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논설위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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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불편’해질 용기가 있는가 한 세기 전인 20세기 초만 해도 인류의 가장 큰 사망원인은 ‘감염병’이었다. 1900년 의학통계를 보면 사망원인 1·2·3이 ‘폐렴과 독감’ ‘결핵’ ‘설사’ 같은 것이었다. 전체 사망원인의 절반을 차지했다(<바디>, 빌 브라이슨). ‘현대의학’을 구원한 페니실린이 등장하기 전(페니실린의 발견은 1928년, 대량생산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이니 인류는 세균과 바이러스들에 속수무책이었다. 그저 튼튼한 몸을 믿거나, 감염되지 않길 기도하는 게 전부였다. 정체도, 대책도 알 수 없는 그 작은 것들은 인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그 ‘무지의 공포’는 ‘재앙’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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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설날 아침에 일어났으면 하는 일들 하필 설 연휴 첫날 아침 칼럼이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봐도 도무지 ‘설’ ‘명절’이란 단어가 떠나지 않는다. 때가 주는 위압감에 꼼짝없이 갇혀 버렸다. 하지만 우리 명절엔 스토리가 없다.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엔 이야기들도 많은데. ‘설날은 까치인가…’라는 실없는 농담만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래서 물었다. ‘이번 설날 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냐’고. 상상으로라도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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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내 경우는 ‘도시이민 1.5세대’라 할 수 있겠다.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에 일터를 잡은 부모님들은 ‘이민 첫 세대’다. 한 번도 제대로 농촌의 삶을 산 적은 없다. 도시에서 태어났고, 고교까지 학창 시절도 그곳에서 보냈다. 서울에선 모두 “시골” 취급받는 대구지만. 그럼에도 ‘2세대’가 아닌 것은 ‘기억 유전자’ 한쪽에 또렷한 그곳의 감각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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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문재인 아저씨는 왜…” ‘수능’ 날이다. 1년에 한 차례 잠시 대한민국이 멈춰 서는 날이다. 꼭 1년 전 큰아이 수능 날, 종착점의 설렘은 고작 한 움큼, 두려움과 간절함으로 어깨에 멘 가방을 추스르며 돌아서던 뒷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30여년 전 고3 시절 밤마다 주방 한구석에 물 한 그릇을 떠놓으시던 어머니 모습도 겹쳐졌다. 이처럼 한국에서 입시는 집안의 큰일이다. 모두가 초조해하고 간절해진다. 그 하루에 세상이 결판이라도 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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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처음엔 덤덤했고, 나중엔 빠져들었다. 정치에서 문화 쪽으로 옮긴 변화 중 하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게 됐다는 것이다. 10여년 만이었다. 반쯤은 ‘일’이란 명분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시간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였을 것이다. TV에서도 볼 수 있는 걸 굳이 극장에서…. 더구나 요즘은 TV에서 옛 영화부터 최신 영화까지 마음대로 골라 볼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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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민족주의를 위한 변명 요즘 마음속을 맴도는 불안의 하나는 “나는 내셔널리스트인가” 하는 것이다. 의문이 아니라 불안이다. ‘노 저팬’의 일본 보이콧이 그리 걱정되지도 않고, 일본에 대한 정부의 ‘강 대 강’ 대응이 이상스럽지도 않다. 오히려 끈기 있게 이어지는 시민들의 ‘자발’적 불매운동에 감정이 고양되기도 한다. “애국심은 불한당들의 마지막 피난처”(새뮤얼 존슨)를 되뇌며 정치인의 “애국” 발언을 늘 의심하고, 지금도 한·일 시민들의 연대를 통한 미래를 희구하는 것을 생각하면 낯설다. 정부가 “관제 민족주의를 동원하고 있다”는 지적엔 멈칫하기도 한다. 그리 신실하지도 않았지만, 오래전 잊어버렸던 젊은 시절 운동권의 세례가 불쑥 튀어나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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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한·일의 ‘불가역적 시대’ 1965년 한일협정과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많은 면에서 닮아 있다. 50년의 시차를 둔 이들 외교 행위는 지금 한·일관계 암운의 출발점이다. ‘박정희·박근혜 부녀’의 정치적 부정(不正)을 흠잡고자 함이 아니다. 판박이처럼 닮은 내용의 ‘불구성(不具性)’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크게 3가지다. 피해 당사자(강제동원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를 배제한 국가의 폭력성, 주권자인 국민 의사에 반한 비정상 통치행위, 그리고 소위 ‘불가역적 종결’이라는 논쟁성이다. 이들 합의는 개인의 권리를 소멸해버린 국가의 전횡과 한 정권의 선택이 국가에 어떤 위기를 드리우는지 보여준다. ‘역사 파산’을 선언한 일본은 이를 근거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을 만들어 냈다. ‘사죄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환장할 역공 프레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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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전격 방미···“백악관 관계자 만날 것”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10일(현지시간) 일본의 대한국 수출 규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다고 YTN이 11일 보도했다. 김 2차장은 현지시간으로 이날 낮 미국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 YTN 기자에게 “백악관과 미 상·하원의 다양한 관계자들을 만나서 한·미 간 이슈들을 논의할 게 많아서 미국에 출장 왔다”고 밝혔다. 김 2차장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와 관련해 미국의 중재를 요청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 이슈도 당연히 논의할 것이다. 백악관 상대방과 만나서 얘기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YTN은 전했다. -
편집국에서 주권자의 명령 선거제도 개편과 의원정수 확대가 지금 정치개혁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꽉 막힌 정치에 변화를 줄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이 선거제는 지금 정치권의 가장 날카로운 논쟁점이다. 세대·지역·계층을 불문하고 균열 중인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게 있다면 “정치, 이대론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같아선 어떤 문제 해결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절감(切感) 때문이다. 정치는 지금 모든 실패와 악덕의 상징처럼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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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독재 타도’라는 위선 정치가 ‘성찰’을 잃어버리면 퇴행밖에 없다. 성찰은 ‘더 나아지겠다’는 의지와 노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찰은 ‘염치’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과거를 ‘객관의 거울’ 속에 넣고 미래의 교훈으로 삼는 일인 까닭이다. 자유한국당이 선거제 개편안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해 국회를 처음 점거한 지난달 25일 그들은 “독재 타도, 헌법 수호”를 구호로 외쳤다. 인간띠를 두르고 국회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자못 비장했다. 아수라장이었던 ‘동물국회’ 내내 그들은 여야 4당의 선거제 합의를 ‘좌파 독재’로 몰아세웠다. 그 내용의 황당함은 물론이거니와 더 큰 문제는 그들은 정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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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인생은 늦게 동참하는 자를 벌하리라 “분단 시기 동독과 서독 국민들이 경험한 ‘우리는 하나’라는 깊은 연대감은 국제적 상황이 통일에 대한 가망이 없어 보이는 시기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통일독일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의 회고록 <우리는 이렇게 통일했다> 서문의 한 부분이다. 때로 역사는 ‘희망’과 ‘낙관’의 힘으로 전진한다. 그의 ‘기억’은 격변 속에 있는 한반도 운명에도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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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유시민은 자신의 미래를 알까 ‘유시민 논쟁’이 다시 뜨겁다. 그가 새해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앞자리를 차지한 게 계기다. 정치권 안팎은 오래전 ‘정치 중단’을 선언하고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만 정치와 가는 끈을 남긴 그의 ‘강제 귀환’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유 이사장은 여전히 “정치 안 한다. 여론조사에서 빼달라”고 해명하며 연일 고개를 가로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