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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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청와대의 허망한 ‘정권 재창출 작전’ 여권이 여당 대표의 공천룰 합의를 두고 벌집 쑤신 듯 어수선하다. 청와대 직할부대를 자임하는 친박계에선 “오랑캐(야당)와 야합” “쿠데타” 등 날 선 언어들이 난무한다. 청와대까지 가세해 한바탕 난리법석이다. 친박계 표현대로라면 바야흐로 ‘골육상잔’의 드라마가 펼쳐질 참이다. 김무성 대표의 ‘부산 합의’를 두고 ‘위화도 회군’이란 말이 나올 정도니 권력 주류 중 주류들의 이런 요동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적어도 표면적으로 외면하기 어려운 명분에 이처럼 소동 외엔 마땅한 방도가 없는 권력 주류의 왜소함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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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유승민 파동’이 낳은 엉뚱한 결과 박근혜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찍어낸 ‘유승민 파동’은 임기 반환점을 앞둔 시점에 일어났다. 정권의 물리적 시간이 꺾어지는 3년차는 최고권력의 촉수가 예민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은 절반의 미래를 위한 포석과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 폭탄을 던진 것도 딱 이맘때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2010년) 카드를 꺼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2000년)을, 김영삼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구속’(1995년)을 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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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통합과 봉합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죽어서 얻는 게 있다’고 했더니 ‘이 사람아 죽으면 끝이지, 뭐가 더 있나’라고 하더라. 지난번 대선 때도 문재인 후보에게 이야기했다. ‘(특전사 시절) 낙하산 지고 뛸 때 펴진다는 보장이 있었느냐. 뭐가 겁나느냐’고 말이다. 난국의 지도자는 지략도 있고 배짱도 있어야 한다.” 최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전해준 이야기다. 여야를 넘나든 당대의 책사가 정치권, 특히 야당을 보며 안타까움과 함께 전한 충고다. ‘대선’이란 역사의 게임 앞에 선 장수들은 ‘뜻밖’에 유약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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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잔인한 봄, 통합의 정치 봄도 겨울도 아닌 몇 밤이 지나면, ‘4월’이다. 어느 시인의 ‘잔인한 달’은 동시에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T S 엘리엇 <황무지>) 시간이다. 어느새 공기는 노르스름 밝아지고, 콧가엔 푸릇한 내음이 감돈다. 1년 전 4월은 ‘잔인’했다. ‘아이들을 살리지 못했다’는 집단적 자괴감에 봄날은 ‘얼음감옥’이었다. 하지만 공감은 짧고, 망각은 빠르다. 서울 강남의 한 개인병원장은 “온기가 식으면 생명은 죽은 것이다. 온정이 사라진 사회는 죽은 자들의 사회다. 그만 됐으니 잊자고 하는 정말 잔인한 사회”라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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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유리벽 속 ‘공주님’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2013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방문을 ‘공주의 귀환’으로 묘사했다. ‘박근혜 공주가 파리에 다시 온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셰익스피어 소설 속 인물과 같은 운명을 가진 후계자”로 매김했다. 부모를 흉탄에 잃고 은둔의 17년을 견뎌내 마침내 권좌에 오른 삶의 여정을 부왕(父王)의 복수를 위해 걸었던 ‘햄릿’의 길에 비유한 것이다. 39년 만에 프랑스를 찾은 박 대통령에게 바친 일종의 문학적 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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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선거에만 ‘재빠른’ 바보들 “컴퓨터라는 건 그저 ‘재빠른 바보’일 뿐이다. 상상력이 없다. 행동을 할 수도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컴퓨터는 인간의 도구로만 남을 것이다.” 미국도서관협회가 1964년 최초의 영업용 컴퓨터 ‘유니박(UNIVAC)’에 대해 내놓은 성명이다. 빛의 속도로 달리는 지금 디지털 세상을 생각하면 실소(失笑)가 나온다. 그들이 50년 전 ‘재빠른 바보’라고 조롱한 그것 때문에 미국도서관협회는 종이 더미에 갇힌 ‘촌뜨기’의 상징쯤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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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친절한 근혜씨 ‘구중궁궐(九重宮闕)’이라고들 한다. 권력이 머무는 그곳을 두고 말이다. 아홉 겹 담장이 첩첩 둘러싼 크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음모·질시·암투 같은 단어들이 함께 떠올려지듯 세상과 떨어진 은밀함에 대한 이야기다. 성벽이 하도 높아서 바람에 실린 저잣거리의 숨소리도 아홉 번 팍팍한 다리를 쉬고 서야 갈 수 있는 심처(深處)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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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한민국에서 총리로 사는 법 운(運)은 힘이 세다.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좋든 나쁘든 운 때문으로 돌리는 것 외엔 달리 도리가 없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관운(官運)이 세다. 왕조시대 정사를 좌지우지하던 권신(權臣)도 아닐 터인데, 상상권 밖 ‘부활 총리’라는 시간의 법칙을 거스르는 성취를 이뤄냈으니 말이다. 버스도 지나가면 돌려세우지 못하는 게 세상 법칙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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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후 국가란 무엇인가 한국의 봄은 꽃이 아닌 슬픔으로 열린다. 묵은 계절이 가고 생명을 움틔우는 자연과 달리 한국의 봄엔 생명들을 떠나보낸 아픔이 흐른다. 4월 유채꽃 핀 남도(南島)에서부터 5월 광주까지 꽃길을 따라 슬픈 바람이 분다. 그렇게 한국의 봄날 마디마디엔 한(恨)들이 아롱아롱 맺혀 있다. 올봄은 많은 어린 꽃들을 잃은 슬픔이 더해져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라 전체가 무채색 공기에 갇힌 듯 침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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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후 뉴스를 못 보겠다 많은 분들이 ‘뉴스를 못 보겠다’고 합니다. 부끄럽고 비겁한 어른들의 마지막 양심은 그렇게 작동하나 봅니다. 평온하던 수요일 아침은 그렇게 벽력처럼 날아든 세월호 침몰 소식에 악몽이 됐습니다. 사고 소식은 시시각각 전파를 탑니다. 하루 종일, 그리고 다시 해가 뜬 오늘도 어떤 간절함들이 담긴 뉴스들이 화면에 가득합니다. 그곳에 ‘기적’이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들입니다. 하지만 갈수록 많은 분들이 ‘뉴스를 못 보겠다’고 고통스러워들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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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후 세금 포퓰리즘 지난 10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는 정부의 주택임대차시장 대책 성토장으로 변했다. “현장을 모른 채 만든 책상머리 정책” 등 분노어린 질책들이 잇달았다. 부동산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방침이 이유였다. 부동산 시장만 위축시키고, 세금은 세입자에게 전가돼 지방선거 여론만 나빠질 것이란 질타였다. 정부로선 지난해 8·8 세제개편안에 이어 다시 조그만 ‘증세안’을 꺼냈다가 호되게 당했다. 이처럼 정치권, 특히 여당은 ‘증세’ 이야기만 나오면 ‘경기’(驚氣)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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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후 도둑처럼 찾아온 통일론 새해 시작부터 어지러웠다. 한 언론사가 느닷없이 ‘통일이 미래다’라고 소리칠 때부터였다. 평소 남북화해와는 가장 거리가 먼 게 아닌가 생각했던 그들이다. 통일은 평화통일뿐이라 믿었기에 갑작스러운 그들의 구호가 커밍아웃인지, 다른 무엇인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대통령의 신년회견으로 어지럼증은 더 심해졌다. “통일은 대박”이란다. 통일과 대박, 상상도 못한 조어였다. 강경한 대북 원칙론으로 한반도만 얼어붙게 하는 것 아닐까 걱정했던 그 분이 맞나 싶었다. 이들의 너무도 느닷없는 동조현상에 짜고 나온 건 아닌가 의심도 했다. 지난 대선에서 한배를 탄 것처럼 밀고 끌어주던 그들이기에 의심은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