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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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안 읽어도 책 든 모습은 멋져”…수백년 전 사람들도 똑같았다 최근 ‘텍스트힙(text hip)’ 유행이 크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텍스트힙이란 ‘글자(text)’와 ‘멋지다(hip)’를 결합한 단어로, 책과 독서를 통해 자신의 멋짐을 드러내려는 젊은 세대의 트렌드를 뜻하는데요. 멋진 북카페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리거나 마음에 든 책들을 구입해 인증샷을 찍는 것 등도 텍스트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올 초 ‘서재 인증’이 크게 유행했고, 틱톡에서 ‘눈물 챌린지’로 유명했던 <리틀 라이프> 등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역주행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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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시대와 소통한 책, 안 읽혀도 돼 ‘책은 읽혀야 하는가?’ 이 질문은 도발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수천년 ‘책’의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딱히 새로운 질문은 아니다. 중세시대 책에 실린 예수 그림엔 얼굴만 닳아있었는데, 기도를 할 때마다 매일같이 그림에 입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불과 몇세기 전까지만 해도 책을 읽어낼 수 있는 계층은 극소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책에는 큼직한 그림이 포함되어 있었다. 글자라기보다는 그림을 읽은 거다. 사람들은 순회 낭독자가 읽어주는 글을 ‘들었다’. 읽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꽂아두기 위해 팔리는 책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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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간직하고픈 마음, 비워내는 게 답일까 ‘디지털 저장강박(Digital hoarding)’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디지털 환경에서 수많은 기사, 음악, 영상들의 북마크, 메모, 사진 등을 잔뜩 모아두어 골치를 앓는 행동을 뜻하는데요. 정식 병명은 아니지만 근래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증상이라고 합니다. 멍하니 SNS나 사이트를 보면서, 계속 ‘공유’나 ‘북마크’를 누르는 건 일상입니다. 사진과 동영상을 나노 단위로 찍고, 기억하고 싶은 것은 메모를 해두기도 하지만 이 중에 나중에 진짜 살펴보는 것은 아주 조금이고요. 눈에 보이질 않으니 얼마나 되는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깜깜한 ‘블랙홀’ 같은 느낌이랄까요. 방대하고 성능이 좋은 ‘제2의 뇌’를 만들어주겠다는 효율적인 노트 기록 앱이나 강좌 등은 넘쳐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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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공산주의’ 간과한 대가는 세계대전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우리는 때때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가장 늦게 인지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지나간 역사를 복기하는 이들에게 두 가지 중대하지만 곧잘 잊히는 사실을 환기한다. 첫째, 역사 속의 주인공들은 생각보다 자기 나름의 편견에 휩싸여 자신이 처한 상황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 둘째, 이에 혀를 차는 오늘날의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케임브리지대학 국제관계사 명예교수 조너선 해슬럼은 <전쟁의 유령>에서 그간 전간기(1919~1939) 전후 역사 서술에서 수없이 반복돼온 한 ‘맹점’을 짚는다. 그것은 바로 “2차 세계대전의 기원들 가운데 공산주의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그간 세계사 서술에서 배제되어왔던 ‘사상’이 주체들에게 미친 영향을 세밀하게 파고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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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응급실은 극적인 장면이 일어나는 별난 곳?…“아니, 세상의 축소판일 뿐” 응급실 의사가 등장하는 TV프로그램을 상상해본다. 사고 환자의 극적인 사망 순간 혹은 기이한 일로 실려온 환자에 대해 들려줄 수도 있다. 이것이 응급실 풍경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아주 극적이거나, 혹은 기이하거나. 하지만 <나는 어떤 죽음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를 쓴 미국 응급실 의사 파존 A 나비는 ‘응급실에서 본 가장 극적인 장면’을 묻는 질문에, 두 번만 더 찍으면 샌드위치를 무료로 먹을 수 있는 쿠폰, 할 일 목록, 새로 바른 매니큐어 등을 꼽는다. 죽은 자들도 불과 몇시간 전까지 같은 인간이었다는 걸 알려주는 평범한 삶의 온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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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AI의 발달로 잃는 건…진심을 담아 일하고 뿌듯해하는 ‘인간’ 독자님도 ‘미래에 인간의 노동은 정말로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대체될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셨나요? 일론 머스크는 지난 5월 한 콘퍼런스에서 “(미래에) 아마 우리 중 누구도 직업을 갖지 못할 것”이라며 AI와 로봇이 모든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죠. 그간 이런 전망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AI에 대체될 수 없다!”고 반박해왔습니다. 결국 1%의 차이를 만드는 ‘탁월성’은 인간에게만 있다는 차원에선데요. 다만 저는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조금은 의아해지기도 했습니다. 왜 “대체될 것이다”라는 말에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로만 반박하는지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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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말맛 나는 우리말…‘옛것’도 ‘새것’도 갈고닦아야 살아남는다 지난 15일은 스승의날이었는데요. 여기서 ‘스승’은 세종대왕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1회 스승의날 행사가 치러진 1964년만 해도 5월26일이었는데, 이듬해부터 겨레의 스승인 세종대왕 탄생일인 15일로 옮겼다고 하죠. 스승이 세종대왕만큼 존경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합니다. 세종대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저는 한글과 관련해 예전부터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하곤 했던 점이 있습니다. 한글 관련 글, 기사엔 으레 비슷한 반응이 붙는다는 것인데요. ‘기승전-세종대왕 만세’입니다. 예를 들면, 20세기 한글 타자기 원리를 소개하는 게시물에도 ‘세종대왕 만세’라고 댓글이 달리고 절묘한 표현력에도 ‘세종대왕 만세’라고 흘러가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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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과거나 현재나 헐값…여기 보이지 않는 ‘유령 노동’이 있다 근래 ‘외국인 가사노동자’ 이슈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건데요. 핵심은 ‘가격’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임금이 월 100만원 정도 되면 정책 효과가 있다”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최저임금 미적용을 주장해왔고, 지난 3월 한국은행 보고서 발간 직후 “(높은 가격으로 인해 가사도우미 고용이) ‘그림의 떡’이 되어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떡’이 돼야 한다는 거죠. 윤석열 대통령 역시 지난 4일 외국인 가사노동자와 관련해 “가정 내 고용으로 최저임금 제한도 받지 않고 수요·공급에 따라 유연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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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어떻게 하면 환경 보호를 의무감이 아닌 즐거움으로 여길 수 있을까 지난 6일 장년층이 중심이 된 ‘60+기후행동’ 등은 “(정부가) 노년층의 생명권 보호 의무를 저버렸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주로 저소득층, 노인 등 취약계층에게 가혹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는데요. 인간뿐 아니라, 특히 기후변화에 취약한 동식물들이 빠른 속도로 멸종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 발표되었습니다. 기후위기는 실로 중대한 문제고,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문제가 시급한 건 알겠지만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아 별다른 실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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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단단한 틀에 갇힌 생각과 마주할 ‘용기’…세상을 좀 더 낫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설 연휴도 벌써 어언 2주가 지났습니다. 독자님들께선 설 명절을 잘 보내셨나요? 근래 저는 ‘명절 대화’를 다룬 기사들을 읽으면서 조금 어리둥절해진 부분이 있었습니다. 거의 99%가 “피차 불편해지는 이야기는 피하라”고 똑같이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런 글들을 보다보면, 명절 밥상에서 ‘정치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은 ‘예의’ ‘에티켓’의 영역 같은데요. 정치 얘기란 꼭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라는 차원에만 국한되었다기보다는 세금, 환경, 노동 등 여러 현안이나 우리의 삶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아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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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최고의 능력은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최근 <신경끄기의 기술> 등을 쓴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맨슨이 우리나라를 찾아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하다’라는 영상을 공개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맨슨은 영상에서 ‘모 아니면 도’라는 한국인의 뿌리 깊은 사고방식을 소개했는데요. 그는 분야 상관없이 모두가 일제히 정상을 향해 가열차게 ‘노력’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에 주목했습니다. 이런 ‘K노력’의 중심에는 ‘능력 있는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는 ‘능력주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문득 조금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그간 ‘능력주의’에 대해선 이런저런 말을 해왔지만, 과연 그 ‘능력’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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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아프면 죽어야지” 아닌 “아파도 괜찮다” 말하는 사회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인생의 대차대조표(국민이전계정 표시)’를 발표했습니다. 0세부터 85세까지 그래프를 그려 흑자 구간과 적자 구간을 나눈 것인데요. 댓글에는 ‘젊었을 때 바짝 벌지 않으면, 적자 구간에 답이 없다’ ‘결국 나이 들면 돈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으레 ‘늙음’이나 ‘병’과 관련된 기사의 단골 반응인 ‘아프면 죽어야지’ 등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습니다. 단지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더라도 ‘슈퍼맨’이 되어야 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프거나 나이가 들거나 가족이나 본인이 장애를 갖게 되면 ‘힘듦’을 넘어 거의 가족의 생사가 걸린 문제가 되는데요. 그 안에서 우리는 누구에게 도움을 받기도 어렵고, 오로지 스스로 헤쳐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