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남설
경향신문 기자
최신기사
-
허남설 기자의 집동네땅 남영동 대공분실의 건축가, 김수근은 정말 지옥을 설계했는가 건축의 실천은 항상 자본을, 때로 권력을 필요로 한다. 건축가의 능력은 멋진 도면을 그리는 것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설계와 실행의 기회를 만들고 잡아야 한다. 김수근은 능력을 갖추고 기회를 잡은 걸출한 건축가였다. 권력 비호의 처세가였다고 그를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고문의 설계자였다는 비난은 죽은 건축가에 대한 모독이다. (서현 ‘죽은 건축가를 위한 변론’ 중)
-
허남설 기자의 집동네땅 농협창고의 변신, 무조건 무죄일 수는 없다 경의선 일산역은 무척 다른 풍경의 경계에 있다. 남서쪽 1번 출구로 나가면 아파트로 가득한 ‘1기 신도시’ 일산을 만난다. 같은 역의 출구이건만 북동쪽 2번 출구 앞은 영 딴판이다. 신도시 이전 일산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한 오래된 길들이 주변으로 굽이치듯 뻗어나간다. 그 길을 따라가면 저 멀리 병풍처럼 선 아파트촌을 배경 삼아 왁자지껄한 시장 골목이 아직 살아있다. 2번 출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경의선 철로와 일산초등학교 사이에 들어선 작은 동네를 걸으면 마치 시간이 1970년대에 멈춘 것만 같다. 집들은 새마을운동 당시 보급했을 법한 붉은 시멘트기와를 지붕에 얹은 그 모습 그대로다. 지금은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다.
-
허남설 기자의 집동네땅 유튜브 켜는 뉴욕시, 평일 낮에 오라가라는 서울시 서울 은평구에 ‘서울혁신파크’란 공간이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벤처기업 단지인가 했다. 그 근처로 이사할 때 부동산 중개소에서 “요 근처에 혁신파크가 있어서 산책하기 좋다”고 하기에 그냥 공원인가 했는데, 또 그것도 아니었다. 주민들은 공원에서 하듯 이곳에서 산책하고 운동한다. 널따란 잔디밭과 무성한 풀숲도 있다. 다만 이런 녹지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여러 동의 건물 사이에 조경을 잘 가꿔놓은 것에 가깝다. 건물과 녹지가 뒤섞여 어떻게 보면 대학캠퍼스 같다. 이곳에 원래 국립보건원(현 질병관리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캠퍼스 같은 공간 구성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국립보건원이 여길 뜬 지 20여년이 지났건만, 지금도 길 건너편엔 ‘보건원치킨’이란 가게가 영업을 한다.
-
허남설 기자의 집동네땅 논란의 9억 화장실, 도쿄엔 더한 곳도 많던데요? 최근 대구 수성못 인근에 새로 단장한 공중화장실이 논란이 됐다. 이 화장실은 꽤 우아하다. 전체적으로 원통형인데, 목재 루버(가느다란 부재를 창 등 건물 표면에 빗살처럼 설치한 것)가 그 형체를 감싼다. 낮의 루버는 화장실 안에 은은한 자연광을 들여오고, 밤의 루버는 화장실을 자체 발광하는 오브제로 만든다. 디자인은 스페인 출신 건축가로, 한국에서 다수 프로젝트를 한 다니엘 바예가 맡았다. 이 근사한 화장실이 입길에 오른 건 다름 아닌 비용 때문이었다. 신축도 아니고 리모델링인데, 나랏돈이 9억원이나 투입됐다는 사실에 놀란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언론은 수성구가 대구에서는 부촌으로 꼽히는데, 그곳 아파트 한 채 값에 맞먹는다고 했다. 그 문제의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것일 테다: 왜 화장실에 이렇게까지 합니까?
-
허남설 기자의 집동네땅 “망했다” 말 나오는 신촌, 서울시는 90년대에 이미 예견했다 사람들은 왜 이제 신촌에 가지 않을까. 요즘은 이 물음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한때 ‘신촌을 못가’라는 노래가 인기를 끌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신촌은 헤어진 연인과 마주칠까봐 ‘못 가’는 곳이 아니라 연인과 함께하더라도 ‘안 가’는 곳이 됐기 때문이다. 신촌은 연세대·이화여대 등 5개 대학이 가까운 서울의 명실상부 대표 대학가였는데, 지금은 대학생들이 눈길도 주지 않는 상권이 된 것만 같다. 유튜브에서는 ‘신촌은 왜 망했을까?’ 같은 영상이 수십만 조회 수를 올린다. 그런 영상은 마치 오래된 폐가를 탐험하는 듯한 시선으로 텅 빈 신촌 상가를 보여준다. 현재 신촌의 이미지가 딱 이 정도인 셈이다.
-
허남설 기자의 집동네땅 건축가 김수근이 정말 남산 녹지축을 끊었을까? 종묘와 남산을 어떻게 이을까? 조선왕조의 사당인 종묘, 서울 중심에 봉긋 솟은 남산. 이런 질문을 처음 마주한 사람이라면 이 둘을 왜 이어야 하는지, 이어서 무엇에 쓰는지 같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오를 터다. 3㎞나 떨어진 종묘와 남산을 구태여 잇는다는 건 누가 봐도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이 질문은 무려 반세기 넘도록 서울 강북 도심의 개발 논의를 지배해왔다. 낙후된 강북의 발전 여부가 종묘와 남산을 잇는 문제에 달렸다는 거다.
-
허남설 기자의 집동네땅 공간은 의식을 지배하는가? 또 다른 '윤석열 미스터리' 위엄의 공간서 저항 상징 된 미 내셔널몰처럼내란 사태로 분노한 민심, 공간 새롭게 규정 설계된 공간·내재된 의식 ‘불변의 것’ 아냐현대 사회의 프로세스는 만들어가기 나름 대통령 윤석열의 이미지는 원래 독선, 막무가내, ‘무데뽀’ 같은 것들이었다. 12·3 비상계엄 이후엔 그가 아주 미스터리한 인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에 오른 사람이 부정선거론에 심취하기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군대를 동원해 부정선거의 전모를 밝히려고 했다는 윤석열은 마치 총기 난사 직전 테러의 명분을 강변하는 ‘외로운 늑대’ 같았다. 극단적 고립 속에서나 키울 법한 망상을 어떻게 유능한 관료들에 둘러싸인 대통령이 하게 됐을까?
-
허남설 기자의 집동네땅 헤더윅 '인간적인 건축'의 눈으로 서울을 본다면 토마스 헤더윅, 요즘 이른바 건축계에선 이 이름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헤더윅이 쓴 책 「Humanise」가 최근 국내에 <더 인간적인 건축>이란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이 책은 마치 혁명기 대중의 각성을 선동하는 팸플릿 같다. 이 혁명에서 칼 마르크스의 지위는 안토니 가우디(1852~1926)가 맡는다. 혁명가의 손에 <공산당 선언>이 있다면, 건축가의 눈은 ‘까사 밀라’를 향해야 한다. 가우디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지은 이 집은 외벽이 물결치듯 굴곡져 전체적으로 조소 작품 같은 기운을 풍긴다. 헤더윅은 가우디의 디자인에 경외심을 감추지 않는다.
-
허남설 기자의 집동네땅 일본풍 집은 문화재, 서민의 집은 무시…한옥의 아이러니 북촌 ‘백인제가옥’과 서촌 ‘토속촌’ 삼계탕집처럼 일본·서양의 양식이 섞이거나 상업화한 기와집도 한옥전통의 보존도 중요하지만 ‘사용’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기를…우리 삶에 맞춰 ‘적응력’을 발휘하며 서울 종로구 가회동 31번지. 폭 5m 남짓한 골목 양옆으로 기와에 처마, 돌담으로 구성된 집이 통일감 있게 늘어서 있다. 위에서 보면 집들은 거의 다 ㄴ자 혹은 ㄷ자 모양이다. 우리가 아는 한옥의 전형. 이런 집이 빼곡한 언덕인 가회동 31번지는 북촌한옥마을에서도 꼭 들러야 할 곳으로 꼽힌다. 관광객에게 상당히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로, 남산까지 막힘없이 조망할 수 있다. 사진 속에서 한옥의 정갈한 담장과 처마의 선은 훌륭한 프레임이 된다. 이곳은 공식적으로 ‘전통 한옥들이 즐비한 동네’(서울관광재단)라고 소개된다. 이 정의엔 의심할 구석이 딱히 없는 것 같다.
-
뉴스레터 점선면 교육감님, 그냥 정치하면 안 되나요? ※뉴스레터 점선면 10월15일자(https://stib.ee/NmhE)입니다.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단 하나의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를 클릭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교육감 잔혹사’. 대법원이 지난 8월 29일 조희연 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유죄 판결을 확정하자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공정택, 곽노현, 문용린, 그리고 조희연까지 서울시 교육감 4명이 내리 사법적으로 유죄 판단을 받았어요. 조 전 교육감을 빼면 모두 선거 과정에서 저지른 행위 때문에 법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
허남설 기자의 집동네땅 군산의 놀이터가 돌아왔다, 일본에서 성공한 것처럼 끄트머리를 살짝 들어 올려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지붕. 그 아래 옹기종기 모인 저마다 서로 다르게 생긴 블록들. 설계자가 한국의 ‘1세대 근대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건축물은 건축가가 지난 건축 생애에 바치는 오마주처럼 느껴진다. 주한프랑스대사관(1960), 을지로 중소기업은행(1983), KBS 국제방송센터(1985) 등 김중업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건축물이 하나씩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이 건축물은 군산시민문화회관(이하 군산회관). 김중업은 1985년 군산회관 설계경기에서 당선했다. 개관식은 그가 죽은 다음 해인 1989년 열렸다.
-
허남설 기자의 집동네땅 길에서 전 부치고 감자 찌면 안 되나요? 성수동의 실험 서울 성수동2가 299-129번지, 50년쯤 된 상가 1층 점포. 이곳에 그 할머니들이 들이닥친 때는 지난해 여름이었다. ‘도시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병풍’을 상상하는 전시회가 열린 날. 할머니들은 여기에서 전을 부치고 송편을 빚었다. 음, 이건 대관절 무슨 퍼포먼스일까?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이 입구에서 어리둥절. 어떤 외국인 관람객은 엉겁결에 할머니들이 건넨 찐 감자를 받아 먹었다. 그날 이후 할머니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을 점거하고 또 점거했다. ‘병풍의 여행’이란 콘셉트와 어울리게 전시공간에 커다란 평상을 두고 문을 활짝 열어둔 게 좋은 핑계가 됐다. 무릇 평상이란 원래 그렇게 쓰는 물건이니까. 누구도 할 말이 없는 광경. 할머니들은 그해 여름을 그렇게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에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