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영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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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한인·흑인 두 가정으로 본 인종갈등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스테프 차 지음·이나경 옮김황금가지 | 404쪽 | 1만3800원 엄마가 총에 맞았다. 그녀 이름은 이본 박. 그런데 이상하다. 뉴스에 ‘한정자’라는 이름이 등장하고, 28년 전 흑인소녀 에이바를 죽인 살인범이란다. 부모님은 그때 한인마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1992년 LA 폭동의 단초가 된 라타샤 할린스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가상의 인물들로 ‘죄와 벌’을 그렸다. 한정자의 딸인 그레이스와 에이바의 동생인 숀은 의도치 않게 서로의 삶에 엮인다.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일까. 뻔히 보이는 답은 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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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기울어진 세상 속에서 찾는 진정한 나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백은선 지음문학동네 | 276쪽 | 1만3500원 “언제까지나 이 구역의 미친년으로 남고 싶어. 그게 내 바람일 뿐이야. 흥.” 저자의 말이다. 더 정확히는 이 산문을 쓴 시인의 속내다. 서정적인 제목과 몽환적인 표지 사진에 혹해 책을 집어 들었다면, 반전 매력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다.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는 새 영역에 발을 들인 백은선 작가의 온갖 엄살과 겸손으로 시작한다. “무섭지만 어쩔 거야…불만 있으면 읽지 마. 혹은 제발 잘 좀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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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제나의 세상은 ‘누더기’가 아니었다 열두 살의 모자이크황선미 지음·남수 그림창비 | 160쪽 | 1만800원 “넌 나를 뭐라고 생각하니.” 초등학교 5학년, 그러니까 고작 십여년이 생의 전부인 아이들이 서로 묻고 답한다. “넌 빨강, 빨간 석류처럼 반짝거리거든”, “넌 비닐봉지, 뭘 생각하는지 다 보이니까”. 대답에 따라 까르륵 소리가 나기도 하고 울음이 터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말장난은 애들한테 그저 재미난 놀이였다. 단 한 사람, 제나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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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생과 사의 고비…삶은 똑같이 ‘전진’ 진, 진이동은·정이용 지음창비 | 212쪽 | 1만4000원 ‘한 고비만 넘기면 진짜 내 인생 나올 거라며 청춘을 다 보내고 보니, 그 고비가 그냥 내 인생이었다.’ 쉰에 들어선 아기를 지운 날. 수진은 병실에 누워 생각했다. 일하는 식당 단골손님 임 소장의 첫 반응은 “그럴 리가 없는데…”였다. ‘고독사였다. 뉴스에서나 듣던 말을 내가 쓰게 될 줄이야.’ 생선 썩은 내가 나더라니. 계단 청소일을 하는 진아는 그렇게 처음으로 죽음을 목도했다. 퇴근한 그는 누워서 고시원 벽을 두드린다. 작가 언니의 방이다. 살아 있음을, 살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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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애트우드가 단편으로 그린 여성의 삶 도덕적 혼란마가렛 애트우드 지음·차은정 옮김민음사 | 396쪽 | 1만6000원 여성을 출산 기계로 등급화하는 가상의 국가가 있다. ‘설국열차’로 치면 꼬리칸에 탄 여성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반란을 도모한다. <핸드메이즈 테일>이란 미국 시즌제 드라마 줄거리다. 이 디스토피아를 1985년 처음 그려낸 <시녀 이야기>의 마가렛 애트우드가 소설집 <도덕적 혼란>으로 돌아왔다. 책은 캐나다 최초 페미니즘 작가이면서 여든이 넘은 노인이기도 한 그가 들려주는 소녀 ‘넬’, 여자 ‘넬’, 할머니 ‘넬’의 이야기다. 소설의 옷을 입었지만 읽다 보면 그가 살아온 삶의 일부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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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기 반전의 연속 '가족의 세계' #1 조카 1호와 2호는 이란성 쌍둥이다. 올해 8살, 초등학교 1학년이다. 코로나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던 입학선물로 국어사전을 샀다. 책 보는 걸 좋아하고 글도 제법 쓸 줄 아니 그리 이른 선물은 아닌 듯 싶었다. 받아쓰기 하면서 놀았던 것처럼 뜻 찾기도 같이 하면 놀이가 되겠지. ‘예쁜 말 바른 글을 쓰는 어린이가 되길, 이모가’ 야심차게 사전 앞장에 친필 ‘생색’도 새겨넣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카들은 이 문구를 보지 못했다. 사전은 받자마자 내팽개쳐졌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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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누나라도 괜찮아…우린 가족이니까 우리 형은 제시카존 보인 지음·정회성 옮김비룡소 | 356쪽 | 1만5000원 잘되길 바라는 마음. 그게 가족이다. 그런데 이해와 공감이 동반되지 않은 걱정은 서로를 할퀴기도 한다. 여기 샘의 가족이 있다. 총리를 꿈꾸는 장관 엄마와 유능한 보좌관 아빠는 바쁘지만 완벽한 가정을 꾸리려 애쓴다. 샘에겐 네 살 터울 형이 있다. 동생을 아끼는 멋있고 듬직한 형, 제이슨. 그런 형이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난 네 형이 아닌 것 같아, 아니 형이 아닌 게 분명해.” 그때 엄마가 말했다. “넌 틀림없는 샘의 형이야. 내가 너희 둘을 낳았다고.” 형이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다. “형이 아니라 누나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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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하기 다시, 사번 말고 학번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는 ‘99즈’ 5인방이 나온다. 그들에겐 대학시절 같은 밴드의 멤버였다는 공통의 추억이 있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잘 스며들었던 건 이들의 오래된 우정이 맛깔나게 그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옛 친구, 이들과의 추억. 살다보니, 하루하루 살아가다보니 멀어져 있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갈증’이 일었다. 내 청춘의 한 페이지 어딘가에 있었을,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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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잊혀진 기억 속 행간의 흔적 찾기 사랑 밖의 모든 말들김금희 지음문학동네 | 236쪽 | 1만3500원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 반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가슴을 울리는 부분이거나, 무릎을 치게 만드는 한 줄이거나 혹은 글투에 마음을 뺏기기도 하는데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은 간이 세진 않지만 미각을 깨우는 글투로 읽는 내내 무릎도, 가슴도 치게 만든다. <너무 한낮의 연애> <경애의 마음> 등을 쓴 소설가 김금희의 첫 산문집이다. ‘숱한 명작들을 읽으며 맹렬히 질투해온 나라든가, 신간 매대에서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수십 권의 책들을 편집해온 나라든가, 하지만 책의 정글 속에서 어쨌든 매일같이 서점을 들락거리면서 한정된 자원으로 탁월한 선택을 하는 독보적인 독자로 살아남고 싶어하는 나라든가 하는’ 그가 작가가 되고 11년 동안 써온 자신의 일기 같은 글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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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기 불혹한 마흔, 비혼에 혹하다 십대엔 초등학생이었고, 고등학생이었다. 이십대엔 대학생이었고, 백수였고, 직장인이었다. 삼십대엔 직장인이었고, 직장인이었으며, 직장인이었다. 사십대가 됐다. 포털 사이트 연령별 많이 본 뉴스 설정이 하루 아침에 30에서 40으로 바뀐 걸 보고 실감했다. 아, 나 마흔이구나. 사월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은 많이 받아들였다. 나이먹음을 무슨 재주로 거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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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AI시대 인간다움을 지켜낼 수 있을까 “○○야~ 노래 틀어줘” “네~ 어떤 노래를 원하시나요?” 인공지능(AI) 아무개와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게 별로 특별하지 않은 세상이 됐다. 그런데 이 아무개가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에 올랐다면? <인간의 피안>은 여기서 출발한다. 책은 J K 롤링이 <해리포터>로 수상한 휴고상을 아시아 두 번째로 거머쥔 하오징팡의 신작 SF 소설집이다. 각기 다른 AI가 등장하는 6편의 단편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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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뉴스 그대들 뒤로 봄이 피었습니다 코로나19로 연일 애쓰고 있는 의료진들 뒤로 분홍 꽃이 흐드러졌습니다. 고되고 긴장된 하루에 잠시라도 위로가 됐음 좋겠는데 꽃을 눈에 담을 여유가 없었지 싶습니다. 시민들도 마스크 구하러 다니느라, 코로나19에 촉각을 곤두세우느라 겨울이 가는지 봄이 오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오늘은 두 자릿수 증가를 보였습니다. 하루 100명 이하로 확진자가 발생한 건 23일 만인데요, 속단은 이르지만 조금은 희망적인 신호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