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이기환 문화부 선임기자는 지난 8월31일 경향신문을 정년퇴임했고, 이후 ‘역사 스토리텔러’ 직함으로 경향신문에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를 주간경향에 ‘이기환의 Hi-story’를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습니다.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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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사면령 남발이 문제였나’…1400명 사형시킨 세종의 두 얼굴 “내가 팔아넘긴 장물인데, 보물로 지정되었네요.”(장물업자 ㄱ) 2016년 7월 어느 날이었다. 경기북부경찰청 광역수사대 김창배 수사관(현 광역수사1반장)에게 “국가유산청이 보물로 지정한 유물이 사실은 장물이며, 그 유물이 경북 영천의 사설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 유물은 조선 형법의 근간이 되었던 <대명률>(명나라 법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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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사랑하는 당신!” 2000년 전 죽은 남편의 가슴에 얹은 ‘망부가’ 거울 ‘○○○ 파경….’ 이혼이나 이별을 알리는 기사 제목에 즐겨 등장하는 용어가 ‘파경(破鏡)’이다. 거울이 깨졌으니 돌이킬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면 ‘파경’에는 ‘중원(重圓·다시 원을 이룸)’이 붙어 ‘파경중원(破鏡重圓)’, 즉 ‘이별(파경) 후 재회(중원)’가 본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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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백제 후예’ 자처한 데라우치 총독…“선원전 현판·원구단 건물 뜯어간 범인 맞다” “12월 말 후쿠오카(福岡) 경매에서 아주 중요한 물건이 출품된답니다.” 2023년 11월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도쿄(東京) 지사를 통해 깜짝 놀랄만한 정보가 입수되었다. 12월26일 일본 후쿠오카 유메카이(友茗會) 옥션에서 특별한 경매가 예정돼있다는 소식이었다. 경매에 앞서 인터넷상에 공개된 출품 목록에 과연 눈길을 잡아끄는 유물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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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문화유산, ‘보이지 않는 빛’으로 들춰보니…‘아차 실수!’, ‘인간미’까지 찾아냈다 햇빛이 ‘일곱색깔 무지개’로 분리된다는 것을 증명한 이는 영국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1642~1727)이다. 1672년 뉴턴은 깜깜한 방의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무지개색으로 바뀌고 볼록렌즈로 합친 빛이 두번째 프리즘을 통과하면 다시 백색광으로 바뀌는 실험을 했다. 이것이 가시광선(可視光線)이다. 사람들은 이 가시광선만이 빛인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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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신라 태자는 주색잡기에 빠졌다?”…‘태자궁’ 출현에 풀린 ‘50년 오해’ 경주 시내에 아주 매력적인 핫플레이스가 있다. ‘동궁과 월지’이다. 야경, 은은한 달빛에 비치는 ‘연못(월지) 위의 데칼코마니 뷰’는 절로 감탄사를 자아낸다. 그런데 이 ‘동궁과 월지’ 명칭은 좀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낯설다. 오랫동안 ‘안압지’ 명칭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안압지’는 기러기(안·雁)와 오리(압·鴨)가 뛰노는 연못(지·池)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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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피 토한 고종, 통곡한 총리, 폭발한 민심…‘을씨년스러웠던’ 1905년 을사년 ‘을씨년스럽다’는 ‘2025년 을사년’을 맞아 더욱 인구에 회자되는 표현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이 말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을사년’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처럼 떠돌고 있다. ■을사년, 을씨년 하지만 1855년 편찬된 조재삼(1806~1866)의 <송남잡지>에 다른 설명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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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돼지코’ 집터로 유명한 ‘송국리’ 유적…택지 개발로 탄생한 청동기시대 도시? “큰일났습니다. 지금 마을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는 고분에 도굴꾼들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1974년 4월 어느 날 안승주 공주대 교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충남 부여 초촌면 송국리 주민 최영보씨였다. 최씨는 공주 남산리 유적 조사 때 잡역을 도와준 인연으로 안교수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4월19일 안교수는 김영배 국립공주박물관장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은 소나무가 총총히 들어서 있어 현지 주민의 안내 없이는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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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일기’ 없어 악인된 원균?…실록 ‘어전회의 회의록’ 등에 기록된 진면목 “이순신과 원균의 차이가 있어요. 이순신은 일기(난중일기)를 남겼고, 원균은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측근들에게 남긴 말의 요지란다. 물론 승장(이순신)과 패장(원균)이라는 점에서 찬사(이순신)와 비판(원균)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은 이순신에 비해 원균이 ‘만고의 역적’으로 전락한 이유 중 하나가 ‘이순신’처럼 기록을 남기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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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주 ‘봉황알 고분’은 1524년전 정변의 기록…5살 왕자, 이사지왕은 누구? 경주에서는 예부터 ‘봉황 알’ 전설이 구전되었다. 즉 누란의 위기에 선 10세기초였다. 풍수가가 고려 태조(918~943)에게 “배 모양으로 생긴 경주는 언젠가 좋은 바람을 타고 다시 일어날 수 있으니…침몰시켜야 한다”고 꼬드겼다. 풍수가는 이번에는 신라 임금을 찾아가 세치혀를 놀렸다. “봉황의 둥우리처럼 생긴 서울(경주)는 천년 동안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젠 봉황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려 합니다. 서울에 봉황의 알을 많이 만들어 두면 다른 곳으로 떠나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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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혼군? 용군? 폭군? …‘대통령 윤석열’은 역사에 어떤 지도자로 기록될까 어떤 이가 혼군(昏君·혹은 암군·暗君)이고, 또 어떤 이가 용군(庸君), 또 어떤 이가 폭군(暴君)인가. 잘못된 정치로 악명을 떨친 군주에 관한 평가도 구분된다. 율곡 이이(1536~1584)가 1569년(선조 2) 독서휴가(사가독서·賜暇讀書) 도중 임금(선조)에게 지어 올린 글(‘동호문답’)에서 명확하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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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총독 잡아와라!” 호통친 65세 독립투사…사형판결에 하늘이 노했다 “원산 세관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을 텐데, 어떻게 폭탄을 숨겨왔나?”(다치가와·立川 재판장) “수건에 싸서 개짐(생리대) 차듯 아래에 차고 상륙했다. 세관원들은 폭탄인지도 모르고 내 불알이 그렇게 큰 줄 알았겠지.”(강우규 의사) 강우규 의사(1855~1920)의 ‘사이토(齋藤) 총독 폭탄 투척 사건’의 첫 공판이 열린 1920년 2월14일 경성지방법원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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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고구려 태자가 신라왕에게 ‘무릎 꿇어라’ 했다”…제2광개토대왕비 ‘8자’의 비밀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하겠어요. 일전에 내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건흥(建興), 두 글자가 나타났다는 말이야, 아 눈이 번쩍 띄어서 전등불을 켜고 옆에 있는 탁본과 사진을 보니까, 그 글자가 나온다 말이에요….” 1979년 6월9일 충주 고구려 비문 판독세미나에 참석한 이병도 전 서울대 교수가 난데없는 ‘꿈의 계시론’을 소개했다. 그 해 2월 발견된 충주 고구려 비문의 해석을 위해 오매불망, 골몰하던 중 비석의 윗부분에서 ‘건흥’ 글자가 ‘현몽(現夢·꿈에 나타남)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