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구재
경향신문 기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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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김치 프리미엄 프리미엄은 특정 물품을 얻기 위해 지급하는 정가 이외의 비용이다. 부동산 시장에선 예상되는 시세차익만큼 지급하는 ‘웃돈’을 프리미엄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아파트의 분양가격과 실거래 가격은 차이가 크기 때문에 프리미엄도 천차만별이다.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치솟기도 한다. 분양가격과 실거래 가격이 차이가 없을 땐 ‘무피(프리미엄 없음)’, 실거래 가격이 분양가격을 밑돌면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라고 한다. 프리미엄이 붙는 거래는 비정상적이다. 정상가격에 거품이 낄 정도로 과열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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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가상화폐는 죄가 없다 가상화폐 투기 광풍이 무덤에 있는 희대의 금융사기꾼 찰스 폰지까지 불러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해 말 기자간담회에서 가상화폐 거래를 ‘폰지 사기극’으로 규정했다. 차현진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도 “가상화폐는 금융상품도, 법정화폐도 아니다. 희소성에 의해 가격이 출렁이는 ‘가상 골동품’으로 부르는 게 맞다”고 했다. 가상화폐에 대한 금융당국의 입장은 명료하다. 가상화폐는 폰지가 금융사기에 활용한 국제우편 쿠폰과 다를 바 없고, 거래 방식도 다단계 금융사기 수법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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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애플의 썩은 사과 미국 애플사는 한때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등 내놓는 제품마다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켰다.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통찰의 리더십’은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전범이 됐다. 잡스는 창업 초기 “소비자들이 만족하지 않는 제품은 시장에 내놓지 않겠다”며 고객 지향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절대적 지지는 애플의 겸손을 앗아갔다. ‘열린 경영’을 외면하고 폐쇄주의를 고수했다. 소비자들의 불만에도 귀를 닫았다. 애플 제품을 쓰려면 불편과 고통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는 오만한 태도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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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플랜다스의 계 영국 작가 위다(1839~1908)가 쓴 <플랜더스의 개>는 슬픈 동화다. 벨기에의 작은 마을에서 외할아버지 예한 다스와 살던 소년 넬로, 우유배달을 하는 대형견 파트라슈의 얘기는 언제 읽어도 가슴이 먹먹하다.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난 넬로가 추운 겨울날 파트라슈와 함께 찾은 곳은 안트베르펜 대성당이었다. 대성당에는 두꺼운 커튼 뒤에 루벤스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림 그리기에 재능을 갖고 있던 넬로는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림을 보려면 돈을 내야 했기에 넬로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넬로는 파트라슈를 껴안고 얼어 죽기 전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와 ‘십자가를 세움’을 보게 된다. “루벤스의 그림을 볼 수있으면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할 텐데…”라던 넬로의 꿈이 너무 늦게 이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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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한강 결빙 작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김상헌이 뱃사공을 단칼에 베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혹한으로 결빙된 한강을 뒤덮은 백설(白雪) 위로 핏물이 흩뿌려졌다. 김상헌은 뱃사공이 청나라 군사들에게 인조가 도피한 남한산성으로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다고 판단해 칼을 빼든 것이다. 옛 문헌을 보면 인조 재위 시절(1623~1649) 혹한으로 12월1일 이전에 한강이 얼어붙는 ‘이른 결빙’이 3차례 있었다. 병자호란이 났던 인조 14년(1636) 12월에도 한강이 결빙돼 청나라 군사들이 남한산성으로 쉽사리 진격할 수 있었다. 한강이 얼어붙지 않았다면 뱃사공은 김상헌의 칼을 피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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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반칙의 나라 취준생들에게 지난여름 취업준비생이던 그대의 글을 읽었습니다. 인터넷 시민언론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휴가 시즌이 서글픈 취준생의 여름나기’였지요. 20대 여성 취준생인 듯한 그대는 글에서 청년들을 취업절벽으로 내몬 ‘헬조선’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자소서를 수백번 썼다” “광탈을 밥 먹듯이 했다”는 ‘넋두리성 푸념’도 늘어놓지 않았지요. 작가 김훈이 쓴 에세이 <라면을 끓이며>의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 김밥으로 점심을 먹는 일은 쓸쓸하다”는 대목을 인용하며 시작한 글은 취준생인 그대가 처한 상황이 어떠한지를 실감케 했습니다. 편의점에서 3000원 넘는 메뉴를 선뜻 고르지 못하는 취준생들은 ‘쓸쓸한 맛’에 길들여져 있다고 했지요. 맥주 한 캔을 마시며 다운로드받은 영화를 본 뒤 잠드는 게 취준생들이 만끽하는 일상의 행복이라고 일러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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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그림자 투표 기업이 주주총회를 개최하려면 의사정족수를 채워야 한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상장기업의 발행주식 총수가 많게는 수천만주 또는 수억주에 달하기 때문이다. 의사정족수 규정은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독일·스위스 등에선 주주 한 명만 참석해도 주총을 열 수 있다. 영국은 2인 이상을 의사정족수로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발행주식 총수의 20% 이상이 참석해야 주총 개최가 가능하다. 한국은 주총을 열어 의결하기 위한 요건으로 상법에 ‘출석 주주의 과반 찬성, 발행주식 총수의 25% 찬성’이란 규정을 두고 있다. 감사 선임 땐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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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금징어 오징어는 두족류(頭足類) 십완목(十腕目)에 속하는 해양 연체동물의 총칭이다. <동의보감> <규합총서> 등 옛 문헌을 보면 오징어는 우리말로 오중어·오증어·오직어 등으로 불렸다. 한자로는 까마귀를 해치는 물고기란 뜻에서 ‘오적어(烏賊魚)’로 표기했다. 정약전이 <자산어보>에 소개한 내용이 흥미롭다. “오징어가 물 위에 죽은 척하고 있으면 까마귀가 달려든다. 그 순간 오징어는 발로 까마귀를 휘감아 바닷속으로 끌고가 잡아먹는다.” 예로부터 믿지 못할 말이나 지키지 않는 약속을 ‘오적어묵계(烏賊魚墨契)’라고 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오징어 먹물로 글을 쓰면 나중에는 먹이 없어져 빈 종이가 된다. 사람을 속이려는 간사한 자들이 하는 짓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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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고독사의 그늘 일본은 고독사가 많은 나라다. 1980년대 말 이후 지속된 경제위기가 1994년 버블붕괴로 이어지면서 ‘나 홀로 사망’이 급증했다. 실직자와 이혼율 급증, 비혼 풍조와 개인주의 문화 확산 등이 고독사를 늘린 원인으로 지목됐다. 일본에서는 연간 3만2000여명이 고독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독사 예비군(群)’도 1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고독사가 많다보니 일본 지자체들은 고령자들이 사는 집 대문에 흰 수건을 걸어두도록 했다. 흰 수건이 걸려 있지 않으면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으니 봐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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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이국종과 중증외상센터 EBS 다큐멘터리 은 2013년 8월 ‘골든타임, 운명의 1시간-중증외상센터’ 편을 방송했다.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인 이국종 교수는 응급환자를 돌보고 있다가 “추락사고 환자가 발생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는 지체 없이 헬기에 몸을 싣는다. 도착해보니 환자의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 환자의 뇌와 심장 손상을 막기 위해 기도 확보를 한 뒤 병원으로 이송하려 했다. 하지만 기상악화로 헬기가 뜨지 못해 환자를 구급차로 옮겼다. 흔들리는 구급차 안에서 이 교수는 수액 공급과 약물치료가 가능하도록 중심정맥관을 삽입하는 응급처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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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청와대 그림 청와대에는 국내 대표적인 화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 목록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적이 없다. 목록이 공개되면 미술품의 가치와 작가 인지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청와대 비서실이 보유한 미술품은 600여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 권력기관인 만큼 최고 수준 화가의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작가 이름이나 작품명, 제작연도 등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작품’도 적지 않다. 청와대에는 월전 장우성(1912∼2005)의 작품이 가장 많이 걸려 있다고 한다. <운봉(雲峰)> <가을> <매화> <국화> <송학> 등 20여점에 달한다. 장우성은 100원짜리 동전 앞면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표준 영정을 그린 작가다. 친일화가였던 이당 김은호의 제자인 그는 2003년 11월 <아슬아슬>이란 작품속 한시(漢詩)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갈 지(之)자로 운전하는 초보운전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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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태움 문화 간호학도들은 임상실습을 나가기 전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갖는다. 간호학도들은 ‘나이팅게일 선서문’을 읽으며 “일생을 의롭게 살고, 인간 생명에 해로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 하면 ‘백의(白衣)의 천사’가 떠오른다. 하지만 크림전쟁 때 영국군 야전병원에서 탁월한 업무능력을 인정받은 그의 별명은 ‘등불을 든 여인’이었다. 게다가 그는 ‘흰색’이 아닌 짙은 색 계열의 옷을 즐겨 입었다. 성격은 ‘천사’와는 거리가 멀 정도로 직선적이었다. 나이팅게일이 크림전쟁 당시 육군성으로 보낸 편지에는 전장의 섬뜩한 현실뿐 아니라 적들에 대한 격렬한 비난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