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찬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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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100년 전 ‘아Q’가 중국에 조언하는 ‘정신승리법’ ▲ 아Q 생명의 여섯 순간…왕후이 지음·김영문 옮김 | 너머북스 | 264쪽 | 1만6000원 중국 신좌파 대표주자 왕후이는 2013년 출간한 <아Q 생명의 여섯 순간>에서 여전히 루쉰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Q정전>은 중국적 전통에 대한 풍자이며 반봉건, 혁명, 저항을 역설하는 소설로 평가된다. 왕후이의 견해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아Q정전>을 꼼꼼히 읽어주면서 이런 주제의식을 다시 확인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다. 그가 <아Q정전>에서 주목하는 것은 루쉰 특유의 ‘절망을 이기는 법’이다. 그는 이를 ‘정신승리법’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도덕혁명과 생명주의로 집약된다. 도덕혁명이란 육체를 초월하는 정신적 자각이고, 생명주의는 루쉰식 저항의식이다. 루쉰은 한 개인이 진정으로 생존하려면 “용감하게 싸우면서 이 저주스러운 곳에서 저주스러운 시대를 물리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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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1000년간의 ‘무역전쟁’… 정치가 무역을 결정했다 ▲ 권력과 부…로널드 핀들레이 외 지음·하임수 옮김 | 에코리브르 | 894쪽 | 4만2000원 “결국 정치가 무역을 결정했다.” 경제학자인 저자들이 1000년 이후 지금까지 세계 무역의 양상과 구조를 분석하며 도출한 결론이다. 베네치아가 무역을 통해 성장하는 데도 정치가 크게 작용했다. 베네치아는 십자군 원정이라는 정치 상황 덕을 톡톡히 봤다. 소금 생산이 주 수입원이었던 베네치아는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자 범선, 갤리선 등을 만들어 십자군에 공급했다. 또 베네치아는 십자군에 충당할 노예가 거래되는 장소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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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뉴턴! 주화 위조범 좀 잡아주게” ▲ 뉴턴과 화폐위조범…토머스 레벤슨 지음·박유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420쪽 | 1만8000원 1690년대 영국에서는 주화 위조가 기승을 부렸다. 통화체계를 위협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다. 골머리 앓던 영국 재무부는 해결사가 필요했다. 재무부는 당대 최고 석학 아이작 뉴턴에게 조폐국 감시관 직책을 제안했다. 뉴턴은 뜻밖에도 이 제안을 수락했다. 천재 과학자가 케임브리지대학 강단을 떠나 관료가 된 것이다. 당시 영국은 두 종류의 주화를 유통시켰다. 하나는 수작업으로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계로 찍어낸 것이다. 이로 인해 주화의 무게는 천차만별이었고, 변조해도 쉬이 판별하기 어려웠다. 주화 10개 중 1개는 위조품이었다. 또 주화를 녹여 은괴 상태로 해외에 팔면 동전의 액면 가치보다 훨씬 높은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프랑스, 네덜란드 등으로 은괴를 내다 팔고 금을 들여오는 밀수사업이 번창했다. 위조화폐 유통과 은 유출로 영국 통화체계는 엉망진창됐다. 화폐 위조범과 밀수범은 교수형, 화형에 처해졌는데, 그럼에도 화폐 범죄는 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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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재일조선인 청년의 꽉 막힌 삶을 열어 준 시와 시인들 ▲ 시의 힘…서경식 지음·서은혜 옮김 | 현암사 | 296쪽 | 1만4000원 재일조선인 서경식은 소년기와 청년기 자신의 삶을 ‘폐색’이라고 규정한다. 폐색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닫혀서 막힌 상태’라는 뜻과 함께 ‘겨울에 천지가 얼어붙어 생기가 막힘’이라는 의미도 나온다. 3등 시민으로, 경계인으로 살아야만 했고, 두 형은 한국 유학 중 간첩으로 몰려 10여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으니 저자의 삶은 절망 투성이였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준 것이 바로 시다. 그는 어릴적부터 이상화, 윤동주, 한용운을 알게 되고 김지하, 김수영, 정희성, 양성우, 박노해 등과 만났다. 이들의 시에서 고난의 역사를 이겨내려는 의지를 읽으며 힘을 얻었다. 폐색 짙은 삶에 작지만 강렬한 햇살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고교생 때 한국을 처음 방문한 뒤 시를 쓰고 스스로 시집을 엮었다. 책에는 이 시들이 처음 소개돼 있다. 서경식의 첫 문학 산문집인 이 책에서는 한국 시인을 비롯, 그에게 영향을 끼친 중국과 일본 작가들이 다수 언급된다. 이 가운데 그가 가장 감응한 작가는 루쉰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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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파우스트·오셀로, 테러리스트와 대테러작전… 악은 그냥 악… 이유를 묻지 마라 ▲ 악…테리 이글턴 지음·오수원 옮김 | 이매진 | 222쪽 | 1만2000원 영화 <엑소시스트>에는 악령에 홀린 소녀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소녀 속의 악마는 소녀 존재의 본질일까, 아니면 낯선 침입자일까. 달리 말해, 악마적 힘은 소녀의 정체성에서 비롯한 것인가, 아니면 소녀는 악마적 힘에 굴복한 꼭두각시일 뿐인가. 악의 본성 탐구에 들어가며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이다.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 소녀에게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대입할 수도 있고, 홀로코스트를 지휘한 아돌프 아이히만을 대입해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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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목회자가 인문학으로 재해석한 ‘에덴 동산’ 책의 머리말부터 심상찮다. “신앙이 이성을 윽박지르던 시대가 지나고 있다.” 또 “아담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라고도 한다. 저자는 목회자이자 신학자이다. 그는 에덴 동산, 아담과 이브에 대한 기독교적 주석을 도마에 올린다. 흔히 에덴 이야기는 인간 타락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된다. 원죄론과 구원론은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고대 유대인들은 성애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로 풀이한다. 풍요·기쁨은 미래 낙원의 모습이다. 고대 유대 문화에서 에덴 이야기는 과거사가 아니라 거룩한 미래의 열망, 즉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날을 은유한 것으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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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도 어떻게 거짓 자백을 하게 될까 ▲ 전락자백…우치다 히로후미 외 지음·김인회 외 옮김 | 뿌리와이파리 | 342쪽 | 1만8000원 무고한 시민이 한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는 임의동행 형식으로 경찰서로 끌려오고, 취조실에 감금되다시피 한 채 수사관과 마주한다. 용의자는 알리바이가 없지만 범행을 완강히 부인한다. 울부짖으며 바깥과의 접촉을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고문은 없지만 위압적이고 때로는 온화한 취조가 이어진다. 계속 부인하면 더 심한 처벌을 받을 거라는 협박도 듣게 된다. 장기간 외부와 격리된 취조실에서 용의자는 정신적 굴욕감을 느끼고 서서히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한다. 자기통제감을 잃게 된 용의자는 끝내 “그래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죄송’이라는 단어는 곧 범행 자백으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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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점령하라’ ‘아랍의 봄’… 도시적 모순 시대서 분출된 새로운 저항 ▲ 마주침의 정치…앤디 메리필드 지음·김병화 옮김 | 이후 | 364쪽 | 1만9000원 저자는 우리가 사는 공간을 아시모프의 공상과학소설 속 행성 도시에 비유한다. 행성 도시는 먼 미래에 외계 행성에 세운 도시로 수백억명이 질서정연하게 거주한다. 그 도시에는 계급의식을 낳는 노동의 세계가 없다. 거주자는 언제 어디든 옮겨다닐 수 있지만 서로 파편화돼 있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는 행성 도시를 닮았다. 우리는 이제 산업적 모순 시대를 지나 도시적 모순 속에 살고 있다. 저자는 도시의 폭발적 성장은 불균등한 발전과 시민의 파편화를 낳았는데, 도시가 커질수록 시민성, 사회성은 허물어진다고 진단한다. 또한 자본의 국경이 없어진 시대에 고정된 노동의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어 도시로 이주하지만 이제 그곳에 일자리는 없다.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를 못 찾는 젊은 세대. 이들은 파편화돼 흩어진 채 살아간다. 서로 스쳐지나갈 뿐 ‘마주침’을 상실한 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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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전설 속 공룡을 찾아 나선 괴짜 탐험가 ▲ 야생의 심장 콩고로 가는 길 1·2레드몬드 오한론 지음·이재희 옮김 |바다출판사 | 488쪽·504쪽 | 각 1만4800원 지은이 오한론은 영국 작가이자 탐험가이다. 1989년 42세의 오한론은 아프리카 콩고 밀림 속으로 들어간다. 밀림 속 직경 5㎞가량의 텔레 호수에 산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공룡 모켈레음벰베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다. 콩고 생물학자의 목격담에 따르면 모켈레음벰베는 작은 머리에 목이 길쭉한 공룡 브라키오사우르스를 닮았다. 머리에서 등까지 길이가 5m 남짓인데, 피그미족 사이에서 많은 목격담과 함께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동물이다. 모켈레음벰베는 겁 모르고 낙천적인 괴짜 탐험가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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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고려는 단일민족 아닌 다민족 사회… 중국·발해·여진 등 귀화인 8%, 역사에 기록된 고위직도 10명 ▲ 고려사의 재발견…박종기 지음 | 휴머니스트 | 432쪽 | 2만3000원 한국사 교육의 큰 줄기 가운데 하나가 단일민족론이다. 적어도 제도권 교육에서는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한반도 거주자의 역사가 하나의 혈통과 문화로 면면하다는 사관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그런데 과연 순수한 문화라는 게 가능할까. 민족이란 게 상상의 공동체라는 분석도 있듯 수천년 단일 민족의 역사란 것도 책 속에 존재하는 것일 수 있다. 저자는 고려사도 단일민족론의 연장선 위에서 읽혀져 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고려는 다민족·다문화 사회였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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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종말, 이주, 영혼의 무덤, 친구, 잠, 암흑… 죽음이란 무엇인가? ▲ 죽음에 관한 철학적 고찰…구인회 지음 | 한길사 | 321쪽 | 1만8000원 죽음을 둘러싼 사유에 관한 한 몽테뉴만큼 많이 언급되는 철학자는 드물다. 젊은 시절 몽테뉴는 유달리 죽음에 대한 사유에 집착했다. 집착이 너무 지나쳐 불안으로 이어졌다. 죽음은 두렵고 나쁜 일로 인식됐다. 그러던 중 그는 낙마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다 간신히 깨어난다. 낙마 사고는 죽음에 대한 몽테뉴의 인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다. 죽음이 삶의 한 부분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진다. 일찍이 플라톤도 몽테뉴와 비슷한 사생관을 피력했다. 그는 죽음을 종결·상실로 파악하지 않고, 삶이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이주로 여겼다. 그는 죽음에서 희망적인 가치를 발견하려 했다. 플라톤 사상을 마중물로 하는 철학자들은 죽음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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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정치인들은 어떻게 기업을 갈취해 자기 주머니를 채울까 ▲ 정치는 어떻게 속이는가…피터 스와이저 지음·이숙현 옮김 | 글항아리 | 283쪽 | 1만5000원 폭력이 동반되지 않는 범죄에서 뇌물과 갈취의 차이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로 답할 수 있겠지만 돈 거래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당사자가 어느 쪽인가로 구분할 수도 있다. 뇌물은 주는 쪽이 거래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반면, 갈취는 받는 쪽에 주도권이 있다. 그렇다면 기업인과 정치인 사이에 벌어지는 돈 거래는 어떤 경우일까. 우리는 통상 뇌물이라고 답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갈취에 해당한다. 당하는 쪽은 뇌물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갈취’가 원제인 이 책은 미국 정치인들이 기업과 같은 이익집단을 상대로 어떻게 돈을 뜯어내는지 명쾌하게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