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찬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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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모든 것을 살 수 있고 모든 이가 자유롭다 믿는 ‘미국식 자유’의 불편함 ▲ 기차를 타고 아메리카의 일상을 관찰하다…돈 왓슨 지음·정회성 옮김 | 휴머니스트 | 467쪽 | 2만원 저자는 2005년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직후 뉴올리언스를 찾았다. 카트리나가 떠난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시체들은 여전히 물위를 둥둥 떠다니고 미국 대통령은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정부는 대재앙 현장에 구조대보다 군대를 먼저 보냈다. 구조보다 치안을 더 중시한 것이다. 미 정부는 ‘가난한 흑인 도시’ 뉴올리언스에 뿌리깊은 차별적 시선을 암암리에 내비쳤고 복구는 더뎠다. 어떻게 민주주의의 종주국이자 최첨단 기술 보유국인 나라가 이처럼 무기력하고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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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지옥의 시간을 음악으로 버틴 여인, 최고령 홀로코스트 생존자 헤르츠좀머가 말하는 ‘기적’ ▲ 백년의 지혜…캐롤라인 스토신저 지음·공경희 옮김 | 민음인 | 271쪽 | 1만3000원 1903년 체코 프라하 태생의 피아니스트 알리스 헤르츠좀머(사진)는 마흔이 되던 해 여름, 추방 통보를 받았다. 그는 유대인이어서 테레진이라는 유대인 격리지역에 수용될 처지가 된 것이다. 남은 시간은 이틀. 그는 절망하지 않으려 애썼다. 무엇을 할까 생각한 끝에 음악회를 준비하는 자세로 이틀 내내 피아노 연습에 매달렸다. 헤르츠좀머는 세계 최고령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책은 그의 인생 이야기다. 고난의 삶이었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며 “매일이 기적”이라고 말하는 낙천주의자의 지혜가 담겨 있다. 그래서 슬프지만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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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10대들의 ‘알바’가 아닌 ‘청소년 노동’을 위하여 ▲10대와 통하는 노동 인권 이야기 | 차남호 지음 | 철수와영희 | 328쪽 | 1만3500원 2005년 전교조에서 서울지역 고등학교 학생 4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노동자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라고 물었다. 학생 55.3%가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는 이미지를 떠올렸고, ‘나는 되고 싶지 않다’(39.4), ‘가난하다’(34.7%), ‘불쌍하다’(33.6%)는 대답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미래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한 학생은 5.0%에 불과했다. 이 설문 결과처럼 한국 10대들의 노동에 대한 생각은 매우 부정적이다. 왜 10대들은 노동을 신성하게 여기기는커녕 피해야 할 그 무엇으로 인식하고 있을까. 이는 노동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다. 노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한 교과서와 어른들의 그릇된 교육 탓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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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갤러그’ 세대부터 오늘날 청소년까지 매혹시킨 놀이문화 ‘디지털 게임’ ▲모두를 위한 놀이, 디지털게임의 재발견…김겸섭 지음 | 들녘 | 368쪽 | 1만3000원 책은 디지털 게임의 거의 모든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최초의 디지털 게임이라 불리는 ‘테니스포투’에서부터 최근의 소셜게임까지 수많은 게임을 등장시키며 게임의 속성과 그에 얽힌 문화적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전반적으로 10대 후반의 눈높이로 쓰였지만 게임을 하는 아이를 둔 어른들도 눈여겨볼 대목이 적잖다. 특히 1980년대 전자오락실에서 ‘갤러그’ ‘1943’ 등에 빠져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게임의 역사 대목이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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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디자인 전공 학자, 시각적 매개물 통해 이상의 삶을 읽어내다 이상평전…김민수 지음 | 그린비 | 376쪽 | 1만8000원 ‘난해함’이라는 단어는 시인 이상(1910~1937)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초현실적인 그의 시와 짧게 끝난 그의 삶이 난독의 한 요인이었다. 따라서 이상을 다룬다는 것은 난해함과의 싸움이다. 이상의 삶을 해독한 이 책도 난해함과의 투쟁 결과물이다. 저자는 회화적 분석방법과 독특한 시각을 바탕으로 이상의 삶과 문학을 분투하며 해부했다. 저자는 10대의 이상이 무엇을 ‘보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상의 의식을 해독한다. 시각적 매개물을 통해 실존에 다가가야 이상이 제대로 보인다는 견해다. 서울 통인동에서 자라고 보성고보를 다녔던 이상은 오가며 조선총독부 건물이 세워지는 것을 지켜봤다. 총독부 건물을 비롯해 1920~1930년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근대 건축물은 이상을 자극했다. 이상은 경성고공을 다니며 미술과 더불어 건축 이론과 실기를 배웠고 총독부 건축과에 취직하기도 했다. 이상이 <종생기>에서 “왜 나는 미끈하게 솟아 있는 근대건축의 위용을 보면서 먼저 철근철골, 시멘트와 세사, 이것부터 선뜩하니 감응하느냐는 말이다”라고 말한 대목은 그래서 중요하다. 저자에 따르면 연작시 ‘선에 관한 각서 1, 2, 3’은 르 코르뷔지에의 신건축에 감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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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낭만주의자’ 김근태…남영동에서 그의 울부짖음은 꽃으로 피어났는가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김삼웅 지음 | 현암사 | 424쪽 | 2만2000원 ‘아! 그 남영동에서 내가 토해냈던 울부짖음의 파편이 튀어서 저리 붉게 피어나는가. 물고문에, 불고문에 바스러졌던 내 넋의 한 조각이 다시 새롭게 물올라 한 무더기 진달래로 피었는가.’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6년 초봄 서울구치소(지금의 서대문형무소 자리)에서 인왕산 자락을 올려다보며 느낀 감상을 적은 글이다. 전두환 정권의 하수인들에게 이끌려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2일간 혹독한 고문을 받고 나온 지 얼마 안된 때이다. 고문의 악몽이 생생할 터인데도 분노나 절망 따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김근태는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생각한 낭만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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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이백과 두보의 한시를 읽으며 그들의 풍류와 인정을 음미하다 ▲이두시신평손종섭 지음 | 김영사 | 520쪽 | 1만7000원 ‘반과산 머리에서 두보를 만나니/머리에 쓴 갓그림자 정오를 가리켰네/“지난번 헤어진 후로 무척이나 수척한데/여전히 시 짓기에 고심해서인지요?” ’ 이백이 지은 ‘농담 삼아 두보에게’라는 시다. 이백과 두보는 열한 살 차이임에도 서로 스스럼없었다고 한다. 시선(詩仙) 이백과 시성(詩聖)으로 일컬어지는 두보. 이 두 사람의 시를 나란히 두고 음미하는 맛은 어떤 것일까. <이두시신평>은 이백과 두보의 절창을 재료로 만들어낸 한상차림이다. 한시 104수에 대한 번역과 해설을 담아냈는데 씹어삼키고 좋고, 소화하기에도 용이하다. 이는 전적으로 저자의 손맛에서 기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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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영웅의 파란만장한 모험·사랑 담은 2400년전 고대 인도 서사시 ▲라마야나R. K. 나라얀 편저·김석희 옮김 | 아시아 | 304쪽 | 1만5800원 ‘라마야나’ 이야기는 인도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 기원전 4세기쯤에 지어진 이 서사시는 오랜 세월 동안 인도인에게 전해내려오면서 인도 문화의 한 부분으로 뿌리내렸다. <라마야나>는 발미키라는 시인이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로 창작해낸 이래 힌두어, 벵골어, 아삼어 등 인도 지역 내 수많은 다른 언어로 재창작됐다. 하나의 이야기가 시간과 사람의 손길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책 <라마야나>는 11세기 캄반이라는 시인이 타밀어로 쓴 것을 저본으로 삼아 20세기에 태어난 이야기꾼 나라얀에 의해 읽기 쉽게 소설처럼 다시 손본 것이다. 캄반은 밤마다 학자들의 도움을 얻어 빌미키의 원본을 연구했고, 낮에는 자작시를 수천 행씩 써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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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노벨상 수상 작가 파묵의 안내로 소설이 만드는 풍경 속을 거닐다 ▲ 소설과 소설가오르한 파묵 지음·이난아 옮김 | 민음사 | 190쪽 | 1만4000원 노벨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은 원래 화가 지망생이었다. 일곱 살 때부터 20대 초반까지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고 재능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화가의 꿈을 접고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림보다 소설이 세상에 대해 표현하고 싶은 바를 제대로 담을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파묵은 소설 쓰기를 ‘풍경화 그리기’에 빗댄다.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의 캐릭터, 플롯, 시간 따위가 아니라 묘사되는 장면의 전체, 즉 풍경이라고 한다. 책은 파묵의 소설 이론을 담고 있는데 그 핵심어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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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디브, 시간이 멈추면 치유가 시작된다 꼭두새벽에 올라탄 비행기는 9시간 만에 몰디브 말레공항에 도착했다. 4시간 시차 탓에 말레공항은 이른 아침이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푸르디 푸른 바다가 반갑다고 넘실댄다. 바닷바람 때문인지 햇살은 강렬하지만 후텁지근하지 않다. 심호흡을 해본다. 공기가 다르다. 몰디브가 가까워졌다. 인천공항~말레공항 직항 노선이 1년여 만에 다시 개설됐기 때문이다. 몰디브 국적의 메가 몰디브 항공사는 지난 8월26일부터 매주 한 차례 직항 노선을 재운항하기 시작했다. 인도 남서쪽 무수한 산호섬으로 이뤄진 나라 몰디브. 섬 하나하나가 개성을 갖춘 휴양지이다. 그래서 몰디브는 리조트의 천국으로 불린다. 말레공항에서 12인승 스피드 보트를 타고 남쪽으로 20여분 달려 ‘아다아란 바두’ 리조트에 들렀다. 바두는 수도 말레에서 가깝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일본인이 리조트를 운영해서인지 일식집 형태의 식당과 다다미형 객실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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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산채·인민·풀뿌리 등 10개 단어의 의미 변화로 중국을 독해하다 ▲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위화 지음·김태성 옮김 문학동네 | 358쪽 | 1만4000원 중국어에서 ‘산채(山寨)’라는 말은 원래 울타리 같은 방어시설을 갖춘 산장을 의미했다. 이 단어는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지’를 지칭하다 중국 경제가 급속 성장할 무렵 ‘짝퉁’을 뜻하는 단어로 굳어졌다. 한국 삼성 제품을 모방한 ‘Samsing’ 휴대폰은 일명 산채 휴대폰으로 불린다. 산채가 담고 있는 현대 중국인의 사회정서는 반권위, 반주류, 반독점 따위다. 따라서 과거라면 상상도 못할 산채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산채 마오쩌둥’, 즉 마오 전 주석 닮은꼴 선발대회 같은 이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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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랩’의 문턱에서 쭈뼛거리는 너, 네 마음을 랩으로 낭독해봐 ▲랩으로 인문학 하기…박하재홍 | 탐 | 240쪽 | 1만2000원 저자 박하재홍은 제주도에서 랩과 힙합을 가르치는 30대 중반의 래퍼다. 그는 한때 길거리를 무대 삼아 랩을 공연했다.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하며 시민운동에도 눈떴고 팔레스타인에 머물며 자원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는 랩처럼 자유분방한 삶을 산다. 그는 랩을 직업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도 젊은 시절 방황도 했고 나이 들면서 밥벌이에 대한 고민도 했을 것이다. 책을 통해 짐작건대 그는 이 모든 고민들을 랩을 통해 풀어나간 듯 보인다. 그는 랩에 빠졌고 랩은 그의 삶에서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또한 그는 랩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책에는 랩과 함께 성장해온 그의 경험담이 담겨있다. 랩을 접해보고 싶어 랩의 문턱에서 쭈뼛거리는 청소년들에게 유익한 경험담이 적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