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찬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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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인류의 진보를 믿는 휴머니즘은 ‘환상’에 불과 ▲ 동물들의 침묵…존 그레이 지음·김승진 옮김 | 이후 | 272쪽 | 1만6000원 인간의 악은 일종의 오류이며 지식이 발전하면 이 오류도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 이성을 실천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 인간의 문제에서 장기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믿음, 인간은 자유를 사랑하는 존재라는 믿음. 서구 휴머니즘을 떠받치는 신념들이다. 이 신념들의 기저에는 인간은 진보한다는 사고가 똬리 틀고 있다. 낭만주의, 계몽주의, 자본주의는 물론 진화론과 공산주의도 이 점에서는 오십보백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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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청중의 마음 얻는 글을 써라 ▲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지음 | 메디치 | 328쪽 | 1만6000원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은 글쓰기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글쓰기 고수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대통령 재임 시절 연설문 작성에 공을 많이 들였다. 연설문 하나를 준비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연설비서관들이 써온 연설문을 고치고 또 고쳤다. ‘글쟁이’ 연설비서관은 매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저자 강원국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아래에서 8년간 연설비서관을 지냈다. 책은 저자가 청와대 시절 경험한 김대중과 노무현의 글쓰기 태도 및 특징을 기술한다. 더불어 이들의 글쓰기 노하우를 통해 어떻게 써야 좋은 글이 나오는지, 그 비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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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품었던 의문, ‘시간’을 풀어보다 ▲ 그래, 흘러가는 시간을 어쩌자고…김영현 지음 | 사회평론 | 270쪽 | 1만5000원 한 살 적 ‘나’는 예순 살의 ‘나’와 같은 존재인가. 이 같은 물음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속성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시간의 실체 규명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한다. 만만치 않은 철학적 탐구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전문 철학자도 아닌 소설가 김영현이 이 작업에 매달렸다. 책은 그 결과물로 가벼운 에세이나 아포리즘 차원을 넘어선다. 김영현은 깊은 사색과 탄탄한 공부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시간론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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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비트겐슈타인은 10년 동안 잠적해서 무얼 했을까 ▲ 비트겐슈타인 침묵의 시절 1919~1929…윌리엄 바틀리 3세 | 필로소픽 | 273쪽 | 1만6000원 흔히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의 철학은 전기와 후기로 나눠 설명된다. 전기 철학은 <논리철학논고>에서 전개한 사유를 기반으로 하고 후기 철학은 유작인 <철학적 탐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철학서는 언어에 대해 사뭇 다른 사유를 펼치고 있다. 언어는 세계를 모사한다는 관점에서 언어의 기능과 한계를 논리적으로 분석한 <논리철학논고>에 반해 <철학적 탐구>는 언어를 모종의 게임으로 파악, 세계 모사라는 언어의 기능적 한계 너머를 다룬다. 철학적 간극이 존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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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조선의 과거제는 하층민에게도 활짝 열린 신분상승 제도 ▲ 과거, 출세의 사다리(4권)…한영우 지음 | 지식산업사 | 460쪽 | 각권 3만~3만5000원 원로 역사학자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의 <과거, 출세의 사다리>가 이번에 고종 시기를 다룬 4권이 나오면서 완간됐다. 1권 ‘태조-선조대’가 출간된 지 꼬박 1년 만이다. 책은 5년간 과거 급제자 1만5000명을 조사분석한 결과물로 원고지 1만2000장 분량이다. 한 교수가 밝힌 사실은 조선시대가 통념과 달리 신분이동이 자유로운 사회였다는 점이다. 신분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한 것은 과거 제도로, 이를 통해 신분이 낮은 과거 급제자가 대거 신분상승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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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인류학을 학문으로 만든 네 명의 저자, 그들의 특별한 글쓰기 전략 ▲ 저자로서의 인류학자…클리퍼드 기어츠 지음·김병화 옮김 | 문학동네 | 226쪽 | 1만8000원 인류학 텍스트는 그 성격을 규정하기가 참 까다롭다. 물리학이나 수학 텍스트처럼 과학적이지도 않고 소설처럼 문학 텍스트로 분류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사회학의 틀 안에서 논하기도 한계가 있다. 인류학자인 저자 기어츠는 인류학 텍스트가 이도저도 아니라며 이를 노새에 비유한다. 하지만 이 같은 한계를 딛고 불모지를 개척하듯 인류학을 고유한 담론으로 끌어올린 학자들이 존재한다. 레비스트로스, 말리노프스키, 에번스프리처드, 베네딕트. 저자는 인류학에서 단순 ‘작가’의 수준을 넘어 ‘저자’의 반열에 오른 인물로 이들 4명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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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세계화와 성장이 만든 부작용, 사회적 연대 강화로 치유해야 ▲ 네오르네상스가 온다…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김수진 옮김 | 생각의길 | 324쪽 | 1만8000원 한국 독자에게 <루나의 예언> <이중 설계> 등 소설로 더 친숙한 저자는 프랑스 종교사학자이자 철학자이다. <네오르네상스가 온다>는 오늘날 인류가 겪는 사회적 질병의 내용과 그 치유법을 제시한다. 사회적 질병이란 세계화와 경제 성장이 잉태한 각종 부작용 및 고통 따위를 일컫는다. 환경 파괴, 빈부 격차의 심화, 종교분쟁 등이 여기에 속한다. 원제는 ‘세계의 치유’다. 저자는 전 세계가 세 가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한다. 농업의 위기, 경제의 위기, 정치의 위기가 그것이다. 농업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몬산토 같은 다국적기업이 농업 시장을 지배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생태계는 물론 후진국 농민의 삶을 피폐화시켰다. 저자는 이에 대한 치유법으로 인도에서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아홉 개의 씨앗’ 운동을 제시한다. 이 운동은 생물다양성을 살리고 전통 농법을 진작하는 농민 운동이다. 현재 이 운동에 영감을 받아 대안 농업을 실험하는 나라는 한두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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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책에 오자가 있으면 곤장을 맞았다는 조선시대 출판문화 이야기 ▲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 548쪽 | 2만5000원 “서책을 인출할 때 감인관, 감교관, 창준, 수장, 균자장은 한 권에 한 글자의 오자가 나오면 태 30대를 치고, 오자가 한 글자씩 늘어날 때마다 1등을 더한다.” 조선 중종 때 만들어진 법령 가운데 하나로 책 교정, 인쇄를 담당한 관리에게 적용했다. 실제로 오자가 발생해 태형을 가했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조선이 책을 어떻게 대했는지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 출판의 모든 것은 국가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됐다. 금속활자는 국가 소유였다. 책을 만드는 장인, 노예는 모두 국가기관에 예속됐다. 이 때문에 인쇄부터 유통까지 민간이 끼어들 여지는 극히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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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14인 사건’을 통해 본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 ▲시인을 체포하라…로버트 단턴 지음·김지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64쪽 | 1만5000원 1749년 봄 프랑스 치안당국은 ‘불온한 시’를 퍼뜨린 시인들 체포에 나섰다. 가장 먼저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검은 분노의 괴물’로 시작하는 시를 비롯해 시가 적힌 쪽지 서너개를 몸에 지닌 채 검거됐다. 괴물은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를 지칭한 것으로, 이 학생이 지닌 시들은 하나같이 왕과 베르사유 궁전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시의 원작자를 색출하기 위한 수사 과정에서 14명이 굴비 엮이듯 체포돼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됐다. 검거된 이들은 학생, 신부, 수도사 신분의 엘리트였다. 이른바 ‘14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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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행복한 허무주의자, 그래서 어려운 철학자 박이문의 삶과 사상 ▲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정수복 지음 | 알마 | 346쪽 | 1만9500원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의 철학적 사유 원동력으로 회의주의를 꼽았는데 철학자 박이문에게 이 원동력은 허무주의가 아닐까 싶다. 박이문의 허무주의는 인간과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게 만드는 힘 같은 것이다. 그는 31세에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선박 화물칸을 타고 홀연히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30년 동안 외국에 머물며 지적 사유에만 전념했다. 1991년 귀국 후 여든이 넘은 오늘날까지 그의 지적 사유는 멈추지 않고 있다. 그의 허무주의는 유년기 체험에서 시작됐다. 1930년생 박이문은 몸이 허약했고 사색에 빠지는 것을 좋아했다. 해방과 한국전쟁은 그에게 일대 충격을 안겼다. 그는 좌익·우익 다툼, 비참한 죽음들, 가난 등을 목격하며 ‘인생의 궁극적 이유’ 따위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한때 자살까지 생각할 만큼 깊은 나락에 빠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 만난 니체와 사르트르는 구원의 동아줄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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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경제대국이 되면서 중국 지식사회에 번지는 중화주의에 대한 우려 ▲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조경란 지음 | 글항아리 | 336쪽 | 1만8000원 중국 지식계의 신좌파는 덩샤오핑의 발전 노선을 비판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신좌파는 1990년대만 해도 중국 발전모델에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점차 중국의 성장을 긍정하고 심지어 찬양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중국의 G2 등극을 자신들의 염원이 실현된 것인 양 공공연히 자랑한다. 왕후이 칭화대 교수가 대표적인 신좌파다. 신좌파와 대척점에 있는 자유주의파 쉬지린은 신좌파를 ‘형좌우실(形左右實)’이라 정의했다. 외양은 좌파인데 실제로는 자본가, 기득권층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이다. 신좌파가 체제 비판이라는 좌파적 본성을 잃고 우파화했다는 평가에 저자도 공감한다. 신좌파는 과연 사상적으로 전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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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여로·아씨·새엄마’는 드라마일 뿐 아니라 국가에 동원된 이데올로기 ▲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역사와 경계…고선희 외 | 컬처룩 | 408쪽 | 3만5000원 한국에서 TV 드라마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때는 1960~1970년대이다. 1970년 TBC에서 방영한 <아씨>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한국형 멜로드라마의 전성기를 예고했다. 뒤이어 전파를 탄 <여로>(KBS), <새엄마>(MBC)는 드라마 시대를 꽃피웠다. 이 드라마들은 “신파도 이쯤 되면 예술”이라는 곱잖은 평가를 받으면서도 많은 아류작을 만들어냈다. 드라마에 ‘퇴폐·저질’ 꼬리표가 따라붙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조항제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 세 드라마의 열풍 속에서 ‘민족주의’라는 시대적 상징을 읽어낸다. 반공주의가 국시이던 당시 민족주의란 것은 국가가 주도해 만든 가공의 의식이자 체제 유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동원된 이데올로기다. 드라마 속 특정 인물 유형이 국가 이미지나 민족주의를 은연중 퍼뜨리는 경우가 있는데 1970년대 한국 멜로드라마가 그랬다. 시청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드라마가 묘사하는 가부장적 질서, 인고의 여인상 등을 접하면서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드라마 시청은 집단적 공유 행위가 된 것이다. 동일한 경험의 공유는 민족주의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