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이기환 문화부 선임기자는 지난 8월31일 경향신문을 정년퇴임했고, 이후 ‘역사 스토리텔러’ 직함으로 경향신문에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를 주간경향에 ‘이기환의 Hi-story’를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습니다.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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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동전던지기, 세자 교체, 폐비 복위…종묘, 왕실의 ‘비밀 공간’에서 무슨 일? “종묘는 16세기부터 온전하게 남아 있는 유교 왕실 조상 사당의 뛰어난 예…전통 의례와 형태라는 무형문화유산의 중요 요소가 이곳에 지속….” 유네스코가 1995년 종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인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의 항목이다. 유네스코가 제시한 6가지 등재기준(OUV) 중 4번째(ⅸ)에 해당되는 항목이다. 즉 ‘(ⅸ)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석굴암은 본래 젖어 있었다”…“어둠 속에 가둔 ‘신라 걸작’ 해방시켜라?” “석굴암은 영원한 걸작이다. 동양문화가 최고조였을 때 그 영기(靈氣)를 살린 신라 사람들이 만들었다.”(야나기 무네요시)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의 ‘석굴암 예찬론’이다.(<예술> 1919년 2권 5호) 미술사학자 고유섭(1905~1944)은 “인도를 버릴지언정 세익스피어를 버리지 못한다던 영국처럼, 우리에게는 석굴암이 있다”고 했다.(1934년 10월13일) 극찬이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트럼프 금관’은 ‘합성’이지만 ‘기생 금관’은 ‘실사판’이었다…6점6색, 신라 금관의 비밀 “너희가 금관을 아느냐.” 요즘들어 신라 금관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의 모형을 선물한 것이 화제를 뿌린 것이다.(이 모형은 순금은 아니다. 구리에 소량의 금을 합금한 적동에 순금을 도금한 금동관이다.) 어쨌든 그 덕분일까. 12월14일까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리는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 특별전은 ‘오픈런’이 벌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또한 국내에서 출토된 금관 6점이 사상 처음으로 한꺼번에 모이는 자리라는 점도 ‘관객 폭발’을 유도했다. 결국 관람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이번 기회에 신라 금관을 둘러싼 이야깃거리의 정수만 골라 소개하려 한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반역자’ 연남생, ‘망국 군주’ 보장왕…고구려 멸망 후 그들의 엇갈린 행적 ‘고충운, 발해인. 선조는 해동 구려국의 왕족…증조 할아버지는 당나라(皇)의 국내성왕(國內城王), 할아버지는 국내성 좌상(左相)….’ 얼마전 신라사학회 주최 발표회에서 알쏭달쏭한 내용의 따끈따끈한 논문이 새롭게 소개되었다. 루정호(樓正豪·러우정하오) 절강(浙江·저장)해양대 교수의 ‘고구려 유민 고충운 묘지명 고찰’ 논문이었다. 멸망 후 당나라로 끌려온 고구려 유민 4세대인 고충운(?~774)의 행적을 기록한 돌판(묘지·墓誌) 관련 연구다. 고충운 묘지명은 ‘평원 발해인 출신인 고충운의 선조는 해동 구려국(고구려)의 왕족이며 고구려 멸망 때 포로로 잡혀왔고, 이후 고씨를 성씨로 정했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사초 쓰는 심정’으로…‘난신적자’를 처단하라 “사초를 쓰는 자세로 세심하게 살펴가며…특별검사의 직을 수행하겠다.” 추석 이후 후반기로 들어선 3대 특검의 수사를 재차 기대하며 조은석 내란특검의 취임 일성을 다시금 떠올린다. ‘사초 정신’의 강조이다. 그런데 ‘사초’하면 떠오르는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이 있다. 바로 ‘영조(재위 1724~1776)의 사초 소각(사건)’이다. 왜 조선의 중흥군주라는 ‘영조와 사초 소각 사건’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어 ‘갑툭튀’하는가. 그 사연을 들어보자.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3대 아닌 4대가 ‘망한(?)’ 독립운동 가문…“무릎 꿇어 노예 되지 않겠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더는 통용될 수 없도록….” 이재명 대통령이 8월14일 ‘광복 80주년, 대통령의 초대’ 행사에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다짐한 약속이다. 친일파 집안은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고, 독립투사의 가문은 불우한 삶을 대물림해온 쓰라린 역사를 일컫는 표현이다. 그런데 3대가 아니라 ‘4대가 망한’ 가문이 있다.(좀더 정확하게는 ‘4대가 고초를 겪은’이라는 표현이 맞다.) ‘임청각’(보물)으로 알려진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인 석주 이상룡(1858~1932)과 그 가문이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아부외교’의 끝판왕…삼국통일의 비법 된 진덕여왕의 ‘태평송’ ‘위대한 당나라 왕업을 여니…높은 황제의 포부 빛나도다…해와 달, 뭇별이 (당나라의) 만방을 두루 도네…우리 당나라 황제 밝게 비추리라.’(<삼국사기> ‘진덕여왕’조) 650년 신라 진덕여왕(재위 647~654)이 당나라 황제인 고종(649~683)에게 올린 ‘태평송’이다. 그 내용을 더 들여다보자. “…(당나라가) 전쟁을 그치니 천하가 안정되고 문치를 닦아 대대로 잇게 했도다. 하늘의 뜻을 잘 받드니 은혜의 비가 내리고…깊은 어짊은 해와 달에 짝할 만 하고 시운(時運)을 어루만져 태평세월을 갈구하도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허준은 왜 70번이나 탄핵 당했나…사람 살린 일이 부지기수인데… “병신년(1596) 선조가 태의 허준(1539~1615)을 불러 ‘…의서 한 권을 편집하도록 하라’고 명했다…그러다 정유재란 발발(1597)로 중단….” 월사 이정구(1564~1635)가 쓴 <동의보감> ‘서문’에 등장하는 편찬 시기이다. 1596년 선조의 명에 따라 허준이 책임지고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러다 정유재란 때문에 중단됐고, 이후 허준 단독으로 편찬 임무를 수행해 1610년 25권으로 완성하고 1613년 초간본이 빛을 보았다는 게 정설이었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내시라고 얕보지 마라’…나라 위해 목숨 바친 ‘환관 열전’ ‘내시(환관·내관)의 별장인 성북동 별서 화재.’ 얼마전 서울 소재 문화유산(명승)인 ‘성북동 별서’ 내 목조 건물인 송석정에서 불이 났다. 이 화재로 ‘성북동 별서’의 전체 영역 중에 1953년에 신축된 송석정의 일부(3분의 1)가 파괴되었다. ‘성북동 별서’가 어떤 유산일까. 1992년 ‘성락원’이라는 이름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명승’으로 재분류된 유산이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15살 소년왕의 ‘요절’ 미스터리…피살·의문사로 점철된 백제 왕가 ‘무덤 주인공=15세에 죽은 삼근왕(개로왕 손자)’. 최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조사·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웅진(공주) 백제 시절의 왕과 왕비·왕족이 묻힌 무령왕릉 및 왕릉원 가운데 2호분의 주인공을 ‘콕 찍어’ 특정한 것이다. 그 이가 보도자료 제목에 등장하는 ‘삼근왕’이다. 삼근왕은 477년 9월 피살된 아버지(문주왕·475~477)의 뒤를 이어 13살에 즉위했다가, 2년2개월 뒤(479년 11월) 요절한 소년 임금이다. ‘2호분=삼근왕’으로 특정하기 까지의 과정과 이유도 기막히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임은정 지검장은 왜 ‘열사’ 아닌 ‘검사 이준’을 ‘존경하는 선배’라 꼽았을까 “나는 이준 검사의 후배입니다.” 최근 임은정 검사가 서울동부지검장으로 발탁되었다는 소식과 더불어 여러 관련 기사가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그 가운데 2022년 6월7일 임 검사가 SNS(페이스북)에 게재한 글과 사진이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임검사가 검찰청 역사관에 마련된 ‘검사 이준의 상(흉상)’ 옆에서 찍은 사진이 첫번째요, 임검사가 “이준 검사의 후배로서 저도 이준 검사의 흉내를 낼 것” 이라고 다짐한 것이 두번째였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사랑의 묘약? 미의 표현?…15세 신라여인은 왜 ‘비단벌레 금동관’ 썼나 “이건 비단벌레 날개 아닌가.” 지난해(2024년) 12월이었다. 경주 황남동 120-2호에서 출토된 금동관을 정리하던 중 수상한 물체가 보였다. 관의 뒷면에 장식되어 있던 비단벌레 날개였다. 올해(2025년) 2~3월 본격적인 보존처리 결과 그 실체가 확연히 드러났다. 이 금동관은 4단의 출(出)자 모양 세움장식 3개, 사슴뿔 모양 세움장식 2개, 관테 등으로 구성되었다. 세움장식과 관테는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구멍을 뚫어 만들었다. 그렇게 금동관 곳곳에 뚫어놓은 구멍을 영롱한 빛깔의 비단벌레 날개로 메워 장식한 것이다. 이 비단벌레 날개 장식은 모두 13곳에서 15장이 수착(흡착과 흡수가 동시에 진행)된 상태로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