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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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1998년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범 얼 레이 사망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는 1968년 4월, 39세의 나이로 불꽃 같은 삶을 마감한다. 흑인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머물고 있던 테네시주 멤피스의 한 모텔에서 백인이 쏜 흉탄에 스러졌다.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1964년·35세)이며 세계가 주목하던 그를 저격한 사람은 당시 40세의 보수성향 미국인 제임스 얼 레이(James Earl Ray)였다. -
어제의 오늘 2003년 ‘세계음성(音聲)의 날’ 제정 매년 4월16일은 ‘세계 음성의 날(World Voice Day)’이다. 건강한 목소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세계인에게 알리기 위해 제정된 날로 1999년 브라질 의사들의 주창으로 시작됐으며 2003년 각국의 후두학 교수들이 4월16일을 기념일로 공식화했다. 목소리는 상대방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임에도 혹사당하는 목과 목소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아직 부족한 상태다. -
어제의 오늘 1997년 마우스 발명 엔젤바트 美 최고 발명가상 마우스는 인간과 컴퓨터의 실시간 소통을 가능케 한 혁명적 발명품이다. 만약 마우스가 없었다면 컴퓨터는 아직도 일부 전문가의 전유물에 그치고 지금처럼 대중화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우스는 43년 전인 1968년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더글러스 엔젤바트(Douglas Engelbart·1929~)가 고안한 최초 마우스의 본명은 ‘X-Y 위치 조절장치’였다. 마우스의 조상 격인 이 장치는 가로·세로 10㎝에 높이 5㎝가량의 투박한 나무상자였다. 위쪽에는 쥐의 눈을 닮은 빨간색 버튼이 하나 달려 있고 아래엔 쥐의 꼬리 같은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날렵한 지금의 마우스와는 달랐지만 바닥에 달린 바퀴의 움직임으로 방향을 감지하고 버튼으로 클릭하여 신호를 입력하는 개념엔 차이가 없었다. -
어제의 오늘 1998년 박근혜, 4·2재보선 국회의원 당선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1998년 4·2 재·보선에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본격 정치인생을 시작한다.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 출마, 당시 여권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합공천을 받은 엄삼탁 후보와 맞서 61%의 득표율로 압승을 거둔다. 당시 감회를 묻는 경향신문 기자에게 “부강하고 튼튼한 나라를 만들고자 노력하시다 비운에 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 앞으로 아버지의 유업을 계승·발전시켜야 하겠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깨끗하고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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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1991년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으로 알려진 대구 달서구 성서초등학교 학생 5명이 실종된 날은 1991년 3월26일. 이날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중단됐던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해 기초의원을 뽑는 투표가 있던 날이다. 임시 공휴일인 까닭에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됐던 아이들은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와룡산 초입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감쪽같이 사라졌다. -
어제의 오늘 1962년 국내 원자로에 ‘제3의 불’ 첫 점화 연쇄적 핵분열은 보통의 화학반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러한 연쇄 핵분열의 반응 속도를 줄이지 않고 일시에 열을 방출하면 원자폭탄이 되고, 반응 속도를 줄여 지속적으로 방출시킨 열로 터빈을 돌리면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원전)가 된다. 원자력 기술의 핵심은 바로 ‘불 조절’이다. 1962년 3월19일 오전 10시55분, 국내 첫 연쇄 핵분열 실험이 시작됐다. 경기 양주군 원자력연구소(지금의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설치된 연구용 원자로 속 핵연료봉 56개에 순차적으로 점화가 이뤄지고 6시간이 흐른 오후 4시45분 원자로 내부의 핵분열 반응은 임계치에 도달했다. 우리나라가 ‘제3의 불’로 일컬어지는 원자력을 조절할 수 있게 된 역사적인 순간이다. -
어제의 오늘 1925년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 서거 중국이 1911년 10월10일 신해혁명을 통해 청 왕조를 몰아내고 공화정을 수립한 지 올해로 100년이 됐다. 혁명의 중심에는 민족·민권·민생을 3대 원칙으로 하는 삼민주의(三民主義)정신이 있었고, 그 이념의 토대를 만든 사람은 바로 쑨원(孫文)이다. 쑨원은 1866년 광둥성(廣東省) 샹산(香山:지금의 中山)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4세때 형을 따라 하와이로 유학, 일찍이 서구의 문물을 접하게 된다. 귀국 후 26세에 의사가 됐지만 평범한 의사로 살아갈 순 없었다. 청나라 말기 서구 열강의 식민지 취급을 받던 중국 상황은 그에게는 너무도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
어제의 오늘 1953년 구 소련 독재자 스탈린 사망 스탈린은 러시아제국의 일부였던 그루지야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세계 최강 시절의 소련(소비에트연방)을 이끌었던 입지전적인 독재자였다. 본명은 이오시프 비사리오니치 주가슈빌리. ‘스탈린’은 ‘강철 사나이’란 뜻으로 처음엔 그의 필명이었지만 정치입문 후 이름처럼 쓰이게 된다. 그를 발탁한 것은 레닌이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에 성공한 레닌은 새로운 러시아 건설에 의욕적으로 나선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반발, 당 내 노선 갈등, 낙후된 경제조건 등 레닌의 사회적 실험에는 너무나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결국 ‘강철 요새’ 같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모든 장애물을 깨부술 냉혹하고 추진력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결국 스탈린을 선택한다. -
어제의 오늘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3주년 산행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2월26일 일요일 아침, 취임 3주년을 맞아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악산 산행에 나섰다. ‘참여정부 3돌’을 기념하며 기자들과 소탈하고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마련된 조촐한 행사였다. 이날 코스는 삼청터널 초입에 위치한 군 초소에서부터 그해 4월부터 일반 국민에게 개방된 숙정문을 지나 북악산 정상 아래 동산쉼터까지 오르는 2.6㎞였다. -
어제의 오늘 1992년 동계올림픽 사상 첫 메달 획득 동계스포츠의 ‘변방’으로 여겨졌던 대한민국이 ‘다크호스’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제16회 프랑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때부터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동계올림픽 출전 사상 첫 메달을 따냈다. 김윤만 선수(당시 19세)가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는 낭보는 1992년 2월19일 새벽에 날아들었다. 한국이 1948년 제5회 스위스 생모리츠 대회를 시작으로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지 44년 만의 일이다. 당시 김윤만 선수의 기록은 1분14초86으로 금메달을 딴 독일의 올라프 진케와는 불과 0.01초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100분의 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바뀌었기 때문에 메달 소식의 기쁨 뒤에는 아쉬움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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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2000년 한국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창립 2000년 1월22일 새벽 1시, 여의도 63빌딩에선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숙원이던 ‘프로야구선수협의회’의 창립총회가 열렸다. 총회는 원래 6시간 전인 21일 저녁 7시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약속시간이 다가옴에도 선수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선수협은 무산되는 듯 보였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송진우(한화), 양준혁(당시 해태) 등 대표자 8명은 각 구단의 선수 참석 방해를 비난하며 농성에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 후 거짓말처럼 선수들이 하나둘씩 회의장으로 모여들었다. 밤 11시가 되자 100명을 훌쩍 넘어섰다. -
어제의 오늘 1987년 김만철씨 일가 탈북·‘제27 동진호’ 납북 1987년 1월15일 새벽 1시. 북한 함경북도 청진시의 바닷가에선 북한군의 삼엄한 경비망을 피해 배에 오르는 11명의 민간인이 있었다. 68세 노인부터 11세 어린이까지, 김만철씨 일가의 탈북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들은 오직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기 위해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김만철씨는 당시 북한군 해안경계부대의 군의관이었기에 항해가 자유로운 어로감시선을 훔쳐 탈 수 있었다. 그들이 가려고 했던 ‘따뜻한 남쪽 나라’는 사실 인도네시아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