대선 설이 코앞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1박 이상 고향을 찾을’ 사람은 12%, ‘따로 사는 가족·친척을 만나겠다’는 사람은 33%로 나왔다. 귀성은 넉달 전 추석 기록(16%)도 다시 깼다. 옛 시구를 빗대면, ‘설래불사(來不似)설’이다. 가족·친구끼리도 시차를 두며 둘·셋·넷이 만나자는 설이다. 그 밥상·술상 얘깃거리로 코로나19를 앞설 게 없다. 그리고 늘 그렇듯 꽤 많은 자리에서 설 대화에 정치가 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