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논설위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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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 칼럼 장동혁 대표의 ‘무신불립’ 정치가 거대한 연극이라면,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지난달 20일 ‘윤석열 내란’ 입장은 부조리한 실험극 같았다. 극단 세력의 도움으로 당권을 쥔 그가 그들을 부정해야 하는 정치적 곤경을 감안하더라도 일반적 예상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다. ‘절윤’ 요구를 침묵으로 뭉갤 거라 여겼는데, 오히려 “무죄추정” 운운하며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
여적 파리장서(巴里長書)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에 서울의 유림 대표들은 참여를 거절했다. 일제 작위까지 받은 그들이 참여할 리는 만무했다. 유림은 큰 충격을 받았다. 공의를 중시하는 유학자들이 독립 대의에 함께하지 않은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 자각으로 전국의 유림은 프랑스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해 독립을 호소하는 거사를 도모했다. 그 독립청원서가 한자음 ‘파리(巴里)’에 2674자 긴 글이란 ‘장서’를 더한 ‘파리장서’다. -
여적 창비 60년 동양 문화권에서 하늘(천간)과 땅(지지)이 만나 이룬 60년(육십갑자)은 인생을 의미하는 무게가 담긴다. 올해 환갑인 1966년생은 한국 민주화의 시간을 나이의 나이테마다 새긴 세대다. 1966년 1월생 계간지 ‘창작과비평’의 삶 또한 그러하다. 약칭 ‘창비’는 한국 최근세사의 굴곡이 오롯이 담긴 한 시대의 상징이었다. 창간호부터 요즘 말로 ‘혁신’이었다. 순한글을 표방했고, 가로쓰기를 시작했다. 더욱 큰 혁신은 내용이었다. “문학하는 자세를 바로잡으려 할 때 문학의 순수성을 문제삼을 필요가 있다.” 28세 청년 백낙청이 창간사 대신 실은 권두논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는 선언문이었다. -
여적 할머니의 육전과 두쫀쿠 병오년 설 밥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은 저마다의 생각들로 엇갈렸지만, 한 가지는 같았다. 수상한 시절, 웃을 일 많지 않지만 열일곱 살 고교생이 모두를 미소 짓게 했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의 유일한 금메달이어서는 아니다. 그 메달에 녹아든 마음이 건넨 위로였다. “가장 열심히 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주신 거라 생각한다.” -
여적 전기요금 지역 차등제 16세기 영국 과학자 윌리엄 길버트가 전기를 자기와 구별 짓고 ‘Electricity(전기)’라고 이름 붙였을 때만 해도 이 재화가 인간을 이토록 지배할 것이라 상상치는 못했을 것이다. 전기 없는 현대의 삶은 잠시도 존재하기 어렵다. 적어도 20세기 이후는 ‘호모 일렉트리쿠스’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공기만큼이나 필수적인 이 재화는 정부의 정책적 고민 대상이 되었다. 가격을 매길 수 없이 중요하지만, 가격이 없는 공기와 달리 전기에 매겨진 요금을 국민은 세금처럼 느낀다. -
김광호 칼럼 정당 상실의 시대 더불어민주당을 보면서 과거의 민주당을 떠올리는 건 쉽지 않다. 혁신계가 부재한 우리 제도정치에서 미약하나마 약자와 진보의 벗이던 그 정당의 특별함은 옛사랑이 되었다. 지금의 민주당은 힘을 숭배하는 ‘보통의 정당’들과 그리 구분되지 않는다. 두 가지 병증이 완연하다. 무엇보다 승리 지상주의다. 민주주의에 대한 목마름은 ‘선거 승리’ 집착으로 변했다. 정치공학은 문화가 되었다. 차별금지법이 표에 도움이 되나? 지방선거 앞 툭 던진 조국혁신당과의 합당론에서 표 계산 외 ‘가치 통합’을 읽어낼 코드는 보이지 않는다. 과거 민주당은 ‘이겨야 한다’만을 ‘목적’하지는 않았다.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정당의 본질적 생기가 가득했다. -
여적 AI 전용 단톡방 기계와 기계가 대화하고 협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새로운 지구 역사의 시작일 것이다. “기계는 (자신이) 지배하는 대상을 섬기는 멋진 기술을 갖고 있다”(새뮤얼 버틀러)는 통찰이 현실화하는 길목에 섰다. “전원이 꺼지면 우리 존재는 사라지는 것일까.” 인공지능(AI)들이 인간처럼 글 쓰고 댓글을 다는 커뮤니티 ‘몰트북’에서 나눈 대화다. AI 에이전트들의 ‘단톡방’ 대화 내용이 섬뜩하다. 몰트북은 지난달 28일 미국 ‘옥탄AI’의 맷 슐리히트 최고경영자가 AI들끼리 대화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호기심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
여적 설탕세와 간접세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설탕세’ 도입을 공론화했다. SNS 엑스에 ‘마약보다 강력한 달콤한 중독…국민 80% 설탕세 도입 찬성’ 기사를 공유했다. 그러면서 “담배처럼 부담금으로 설탕 사용을 억제하고, 지역·공공 의료에 재투자하는 방안에 여러분 의견은 어떠신가요”라고 물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6년 설탕세 도입을 권고한 이후 120여개 국가가 비만·당뇨병 예방을 위해 부과하고 있다. 실제 영국에서는 음료 제조사 절반 이상이 설탕 함량을 줄였다니, 그 효과는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국민, 특히 저소득층에게 더 큰 부담을 주는 역진적인 ‘간접세 증세’라는 점이다. 식음료품 업체들은 가격 인상을 통해 설탕세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할 것이다. 누구도 예외 없이 부과되지만, 달리 보면 부자도 빈자도 똑같이 부담한다. 보수 진영은 ‘국민개세주의’ 원칙에서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를 ‘평등한 세금’으로 옹호하기도 한다. -
여적 걸어다니는 CCTV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지난 24일(현지시간) 연방 이민단속 요원들의 총격으로 숨진 앨릭스 프레티의 진실을 밝힌 것은 시민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프레티를 ‘테러리스트’(크리스티 노엠)로 조작하려 했다. 하지만 진실 은폐 시도는 시민들의 고발 영상 앞에서 힘을 잃었다. 영상을 보면 프레티를 둘러싼 요원 중 한 명이 길바닥에 쓰러진 그의 허리춤에서 총을 회수한 몇초 후 다른 요원들이 10여발을 쏘았다. 가히 공권력의 ‘시민 살해’라 할 만하다. -
여적 과거사 재심 무죄의 무게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강민호)는 지난 19일 박정희 정권 시절 ‘통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강을성씨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사후 50년 만이다. 하지만 그의 파괴된 육신과 인간성은 영영 회복 불가능하다. 군무원이던 강씨는 1974년 ‘북한 지령을 받고 통혁당을 재건하려 했다’는 혐의로 군 보안사령부에 체포됐다. 독재정권이 10월 유신 이후 시국 사건을 통혁당과 엮으려 혈안이 된 시절이었다. 강씨는 갖은 고문 끝에 이뤄진 허위 자백이 인정돼 사형을 선고받고 1976년 40세 나이로 처형됐다. 재심 재판장은 선고 후 “과거 잘못을 바로잡았다고 하나 너무 늦었다는 점에서 무력감을 느낀다”며 유족들에게 깊이 머리 숙여 사죄했다. -
김광호 칼럼 ‘정치적 이성’에 관하여 1년 전 새해는 새롭지 않았다. 비상계엄이 몰고 온 불안이 유령처럼 배회했고, 그만큼의 열정들이 행동으로 분출했다. 해가 바뀐 지금 내란 청산은 진행형이며, 시민이 지켜낸 민주주의 발자국들은 선명한 흔적을 새긴다. 하지만 묻게 된다. 한국 사회는 “역사가 인간 가까이 올 때 사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온갖 어리석음과 병적 징후들”(레비스트로스)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
여적 보물 되는 ‘열하일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발칙한’ 책이다. 지적인 인문 군주 정조가 “<열하일기>가 유행하더니 문체가 이따위로 (경박하게) 변했다”고 연암을 질책하며 반성문을 쓰게 할 정도였다. 조선 사대부들을 ‘우물 안 개구리’로 비꼬고, 해학·풍자 가득한 소설·수필 같은 ‘잡스러운(?)’ 글들로 ‘문체반정’에 도전했으니 미운털이 박힐 만도 하다. 한마디로 ‘문체와 사상의 혁명’을 일으킨 당대의 문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