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순
교열부장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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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송년, ‘아보하’ 한 해의 끝자락에 섰다. 말 그대로 내일모레면 2025년이 끝난다. 연말이 되면 올해의 10대 뉴스 등 그해를 돌아보며 정리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말글과 씨름하는 사람으로선 올해의 유행어나 신조어에도 관심이 간다. 나름 ‘올해의 10대 단어’를 꼽아볼까 싶었지만 바로 마음을 접었다. 수없이 생겨나는 유행어, 신조어 중에는 한철 반짝하고 사라지는 게 많지만 시간이 제법 흘러도 여전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말도 많다. 그렇다 보니 지금의 유행어들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져 퍼지게 됐는지, 실제로 얼마큼 쓰이고 있는지 하나하나 추적하기란 만만찮다. 이 지면에 등장한 ‘칠 가이’ ‘찢다’ 등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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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겨울바람 찌뿌둥한 하늘에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날은 푹하기에 얇은 패딩을 걸치고 외출을 했다. 볼일을 마치고 나오니 해 질 녘,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득한 날씨에 종종걸음을 치며 집에 돌아오니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푹하다’는 ‘겨울 날씨가 퍽 따뜻하다’는 뜻이다. 이와 반대되는 말이 ‘득하다’이다. ‘얻다’의 의미로 많이 쓰는 득(得)하다와 모양이 같아 어색할 수도 있으나, ‘득하다’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다’라는 어엿한 뜻을 가진 우리말이다. 한나절 사이에 푹한 날이 득하게 된 것은 기온이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차가운 바람의 영향이 컸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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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별똥비 지난 주말 화려한 ‘우주쇼’가 있었다. 쌍둥이자리에서 유성우가 쏟아진 것이다. 13일 밤부터 어두운 곳이면 어디서든 맨눈으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어떤 소원을 빌까, 순식간에 지나갈 그때를 상상하며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날, 종일 궂었던 날씨는 끝내 개지 않았다. 새벽까지 틈틈이 창밖을 내다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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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발밤발밤 갑작스럽게 닥쳐온 한파에 부랴부랴 두툼한 겨울옷을 꺼냈다. 가을옷은커녕 여름옷도 아직 다 넣지 못했는데 부피가 큰 옷이 뒤섞이니 옷장 안이 ‘콩켸팥켸’ 난리가 났다. 주말 동안 한바탕 정리를 해야 했다. 지난 4일에는 저녁때 많은 눈이 내렸다. 퇴근길 버스를 타려고 ‘진둥한둥’ 발걸음을 옮기다 눈이 다져져 빙판이 된 길에서 미끄덩하며 넘어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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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접수는 ‘받는다’ 종종 행정기관에서 민원서류를 접수할 일이 생긴다. 병원에 가면 진료를 접수하고, 가전제품이 고장 나면 수리를 접수한다. 생각해보면 우리 일상은 수많은 ‘접수’를 하며 굴러간다. 하지만 이 중 내가 실제로 ‘접수’한 건 하나도 없다. 접수는 ‘신청이나 신고 따위를 구두(口頭)나 문서로 받는다’ ‘돈이나 물건 따위를 받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수’는 ‘받을 수(受)’여서 민원은 행정기관이, 진료는 병원이, 수리는 가전제품 회사가 내가 요청한 내용을 접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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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이빨이 세다, 치가 떨리다 지난 주말 ‘이’를 점검하러 치과에 갔다. 다행히 별문제가 없어 스케일링, 치석 제거만 받고 끝냈다. 정기적인 과정이지만 윙~ 날카로운 기계음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니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이’는 ‘치아’ 또는 ‘이빨’이라고도 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치아’를 ‘이를 점잖게 이르는 말’이라고, ‘이빨’은 ‘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이에 ‘이빨’은 짐승에게만 써야 한다고도 한다. 반면에 ‘이빨’은 ‘이+사이시옷+발’에서 온 단어이며 ‘발’은 긴 모양을 가진 것을 뜻해, 이빨은 이가 나란히 늘어서 있는 모양을 표현한 말이란 반박도 있다. 한자어 ‘치아’가 격식 있는 말은 맞지만 그렇다고 우리말 ‘이빨’이 낮춤말은 아니란 것이다. ‘이빨이 아프다’ ‘이빨을 닦다’ 등 일상에서 많이 쓰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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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어려운 헬스 용어, 한글로 순화를 “오늘은 레그 익스텐션을 할 거예요.” “네…” “어떤 건지 까먹으셨나요?” 지난여름, 미루고 미루던 운동을 드디어 시작했다. 제대로 해보자며 PT, 일대일 맞춤운동에 등록했다. 4개월가량이 지났건만 지금도 수업 때마다 난감한 상황이 있다. 운동 용어와 좀처럼 친해지지 못한 것이다. ‘레그니까 다리를 쓰는 거겠고, 익스텐션은 뭐였지?’ 고개를 갸우뚱하니 선생님이 다시 설명해주고 시범을 보여준다. 그제서야 “아, 이거!” 생각이 난다. ‘레그 익스텐션’은 기구에 앉아 무게가 실린 발목패드를 ‘다리를 펴면서’ 들어 올리는 동작으로, 앞쪽 허벅지를 단련하는 운동이다. 반대로 기구에 엎드린 채 또는 앉은 채로 ‘다리를 굽히면서’ 패드를 들어 올리거나 당겨서 뒤쪽 허벅지를 자극하는 운동은 ‘레그 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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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얼굴이 꽹과리 같다 게임을 하다 보면 좋아하는 캐릭터가 새 의상을 차려입고 등장하곤 한다.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임무에 데려갔는데 막상 새 기술이 그리 좋지 않다. ‘얼굴이 성능’이었던 것이다. ‘얼굴이 무기’란 말이 있다. 멋진 외모는 무기처럼 강력하다. 반대로 험상궂은 인상도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무기가 된다. 게임에서 ‘얼굴이 무기’는 성능이 떨어져서 ‘얼굴로만 다 한다’는 의미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보는 눈이 즐거우니 능력치는 낮아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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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좋은 말은 회자, 나쁜 말은 구설 “그의 과거 사기 범행이 회자된다.” “그 영화는 명작이라고 회자된다.” ‘회자(膾炙)’는 본래 ‘회와 구운 고기’라는 뜻이다. 회라 하면 흔히 생선회를 떠올리지만 여기서의 회는 날고기, 즉 육회를 가리킨다. 육회는 신선한 고기를 써야 하기에 귀했고, 구운 고기 또한 외식의 단골 메뉴일 만큼 많은 이들이 즐기는 음식이다. 그래서 ‘회자되다’는 사람들이 고기 음식을 즐기듯 어떤 대상에 대해 칭찬하고 좋아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명작은 회자해도 되지만, 사기 범죄가 회자되면 당혹스러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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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경위와 진상 규명 누구나 일을 하다 보면 실수할 때가 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 단순한 문제라면 금방 바로잡고 넘어가겠지만, 종종 업무에 큰 지장을 주는 실수나 잘못이라면 ‘경위서’라는 걸 쓰기도 한다. ‘경위’는 날줄(세로실)과 씨줄(가로줄)을 이르는 말이다. 날줄과 씨줄이 얽혀 옷감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어떤 일이 진행된 과정을 뜻한다. 경위서는 사건의 발생 원인, 과정, 결과를 비롯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보고하는 문서다. ‘시말서’도 있다. ‘시말’은 처음과 끝이란 뜻이니, 시말서 역시 어떤 일이 벌어진 처음부터 끝까지 그 경위를 적는 것이다. 둘 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려는 것인데, 시말서는 일본식 한자어이므로 ‘경위서’로 바꿔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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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힙합과 러닝크루 지난주, 579돌 한글날을 기념하는 한글주간을 맞아 열린 토론회에 다녀왔다. 주제는 ‘외국 낱말, 외국 문자 줄일 방안’, 우리말글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이라면 머리를 싸매는 숙제이다. 외국어는 물밀듯이 들어오는데 대체할 표현을 찾는 일은 더디니, 금세 우리말처럼 자리 잡아버리는 외국어가 많다. 신개념 용어가 잇따르는 정보기술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넘어 일상생활에서도 그렇다. 주로 영어에서 온 이 단어들은 이상하게 변형되거나 합쳐진 ‘콩글리시’로 널리 퍼지기도 한다. ‘핸드폰’ ‘헬스’ 등이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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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가을에는 손톱 발톱이 다 먹는다 한가위 연휴가 끝나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연휴 기간 가벼운 긴소매, 겉옷들을 꺼내며 올가을에는 이 ‘가을것’을 제대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년간 이 시기가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통에 가을다운 가을을 만끽하지 못했다. 가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천고마비’이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인데, 말띠 지인들은 “그래서인지 가을만 되면 살이 찐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어디 말뿐일까. ‘가을에는 손톱 발톱이 다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가을에는 손톱이나 발톱까지도 먹을 것을 찾을 만큼 매우 입맛이 당겨 많이 먹게 된다는 뜻이다. 한여름 무더위에 지쳐 식욕까지 떨어진 이들에게 시원한 바람과 함께 풍성한 먹을거리가 눈앞에 펼쳐지니 가을에 살이 찌는 건 자연현상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