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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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골목 성명’과 ‘관저 성명’ “검찰의 태도는 진상규명이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1995년 12월2일 전두환), “수사기관이 국민을 기만하는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2025년 1월15일 윤석열). 두 ‘내란 수괴’ 혐의자의 마지막 항변은 30년 시차에도 빼닮았다. 15일 공수처·경찰의 체포에 직면해 윤석열이 공개한 2분48초짜리 ‘국민께 드리는 말씀’ 영상은 그보다 먼저 내란 수괴로 단죄받은 독재자의 ‘골목 성명’을 떠올리게 했다. 거짓·궤변·망상으로 점철된 윤석열의 영상은 ‘관저 성명’으로 적어둘 만하다. -
여적 LA 산불 걱정한 윤석열 권력자의 ‘허세’는 동서고금에 드문 일이 아니다. 선대부터 누적된 극심한 재정난에도 미국 독립을 지원해 경제를 파탄 낸 루이 16세의 허세는 대흉작에 굶주리던 인민들 봉기로 끝을 맞게 된다. 마지막 말은 “국민들이여 나는 무고하게 죽는다”였지만, 그의 죽음은 나라와 국민 사정은 물론 자신의 처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아둔함 때문이었다. 권력자의 허세는 민심과 동떨어져가는 불온한 신호지만, 권력에 취한 권력자는 기사가 된 돈키호테처럼 그 신호를 모르거나, 외면한다. -
김광호 칼럼 보수의 적(敵)들 대통령 윤석열의 몰락은 ‘보수의 멸족’이 될 것인가. 윤석열의 민주공화국 파괴 망동 이후 보수가 겪는 처절한 혼란은 모두 이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당초 ‘계륵’과도 같았던 좌충우돌 권력자는 보수의 발목을 꽉 잡아채는 모래수렁이 된 것 같다. 지난해 11월7일 ‘명태균 게이트’로 궁지에 몰린 윤석열의 대국민 사과 담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임기’에 관한 것이었다. 담화문을 마지못한 듯 읽어가던 그는 유독 한 대목에서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저는 2027년 5월9일, 제 임기를 마치는 그날까지, 모든 힘을 쏟아 일을 하겠습니다.” 그러고 한 달도 안 돼 자폭적 비상계엄이라니, 임기를 지킬 수단은 이 분열증적 도박을 말하는 것이었나. 야당의 국정 방해를 핑계 댔지만, 자신과 부인의 ‘비리 방탄’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
여적 한강의 ‘언어’와 계엄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연결한다.” 한강 작가가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 후 연회 연설에서 밝힌 소감이다. ‘사유하는 존재’ 인간은 언어로 표현되고 기록된다. “생각이 자라나는 영혼의 피”(비트켄슈타인)인 언어는 기록으로 남아 시공을 초월해 인간을 잇는다. 연결된 언어는 인간을 각성시키고, 그 힘 앞에서 어떤 거짓도 무력하다. 인간은 ‘말’로 이루어져 있다. -
여적 서문시장의 ‘윤석열 지우기’ 보수의 중심 대구에서도 서문시장은 성지로 통한다. 상인만 2만명인 이 거대 시장은 보수 정치인들이 철만 되면 힘 받으려, 기 받으려 ‘순례’하듯 찾는 곳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직선제 개헌 직후인 1987년 서문시장을 찾아 “보통 사람 노태우”를 외쳤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세 차례 대선 후보 시절이나 정치적 곤경에 처할 때마다 방문했다. 전 대통령 박근혜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불던 2004년,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직이 위태롭던 2016년 서문시장을 찾았다. 2016년 방문 땐 “미안하다”고 했지만, 차가운 민심에 10분 만에 돌아나와야 했다. -
여적 ‘화석상 1위’ 대한민국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핏빛 노을을 배경으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인물을 담고 있다. 비명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듯 착각이 들 만큼 생생하다. “해 질 녘이었고 나는 약간의 우울함을 느꼈다. 나는 멈춰 서서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뭉크가 붙인 제목은 ‘자연의 절규’였다. 1893년 작품임을 생각하면 그는 인류의 미래를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역대급 폭염·홍수가 되풀이되고 식량·식수난에 ‘기후플레이션’까지 삶을 옥죄는 현재를 살아내는 인류는 뭉크의 이 ‘절규’가 실감날 것이다. -
여적 낙동강 ‘녹조 독소’ 해마다 여름이면 낙동강은 융단을 깔아놓은 듯 짙은 녹색으로 뒤덮인다. 빛 하나 들어갈 틈 없는 녹색의 강을 보노라면 무더위만큼이나 숨이 턱 막힌다. 낙동강 녹조(綠潮)가 물 밖으로 나와 대기에 머물며 사람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낙동강네트워크·대한하천학회·환경운동연합은 7일 기자회견을 열고 녹조 독소의 인체유입 연구 1차 결과를 발표했다. 계명대 동산병원 등의 연구 결과 22명의 주민 중 11명에게서 ‘남세균’ 유전자가 발견됐다. 이들은 재채기·후각이상과 눈·피부 가려움증, 두통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미국 마이애미 의대의 한 전문가는 공기 중 녹조에 장기 노출될 경우 치매·파킨슨병 등을 유발할 수 있어 “ ‘조용한 살인자’로 불러야 한다”고 경고했다. -
김광호 칼럼 확증편향 정부의 벌거벗은 임금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권한은 있는데 책임은 없다’고,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일 터다. 윤석열 대통령의 세번째 국정브리핑(8월29일)은 ‘확증편향 정부’에 대한 심리적 마지노선을 무너트렸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직후 “한국 정부가 확증편향에 갇혀 있다”는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의 비웃음에도 주저했지만, 이젠 그 사실을 선선히 받아들여야 할 듯하다. 경제·재정, 외교·안보, 사회개혁을 망라해 살뜰하게도 자화자찬하는데, 그 동떨어진 민심과의 거리는 대통령 말마따나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다. -
여적 “국회만 없으면…” 김문수의 망발 국회가 없다면, 장관은 필요할까. ‘권력자 1인과 나머지’뿐인 나라가 되지 않겠는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4일 KBS 1라디오에서 “국회만 없으면 장관 할 만한 것 같다”고 또 한번 ‘황당 발언’을 했다. “인사청문하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라는 이유였다. 또 “국회에 나오는 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 어제, 그저께도 계속 (예산) 결산심사 때문에 국회에 나왔다”고 했다. 진행자의 ‘국회 경시 발언’ 우려에 김 장관은 “국회를 너무 중시해서 아주 무겁다”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
여적 헌법 위의 ‘시위세(示威稅) 발상’ 집회·시위를 위해 세금을 내야 한다면 민주주의 국가일까. 14년 전 이탈리아 로마를 ‘민주주의 논쟁’으로 빠트렸던 ‘시위세’ 주장이 26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등장했다. 김민전 최고위원은 시민단체의 집회·시위로 경찰력이 동원돼 예산이 쓰이는 만큼 “대가를 지불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세 원칙의 하나인 ‘수익자 부담 원칙’을 빼들었다. 국민 기본권인 ‘집회·결사의 자유’(헌법 21조)를 수호해야 할 민주주의 국가 정치인의 발언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망언이다. -
여적 교토국제고의 우승 야구는 유독 여름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 경기장 외야를 감싸던 플라타너스 신록이 짙은 광채를 뿌릴 때 야구의 열정은 절정이었다. 국내 고교야구팀이 다 모인 봉황대기나 만화·영화로 접한 일본 야구 문화의 정수 고시엔(甲子園)이 여름에 열린 것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전교생 130여명의 작은 한국계 학교가 100년 전통 여름 고시엔에서 우승한 울림이 한·일 양국에서 작지 않다. 청춘의 열정 같은 고시엔의 서사는 기적을 갈망하기 마련이고, 이번엔 교토국제고가 주인공이다. 한때 폐교를 걱정하던 학교가 반전을 만들려 시작한 야구부가, 첫 경기 0-34의 참패 후 25년 만에 오른 고시엔 정상이다. 외야까지 60~70m의 정상적 타격·수비 연습조차 어려운 교정에서 이뤄낸 성취였다. 전국 3441개 학교 중에서 지역예선을 뚫고 49개교만 출전하니 본선에 나서는 것 자체가 이미 ‘작은 우승’이다. -
김광호 칼럼 검찰 정권의 무너진 ‘법 앞의 평등’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11조)고 선언한다. 누구든 성별·종교·신분에 의해 차별받지 않으며, 사회적 특수계급은 인정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정수를 담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법 앞에 평등한가. 혹여 “누더기를 걸치면 숭숭 뚫린 구멍으로 티끌만 한 죄악도 들여다보이지만 대례복이나 모피 외투를 걸치면 모든 게 감춰지”(<리어왕>)는 그런 사회는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