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찬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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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낭인 기쿠치, ‘칼’로 명성황후 죽이고 ‘펜’으로 식민사관 심어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10월8일 새벽, 기쿠치 겐조(1870~1953)는 흥선대원군이 탄 가마를 호위하며 일본 낭인 수십명과 함께 경복궁으로 들이닥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쿠치 일행은 명성황후를 찾아내 살해했다. 이른바 을미사변이다. 기쿠치는 일본 구마모토 출신 낭인이다. 낭인이란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사쓰마번·조슈번 출신이 아닌, 그래서 관료가 되지 못한 무사를 일컫는다. 일본 무사계층은 조선시대 사대부에 준한다. 이들은 막부체제를 떠받친 식자층이었다. 1만엔짜리 지폐 속 인물 후쿠자와 유키치도 무사 출신이었는데, 기쿠치 또한 상급 학교를 나온 지식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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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옛글을 통해 일그러진 한국을 본다 과거를 거울로 삼아 오늘을 철저히 따져보고 궁리하기. 조선시대 문헌을 공부하는 지은이가 밝힌 이 책의 의미다. 60개의 짧은 글들은 하나하나가 표창이다. 60개의 표창이 겨눈 곳은 일그러진 한국 사회다. 잡문이라지만 날이 섰다. 21세기 한국은 조선시대보다 나아졌나. 불평등, 학벌주의, 생명경시, 부정부패, 공동체적 삶의 와해. 지은이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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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오래된 현재’ 베트남전쟁의 후유증은 치유됐을까 ▲ 베트남전쟁의 한국 사회사 윤충로 지음 |푸른역사 | 402쪽 | 2만5000원 가난이 싫어 베트남전쟁에 자원한 어떤 군인은 “베트남보다 한국이 지옥”이라고 믿으며 전쟁을 충실히 수행했다. 모범 파월 군인이었던 그는 귀국 후에도 베트남 향수를 떨치지 못했다. 그래서 참전 군인단체를 결성하고, 군복을 일상복처럼 입고 다니며 옛 전우들과 어울리며 자주 술을 마셨다. 자연스레 가족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결국 이혼했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베트남으로 달려갔다. “여기 와 가지고 그 당시에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꿈, 꿈, 꿈속을 헤매는 그런 기분으로 만날 살았어요.” 그는 베트남에서 재혼했고, 전쟁터를 찾아다니는 것을 낙으로 삼고 전쟁 관련 물품을 모으는 취미를 즐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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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100년 전 ‘아Q’가 중국에 조언하는 ‘정신승리법’ ▲ 아Q 생명의 여섯 순간…왕후이 지음·김영문 옮김 | 너머북스 | 264쪽 | 1만6000원 중국 신좌파 대표주자 왕후이는 2013년 출간한 <아Q 생명의 여섯 순간>에서 여전히 루쉰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Q정전>은 중국적 전통에 대한 풍자이며 반봉건, 혁명, 저항을 역설하는 소설로 평가된다. 왕후이의 견해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아Q정전>을 꼼꼼히 읽어주면서 이런 주제의식을 다시 확인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다. 그가 <아Q정전>에서 주목하는 것은 루쉰 특유의 ‘절망을 이기는 법’이다. 그는 이를 ‘정신승리법’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도덕혁명과 생명주의로 집약된다. 도덕혁명이란 육체를 초월하는 정신적 자각이고, 생명주의는 루쉰식 저항의식이다. 루쉰은 한 개인이 진정으로 생존하려면 “용감하게 싸우면서 이 저주스러운 곳에서 저주스러운 시대를 물리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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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1000년간의 ‘무역전쟁’… 정치가 무역을 결정했다 ▲ 권력과 부…로널드 핀들레이 외 지음·하임수 옮김 | 에코리브르 | 894쪽 | 4만2000원 “결국 정치가 무역을 결정했다.” 경제학자인 저자들이 1000년 이후 지금까지 세계 무역의 양상과 구조를 분석하며 도출한 결론이다. 베네치아가 무역을 통해 성장하는 데도 정치가 크게 작용했다. 베네치아는 십자군 원정이라는 정치 상황 덕을 톡톡히 봤다. 소금 생산이 주 수입원이었던 베네치아는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자 범선, 갤리선 등을 만들어 십자군에 공급했다. 또 베네치아는 십자군에 충당할 노예가 거래되는 장소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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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뉴턴! 주화 위조범 좀 잡아주게” ▲ 뉴턴과 화폐위조범…토머스 레벤슨 지음·박유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420쪽 | 1만8000원 1690년대 영국에서는 주화 위조가 기승을 부렸다. 통화체계를 위협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다. 골머리 앓던 영국 재무부는 해결사가 필요했다. 재무부는 당대 최고 석학 아이작 뉴턴에게 조폐국 감시관 직책을 제안했다. 뉴턴은 뜻밖에도 이 제안을 수락했다. 천재 과학자가 케임브리지대학 강단을 떠나 관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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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재일조선인 청년의 꽉 막힌 삶을 열어 준 시와 시인들 ▲ 시의 힘…서경식 지음·서은혜 옮김 | 현암사 | 296쪽 | 1만4000원 재일조선인 서경식은 소년기와 청년기 자신의 삶을 ‘폐색’이라고 규정한다. 폐색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닫혀서 막힌 상태’라는 뜻과 함께 ‘겨울에 천지가 얼어붙어 생기가 막힘’이라는 의미도 나온다. 3등 시민으로, 경계인으로 살아야만 했고, 두 형은 한국 유학 중 간첩으로 몰려 10여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으니 저자의 삶은 절망 투성이였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준 것이 바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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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파우스트·오셀로, 테러리스트와 대테러작전… 악은 그냥 악… 이유를 묻지 마라 ▲ 악…테리 이글턴 지음·오수원 옮김 | 이매진 | 222쪽 | 1만2000원 영화 <엑소시스트>에는 악령에 홀린 소녀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소녀 속의 악마는 소녀 존재의 본질일까, 아니면 낯선 침입자일까. 달리 말해, 악마적 힘은 소녀의 정체성에서 비롯한 것인가, 아니면 소녀는 악마적 힘에 굴복한 꼭두각시일 뿐인가. 악의 본성 탐구에 들어가며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이다.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 소녀에게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대입할 수도 있고, 홀로코스트를 지휘한 아돌프 아이히만을 대입해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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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목회자가 인문학으로 재해석한 ‘에덴 동산’ 책의 머리말부터 심상찮다. “신앙이 이성을 윽박지르던 시대가 지나고 있다.” 또 “아담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라고도 한다. 저자는 목회자이자 신학자이다. 그는 에덴 동산, 아담과 이브에 대한 기독교적 주석을 도마에 올린다. 흔히 에덴 이야기는 인간 타락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된다. 원죄론과 구원론은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고대 유대인들은 성애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로 풀이한다. 풍요·기쁨은 미래 낙원의 모습이다. 고대 유대 문화에서 에덴 이야기는 과거사가 아니라 거룩한 미래의 열망, 즉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날을 은유한 것으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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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도 어떻게 거짓 자백을 하게 될까 ▲ 전락자백…우치다 히로후미 외 지음·김인회 외 옮김 | 뿌리와이파리 | 342쪽 | 1만8000원 무고한 시민이 한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는 임의동행 형식으로 경찰서로 끌려오고, 취조실에 감금되다시피 한 채 수사관과 마주한다. 용의자는 알리바이가 없지만 범행을 완강히 부인한다. 울부짖으며 바깥과의 접촉을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고문은 없지만 위압적이고 때로는 온화한 취조가 이어진다. 계속 부인하면 더 심한 처벌을 받을 거라는 협박도 듣게 된다. 장기간 외부와 격리된 취조실에서 용의자는 정신적 굴욕감을 느끼고 서서히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한다. 자기통제감을 잃게 된 용의자는 끝내 “그래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죄송’이라는 단어는 곧 범행 자백으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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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점령하라’ ‘아랍의 봄’… 도시적 모순 시대서 분출된 새로운 저항 ▲ 마주침의 정치…앤디 메리필드 지음·김병화 옮김 | 이후 | 364쪽 | 1만9000원 저자는 우리가 사는 공간을 아시모프의 공상과학소설 속 행성 도시에 비유한다. 행성 도시는 먼 미래에 외계 행성에 세운 도시로 수백억명이 질서정연하게 거주한다. 그 도시에는 계급의식을 낳는 노동의 세계가 없다. 거주자는 언제 어디든 옮겨다닐 수 있지만 서로 파편화돼 있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는 행성 도시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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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전설 속 공룡을 찾아 나선 괴짜 탐험가 ▲ 야생의 심장 콩고로 가는 길 1·2레드몬드 오한론 지음·이재희 옮김 |바다출판사 | 488쪽·504쪽 | 각 1만4800원 지은이 오한론은 영국 작가이자 탐험가이다. 1989년 42세의 오한론은 아프리카 콩고 밀림 속으로 들어간다. 밀림 속 직경 5㎞가량의 텔레 호수에 산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공룡 모켈레음벰베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다. 콩고 생물학자의 목격담에 따르면 모켈레음벰베는 작은 머리에 목이 길쭉한 공룡 브라키오사우르스를 닮았다. 머리에서 등까지 길이가 5m 남짓인데, 피그미족 사이에서 많은 목격담과 함께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동물이다. 모켈레음벰베는 겁 모르고 낙천적인 괴짜 탐험가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