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찬
경향신문 기자
최신기사
-
책과 삶 복잡함은 사회 비용을 늘릴 뿐, 성공하려면 단순함을 추구하라 ▲ 심플…앨런 시겔·아이린 에츠콘 지음, 박종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240쪽 | 1만3000원 2011년 인터넷 은행 ING다이렉트가 대형 금융사에 인수된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의 일이다. 고객들은 훌륭한 친구를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뉴욕타임스에 e메일을 보냈다. 기사로 다룰 만큼 많은 양의 e메일이 쏟아졌는데 대부분 근심 어린 전망과 인수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내용이었다. 주주도 아니면서 자신이 거래하는 은행이 팔린다는 소식에 이처럼 반응하기란 드문 일이다. 왜 그랬을까. ING다이렉트는 고객만족도 98%를 기록하며 빠른 시간에 충성 고객을 많이 확보한 기업이었다. 그 비결은 금융서비스를 단순화한 데 있었다. 전문가도 해독하기 어려운 가입 약관을 간명하게 만들었고, 서비스 이용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명쾌하고 단순한 서비스가 성공의 열쇠였던 것이다.
-
책과 삶 현대문명의 이기, 지리적 문맹을 낳다 ▲ 맵헤드…켄 제닝스 지음·류한원 옮김 | 글항아리 | 422쪽 | 1만8000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섬 ‘마이다’가 세계 지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6세기. 이때 마이다는 아일랜드 옆에 위치했다. 마이다는 이후 다른 지도에서 점차 육지에서 밀려나더니 1906년 북대서양까지 올라갔다가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집트와 수단 국경 사이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사막 지대 ‘비르타윌’이란 곳도 있다. 마이다와 비르타윌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지도와 지리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은 이 같은 지식이 낯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책은 지리와 지도마니아(맵헤드)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책과 삶 인터넷 공유지 수탈하는 ‘기생체’ 기업들 ▲동물혼맛떼오 파스퀴넬리 지음·서창현 옮김 | 갈무리 | 444쪽 | 2만5000원 박근혜 정부의 캐치프레이즈 ‘창조경제’라는 것도 따져보면 자본주의의 변신술 가운데 하나다. 신성장 동력이니, 과학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이니 하며 차별적 수사를 동원해도 자본주의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시대 변화에 맞춰 빠르고 치밀하게 변신한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됐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변화무쌍한 변신술을 읽어내고 가면을 벗기는 데는 고전적 마르크시즘만으로는 버겁다. 새로운 분석틀이 끊임없이 요구된다. 이탈리아 소장 학자 파스퀴넬리가 쓴 은 작금의 자본주의에 대한 독특한 해부 칼이다. 창조경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
책과 삶 스탈린 이후 ‘일상화된 공포’… 인민, 침묵하다 ▲ 속삭이는 사회 1·2…올랜도 파이지스 지음·김남섭 옮김 | 교양인 | 각 560·604쪽 | 각 2만3000원 안토니나 골로비나는 여덟 살 되던 1931년 시베리아로 추방됐다. 부모가 ‘쿨라크(부유한 농민)’라는 게 이유였다. 재산은 몰수당했고 가족은 찢겨져 노동수용소에 유배됐다. 3년 후 수용소를 나왔지만 ‘인민의 적’이라는 꼬리표가 그녀를 따라다녔다. 성장기에 주위의 비판과 학대에 시달렸다. 그래서 그녀는 커가면서 자신의 ‘불온한 과거’를 숨기려 했다. 결혼해서도 남편에게 가족사에 관해 일절 얘기하지 않았다. 남편도 가족사에 대해 언급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남편의 과거를 알게 되는데, 그도 쿨라크 출신으로 수용소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
책과 삶 공장 아닌 수도원·군대가 기계의 시대 열었다 ▲ 기술과 문명…루이스 멈퍼드 지음·문종만 옮김 | 책세상 | 682쪽 | 3만2000원 기계가 인류의 삶 속으로 들어온 전환점은 언제일까. 우리는 와트의 증기 기관이나 산업혁명을 떠올린다. 대다수 학자들도 기계시대는 18세기 중반에 열렸다고 말한다. <기술과 문명>은 이에 대한 반박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지난 3000년 동안 기계가 인류 기술유산의 본질적인 부분을 차지했고, 10세기부터 기계 문명이 완만히 발전해 왔다고 주장한다. 실질적인 기계의 탄생지가 근대 영국의 공장이 아니라 중세 수도원, 군대, 회계 사무소였다고 말한다. 수도원은 수도사에게 엄격한 규율을 강요했다. 일과는 시간표에 따라 철저히 관리됐다. 필요가 발명을 낳듯 시간관리의 필요성은 정밀한 시계를 탄생시켰다. 시계는 수도원을 넘어 도시로 파급됐고 노동자와 상인의 삶을 뒤바꿨다. 시계의 탄생과 발달은 기계가 삶을 변화시킨 대표적 사례다. 저자에 따르면 산업시대를 있게 한 동력은 증기기관이 아니라 시계이다.
-
책과 삶 멈출 수 없는 ‘유행 사냥꾼’을 만드는 사회 ▲ 유행의 시대…지그문트 바우만 지음·윤태준 옮김 | 오월의봄 | 175쪽 | 1만3000원 근대의 문화는 계몽적 성격이 강했다. 지배계급과 지식 엘리트는 민중을 기르는 일, 즉 계몽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밭을 경작하듯 민중을 기르는 일(cultivating)이 문화의 본분이었다. 문화라는 것은 결국 민중에게 규범을 주입해 사회질서를 견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
책과 삶 10대를 고전 읽기의 즐거움에 초대하다 ▲ 너는 네가 되어야 한다·나를 위해 공부하라…수유너머R 지음 | 너머학교 | 188쪽·196쪽 | 각 1만5000원 고전을 읽다보면 유난히 눈길을 붙잡고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는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은 때로 씨앗이 되어 갖가지 질문을 싹틔우고, 생각의 가지를 뻗치게 하며 궁극적으로 삶의 문제에 다다르게 한다. ‘고전이 건네는 말’ 시리즈로 나온 2개의 책은 고전 속 문장을 통해 고전의 가치를 음미하고 삶의 태도 변화를 자극한다. 인문학 연구공동체 ‘수유너머R’에서 10대를 대상으로 한 고전 읽기 강좌를 엮은 것이다. -
책과 삶 수치심과 죄책감의 발원지는 ‘내 안의 타자’ ▲ 수치심과 죄책감…임홍빈 지음 | 바다출판사 | 439쪽 | 2만8000원 무인도에 홀로 사는 사람을 상상해보자. 그럴 경우 그가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낄 때가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죄책감·수치심은 ‘타인의 눈’을 필요조건으로 하는 사회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철학과 임홍빈 교수는 이 두 감정의 실체를 심도 있게 탐구했다. 국내 학자가 감정에 대해 존재론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탐구한 저작은 극히 드물다. 감정보다 이성에 초점을 맞추는 현대 철학의 풍조에 비쳐봐도 이 책은 돋보이는 철학서이다.
-
책과 삶 평생 ‘어린 성자’였던 권정생 선생님의 삶 ▲강아지똥별 김택근 지음 | 추수밭 | 226쪽 | 1만3000원 동화작가 권정생(1937~2007)은 평생 가난했던 사람이다. 나고 자라면서 빈곤이 따라다녔고 성인이 되어서는 자발적으로 가난한 삶을 택했다. 2007년 봄, 그가 세상을 등졌을 때 그의 통장에는 자그마치 10억원이 남아 있었다. 수십년간 받아온 인세를 모아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허름한 작업복과 고무신만 신고 살았다. 또 방 한 칸 딸린 흙담집만으로도 풍족하다고 느꼈다. 권정생은 전 재산 10억원을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유언장에 적었다. 그는 가난을 초월한 사람이었다. 말년에 “물질이 풍족하면 마음이 가난할 수 없으니 그것이 두렵다”고 말한 것은 그의 인생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
책과 삶 1988년 여름, 386세대의 마르크스에 대한 집단체험이란 무엇이었는가 ◆ 기억의 몽타주류동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11쪽 | 1만3000원 독특한 구성을 지닌 책이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1988년 여름에 대한 소설 형식의 체험담이고 후반부는 이 소설에 대한 분석이다. 저자가 직접 소설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이런 형식을 통해 저자가 말하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 카를 마르크스의 은 1989년이 되어서야 금서목록에서 해방됐다. 은 시중 서점에 떳떳하게 진열되기 전까지 대학생들이 간첩 접선하듯 몰래 복사해 돌려보는 책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생이었던 저자는 1988년 여름 선배의 권유를 받고 번역 작업에 참여한다. 그는 다른 대학 학생 몇몇과 충정로 허름한 ‘작업실’에서 의 일본어판과 독일판을 펼쳐놓고 고난도 단어, 문장들과 씨름한다. 엄밀한 의미의 마르크스주의자라기보다 ‘내 마음의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자가 진단한 저자가 그려내는 작업실 풍경은 밝거나 활기로운 차원과는 거리가 멀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운동권 학생들의 내면도 그러했던 듯하다.
-
책과 삶 “네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네 말로 쓰라” 고 이오덕 선생 일기 모음 ▲이오덕 일기이오덕 지음 | 양철북 | 1권 406쪽·2권 384쪽·3권 356쪽·4권 388쪽·5권 400쪽 | 1~5권 7만원 교육자이자 아동문학가인 이오덕은 기록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 것 같다. 1962년부터 42년 동안 쓴 일기가 그 증거다. 이오덕은 사망하기 직전까지 작은 수첩에 펜을 꼭꼭 눌러가며 일기를 썼다. 이오덕이 마지막으로 쓴 일기에는 그의 아들이 ‘얼기설기밭’이라는 단어 뜻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오덕은 처음 듣는 말이라며 재미있어 한다. 이오덕은 암투병으로 고통받는 와중에도 웃음과 흥미를 잃지 않았다. 그는 죽기 이틀 전까지 흐트러짐 없이 일기를 썼다.
-
책과 삶 은밀한 사생활의 공간, 혼자만의 ‘방’은 없었다… 근대 이전에는 ▲ 방의 역사…미셸 페로 지음·이영림, 이은주 옮김 | 글항아리 | 751쪽 | 4만원 <사생활의 역사> 총서 간행을 주도한 미셸 페로는 어두운 곳에 갇혀 있던 사사로운 것들에 천착했다. ‘방’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페로는 방을 일상을 구성하는 원형질 혹은 세포로 표현한다. 그래서 방을 들여다보면 당대 사람들의 삶은 물론 심리 상태와 사고 경향을 알 수 있다. 가령 계몽시대 이후 유행한 둥그런 방은 평등주의를 표상했다. 상하 관계, 계급 차별을 무화하려는 의도가 원형 구도에 녹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앙시앵 레짐을 뒤엎은 프랑스 혁명주의자들은 원형보다 반원형을 선호했다고 한다. 그들은 혁명의회를 반원형으로 짓게 했다. 평등주의를 추구했지만 막상 권력과 정치가 실현되는 공간에서는 상하 관계를 배제하지 못한 것이다. 이 반원형 의회는 이후 대다수 국가 의회 형태의 모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