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찬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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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시인들, ‘흑백영화’처럼 시와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을 추억하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정호승 외 지음 | 공감의기쁨 | 256쪽 | 1만3000원 “어머니는 내 시의 시작이자 끝이다. 지금도 나는 가난한 부뚜막에 놓여 있던 어머니의 낡은 시작노트를 잊지 못한다”(정호승). “열일고여덟 살 무렵 <농무>가 아직 내 책꽂이에 꽂히기 전, 까까머리 나는 이른바 고등학생 문단을 들락거리던 나름대로 ‘잘난’ 문학소년이었다”(안도현). 짧은 순간일지라도 20대에 시와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는가. 별 하나, 가을 바람 한 점에도 들뜨고, 떠나간 연인을 기다리듯 불면으로 밤을 뒤척여본 적이 있는가. 책은 중견 시인 정호승, 안도현, 장석남 그리고 문학평론가 하응백이 문학청년 시절 체험한 시와의 연애담을 묶었다. 그들이 어떤 시에 빠졌고, 어떤 시인에게 끌렸는지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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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전북지역 8곳, 스러진 절터에서 사그라지지 않는 불심을 찾다 ▲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이지누 지음 | 알마 | 344쪽 | 2만2000원 생공설법 완석점두(生公說法 頑石點頭). 중국 동진의 고승 축도생에 얽힌 고사에 나오는 말이다. 생공, 즉 축도생이 설법하자 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의미다. 축도생은 불력을 증명하려 사람 대신 돌들을 모아놓고 설법했다. 설법 도중 돌들이 하나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돌들이 설법에 감응해 고개를 끄덕인 것처럼 보였다. 축도생 이야기는 불교의 감화력, 성불에 대한 것이다. 저자 이지누는 고구려 보덕화상이 세웠다는 완주 경복사터에 서서 축도생을 떠올렸다. 보덕화상은 도교의 발흥에 맞서 지금의 완주에 경복사를 짓고 불력을 일으키고자 애썼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말하자면 종교 갈등을 해소하고자 노력한 고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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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암환자가 된 의사가 들려준 ‘삶의 행복한 마무리’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다…다비드 세르방 슈레베르 지음·권지현 옮김 | 중앙books | 227쪽 | 1만3000원 암환자는 행복주의자다. 암 선고 후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가 잦아들면 하찮은 것들에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 행복감은 태풍이 지난 후 찾아오는 청명한 하늘과 맑은 대기가 주는 느낌과 흡사하다. 살갗에 닿는 바람결, 구름 한 점도 더 없는 행복감을 준다. 암환자에게는 삶 자체가 환희이기 때문이다. 암환자 슈레베르도 마찬가지다. 그는 31세에 뇌종양이 발병, 19년 만에 암이 재발한다. 의사는 기껏 살아봐야 18개월이라 한다. 그는 죽음을 생각하며 마지막 하고 싶은 말들을 틈틈이 적었다. 책은 말기 암환자의 유언 같은 투병기이다. 하지만 극심한 두통과 마비 증세 속에서 써낸 글이지만 삶에 대한 행복감과 희망이 가득하다. ‘암환자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웃지도 못한다면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그의 일관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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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광장시장의 100여년, 지방 상인부터 대통령까지 찾은 진정한 ‘광장’ ▲광장시장 이야기김종광 지음 | 샘터 | 278쪽 | 1만4800원 새롭고 편리한 것만 좇는 속도의 시대에 서울 한복판 광장시장은 별종이다. 수십년 동안 꿋꿋하게 재래식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지일관의 힘은 시장을 설립하고 운영해온 광장회사에서 나온다. 광장회사는 을사조약 이후 남대문시장, 진고개(명동)로 밀려드는 일본 상인들에 맞서 조선 자본에 의해 세워졌다. 광장회사는 1905년 종로 4가에서 6가에 걸쳐 시장을 조성했는데 지금의 광장시장이 그것이다. 한국 최초의 사설 상설시장이 세워진 것이다. 광장회사는 100여년간 가업처럼 물려지며 광장시장을 지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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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속도’의 건축에 반(대)하여, 반할 수 있는 건축 꿈꾸다 ▲반하는 건축…함성호 지음 | 문예중앙 | 335쪽 | 1만5000원 책 제목의 ‘반하는’은 중의적이다. ‘반대한다(反)’는 의미와 ‘빠져든다(惑)’는 의미다. 상반된 의미를 함축한 ‘반하는’은 책 내용과 편집 방향을 압축하고 있다. 시인, 건축가, 만화 비평가, 공연 기획자 등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함성호는 두 개의 시선으로 현대건축을 사색한다. 그는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들고 있는 건축이라는 공간 체험 예술이 어떤 내밀한 욕망과 사회적 담론들을 내재하고 있는지 밝혀내려 했다”고 말한다. 앙리 르페브르는 공간은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일갈했다. 함성호도 이 관점에 동의한다. 건립부터 해체될 때까지 정권의 논리에 휘둘린 조선총독부 건물이 대표적 사례라고 한다. 세종문화회관, 롯데월드, 63빌딩, 국립민속박물관도 정치적 선전물이다. 그래서 건축은 왜곡된 역사를 담기도 한다. 현대건축은 한편으로 자본의 이익에 충실하다. 함성호는 오늘날 건축의 모든 길은 ‘자본의 이익’으로 통한다고 본다. 광고판에 점령당한 거리가 그렇고, 아파트 숲과 신도시 계획도 부동산 자본의 설계에 따라 만들어진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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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롤리타’ 작가가 안내하는 19세기 러시아 문학 거장들의 숲 ▲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이혜승 옮김 | 을유문화사 | 568쪽 | 1만8000원 소설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 귀족 출신으로 나치의 망령을 피해 1940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롤리타>로 유명세를 타기 전까지 그는 미국 대학 강단에서 문학을 강의했다. 이 책은 러시아 소설가들에 대한 나보코프의 강의록을 엮은 것이다. 나보코프의 문학관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나보코프는 19세기 러시아 작가만을 다뤘다. 그는 “한 편의 중세 시대 걸작을 제외하면 러시아 산문은 19세기의 임포라(로마시대 손잡이 달린 항아리) 안에 다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19세기를 러시아 산문의 황금기로 규정했다. 책에서 다룬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고리키 등이 이 황금기를 일군 작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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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오지를 찾아간 시인들, 숨어든 삶 사이를 마음으로 거닐다 ▲시인의 오지 기행-고요로 들다박후기 외 지음 | 문학세계사 | 331쪽 | 1만4000원 강원도 살둔, 치악산 금대계곡, 서해 세어도, 거제 대포마을, 괴산 중말…. 이른바 오지라는 곳이다. 요즘 세상에 오지가 얼마나 되겠나 싶지만 여전히 꼭꼭 숨은 땅이 드문드문 있다. 문명의 발길로부터, 도시인의 호기심으로부터 숨은 오지를 찾아 시인들이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섰다. 이 책은 민통선에서 제주도까지 오지 23곳에 대한 기행문이다. TV 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에 등장하는 바람에 많이 알려진 만재도. 손택수가 만재도를 찾았을 때만 해도 외지인의 손이 안 탄 섬이었다. 신안군에서 바닷길로 가장 멀어 ‘먼뎃섬’이라 불리는 만재도는 고요의 섬이다. 손택수는 적막한 해변에 앉아 내면을 깊이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고요함의 가치를 재발견한다. 그는 생애 단 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만재도에 있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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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중국 최고 지도자들의 ‘한시 외교’ ▲한시, 마음을 움직이다…이규일 지음 | 리북 | 311쪽 | 1만3000원 ‘콩을 삶으려고 콩대를 태운다/콩은 솥에서 울어댄다/본래는 한뿌리에서 났는데/서로 졸여댐이 어찌 이리 급한가.’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의 아들 조식이 지은 ‘칠보시’다. 조식은 후계자로 지명된 형이 자신을 제거하려 들자 형에 대한 섭섭함과 울분을 이 시로 표현했다. 조식은 ‘콩과 콩대가 한뿌리에서 난 것처럼 형제도 한핏줄인데 왜 다투는가’라고 형에게 되묻고 있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은 1990년 2월 대만의 한 단체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이들을 맞이하며 ‘칠보시’를 읊었다. 중국과 대만은 형제 관계이니 서로 싸우지 말자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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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사회 문제의 해결 불가능함에 대한 절망, 일본을 ‘호러’로 이끌다 ▲호러국가 일본다카하시 도시오 지음·김재원 외 옮김 | 도서출판b | 207쪽 | 1만4000원 호러 소설을 미스터리 소설과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공포를 유발하는 주체와 행동의 ‘이해 불가능성’이다. 이해가 안되기에 더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유발하는 게 호러 소설이다. 이해가 불가능하면 해결도 불가능한 법이다. <호러국가 일본>은 이 같은 ‘해결 불가능성’을 지렛대 삼아 일본 사회의 병리현상을 포착한다. 일본은 호러물의 나라다. 소설, 게임, 만화, 영화 등에서 호러가 주류 콘텐츠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왜 일본은 호러물이 범람할까. 와세다대학 문학부 교수인 저자는 그 연유를 캐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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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산에 올라본 자는 안다, 사는 기적을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김별아 | 해냄 | 288쪽 | 1만3800원 소설가 김별아는 20개월간 총 39차례에 걸쳐 한반도 남측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는 백두대간 여정의 17차부터 39차까지의 기록이다. 책 구성도 등산 일정을 따라 23개의 토막글로 이뤄졌다. 이 책의 1~16차 여정을 담은 의 후속 이야기다. 김별아는 산을 오르면서 변화를 체험했다고 한다. 초반에는 완주에 대한 강박이 강했는데 산행을 거듭할수록 강박감은 소박한 소망으로 바뀌었다. 점차 마음을 비우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 산을 오르는 고통, 해내고야 말겠다는 오기, 불안 등을 다룬 고행록이라면 이 책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찬찬히 삶을 곱씹어보는 글로 채워져 있다. ‘산은 곧 삶’이라는 사색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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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아버지 뭐 하시니?’ 일상에서 만나는 인권침해 ▲휴먼필…공선옥 외 지음 | 삶이보이는창 | 280쪽 | 1만3000원 장애인인 작가 방귀희는 대학 수석 졸업 후 생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때 사회자는 패널로 나왔던 교수에게 “방귀희씨가 결혼할 수 있을까요”라고 무심코 물었다. 이 질문에 교수는 “아마 안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또다른 패널이 “왜 결혼을 못 할 거라 생각하느냐”며 되받아쳤다. 생방송 도중 설전이 오갔다. 방귀희는 피식 웃고 말았지만 생방송 추억은 오랫동안 씁쓸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시인 신동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느날 담임은 “아버지 뭐 하시니?”라고 물었다. 신동호는 호기롭게 “통장님”이라 대답했다. 순간 담임의 반응은 싸늘했다. 어린 신동호는 그 알듯말듯한 어른의 냉담함이 상처로 남았다. 이후 그는 어른들이 “아버지 뭐 하시냐”고 물을 때마다 쥐구멍부터 찾고 싶어졌다. 아버지의 자리로 아이의 자리를 규정하는 어른들의 태도 앞에서 속절없이 주눅든 경우는 신동호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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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베버와 사르트르, 제도·관습을 깨는 결혼을 꿈꾸다 지성인의 결혼…한넬로레 슐라퍼 지음·김선형 옮김 | 문예중앙 | 328쪽 | 1만5000원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임종할 때 그의 곁에는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그의 아내 마리안네 베버와 내연녀 엘제 야페였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친구이자 베버의 제자였다. 이 기묘한 삼각관계는 사회 통념상 불순하고 유지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삼각관계는 베버가 죽어서야 끝이 났다. 마리안네는 19세기 후반 독일 대학들이 여성에게 문을 열 때 입학했다.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성 평등, 자유 등에 대한 교양 세례를 받은 첫 세대이다. 그는 학문적 동반자 관계를 약속받으며 스승 베버와 결혼했다. 베버 부부는 가정이나 사회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지킬 것을 주변에 선언했다. 평등한 관계에는 성생활의 자유도 포함됐다. 이로써 외도는 이 부부에게 무의미한 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