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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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통합과 봉합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죽어서 얻는 게 있다’고 했더니 ‘이 사람아 죽으면 끝이지, 뭐가 더 있나’라고 하더라. 지난번 대선 때도 문재인 후보에게 이야기했다. ‘(특전사 시절) 낙하산 지고 뛸 때 펴진다는 보장이 있었느냐. 뭐가 겁나느냐’고 말이다. 난국의 지도자는 지략도 있고 배짱도 있어야 한다.” 최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전해준 이야기다. 여야를 넘나든 당대의 책사가 정치권, 특히 야당을 보며 안타까움과 함께 전한 충고다. ‘대선’이란 역사의 게임 앞에 선 장수들은 ‘뜻밖’에 유약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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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잔인한 봄, 통합의 정치 봄도 겨울도 아닌 몇 밤이 지나면, ‘4월’이다. 어느 시인의 ‘잔인한 달’은 동시에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T S 엘리엇 <황무지>) 시간이다. 어느새 공기는 노르스름 밝아지고, 콧가엔 푸릇한 내음이 감돈다. 1년 전 4월은 ‘잔인’했다. ‘아이들을 살리지 못했다’는 집단적 자괴감에 봄날은 ‘얼음감옥’이었다. 하지만 공감은 짧고, 망각은 빠르다. 서울 강남의 한 개인병원장은 “온기가 식으면 생명은 죽은 것이다. 온정이 사라진 사회는 죽은 자들의 사회다. 그만 됐으니 잊자고 하는 정말 잔인한 사회”라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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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유리벽 속 ‘공주님’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2013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방문을 ‘공주의 귀환’으로 묘사했다. ‘박근혜 공주가 파리에 다시 온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셰익스피어 소설 속 인물과 같은 운명을 가진 후계자”로 매김했다. 부모를 흉탄에 잃고 은둔의 17년을 견뎌내 마침내 권좌에 오른 삶의 여정을 부왕(父王)의 복수를 위해 걸었던 ‘햄릿’의 길에 비유한 것이다. 39년 만에 프랑스를 찾은 박 대통령에게 바친 일종의 문학적 헌사였다. 하지만 당시 그들의 ‘왕조’적 묘사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들 인식 속에서 한국과 그 대통령은 여전히 1970년대에 뿌리를 둔 것 같은 마뜩잖음 때문이었다. 조금은 국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듯 걸렸다. 프랑스 언론의 이 같은 프리즘은 박근혜 정권이 얼마나 ‘복고(復古)’적 아우라에 싸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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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선거에만 ‘재빠른’ 바보들 “컴퓨터라는 건 그저 ‘재빠른 바보’일 뿐이다. 상상력이 없다. 행동을 할 수도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컴퓨터는 인간의 도구로만 남을 것이다.” 미국도서관협회가 1964년 최초의 영업용 컴퓨터 ‘유니박(UNIVAC)’에 대해 내놓은 성명이다. 빛의 속도로 달리는 지금 디지털 세상을 생각하면 실소(失笑)가 나온다. 그들이 50년 전 ‘재빠른 바보’라고 조롱한 그것 때문에 미국도서관협회는 종이 더미에 갇힌 ‘촌뜨기’의 상징쯤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지금 우리 국민은 어떻습니까. 하루하루가 불안합니다. 국가의 성장이 국민 개개인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2012년 8월20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수락연설)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국가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느끼십니까? 나의 어려움을 함께 걱정해주는 정부라고 생각하십니까?”(2012년 9월16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 수락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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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친절한 근혜씨 ‘구중궁궐(九重宮闕)’이라고들 한다. 권력이 머무는 그곳을 두고 말이다. 아홉 겹 담장이 첩첩 둘러싼 크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음모·질시·암투 같은 단어들이 함께 떠올려지듯 세상과 떨어진 은밀함에 대한 이야기다. 성벽이 하도 높아서 바람에 실린 저잣거리의 숨소리도 아홉 번 팍팍한 다리를 쉬고 서야 갈 수 있는 심처(深處)라고 한다. 권력은 속성상 ‘비밀’과 친근하다. 아니 친하고 싶어 한다. “위엄을 이룬 군주는 약속을 가벼이 하고 간교함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법을 알며 공허한 원칙들에 얽매인 자들을 이긴 사람들”(마키아벨리 <군주론>)이기에 권력은 솔직할 수도 친절할 수도 없을 터이다. ‘비밀’이 특권처럼 비치는 세태 탓도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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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한민국에서 총리로 사는 법 운(運)은 힘이 세다.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좋든 나쁘든 운 때문으로 돌리는 것 외엔 달리 도리가 없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관운(官運)이 세다. 왕조시대 정사를 좌지우지하던 권신(權臣)도 아닐 터인데, 상상권 밖 ‘부활 총리’라는 시간의 법칙을 거스르는 성취를 이뤄냈으니 말이다. 버스도 지나가면 돌려세우지 못하는 게 세상 법칙인데…. 실상 총리 시작부터가 김용준 후보자 낙마로 가능했던 것을 생각하면, 박근혜 정부 이후 ‘그’ 한 사람을 위해 모두 3명이 무대에서 사라졌다. 인사청문 링에 오르는 족족 녹다운당했다. 박근혜 정부의 협량(狹量)한 인재풀을 감안하면 ‘총리 정홍원’의 관운은 이 정부 5년 내내 이어질지 모른다는 농담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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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후 국가란 무엇인가 한국의 봄은 꽃이 아닌 슬픔으로 열린다. 묵은 계절이 가고 생명을 움틔우는 자연과 달리 한국의 봄엔 생명들을 떠나보낸 아픔이 흐른다. 4월 유채꽃 핀 남도(南島)에서부터 5월 광주까지 꽃길을 따라 슬픈 바람이 분다. 그렇게 한국의 봄날 마디마디엔 한(恨)들이 아롱아롱 맺혀 있다. 올봄은 많은 어린 꽃들을 잃은 슬픔이 더해져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라 전체가 무채색 공기에 갇힌 듯 침울하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 잔인한 봄날을 지나는 우리 가슴을 납덩이처럼 누르는 화두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서울대 교수 시국선언)는 질타처럼 ‘국가의 배반’이 가시처럼 마음에 박힌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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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후 뉴스를 못 보겠다 많은 분들이 ‘뉴스를 못 보겠다’고 합니다. 부끄럽고 비겁한 어른들의 마지막 양심은 그렇게 작동하나 봅니다. 평온하던 수요일 아침은 그렇게 벽력처럼 날아든 세월호 침몰 소식에 악몽이 됐습니다. 사고 소식은 시시각각 전파를 탑니다. 하루 종일, 그리고 다시 해가 뜬 오늘도 어떤 간절함들이 담긴 뉴스들이 화면에 가득합니다. 그곳에 ‘기적’이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들입니다. 하지만 갈수록 많은 분들이 ‘뉴스를 못 보겠다’고 고통스러워들 하십니다. 태양의 시절을 지나야 할 어린 학생들이 어둠 속에서 겪었을 고통이, 그 고통에 대한 죄책감이 바늘처럼 심장을 찌르기 때문입니다. 참 견디기 힘듭니다. 직업상 어쩔 수 없이 뉴스를 지켜봐야 하지만, 힘겹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뉴스 아래 앉아 있는 이 시간이 지옥입니다. 저 또한 딸과 아들을 둔 아비인 때문입니다. 눈시울에 물기가 차 부옇게 흐려질 때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봅니다. 맥없는 걸음을 옮기며 애꿎은 담배만 허공으로 태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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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후 세금 포퓰리즘 지난 10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는 정부의 주택임대차시장 대책 성토장으로 변했다. “현장을 모른 채 만든 책상머리 정책” 등 분노어린 질책들이 잇달았다. 부동산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방침이 이유였다. 부동산 시장만 위축시키고, 세금은 세입자에게 전가돼 지방선거 여론만 나빠질 것이란 질타였다. 정부로선 지난해 8·8 세제개편안에 이어 다시 조그만 ‘증세안’을 꺼냈다가 호되게 당했다. 이처럼 정치권, 특히 여당은 ‘증세’ 이야기만 나오면 ‘경기’(驚氣)를 일으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10월30일 출입기자들과 산행한 후 오찬간담회에서 향후 국정운영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이 양반이 또 어떤 ‘폭탄 발언’으로 놀라게 할까. 열변은 1시간 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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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후 도둑처럼 찾아온 통일론 새해 시작부터 어지러웠다. 한 언론사가 느닷없이 ‘통일이 미래다’라고 소리칠 때부터였다. 평소 남북화해와는 가장 거리가 먼 게 아닌가 생각했던 그들이다. 통일은 평화통일뿐이라 믿었기에 갑작스러운 그들의 구호가 커밍아웃인지, 다른 무엇인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대통령의 신년회견으로 어지럼증은 더 심해졌다. “통일은 대박”이란다. 통일과 대박, 상상도 못한 조어였다. 강경한 대북 원칙론으로 한반도만 얼어붙게 하는 것 아닐까 걱정했던 그 분이 맞나 싶었다. 이들의 너무도 느닷없는 동조현상에 짜고 나온 건 아닌가 의심도 했다. 지난 대선에서 한배를 탄 것처럼 밀고 끌어주던 그들이기에 의심은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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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후 거리의 교황, 궁궐 속 대통령 그저께는 성탄절이었다. 믿든 안 믿든 한 해 끝을 어떤 종교적 거룩함 속에서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지난 한 해 자신의 자취와 주변을 고요와 애정의 눈으로 마주하게 하는 이 공기는 감사하다. 지난 한 해 교황 프란치스코는 낮고 힘든 자들 옆에 늘 함께하며 지구촌을 숙연케 한 ‘거리의 교황’이었다. 교황청 앞 노숙인 세 명이 그가 생일 아침 초대한 손님이었다. 얼굴을 덮은 수백개 종양 때문에 차별 속에 고통받아온 남자의 얼굴엔 입맞춤으로 천국의 경험을 선사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런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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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후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정치 논리학은 난해한 것,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치부하지만, 그나마 ‘일반화의 오류’는 가장 친숙하게 쓰는 논리학 용어일 것이다. 가끔 논쟁이나 토론 도중 폼나게 던지는 회심의 카드이기도 하다. 논리학에서 ‘성급한 일반화 오류(fallacy of hasty generalization)’는 ‘논쟁에서 가설을 설정하는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제한된 증거를 가지고 바로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 오류’를 말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큰소리 치곤 하지만 논리학에선 ‘일반화의 오류’가 되기 십상인 셈이다. 일상에선 부분을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현상을 ‘일반화의 오류’로 이해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