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영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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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1931년 제임스 딘 탄생 이 남자, 죽을 만큼 사랑한 여자가 있었다. 죽을 만큼 사랑했기에 그녀 없는 세상을 잃는 건 두렵지 않았다. 차에 올라탄 남자는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다. 저 멀리 달려오는 또 다른 차. 피하는 대신 두 눈을 감았다. 스물다섯의 청춘은 그렇게 졌다. “그는 가장 적절한 순간에 죽어서 전설을 남겼다.” 명배우 험프리 보거트가 제임스 딘을 두고 한 말이다. 제임스 딘은 1931년 2월8일 태어나 1955년 9월30일 생을 마감했다. -
어제의 오늘 1997년 프로농구 출범 “ ‘용병들의 빅쇼’ 끝내줬다.” 프로농구 첫 개막전을 다룬 스포츠면 기사 제목이다. 근육질의 검은 선수들이 코트를 휘젓는 모습은 생경했지만 경이로웠다. 1997년 2월1일 프로농구 원년리그 개막전으로 열린 SBS와 대우의 첫 경기. SBS의 가드 제럴드 워커가 불꽃처럼 튀어 올라 덩크슛을 꽂아넣자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미국프로농구(NBA)에 입문하지 못한 용병들이라 해도 그들의 힘과 탄력은 한국의 코트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
어제의 오늘 2003년 ‘웜 바이러스’ 침투로 인터넷 대란 국내 인터넷의 처음은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전자계산기학과와 한국전자기술연구소를 전용회선으로 연결한 SDN이 그것인데, 이는 국내 온라인망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8년 뒤인 1990년 6월, 드디어 국내 네트워크가 인터넷에 직접 연결돼 국제사회에 출생신고를 하게 된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됐다. 소통의 수단이자, 궁금한 것을 해결해주는 선생님이고, 쇼핑의 매개이자 온갖 쾌락이 샘솟는 보물창고다. 그래서 술, 담배처럼 끊기 어려운 존재가 됐다. -
어제의 오늘 1954년 독도에 한국영토 표지 설치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대한민국 최동단의 섬 독도. 외로운 섬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독도는 늘 뜨거웠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18일 이승만 대통령은 ‘인접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 이른바 ‘평화선’을 선포한다. 그 안에는 독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가 같은 해 1월28일자로 다케시마, 즉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외교문서를 한국 정부에 보내옴으로써 독도문제가 한·일 양국간 외교상 쟁점으로 다시 떠오르게 됐다. -
어제의 오늘 1914년 호남선 철도 개통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 내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죄도 많은 청춘이냐 비 내리는 호남선에/ 떠나가는 열차마다 원수와 같더란다.’ 1955년 발표된 가요 ‘비 내리는 호남선’ 가사 중 일부다. 지금까지 애창되고 있는 ‘남행열차’ 역시 호남선을 정서에 깔고 있다. 소외와 차별, 이별의 슬픔을 지닌 철길, 호남선이 개통된 날이 1914년 오늘이다. -
어제의 오늘 1960년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사망 부조리(不條理). 이 화두를 세상에 던진 남자, 바로 카뮈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란 인생에서 삶의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은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 그 자체에 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부조리의 감정이나 감각에 빠져 자살과 절망에 이르는 허무주의(니힐리즘)를 긍정하는 대신 인간과 세계, 의식과 현실의 긴장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반항적 인간의 길, 즉 삶의 출발을 제시하고자 했다. -
어제의 오늘 1976년 살인마 김대두 사형 “교도소에 있다가 사회에 나오니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다. 친척과 친구들도 전과자라고 냉대했다. 남들보다 끗발나게 살고 싶었는데….” 희대의 살인마 김대두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소회다. 세상을 전율케 한 범죄의 동기는, 그랬다. 사회가 싫었고 그런 사회에 “내 깡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다였다. 김대두는 1975년 10월8일 검거되기 전까지 55일 동안 17명의 목숨을 앗았다. 그런 뒤 그가 손에 쥔 것은 2만6000여원, 고추 30근, 쌀 1말, 청바지 1개, 시계 1개. -
어제의 오늘 2001년 박찬호,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계약 2001년 텍사스 레인저스는 시즌 73승89패를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꼴찌로 전락한다. 팀 홈런 1위, 팀 타율 3위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허약한 마운드가 문제였다. 텍사스는 스토브리그 중 투수들을 무더기로 영입, 전력 강화에 나섰다. 그러나 여전히 마땅한 에이스가 없었고 고민 끝에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선택했다. 12월21일 미국 주요 언론들은 박찬호 선수가 아메리칸리그의 텍사스와 5년간 옵션을 포함해 7100만달러(약 923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입단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
어제의 오늘 2001년 피사의 사탑 11년 만에 재개방 삐딱함이 매력인 피사의 사탑. 하지만 그 치명적 매력은 수백년 동안 사람들을 불안케 했다. 흰색의 둥근 탑은 불안과 신비함 사이를 오가며 그렇게 세계의 명소가 된다. 1173년 첫 삽을 뜬 피사의 사탑은 현재의 2배 정도인 110m로 계획됐었다. 그런데 3층이 완성될 무렵 탑이 기울기 시작했다. 약한 지반이 문제였다. 그 후 설계 변경, 공사 중단, 재개를 반복하다 200년이 지난 1372년에야 8층 높이의 탑으로 완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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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1917년 러시아 ‘체카’ 설립 지난 여름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단어 가운데 하나인 미녀 스파이. 그녀의 소속은 러시아 대외첩보부(SVR)였다. SVR은 옛 소련 국가안보위원회(KGB) 후신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맨 앞에 ‘체카’가 있다. 체카는 소련 공안기관들로 이어지는 첫 번째 조직이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반대 세력을 없애려는 목적으로 1917년 12월7일 설립됐다. 이를 지시한 이는 레닌이었다. 체카는 태생에 걸맞게 무소불위의 힘을 지니게 된다. 볼셰비키 공산 정부의 체제수호와 공안을 책임진다는 명분 아래 재판없이 수천명을 처형했고, 운좋게 살아남은 사람들도 시베리아와 같은 유형지로 보내졌다. -
어제의 오늘 1900년 작가 오스카 와일드 사망 “결혼은 너무 무거운 짐이어서 때론 세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였을까. 오스카 와일드는 아내를 가지고서도 다른 이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모든 걸 잃었다. “삶에는 두 종류의 비극이 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비극과 원하는 것을 얻는 비극.” 와일드의 생은 결국 원하는 것을 얻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수많은 명작과 명언을 남긴 와일드는 19세기 말 영국 문단의 1인자였다. 1854년 아일랜드에서 나고 자라 1874년 옥스퍼드대에 입학, 문헌학을 공부했다. 와일드는 대학생 때 시로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등장한다. 이후 강연을 다니며 작품을 썼는데 그의 연극이나 동화는 매번 성공을 거뒀다. 1884년 젊은 상속녀와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서 천재 작가는 행복한 가장이 된다. 적어도 겉으로는. -
어제의 오늘 1936년 미국 사진잡지 ‘라이프’ 창간 순간이 역사가 되는 소리 ‘찰칵’…. 살아 움직이는 역사를 박제하는 것, 이것이 사진의 힘이다. 세계적 사진잡지 ‘라이프’는 이 단순한 사실로 포토저널리즘의 꽃이 된다. 잡지 ‘타임’과 ‘포천’을 만든 헨리 루스. 그를 세계적 잡지왕에 오르게 한 결정적 작품이 바로 ‘라이프’다. “사진 한 장이 모든 걸 말해 줄 수 있다.” 1936년 11월23일 빨간 네모 바탕에 ‘LIFE’란 흰 제호를 가진 사진잡지가 탄생했다. 창간호 표지는 당시 뉴딜정책의 하나로 진행 중이던 포트맥 댐 사진이 차지했다. 9개 면에 걸쳐 댐 건설 노동자와 가족사진이 게재됐는데 1면에는 제왕절개로 탄생한 아기의 사진을 싣고 ‘라이프는 시작되었다’라고 제목을 뽑았다. 이 포토스토리는 포토저널리즘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기폭제가 된다. 46만부로 시작한 라이프는 창간 3개월 만에 100만부, 창간 3년 만에 200만부를 넘어섰고 1970년에는 850만부라는 경이적인 부수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