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찬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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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평생 ‘어린 성자’였던 권정생 선생님의 삶 ▲강아지똥별 김택근 지음 | 추수밭 | 226쪽 | 1만3000원 동화작가 권정생(1937~2007)은 평생 가난했던 사람이다. 나고 자라면서 빈곤이 따라다녔고 성인이 되어서는 자발적으로 가난한 삶을 택했다. 2007년 봄, 그가 세상을 등졌을 때 그의 통장에는 자그마치 10억원이 남아 있었다. 수십년간 받아온 인세를 모아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허름한 작업복과 고무신만 신고 살았다. 또 방 한 칸 딸린 흙담집만으로도 풍족하다고 느꼈다. 권정생은 전 재산 10억원을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유언장에 적었다. 그는 가난을 초월한 사람이었다. 말년에 “물질이 풍족하면 마음이 가난할 수 없으니 그것이 두렵다”고 말한 것은 그의 인생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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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1988년 여름, 386세대의 마르크스에 대한 집단체험이란 무엇이었는가 ◆ 기억의 몽타주류동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11쪽 | 1만3000원 독특한 구성을 지닌 책이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1988년 여름에 대한 소설 형식의 체험담이고 후반부는 이 소설에 대한 분석이다. 저자가 직접 소설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이런 형식을 통해 저자가 말하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 카를 마르크스의 은 1989년이 되어서야 금서목록에서 해방됐다. 은 시중 서점에 떳떳하게 진열되기 전까지 대학생들이 간첩 접선하듯 몰래 복사해 돌려보는 책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생이었던 저자는 1988년 여름 선배의 권유를 받고 번역 작업에 참여한다. 그는 다른 대학 학생 몇몇과 충정로 허름한 ‘작업실’에서 의 일본어판과 독일판을 펼쳐놓고 고난도 단어, 문장들과 씨름한다. 엄밀한 의미의 마르크스주의자라기보다 ‘내 마음의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자가 진단한 저자가 그려내는 작업실 풍경은 밝거나 활기로운 차원과는 거리가 멀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운동권 학생들의 내면도 그러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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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네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네 말로 쓰라” 고 이오덕 선생 일기 모음 ▲이오덕 일기이오덕 지음 | 양철북 | 1권 406쪽·2권 384쪽·3권 356쪽·4권 388쪽·5권 400쪽 | 1~5권 7만원 교육자이자 아동문학가인 이오덕은 기록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 것 같다. 1962년부터 42년 동안 쓴 일기가 그 증거다. 이오덕은 사망하기 직전까지 작은 수첩에 펜을 꼭꼭 눌러가며 일기를 썼다. 이오덕이 마지막으로 쓴 일기에는 그의 아들이 ‘얼기설기밭’이라는 단어 뜻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오덕은 처음 듣는 말이라며 재미있어 한다. 이오덕은 암투병으로 고통받는 와중에도 웃음과 흥미를 잃지 않았다. 그는 죽기 이틀 전까지 흐트러짐 없이 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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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은밀한 사생활의 공간, 혼자만의 ‘방’은 없었다… 근대 이전에는 ▲ 방의 역사…미셸 페로 지음·이영림, 이은주 옮김 | 글항아리 | 751쪽 | 4만원 <사생활의 역사> 총서 간행을 주도한 미셸 페로는 어두운 곳에 갇혀 있던 사사로운 것들에 천착했다. ‘방’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페로는 방을 일상을 구성하는 원형질 혹은 세포로 표현한다. 그래서 방을 들여다보면 당대 사람들의 삶은 물론 심리 상태와 사고 경향을 알 수 있다. 가령 계몽시대 이후 유행한 둥그런 방은 평등주의를 표상했다. 상하 관계, 계급 차별을 무화하려는 의도가 원형 구도에 녹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앙시앵 레짐을 뒤엎은 프랑스 혁명주의자들은 원형보다 반원형을 선호했다고 한다. 그들은 혁명의회를 반원형으로 짓게 했다. 평등주의를 추구했지만 막상 권력과 정치가 실현되는 공간에서는 상하 관계를 배제하지 못한 것이다. 이 반원형 의회는 이후 대다수 국가 의회 형태의 모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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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상대주의가 지배하는 역사학… 과연 역사적 진실은 찾을 수 없는가 ▲ 역사가 사라져갈 때…린 헌트 외 지음·김병화 옮김 | 산책자 | 446쪽 | 1만6000원 ‘세계사’라는 단어를 고안한 독일 철학자 헤겔 이후 역사에는 보편적 질서와 진리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뿌리내렸다. 과학에 대한 신봉은 이런 역사관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다 근대 국가 형성기에 집단의 정체성을 강조한 민족주의적 서사가 주류를 이뤘고 냉전시대에는 진영 논리에 따라 역사가 재단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구 역사는 영웅, 천재, 정치가들이 주인공으로 기술됐다. 하지만 냉전이 와해되자 서구 역사의 주인공은 여성, 소수 집단, 노동자 등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푸코, 데리다 등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집단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한 역사를 비판하며 도발적으로 ‘역사적 진실이 있기나 한 것인가’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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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베풀고 사는 기버, 성공 확률이 높다지만, 그저 베푼다고 성공할까 ▲ 기브앤테이크…애덤 그랜트 지음·윤태준 옮김 | 생각연구소 | 464쪽 | 1만6000원 ‘50%가 5%에게 양보하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안철수가 출마를 접으면서 박원순에게 양보한 다음날 한 신문에 등장한 헤드라인이다. 지지율이 현격히 높은 예비 출마자가 지지율이 미약한 예비 주자를 지지하며 포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안 가는 일이다. 또한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안철수의 양보는 성공의 법칙과 어긋나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안철수는 전형적인 ‘기버’(Give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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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나를 설레게 한 프랑스 문학의 시간과 공간을 뒤죽박죽 드나들다 ▲ 마음은 천천히 그곳을 걷는다…길혜연 지음 | 문예중앙 | 351쪽 | 1만4000원 프랑스에 거주하며 번역과 집필 활동을 하는 저자는 한때 서울 한복판 빌딩들이 있는 곳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이었다. 어느날 사무실 창밖을 내다보며 ‘여기서부터 집까지 푸른 해변이 이어져 맨발로 걸어갈 수 있다면’ 하는 상상을 했다. 그러자 어디선가 소금기 머금은 바다 내음과 잔물결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그 상상이 계시가 된 듯, 곧바로 직장을 떠났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 세월을 떠맡긴 채 사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불현듯 자신에게 되물을 것이다. ‘나를 설레게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던가. 그리고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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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전장서 바지에 똥·오줌 안 싸는 군인은 ‘공격적 사이코패스’ ▲전투의 심리학데이브 그로스먼·로런 크리스텐슨 지음·박수민 옮김 | 열린책들 | 622쪽 | 2만5000원 1980년대 말에 본 영화 <플래툰>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람보> <코만도>에 익숙해 있던 사람에게 <플래툰>은 색달랐다. <플래툰>이 마음을 흔들었던 이유는 전투 장면이 대단히 사실적이었기 때문일 게다. <플래툰>은 <람보>처럼 과장법을 쓰지 않고 전쟁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또 ‘강한 것이 아름답고 가치 있다’는 메시지를 주입하는 <람보>류의 영화와 달리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실제 전투에서 군인은 용맹하기보다 초라하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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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시학 텍스트 ‘시품’을 통해 더듬은 동아시아 미학의 뿌리 궁극의 시학…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715 쪽| 3만8000원 중국 송나라 말엽에서 원대에 걸친 시기에 탄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이하 시품). <시품>은 네 글자 열두 구의 운문 24개로 구성된 텍스트이다. 24개 풍격(상징적인 말로 시의 인상을 표현하는 것)을 시로 표현했는데 ‘시란 무엇인가, 또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길을 제시한 시학 텍스트다. 200자 원고지 여섯 장 분량에 불과한 이 저작물은 중국은 물론 조선의 문인과 서화가에게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시품>을 읽고 또 읽으며 예술적 영감을 얻고 문장력을 갈고닦았다. <궁극의 시학>은 <시품>을 해부하고 그 파급력을 좇아 동아시아 미학의 뿌리를 더듬은 책이다. 저자는 <시품>이 동아시아 미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주저 없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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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평생 영국 떠난 적 없는 셰익스피어? 그의 희곡 속 이탈리아가 반증한다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리처드 폴 로 지음·유향란 옮김 | 오브제 | 452쪽 | 2만원 셰익스피어의 희곡 가운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열세 편이다. 모국인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 수와 맞먹는다. 그 밖에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극소수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왜 유독 이탈리아를 편애했을까. 셰익스피어가 실제로 이탈리아를 여행한 적이 있을까. 책은 이 같은 물음에서 출발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무대는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로나이다. 그런데 <로미오와 줄리엣> 1막 1장에 단풍나무가 등장한다. 저자는 여기서 한 가지 추정을 해본다. 만일 셰익스피어가 베로나를 방문한 적이 없다면 ‘시가지 서쪽 단풍나무숲’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저자는 베로나에 도착하자마자 단풍나무숲부터 찾았다. 숲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단풍나무는 드문드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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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5000년 중국을 움직인 ‘세 치 혀’… 100여명 사상가의 논변들 ▲ 쟁경…자오촨둥 지음·노만수 옮김 | 민음사 | 988쪽 | 3만8000원 중국 춘추전국시대는 화술로 천하를 주름잡은 달변가들이 즐비했다. 흔히 유세객이라 불리는 이들의 혀는 검과 같았고 입술은 창과 같았다. 이들은 세 치 혀로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했다. 춘추전국시대 화술은 상대와 이론을 다투어 싸우는 쟁경(爭經)의 무기였고 논변은 정치 투쟁의 도구였다. 합종연횡으로 유명한 소진과 장의를 길러낸 초나라의 귀곡자는 변론술의 대가였다. 그가 문하생들에게 낸 졸업 시험은 그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는 땅 구덩이를 판 뒤 그 속으로 들어가 “누구든 변론으로 나를 울려야만 졸업을 시켜줄 것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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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걷기 예찬론자와 느림보 학자가 함께 여행하며 발견한 ‘잘 사는 법’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김남희·쓰다 신이치 지음 | 문학동네|345쪽 | 1만5000원 한국의 유명 여행작가와 일본의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는 첫 만남에서 서로 통했다. 금세 친구가 됐고 얼마후 부탄 여행길에 동행했다. 이들은 강원도, 안동, 지리산, 제주도와 홋카이도, 나라 등지를 함께 여행하며 ‘속도’로 정의되는 현대적인 삶을 비판한다. 책은 두 사람의 여행기인데 동일한 체험에 대한 두 가지 내러티브로 짜인 구조가 특징이다. 일본 저자 신이치는 느리게 사는 게 미덕이라는 ‘슬로라이프’ 개념을 만든 인물이다. 김남희 역시 걷기 예찬론자이며 빈둥거리고, 한눈팔고, 느리게 사는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책은 이들이 여행지에서 만난 ‘느리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