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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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1885년 미국 제18대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 사망 미국 대통령들의 인생은 대체로 파란만장하다. 제18대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impson Grant·1822년 4월27일~1885년 7월23일)의 삶도 그랬다. 미국 워싱턴주에 그의 이름을 딴 ‘그랜트카운티’가 있고 미화 50달러 지폐에 얼굴이 새겨질 정도로 훌륭한 군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10인’에 선정될 정도로 무능하고 끔찍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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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2005년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이구 별세 2005년 7월16일 일본 도쿄 아카사카의 뉴프린스호텔 202호에서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그는 고종의 손자이자 영친왕의 아들인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이구(1931년 12월29일~2005년 7월16일·사진)였다. 사망 장소인 뉴프린스호텔은 공교롭게도 자신이 태어난 영친왕의 저택 터에 세워진 건물이었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알려졌지만 일본 측이 사인을 심장마비라고 하면서도 부검을 실시한 점, 시신 발견자의 “얼굴에 검은색이 돌았다”는 증언, 일본과 한국의 비행거리가 길지 않음에도 시신에 방부 처리를 한 점 등을 들어 독살 등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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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1966년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조인 몇 해 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MBC드라마 의 한 장면이다. 조선에서 상습적으로 인신매매를 저지르던 청나라 상인들이 투옥되자 청의 사신은 정조에게 “청국의 백성들이옵니다. 명나라 때부터 본국으로 압송하는 게 원칙이옵니다”라고 말한다. 이에 정조는 “조선에서 죄를 지었소. 죄상이 명백하니 마땅히 여죄를 추달해야 할 것이오”라고 맞선다. 드라마 속 가상 인물인 조정 대신 최석주는 “제 땅에서 죄지은 자를 처벌하지 못한다면 장차 어떻게 제 나라 백성의 안위를 지키고 종사를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정조의 대응을 옹호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상황이다. -
어제의 오늘 1994년 월드컵 자살골 콜롬비아 선수 피살 1994년 미국월드컵, 콜롬비아는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히고 있었다. 남미 지역예선에서 강호 아르헨티나에 맞서 홈에서 2-1, 원정에서 5-0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프란시스코 마투라나 감독의 용병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콜롬비아는 28년 만에 본선에 오른 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이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둔 바 있다. 따라서 94년 미국월드컵을 앞두고 국민들의 기대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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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1952년 이승만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6·25 전란이 한창이던 1952년 6월25일 임시수도인 부산 충무로 광장에서는 ‘6·25멸공통일의날’ 기념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전 11시 이승만 대통령의 훈시 도중 단상 뒤 VIP석에 앉아있던 한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와 이 대통령을 향해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거리는 불과 3m 남짓, 하지만 탄환 불발로 저격은 실패한다.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의열단(義烈團) 출신 유시태(柳時泰·1890~1965·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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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1985년 나가노 가즈오 도요타상사 회장 척살 사건 1985년 6월18일 일본 오사카, 기타구에 있는 한 아파트에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2000억엔(당시 약 7500억원)이 넘는 고객 돈을 가로챈 도요타상사(豊田商事) 나가노 가즈오(永野 一男·사진) 회장이 이날 구속된다는 정보에 따라 기자들은 현장 생중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후 4시30분쯤, 괴한 2명이 기자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노의 집 앞으로 접근했다. 괴한들은 기자들에게 “피해자들의 부탁을 받았다. 나가노 회장을 죽이러 왔다”고 말하며 품속에서 칼을 꺼냈다. 그들은 태연하게 창문을 깨고 집 안으로 들어갔고, 비명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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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1946년 만담가 신불출, 태극기 풍자 사건 “태극기 중앙의 붉은빛은 공산주의이고 파란색은 파쇼이며 그 주변의 4괘는 소련, 미국, 중국, 영국의 4개 연합국입니다. 이 국기를 만들 때부터 우리 민족은 남북이 갈리고 숙명적으로 4개국의 신탁통치를 받게 되어 있었죠. … 우리 속담에 ‘큰코다친다’는 말이 있는데 코가 더 큰 미국이 결국 쫓겨나게 될 겁니다.” 1946년 6월11일 밤, 당대 최고의 만담가 신불출(申不出)이 ‘6·10만세운동 기념 연예대회’에서 공연한 ‘실소사전(失笑辭典)’의 한 대목이다. 신불출은 공연 후 태극기를 풍자의 소재로 쓰고 미국을 비난했다는 등의 이유로 미군정청에 구속됐다가 벌금형을 받고 풀려난다. 일제 말기부터 공산주의에 심취했던 신불출은 결국 이듬해인 47년 월북을 하게 되고, 이후 남한 역사에서 신불출이란 이름은 사실상 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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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2002년 월드컵 출전 48년 만에 첫 승 2002년 ‘월드컵 4강’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온 국민이 열광했던 ‘4강 신화’는 2002년 6월4일 시작됐다. 이날은 월드컵 D조의 한국이 ‘동유럽 강호’ 폴란드와 예선전 첫 경기를 치른 날이다. 결과는 기대를 뛰어넘는 2-0 완승. 1954년 스위스월드컵을 시작으로 48년간 6번째 출전에 15번째 경기 만에 거둔 감격적인 월드컵 첫 승이었다. 이날은 경기가 열린 부산월드컵경기장뿐 아니라 온 나라가 경기장이었다. 이때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한 ‘거리응원’은 전국을 붉은색으로 뒤덮었다. 광화문4거리에 15만명, 경향신문과 SK텔레콤·종로구청이 함께 마련한 대학로 거리응원에도 10만명의 인파가 몰려 기쁨의 순간을 함께했다. -
어제의 오늘 1504년 연산군, 무자격 내시 사건 연루자 참수 조선시대 내시(內侍)는 임금을 보좌하고 궁궐 내의 잡무를 맡아보던 공무원이다. 왕명 전달, 왕족 수발, 궁궐 의전 등을 주 업무로 하였으며 법제상 종2품까지 승진이 가능했지만 정치참여는 제한됐다. 내시가 되려면 특별한 자격조건이 필요했다. 궁궐 안 모든 여성은 임금의 여자인 까닭에 궁궐에 상근하는 내시는 거세자만이 임명될 수 있었다. 여기엔 성욕을 억제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고환 기능만 상실시키고 ‘남근’은 제거하지 않아 성생활은 가능했지만 임신을 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고자 어린이를 양자로 두기도 했다. 이러한 양자 제도는 궁중에 내시를 충원하는 한 방편이기도 했다. -
어제의 오늘 1995년 권재도 목사 ‘부부의날’ 운동 시작 매년 5월21일은 ‘부부의날’이다. 조금은 생소하지만 2003년 국회 청원을 거쳐 2007년부터는 대통령령으로 달력에 표시되기 시작한 어엿한 법정 기념일이다. 부부의 해체를 막아야 고령화·청소년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로 제정됐다. 날짜엔 가정의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첫 주창자인 권재도 목사는 1995년 어린이날 “우리 엄마·아빠가 함께 사는 게 소원이에요”라는 한 어린이의 TV 인터뷰를 보며 충격을 받아 ‘부부의날’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
어제의 오늘 1948년 이스라엘 독립 1세기경 로마의 식민지 생활을 하던 유태인들은 제국에 맞서 독립전쟁을 일으키지만 크게 패하고 만다. 유태인들은 고향을 떠나 전 세계로 흩어졌고 팔레스타인 밖에 살면서도 종교와 생활관습을 유지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유랑을 시작한다. 2000년 가까이 나라 없이 떠돌던 유태민족은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다. 중세 기독교부터 이어온 ‘예수의 살해범’이라는 편견은 시간이 지나며 ‘혐오’로 깊어졌다. 무수한 차별은 물론 나치에 의한 학살까지 자행된다. 이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선 스스로를 지켜야만 했고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유태인들은 유럽보다 편견이 덜한 신대륙 미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았고 경제 등 각 분야, 특히 금융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이룬다. 만약 인구 수나 교역량 등 외형적 기준이 아닌 노벨상 수상 같은 학술적 업적, 전 세계 금융·상권에 대한 영향력 등 민족의 질적 측면만을 고려해 경쟁력을 따진다면 아마도 이스라엘을 세계 최강국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
어제의 오늘 1991년 한국 오로라탐험대 북극점 정복 1991년 5월7일 새벽 1시(한국시간 오후 3시) 북극점에 태극기가 꽂혔다. ‘오로라탐험대’ 최종렬·신정섭 대원의 GPS는 북위 89도59분58초를 나타내고 있었다. 정 90도와는 2초 차이가 나지만 극점에 1분의 오차를 적용하는 국제 규정에 따라 한국이 북극점을 정복하는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미국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가 1909년 세계 최초로 북극점을 밟은 이후 국가로서는 11번째, 팀으로는 18번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