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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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제2부속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가 2018년 아프리카 순방 때 보좌 실패를 이유로 미라 리카델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 경질을 요구하자, 백악관은 다음날 즉각 실행했다. 미국 전기작가 케이트 마턴은 대통령 배우자를 ‘역사를 완성하는 숨은 권력자’라고 했다. 1987년 법률로 퍼스트레이디가 백악관 직책이 된 미국과 달리, 한국 대통령 배우자는 권한·의무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다. 공적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의미다. 한마디로 민간인이다. 현실은 다르다. 늘 최고 권력자의 지근거리에 있기에 마지막 조언자가 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이 대통령 배우자의 위치다. ‘문고리 권력’에 앞서 ‘여사 권력’이 운위되는 이유다. 그래서 법적 위상과 별개로 공식 보좌를 받으며, 역대 정부에서 그 역할을 한 곳이 제2부속실이었다. 박정희 정부 때 육영수 여사의 대외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1·2 부속실로 분리한 게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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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올림픽 10연패 한국 양궁이 세계에 ‘무서운’ 이름을 알린 것은 1979년 독일 베를린 세계선수권 때였다. 18세 여고생 김진호가 무려 5관왕에 오르면서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 스포츠가 세계 1등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온 나라가 들썩인 건 당연했다. 1959년 수도여자중 체육교사 석봉근이 청계천 고물상에서 우연히 만난 서양식 활로 양궁의 씨가 뿌려진 지 20년 만이었다. 한국 양궁이 전설을 썼다. 여자 양궁 대표팀은 지난 28일 파리 올림픽 단체전에서 대회 10연패를 달성했다. 단체전이 시작된 서울 올림픽부터 36년간 단 한 차례도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다. 올림픽 11연패에 도전하는 미국 남자 수영 400m 혼계영팀과의 ‘전설 경쟁’은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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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 칼럼 윤·한의 결정적 순간 여권은 지금 ‘갈등의 지옥도’ 속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난데없이 던져진 ‘김건희 여사 문자’가 파노라마처럼 드러낸 풍경이다. 대통령은 여당 대표에게 역정을 내고, 그의 부인이 ‘문자 사과’를 하고, 대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권력은 체면을 잃고 권력답지 않으며 국정 협력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졌다. ‘배반’의 아우성에 파탄은 현실이다. 4·10 총선 이후 세 달,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관계는 기이했다. 여권 주류는 콕 집어 ‘이재명·조국 심판론’을 지목하며 한 전 위원장 총선 참패 책임론을 부각하고, 한 전 위원장은 대통령의 식사회동 제안을 뿌리쳤다. 무산되긴 했지만 전대 규칙에 ‘2인 지도체제’라는 기묘한 아이디어도 등장했다. 절윤(윤 대통령과 연을 끊음)·패윤(패륜) 등 온갖 배신 논쟁이 끓더니 전대를 코앞에 두고선 문자 사태까지 터졌다. 모두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 ‘한동훈 견제’다. 문자 속 ‘함께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라는 십수년 관계가 한순간 왜 이리 돌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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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한미일 동맹’과 ‘한일 동맹’ 동맹은 구속력 있는 조약·협정 등을 통해 군사적 협력을 하는 국가 간 관계를 의미한다. 안보 및 경제적 이해가 일치하고 오랜 협력과 신뢰의 기반 위에서야 가능하다. 영토분쟁이 있거나, 과거의 일로 국민들 사이에 적대감이 내재한다면 동맹으로 나아가기 쉽지 않다. 때아닌 ‘동맹’ 논란이 국회를 잠시 멈춰 세웠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일 대정부질문 도중 “정신 나간 국민의힘 의원들은 당 논평에서 ‘한·미·일 동맹’이라는 표현을 썼다. 일본은 독도에 영토적 야욕을 갖고 있는 나라인데 어떻게 동맹한다는 것이냐”고 비난한 게 발단이다. ‘정신 나간’ 표현에 여당은 격앙했고, 안 그래도 화약 냄새 가득한 22대 국회는 첫 대정부질문부터 파행을 겪었다. 국민의힘은 “한·미·일 동맹에서 미는 쏙 빼고 한·일 동맹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반발하면서도 ‘한·미·일 동맹’ 표현에 대해선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피해갔다. 한·일 사이 ‘동맹’은 이처럼 금기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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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스마일 골퍼’ 양희영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무대에서 뛰는 양희영은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여섯이다. 그의 하얀색 모자엔 ‘스마일’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통상 메인 후원사 로고가 있는 자리지만, 그게 없는 탓에 지난해 스스로 새겨넣었다. 그래서 ‘스마일 골퍼’로 통한다. 문양대로 17년 프로 생활 동안 편안한 날보다 힘든 때가 더 많았지만, 그는 늘 환하게 웃는다. 양희영이 23일(현지시간) LPGA 투어 시즌 세번째 메이저대회 KPMG위민스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프로 통산 6번째 우승이지만 메이저 대회는 처음이다. ‘은퇴 전 꼭 하고 싶었던 우승’이기에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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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배구여제 김연경 김연경이 성인 여자배구 무대에서 처음 태극마크를 단 것은 고3인 17세 때였다. 2005년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서 단숨에 대표팀 왼쪽 주포로 전체 득점 3위에 올랐다. 192㎝ 역대 최장신 스파이커의 출현이었다. 그해 겨울 흥국생명에서 국내 프로리그에 데뷔한 그는 전년도 꼴찌이던 팀을 정규시즌·챔피언결정전 통합우승으로 이끌었다. MVP·신인상 등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었다. 충격적인 등장이었다. 시작부터 그는 ‘제왕’이었다. 김연경이 지난 8일로 16년 국가대표를 온전히 마감했다. 3년 전 도쿄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으나 코로나19로 은퇴 경기가 뒤늦게 열렸다. 김연경이 ‘배구여제’로 불린 것은 압도적 실력 덕이다. 국내와 일본·튀르키예·중국 등 4개국 리그와 국가대표 경기에서 10년 넘게 세계 최고 공격수로 군림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선 MVP에 오르며 36년 만에 4강 신화를 썼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구기종목 사상 첫 메달(동메달)을 안겼던 여자배구 역사의 부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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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대통령의 ‘개인폰’ 2018년 6월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을 할 때다. 미국은 중국을 겨누며 ‘도청과의 전쟁’으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내밀한 대화는 휴대전화를 끄라고 했다가, 아예 배터리 분리까지 지시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골칫거리는 보안전문가 권고를 무시하고 일반 스마트폰으로 통화하고 트윗을 날려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그해 10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세 아이폰 중 보안장치 없는 개인 아이폰이 중국에 도청됐다고 보도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때는 청와대가 도청을 우려해 비화(秘話)폰을 쓴다는 야당 공격에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일반 휴대전화를 사용 중이라고 공개했다가 ‘보안의식 결여’라는 뭇매를 맞았다. 대통령의 통신수단은 이처럼 극도로 민감한 기밀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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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마리골드 ‘반드시 행복은 오고야 만다.’ 21일 헌법재판소 앞에는 노란색 종이꽃들이 피었다. 아시아권 첫 기후소송의 마지막 공개변론이 열린 날이다. 변론에 앞서 아기기후소송 청구인인 12세 한제아양과 기후활동가들은 재판정 밖에서 손수 접은 종이꽃을 손에 들었다. 이들은 “개인 역량만으론 해결될 수 없는 위기 앞에서 안전한 삶을 바라며 헌재 앞에 섰다”면서 헌재의 정의로운 결단을 촉구했다. 마리골드 종이꽃은 세상의 무관심에도 기후와 지구를 지켜내려는 염원을 담았다. 꽃말 ‘반드시 행복은 오고야 만다’처럼, 기후행복은 인류의 존재를 건 희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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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밀사의 커밍아웃 국내 정치든, 국제 정치든 출구 없이 꽉 막혔을 때 종종 ‘밀사(密使)’가 등장한다. 미·중관계 정상화를 끌어낸 헨리 키신저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1971년 비밀 방중이 대표적이다. 밀명을 이어주는 밀사의 조건은 역설적으로 신뢰다. 어떤 이야기든 솔직하게 꺼내놓으려면 비밀에 부쳐진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키신저와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의 비밀회담 핵심 내용이 온전히 공개된 것은 2002년 미 국가안보문서보관소가 회담 문서들에 대한 비밀을 해제하면서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회동을 둘러싼 비공식 특사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비공식 특사’니 곧 밀사인 셈이다. 요약하면 총선 참패 후 윤 대통령 지시로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이 이 대표 측 임혁백 전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과 회동 성사를 조율했다는 것이다. 서로 신뢰가 낮은 상황을 감안하면 밀사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윤·이 회동 열흘도 안 돼 밀사역을 맡은 메신저들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내밀한 내용까지 낱낱이 털어놓으니 놀라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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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 칼럼 총선 참패 여당이 뻔뻔할 수 있는 이유 보름이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국민의힘이 4·10 총선 참패를 잊고 원점으로 돌아가기엔 너무도 충분했다. 덩달아 여의도 정치도 총선 이전의 팍팍한 대결로 회귀했다. 너도나도 ‘총선 민심’을 말하지만 언제 총선의 충격이 있었느냐 싶은 풍경이다. 보수언론조차 과거엔 ‘혁신 쇼라도 하더니’라며 질책하고, “만년 2등의 체질화”라고 탄식도 쏟아내지만 소용이 없다. 집권여당의 기이한 이 평온은 총선의 최대 미스터리가 될 판이다. 역대급 참패를 수습할 비상대책위원회는 당선자보다 많은 낙선자들의 “혁신형” 절규를 뿌리치고 관리형으로 결론내더니, 너도나도 위원장을 고사했다. 전당대회 준비 외에 권한도 없는데 희생할 중진은 드물었다. 돌고 돌아 8년 전 은퇴한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가 책임을 맡았다. 이런 판에 총선 인재영입위원장·공천관리위원이던 ‘핵관 중 핵관’이 원내대표를 하겠다고 나서고, ‘윤심’인가 싶어 모두 꼬리를 내리니 경선이 미뤄지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이 정당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변화에 둔감한 초식공룡” “해변에 놀러 온 사람들”의 종합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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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한동훈의 ‘정치 112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11일 사퇴했다. 지난해 12월21일 그 자리를 지명받고 112일 만이다. “목련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이라 했지만, 현실은 짧은 ‘여의도 정치’의 막내림이다. “총선에 이기든 지든 4월10일 이후 인생이 좀 꼬이지 않겠나”라던 허세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됐다. 고군분투부터 독선까지, 그를 보는 당내와 보수의 시선은 착잡하다. 궁금해하는 것은 두 가지, ‘한동훈 정치는 왜 실패했을까’와 ‘정치적 미래는 있을까’이다. 당내에선 그의 실패와 정치에 대한 과도한 불신을 연결짓는다. 정치 본령에 해당할 ‘정치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다. 경험은 더 빈곤했다. “여의도 사투리”로 청산 대상을 지목하고 공격하는 데는 능했다. 검찰 출신의 그가 잘하는 일을 다시 했을 뿐이다. 정치 철학과 비전은 보이지 않았고 빈곤함만 노정됐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정치에 문제 있다고 보는데 야당을 향해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고 외쳐본들 역효과만 나지 않겠나.”(한 중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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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공룡정당’의 위기 한국은 공룡 연구의 보고다. 공룡 발자국 화석의 규모·다양성·보존 상태가 다 좋아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공룡은 6500만년 전까지 2억년 동안 지구의 주인이었다. 소행성 충돌 후 기후 재앙과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했다. 매머드와 달리 유전자가 전해지지 않아 복원도 불가능하다. 화석으로만 연구할 수 있어 ‘존재 절멸’의 대명사로 거론된다. 정치권에서도 공룡은 종종 소환된다. “날아오는 혜성을 보면서 멸종을 예감하는 공룡들의 심정.”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후 국민의힘 의원이 한 말이 화제다. 총선 참패의 절박감과 끝까지 민심과 맞서는 대통령실을 향한 원망이 뒤엉킨 소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