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찬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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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몸이 아니라 생각이 장애였다” ▲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해릴린 루소 지음·허형은 옮김 |책세상 | 371쪽 | 1만5000원 저자는 미국에서 꽤 알려진 장애인 인권 여성운동가이자 심리치료사 겸 화가다.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를 앓은 그는 타인이 보내는 불편한 시선을 신경쓰지 않은 지 오래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뒤틀린 모습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초로에 접어든 나이지만 장애를 완전히 넘어서진 못했다고도 고백한다. 자존심 강하고 총명한 그는 어릴 적부터 ‘내게 장애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며 정상인인 척하며 살았다. 그래서 그는 남들이 “뭐가 잘못 된 거니”라고 묻거나 “대단하구나”라며 응원하는 말이 가장 싫었다. 그는 다른 장애도 아니고 뇌성마비여서 더 악착같이 부인했던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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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전사 곧 남자다움”… 국가, 죽음을 신화·국유화하다 ▲ 전사자 숭배…조지 모스 지음·오윤성 옮김 | 문학동네 | 311쪽 |2만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행위를 가리켜 ‘산화(散花)했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산화라는 말에서 숭고한 희생을 발굴하고 대중적 언어로 정착시킨 장본인은 제국 일본이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때 전장에서 스러진 병사들을 기리고, 입대를 독려하면서 이 말을 즐겨 사용했다. 일본 국민은 산화라는 말에서 벚꽃이 분분히 흩날리는 광경을 연상했다. 처연하고 숭고한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전사는 숭고한 행위로 승격됐고, 종국에는 신화가 되어 숭배됐다. 가미카제 특공대의 돌진은 산화의 최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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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지정학 요충지 한반도서 대륙·해양세력이 펼치는 동아시아 제국의 ‘열국지’ ▲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김시덕 지음 | 메디치 | 383쪽 | 1만6000원 한반도는 언제나 지정학적 요충지였나. 책은 이 같은 문제 제기에서 출발한다. 한반도는 통념과 달리 오랫동안 유라시아 동부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한반도가 지정학적 요충지로 떠오른 계기는 임진왜란이다. 중국 영향권에 있던 한반도에 일본이라는 해양세력이 부상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해양세력의 부상과 대륙세력의 맞대응으로 동아시아 역사는 요동쳤다. 책은 그 격랑의 동아시아사를 종횡무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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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송파 세 모녀·쌍용차 해고자 자살, 군 의문사… ‘사회적 죽음’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 13가지 죽음…이준일 지음 | 지식프레임 | 372쪽 | 1만5000원 개인의 죽음은 한 집안의 애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가 전면적으로 개인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한 근대 이후, 죽음은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일이 됐다. 사후 발생하는 일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가족은 사망신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망자의 유언을 놓고 법원은 효력 여부를 판단한다. 경찰은 검시를 하고, 국가기관은 억울한 죽음에 보상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이제 개인의 죽음을 말할 때 국가라는 존재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다. 법학자인 저자는 이 같은 관점에서 죽음을 자연사, 뇌사, 안락사, 병사, 의사, 사형 등 13가지로 나눠 사회적 맥락 속에서 죽음을 사유한다. 집세와 공과금 70만원을 남기고 자살한 송파 세 모녀 사건, 쌍용차 해고자의 잇따른 자살은 사회적 타살로 규정된다. 왕따나 실직 고통에 시달리다 자살한 경우도 같은 유형이다. 안중근처럼 대의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 열사도 사회적 죽음에 해당한다. 죽음을 이르게 한 배경에 국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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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혼혈의 강’ 다뉴브에 비친 중부유럽 ▲ 다뉴브…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550쪽 | 3만원 수백 년 전 아메데오라는 역사학자가 다뉴브 강의 발원지를 찾아나섰다. 그는 독일 남서쪽 삼림지대에 있는 브레크 강을 거슬러 오르다 실개천이 끝나는 곳에서 낡은 집 한 채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튀어나온 홈통 혹은 관 같은 게 보였는데, 관은 장작 창고 근처를 지나면서 좀 더 아래에 있는 연못 쪽으로 물을 콸콸 쏟아냈다. 수원지인 비탈 아래로 내려가는 물은 산에 있는 이 홈통에서 나온 것이다.” 아메데오는 이후 다뉴브 강의 발원지가 ‘홈통’이라는 기이한 가설을 내놓는다. 사실 2800㎞를 흘러 흑해에 닿는 다뉴브 강의 발원지 가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독일 도나우에싱겐 마을은 다뉴브 강 발원지의 원조를 주장하며 물웅덩이 하나를 관광명소로 꾸며 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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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스타와 성공 뒤에 숨겨진 ‘조력자’, 그들에게 바치는 헌사 ▲ 인비저블…데이비드 즈와이그 지음·박슬라 옮김 | 민음인 | 260쪽 | 1만6000원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음향 테크니션, 향수 ‘이스케이프’ ‘휴고 보스’를 만든 조향사, 뉴욕타임스의 팩트 체커(사실 검증 전문가), 유엔의 동시통역사….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다소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정답은 ‘훌륭한 조력자’이다. 이들은 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쌓았지만 명성, 인정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책은 이들을 가리켜 ‘인비저블’이라 부른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높은 성취도를 올리는 사람이 이 범주에 드는데 이들의 특성과 가치를 이 책은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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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앙드레 말로가 기록한 드골의 마지막 육성 ▲ 참나무를 쓰러뜨리다…앙드레 말로 지음·심상필 옮김 | 은행나무 | 234쪽 | 1만2000원 1969년 12월 어느 날, 앙드레 말로는 샤를 드골의 집을 방문한다. 드골이 권좌에서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두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프랑스를 재건하고, 1960년대 대통령과 문화부 장관으로서 ‘강한 프랑스’를 구축한 정치적 동지였다. 하지만 이들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바야흐로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68혁명’의 기운이 가라앉지 않은 때였다. 두 노정객은 과거를 되돌아보며 회한을 나누고 인생과 프랑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책은 이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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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다문화 공존의 걸림돌은 ‘서로 다른 자아’의 갈등 ▲ 우리는 왜 충돌하는가…헤이즐 로즈 마커스·엘레나 코너 지음, 박세연 옮김 | 흐름출판 | 464쪽 | 1만9000원 미국의 한 한국인 대학원생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공항을 오가는 사람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후 그 답례품으로 두 가지 색 볼펜을 내밀었다. 오렌지색 4개와 녹색 1개, 모두 5개 볼펜을 제시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유럽계 미국인은 녹색 볼펜을 많이 선택했고 아시아계 미국인은 오렌지색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미국과 대만의 동화 속 캐릭터의 웃음 크기를 분석한 연구가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미국 캐릭터의 웃음 크기가 대만 캐릭터보다 훨씬 컸다. 여성 잡지를 비교해봐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미국 잡지들 속의 웃음은 할리우드 배우 줄리아 로버츠의 웃음처럼 이를 훤히 드러내보이는 반면 대만 잡지 속의 웃음은 <와호장룡>에 나오는 장쯔이의 지긋한 미소가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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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세계의 돈’ 로마 동전의 유통 과정서 마주친 로마인의 생활 ▲ 고대 로마 제국 15,000킬로미터를 가다…알베르토 안젤라 지음·김정하 옮김 | 까치 | 540쪽 | 2만원 동서고금 따질 것 없는 불변의 사실. ‘돈은 돌고 돈다.’ 제국시대 로마의 동전도 황궁에서부터 황제의 권력이 미치는 곳까지 돌고 돌았다. 런던, 파리, 스페인 끝자락, 루마니아 삼림지대, 메소포타미아 평원, 이집트와 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까지 로마의 동전은 널리 유통됐다. 책은 동전의 여행 경로를 따라 2~3세기 로마 제국 사람들의 삶을 재현한다. 이 시간 여행의 안내자는 세스테르티우스라는 둥근 청동 화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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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귀하신 몸’ 조선 명의… 이황의 청탁도 안먹혔다 ▲ 조선의약생활사…신동원 지음 | 들녘 | 951쪽 | 3만9000원 사람이 어느 날 덜컥 암과 같은 중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명의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명의로 일컬어지는 의사들은 많지 않을뿐더러 대개 서울 대형 병원에 집중해 있다. 그들에게 한번 진료를 받으려면 길게는 두세 달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진료 예약자가 줄 서 있기 때문이다. 1분1초가 아까운 환자와 가족은 속만 타들어간다. 이런 광경은 16세기 조선에서도 목격된다. 퇴계 이황의 경우를 보자. 지방에 사는 이황의 인척이 중병에 걸려 이황에게 한양의 명의를 수소문해 처방을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이황이 아는 한 당시 명의는 안현, 손사균, 유지번 등 너댓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명의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황은 이들을 찾아갔지만 번번이 헛걸음이었다. 다른 고위직 양반의 청탁 등으로 왕진을 갔거나 돌보는 환자가 많아 집에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황은 인척에게 보낸 편지에 “모두 대신들의 명령으로 해서 동분서주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핑계대며 불러도 오지 않거니와, 친히 찾아가보아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라고 적었다. 이황 같은 고위 관료조차 이 정도라면 벼슬이나 ‘빽’이 없는 평범한 양반들이 명의에게 진료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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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함석·디스켓… 퇴물들에 깃든 추억과 기억 ▲ 사물의 이력…김상규 지음 | 지식너머 | 304쪽 | 1만3000원 쓰레받기, 물뿌리개, 양동이, 지붕 등의 소재로 한때 주가를 올렸던 함석은 이제 퇴물로 취급받는다. 중년 남자라면 학창시절 기술 수업시간에 함석을 자르고 두드려 쓰레받기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함석이 언제부터인가 플라스틱에 밀려났다. 함석의 장점은 소비자가 손수 만들어 쓰기 쉽다는 점이다. 따라서 함석이 플라스틱으로 대체되는 과정은 ‘만들어 쓰기 문화’의 퇴조와 맞물려있다. 편리함과 효율성을 좇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어느덧 일상용품을 만들어 쓰는 재미와 능력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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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헤밍웨이·케인 작품 실망”… 동료 작가·자기 작품도 ‘비판의 도마’ ▲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레이먼드 챈들러 지음·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56쪽 | 1만2800원 1930~195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문학 장르인 하드보일드는 폭력적 사건을 감정과 수사를 배제한 채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하드보일드 소설에는 비정과 냉정이 배어 있다고 한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다. 책은 그가 독자, 잡지 편집자, 동료 작가 등에게 보낸 편지를 묶어 놓았는데 하드보일드 특유의 비정하거나 냉정한 어투가 강렬하다. 글쓰기에 대한 견해, 동료 작가 평가, 자기 작품에 대한 품평, 일상 경험담 등이 에두르는 법 없이 직선적으로 표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