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영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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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1981년 마더 테레사 수녀 방한 푸른 줄이 쳐진 수녀복 차림의 늙은 여인. 그는 거칠고 낡은 두 손으로 묵주를 꼭 감싸 쥐고 있었다. 창백하고 주름진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1981년 5월3일 오후 5시25분, ‘빈자의 어머니’ 마더 테레사 수녀가 김포공항에 발을 내디뎠다. 테레사 수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수환 추기경의 영접을 받으며 공항 복도를 지나 귀빈실로 들어섰다. 그를 보기 위해 모여든 성직자와 신도, 취재진 등 환영인파만 300여명에 달했다. 훗날 김 추기경은 그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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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1943년 소설가 강경애 사망 일제 강점기 시대의 대표적 리얼리즘 소설로 평가받는 의 작가 강경애. 서른여덟에 요절한 그녀는 생전에 단 한 권의 작품집도 가져본 적 없는 비운의 작가였다. 가난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고 조선땅이 아닌 간도에서 활동했기에 문단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었다. 1923년,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시인 양주동. 도쿄 유학 중 잠시 귀국한 그와 사랑에 빠져버린 강경애는 동거라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그는 다른 여자의 남편이었고 이를 안 가족과 이웃의 비난으로 그녀는 무산과 간도 등지를 혼자 떠도는 신세가 된다. 1929년 조선일보에 를 기고하며 조야한 형태로나마 글을 쓰기 시작한 그녀는 2년 뒤 같은 신문에 필명으로 ‘양주동군의 신춘평론-반박을 위한 반박’을 쓰며 옛 애인을 비판했다. 애증이었든 분노였든 결과적으로 양주동은 그녀의 손끝을 움직이게 만든 시작점이 된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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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1947년 서윤복, 보스턴마라톤 제패 세계 4대 마라톤대회 중 하나인 보스턴마라톤. 1947년 4월19일, 세계는 대회 반세기 사상 첫 동양인 우승에 경악했다. 스물네살의 대한민국 청년 서윤복이 2시간25분39초의 세계최고기록으로 월계관을 쓴 것이다. 그의 우승은 세계적인 빅뉴스가 됐고 현지 언론들은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감독 손기정, 코치 남승룡, 선수 서윤복.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무국적 선수단이었다. 일본인들이 입던 헌옷을 구해 유니폼 삼아 입었고 마라톤화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동대문 근방에서 헌 스파이크슈즈를 구해 밑창의 못을 빼고 리어카 바퀴의 고무를 잘라 덧대 신었다. -
어제의 오늘 2003년 NBA 마이애미, 마이클 조던 등번호 영구결번 미국프로농구(NBA)에서 ‘23’은 특별한 숫자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조던의 등 뒤에서 함께 달리고, 함께 솟아오르고, 함께 울고 웃었던 23번. 2003년 4월12일 마이애미는 조던의 등번호 23번에 대해 영구결번을 결정했다. 1994년 시카고 불스에 이은 두 번째였다. 조던은 그렇게 NBA 두 구단에서 영구결번의 예우를 받았다. -
어제의 오늘 1901년 시인 이상화 출생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냐고 물었던 시인. 오늘은 이상화가 세상에 난 날이다. 이상화는 1922년 동향 친구인 현진건의 소개로 가담한 ‘백조’ 창간호에 ‘말세의 희탄’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나의 침실로’와 같은 탐미적 경향의 시를 쓰다가 1924년쯤을 기점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와 같이 식민지하의 민족 현실을 담은 시를 노래했다. 이상화는 나라 잃는 국민의 비통과 분노를 문학에 담은 대표적인 저항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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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2004년 아일랜드 ‘공포의 금연법’ 시행 희뿌연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인간. 고뇌하는 듯도 싶고, 고독해 보이기도 하고, 때론 멋스럽기도 하다. 희고 고운 손에 들려진 가는 담배는 섹시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은 영화 속 장면과 같지 않다. 길거리에서 종종거리며 한 개비, 베란다에서 뻐끔거리며 한 개비, 혹은 화장실에서 몰래 한 모금. 어쩌면 이 모든 게 흡연자가 ‘나쁜놈’이 돼 가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금연 분위기의 진원지가 바로 아일랜드다. -
어제의 오늘 1967년 북한 중앙통신사 부사장 이수근씨 귀순 이 사건을 이를 때는 ‘위장간첩’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붙었다. 이수근, 그는 간첩이었고 죽어 마땅한 인물이었다. 2008년 12월19일 이전까진. 1967년 3월22일, 판문점에선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펼쳐진다. 군사정전회의를 취재하던 한 기자가 UN군 측 대표인 준장 밴 클러프트의 승용차에 갑자기 뛰어올랐다. 그는 북한 중앙통신사 부사장 이수근이었다. 이를 목격한 북한 헌병 2명이 차로 달려들었고 앞자리에 앉아 있던 중령이 재빨리 이들을 밀쳐냈다. 차는 쏜살같이 남쪽으로 내달렸다. 북한 병사 20여명은 일제히 권총을 빼들고 집중사격을 가했다. -
어제의 오늘 1968년 광화문 복원공사 기공 광화문은 네 번의 생일을 가지고 있다. 1395년 ‘사정문’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진 것이 그 첫 번째고,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뒤 1865년 경복궁 재건과 함께 다시 태어난 것이 두 번째,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훼손된 후 1968년 복원한 것이 세 번째다. 마지막 네 번째가 4년여의 공사를 거쳐 원 모습을 되찾은 2010년이다. 오늘은 광화문의 세 번째 생일을 만들어준 복원공사의 첫 삽을 뜬 날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에 의해 훼손된 부분과 6·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라 명한다. 그래서 광화문은 1968년 3월15일 기공을 시작으로 ‘성형’에 돌입했다. 시공청인 문화재관리국은 공사의 무사함을 빌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통돼지를 잡고 무당을 불러 네 차례나 고사를 지내는가 하면 이때마다 현장소장, 감독, 인부들까지 목욕재계를 시켰다. 한여름에도 개고기 먹는 것을 엄금했고 부정한 곳에 갔던 사람은 3일이 지나서야 공사장에 들어오게 했다고 한다. -
어제의 오늘 1986년 프로야구 빙그레 창단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프로야구 제9구단이 창단된다. 신생팀으론 1991년 쌍방울이 마지막이었으니 20년 만에 이뤄지는 프로야구의 지각변동인 셈이다. 프로야구는 1982년 6개 구단으로 첫 시작을 알렸다. 4년 만에 그 체제를 깬 것이 빙그레였다. 빙그레는 86년 3월8일 대전과 충청도를 연고지로 창단해 그해 리그에 진입했다. 제7구단으로 프로야구에 뛰어든 한국화약그룹은 자사 브랜드 ‘빙그레’를 앞세운다는 전제하에 구단이름을 공개모집했다.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것은 ‘다이너마이트’. 화약공업이 모태였던 기업의 이미지를 고려한 것이기도 했고, 당시 인기를 끌던 야구만화에 등장하는 팀 이름이기도 했다. 그러나 위험물의 이미지가 강한 데다 마스코트화하기에도 애매한 대상이라 결국 제외됐다. 대신 두 번째로 많은 지지를 얻은 ‘이글스’가 낙점됐다. -
어제의 오늘 1937년 외솔 최현배 ‘우리말본’ 간행 1945년 해방 직후 가장 많이 읽힌 책은 시도 소설도 아닌 이었다. 일제하에서 맘 놓고 읽고 쓰지 못한 것에 대한 한풀이였을까. 각종 한글 도서들은 출간 즉시 매진될 정도로 사랑을 받았고 그중 국어교과서의 효시 격인 이 가장 많이 팔렸다. 은 외솔 최현배 선생이 10년에 걸쳐 한국어 어법 및 문법을 정리한 책으로 1937년 3월1일 세상에 나왔다. -
어제의 오늘 1886년 우리나라 첫 신문광고 등장 한자가 가득한 세로쓰기의 부고 광고를 본 적이 있는지. 우리나라 첫 신문광고의 모양새를 설명하자면 대충 이와 비슷하다. 도안이나 사진 없이 활자로만, 그것도 순 한자로 쓰인 광고였다. 1886년 2월22일, 한성순보의 후신인 한성주보 제4호에 ‘덕상(德商) 세창양행(世昌洋行) 고백(告白)’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광고가 등장했다. 한성주보는 창간호부터 사고(社告)에 해당하는 ‘본국 공고(本局公告)’란에 다음과 같은 글을 게재했다. -
어제의 오늘 1953년 제1차 통화개혁 단행 통화개혁(currency reform): 평가(平價)의 변경, 새로운 통화체계·통화단위의 채용 등 통화제도에 대한 대폭적 개혁조치의 총칭. 대한민국은 8·15광복 이후 2차에 걸쳐 통화개혁을 단행했다. 전쟁으로 인한 경제혼란과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의 해결책으로 선택된 것이 1953년 2월15일 단행된 제1차 통화개혁이었다. 당시 한국은 전쟁으로 모든 산업시설이 초토화되고 생산이 마비돼 물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또 막대한 전쟁비용 조달과 파괴된 시설 복구를 위해 화폐를 마구 찍어내는 바람에 통화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예금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세금도 잘 걷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