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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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여성들은 어떻게 ‘탁월한’ 피해자가 됐는가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소셜미디어에서 낯선 사람으로부터 메시지를 받는 순간 ‘지옥’ 문이 열린다. 누군가 가짜 계정을 만들고, 피해 여성인 척 친구 아버지에게 성적 콘텐츠를 보내거나 남자친구에게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거짓말을 퍼뜨려 인간관계를 파탄내는 것이다. 계정을 차단하면 거친 숨소리만 내는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온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전혀 알 길 없는 여성들은 공포에 떨다 일상이 부숴진다.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는 영국에서 사이버 스토커 매슈 하디가 수많은 여성을 상대로 수년 동안 벌인 범죄 행각의 일부다. 이 사건은 2022년 가디언의 시린 케일 기자가 최초로 보도했고, 넷플릭스 범죄 다큐멘터리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에서도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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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일본판 CIA 1941년 12월7일,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진주만 공격은 수많은 정보를 통해 예상된 일이었으나 미국은 오판을 했다. 일본을 얕본 대가는 컸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미국 중앙정보국(CIA) 창설은 진주만 공습을 탐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었다. 세계 최고 정보기관이 된 CIA는 공만큼이나 과도 적지 않다. 창설 이래 도·감청, 외국 요인 암살 등 비밀공작을 벌여 국내외 비난 여론이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는 2013년 전직 CIA 직원이자 국가안보국(NSA) 계약업체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고도화된 정보권력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고 거대한 ‘빅브러더’로 돌변하는지를 드러냈다. 정보기관이 전 세계를 엿듣고 통신기록을 무차별 수집·감시해왔다는 사실은 스노든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일이다. -
여적 ‘탈벅’ 운동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해 배를 난파시키고 죽게 했다. 위험을 알리는 경보장치 사이렌은 1819년 프랑스 물리학자 샤를 카냐르 드 라 투르가 세이렌에 착안해 붙인 이름이다. 1971년 미국 시애틀에 매장을 처음 연 스타벅스의 로고도 세이렌이다. 세이렌이 선원들을 홀렸듯이 사람들을 매료시켜 스타벅스에 자주 발걸음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바람이 담겼다. 그 유혹은 전 세계에 통했다. 1999년 한국에 진출한 스타벅스는 믹스커피에 익숙했던 대중의 입맛을 바꾸었고, 스타벅스가 입점한 상가는 ‘스세권’으로 불릴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독보적인 문화적 지위를 확립했다. 텀블러와 머그잔 등 다양한 굿즈 역시 충성 고객을 묶어두는 무기였을 것이다. -
여적 ‘관계맺기’의 두려움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21일 부부의날을 앞두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결혼을 주제로 올라온 글을 조사했다. 2만2095건 가운데 결혼을 행복하게 이야기한 글은 9.3%로 10건 중 1건도 되지 않았다. 결혼을 둘러싼 감정은 ‘두려움’(24.24%)이 가장 많았으며, ‘슬픔’ 비중은 최근 3년 새 9.5%에서 16.1%로 높아졌다. 혼인 건수 반등에 결혼 기피 흐름이 바뀐 것이라며 좋아하기엔, 결혼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불안’이 적잖다. -
경향의 눈 ‘쾌적한’ 사회, 우리는 왜 더 불쾌해졌는가 서울은 안정적이고 제법 평화롭다. 지하철에선 내릴 사람들이 모두 하차한 다음 승객들이 올라타고, 임신부 좌석은 대개 비어 있다. 거리에서 쓰레기와 마주칠 일도 드물다. 서울이 언제 이렇게 살기 좋은 도시가 됐지. 그런데 수년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이나 버스에 큰소리로 통화하는 무개념 승객이 흔했다. 지하철에서도 타고 내리는 승객들이 엉키곤 했다. 지금 보면 까마득한 옛날 얘기 같다. 우리는 매끄럽고 쾌적한 일상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이런 것들이 얼마나 최근에야 시작되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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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단팥빵 5개 지난달 초 경기 고양에서 80대 할머니가 단팥빵 5개를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할머니는 “남편이 좋아하는 단팥빵을 먹이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병을 앓는 남편을 20년째 홀로 수발해오고 있었다. 한 푼이 아쉬운 궁색한 처지에 단팥빵은 언감생심이었을 테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경찰은 처벌 대신 지자체의 긴급 생계비 지원을 알선했다. 이 사연에 먹먹해진 사람들이 많았는지 ‘할머니를 돕고 싶다’ ‘법보다 배려와 인정이 좋다’는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다. -
여적 나비쉼터 2018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코코>는 관객들이 눈물을 펑펑 쏟게 하는 영화다.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뮤지션을 꿈꾸던 멕시코 소년 미구엘이 전설적인 가수 에르네스토의 기타에 손을 댔다가 죽은 자들의 세상으로 들어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코코>는 멕시코인들이 ‘죽은 자들의 날’을 기념하는 풍습을 배경으로, 사후세계와 죽음을 부정적으로 느끼지 않도록 풀어냈다. 영화 말미 미구엘이 증조할머니 코코를 위해 노래 ‘리멤버 미(기억해 줘)’를 부르는 장면이 관객들의 눈물샘을 폭발시킨다. -
여적 성수동‘잉어킹’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의 캐릭터 피카츄는 만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그 귀여운 외양을 알 정도로 유명하다. 1996년 닌텐도 게임에서 시작된 포켓몬스터는 이듬해 만화가 방영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치솟았다. 151가지로 시작한 포켓몬들은 진화와 변종을 거듭하며 현재 1025종으로 불어났다. 포켓몬 세상에서 ‘잉어킹’은 보잘것없는 존재다. 능력이라곤 ‘튀어오르기’뿐인데, 적에겐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계속해서 튀어오르다 보면 강력한 용 ‘갸라도스’로 진화한다. 잉어킹 이야기는 낭만적인 성장담이다. 약자에서 강자로 변모하는 이 극적 서사는 팬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왔다. 그래서인지 해당 카드는 수집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 -
여적 ‘98년생 김현진’ 2016년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고 싸워왔던 김현진씨가 세상을 등졌다. 김씨의 변호를 맡았던 이은의 변호사는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짧았지만 빛나고 뜨거웠던 98년생 김현진님의 작별을 전한다”며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알렸다.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과거를 잊고 살려 했으나 너무 힘에 부쳤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2023년 11월 가해자인 시인 박진성씨가 실형을 선고받은 뒤 경향신문과 인터뷰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
여적 이주노동자의 지워진 이름 한국의 직장에서 여성들이 이름 대신 ‘미스 김’ ‘미스 리’ 등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영미권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붙이는 ‘미스(Miss)’가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을 낮춰 부르는 말이었다. 본뜻에 상관없이 결혼을 해도 한번 ‘미스 김’이면 영원히 ‘미스 김’으로 불렸다. ‘미스’ 호칭엔 여성 비하와 차별적인 시선이 은연중에 담겨 있다. 남성을 도와 허드렛일이나 하는 무명의 존재로 여겼기에 통용되는 호칭이었던 것이다. 입사 동기인 남성 동료들조차 “미스 김, 커피 한잔” 하기 일쑤였다. 그냥 이름을 불러달라고 해도, 숙녀 이름을 어떻게 마구 부르냐며 굳이 ‘미스’라는 호칭으로 당사자를 거슬리게 하던 것이 엊그제다. -
여적 트럼프의 신성모독 “너는 선택된 자였어(You were the Chosen One)!”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에서 어둠의 세력에 물들어 ‘다스베이더’로 변신한 아나킨에게 스승인 오비완 케노비가 외친 대사다. <스타워즈> 시리즈 팬들에겐 가장 눈물 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유명한 대사를 빌린 적이 있다. 2019년 8월21일 미·중 무역전쟁의 당위성을 강변하며 “나는 선택된 자(chosen one)”라고 한 것이다. 이 말은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을 때 내뱉는 서글픈 밈으로 통한 지 오래이지만 지독한 나르시시즘에 빠진 그에게는 의미가 다르다. 그는 정말로 자신을 ‘선택받은 자’로 여기는 듯하다. 2024년 7월 총격 암살 위기를 넘긴 것조차 ‘자신을 지키려 신이 개입한 증거’라는 식이다. -
여적 올레길에서 행복하라 대부분의 도보 여행기는 깨달음으로 충만하다. 여행에선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자주 일어나게 마련이니 실패를 통해 겸손해지는 경우가 많다.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은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종주’ 실패담일 것 같다. 이 책은 영국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브라이슨이 미국으로 돌아와 애팔래치아 트레일(AT) 종주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렸다. 1996년 길을 떠난 브라이슨은 3360㎞에 달하는 코스를 완주하진 못했다. 하지만 완주가 뭐 그리 중요한가. “우린 시도했다”는 그의 말처럼 도전만으로도 의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