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버들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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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네게 이름을 붙여줄게, 그럼 넌 내 꿈이 될 거야 이 책을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장을 닫으며 꽤 근사한 사진전 혹은 독립영화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이 든다. 필름 카메라로 찍은 실제 사진과 다양한 이미지를 합성해 만든 서사가 유쾌하다. 레트로한 색감과 감각적인 타이포그래피가 어우러져 ‘힙한’ 세계가 되었다. 그림책 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을 깨버리는 연출이 ‘베리베리(very very)’ 신선하다. -
그림책 사랑한다, ‘고로’ 상처받는다…그럼에도 사랑할밖에 만약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험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배신감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것이다. 고양이 고로가 가출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집사 봄씨가 쓴 글 때문이었다. 사고뭉치 고로가 물을 엎지르면 봄씨가 수습하는 여느 날과 같던 어느 날. 고로는 “무섭디 무서운 깡패 고양이”라고 쓴 봄씨의 글을 우연히 읽고 온몸의 털이 쭈뼛 선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데, 마지막 문장인 “하지만 고로를 사랑한다, 아주 많이”는 보지 못했다. 상처받은 고로는 15년 동안 산 집을 나가버린다. 하지만 고로는 몰랐다. 집 나가면 개고생, 아니 ‘고양이 고생’인 것을. “이건 봄 언니를 벌하기 위해서야”라고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말을 중얼거리지만, 그저 공원 수풀 속에 쭈그려앉은 처량한 고양이일 뿐이다. 그때 한 남자가 고로를 발견하고 버스에 태운다. -
그림책 비우니 쉼이 채워졌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원한다. 좋아 보이는 것들을 사들이고, 잠시 만족하고 금세 방치한다. 갈망은 부지런하게 잉여를 만들어낸다. 집 안은 물건들로, 도로는 자동차로 가득 찬다. 우주마저도 인공위성과 우주 쓰레기로 빈틈을 잃어간다. 물질은 쌓여가는데 우리는 늘 공허하다. 한 과학자가 있다. 그는 무한함을 꿈꾸는 괴짜다. 오직 ‘정말로 텅 비어 고요한 것’을 만드는 연구에만 몰두했다. 몇년 동안 홀로 실험을 거듭한 끝에 ‘텅텅 펌프’를 만들어냈다. 작동 스위치를 누르자 커다란 틈새, 뻥 뚫린 허공 같은 곳이 나타났다. 과학자는 그 공간으로 들어갔다. -
그림책 못난 내 마음 너도 나야 이제 안아줄게 누구에게나 외면하고 싶은 마음의 표정이 있다. 짜증 내고, 미워하고, 토라지는 마음. 어둡고 뾰족한 그 마음은 모른 척할수록 더 크게 자란다. 유키도 그렇다. 수업이 끝나고 매일 데리러 오는 오빠는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다. 언제나 꼭 필요한 말만 하고 가방도 휙 빼앗듯 가져가니까. 후드 모자까지 푹 눌러쓴 채 저만치 앞서 걷는 오빠가 밉다. 유키는 홧김에 오빠가 맡긴 열쇠를 하수구에 던져버린다. 자신의 돌발행동에 깜짝 놀란 유키는 열쇠를 찾아 하수구 아래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진흙 괴물을 만난다. 괴물은 유키에게 이곳이 네 집이라며 ‘제발’ 머물러 달라고 애원한다. 늘 ‘그만해’라는 말만 듣던 유키는 ‘제발’이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린다. 두려우면서도 어딘가 측은한 괴물이 자신과 닮은 것만 같다. -
그림책 “그날 이후에도 이렇게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여행 가방을 든 아이가 현관문을 나선다. 아이는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전한다.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스무 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하다고. 빈 교실 책상에 엎드려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는 아빠에게 사과한다. 휴대폰 충전 안 해놓고 걱정시켜서,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까지 일주일이나 연락 못해서 미안하다고. -
그림책 고슴도치 등에 패랭이꽃이 피었습니다 천수국, 안개꽃, 수염패랭이꽃이 피었습니다. 어디에? 고슴도치 등 위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이 마법 같은 사건은 샌드게이트 마을의 팍스 저택에서 시작된다. 팍스 저택에는 재스터 부인이 홀로 살고 있다. 사실 재스터 부인은 혼자가 아니다. 저택 정원에는 부인의 피아노 연주 소리를 좋아하는 고슴도치도 산다. 해가 지면 재스터 부인은 고슴도치가 활동하는 시간에 맞춰 우유접시를 내어놓는다. 따스한 5월. 부인은 정원을 새로 가꾸기 위해 흙을 모아 땅을 다지고 꽃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 눈이 침침한 부인은 그곳에 고슴도치가 있는 걸 알아채지 못한다. 고슴도치도 자리를 옮길까 고민하다 살살 긁어주는 갈퀴가, 솔솔 닿는 씨앗이, 쏴쏴 내리는 물줄기 느낌이 좋아서 그대로 있기로 한다. -
그림책 기계가 읽어주는 책? 내가 직접 읽는 책! 부캥빌 주민들은 책을 사랑한다. 이들에게 책은 일상이다. 책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부캥빌 주민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이들은 책을 ‘듣는’다. 도서관 2층을 가득 채운 책장에서 책을 골라 커다랗고 새빨간 기계에 집어넣은 뒤 주렁주렁 달린 줄 끝에 귀를 대고 앉아 로봇이 읽어주는 책을 듣는다. 콰앙, 촤앙, 끼익. 맙소사. 갑자기 기계가 고장이 나버린다. 새카만 연기를 뿜어낸 기계는 복구 불능 상태가 된다. 사람들은 패닉에 빠진다. 책을 들을 수 없다니. 국가적 재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시장님이 대책을 내놓는다. 책 읽어주는 기계가 고쳐질 때까지 시몬 할머니에게 가보라는 것이다. 시몬 할머니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책 읽어주는 기계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를 괴짜라고 생각했다. 책장을 직접 만지고 종이 냄새를 맡고 책을 ‘읽기’ 때문이다. -
그림책 “내가 뭐긴, 나는 나야” 프란시스코는 조용한 아이다.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면, 자기를 싫어할까 봐 늘 걱정이다. 친구들이 하니까 축구를 하고, 내키지 않지만 전학생을 놀리는 아이들 곁에서 억지웃음을 짓는다. 좋아하는 색이 분홍색이 아니라 빨간색이라고 거짓말도 한다. 그럴 때마다 불편해지는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찬다. 교장 선생님이 “공주님”이라고 불렀을 때는 갸름하고 하얀 얼굴이 너무 싫어진다. 프란시스코가 자신의 마음과 다르게 행동할 때마다 교실 앞 옷걸이에 걸린 이름표의 이름이 한 글자씩 사라진다. 끝내 한 글자도 남지 않았을 때는 내 안의 내가 사라진 것만 같아서 서글퍼진다. -
그림책 시끄러운 네 마음…들어줄게, 넌 서툴 뿐이야 꽥이는 밉상 거위다. 남이 말할 때마다 ‘꽥꽥’ 끼어든다. 친구들과 컵케이크를 나눠 먹을 때는 맛있는 체리만 쏙쏙 빼먹는다. 입만 열면 자기 이야기만 하고 도서관에서든 극장에서든 장소 불문하고 ‘꽤애애애애액’ 거침없이 소리를 지른다. 책은 찢어야 제맛이라 여기고, 친구의 풍선은 터트려야 직성이 풀리는 꽥이는 친구들에게 기피 대상 1호다. -
그림책 등 돌린 우리, 이대로 걷다 보면…결국 다시 만날 겁니다 총을 든 나와 당신이 서로 등을 돌린 채 앞을 향해 걷는다. 하나, 둘, 셋… 발걸음이 멈추면, 뒤를 돌아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당신은 나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주었다. 그대가 했던 가시 박힌 말들은 심장을 꿰뚫는 상처가 되었다. 그렇게 논쟁은 전쟁이 되었다. 하나가 쓰러져야 이 갈등이 끝날 수밖에 없다고 우리는 믿었다. 나는 먼저 공격을 당할까 두려우면서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당신과의 대화가 떠올라 답답하다. 다섯, 여섯, 일곱…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나는 생각을 거듭하며 하염없이 걷는다. 형형색색의 상점, 극장, 골목들을 지난다. 나의 곁으로 분주하고 활기찬 세상이 스친다. 들판과 바다, 우주를 건넌다. 걸으면 걸을수록 처음에 하려고 했던 일이 희미해진다. 내 마음을 장악했던 당신의 뾰족한 말들이 이 넓고 다채로운 세상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냉담했던 마음은 어느새 꽃처럼 환해진다. 나는 총을 버리고 펜을 들어 편지를 쓴다. ‘친애하는’ 그대에게 이제 무기를 내려놓고 나를 만나러 오지 않겠냐고 적는다. -
그림책 날 수 없는 내게 왜 날지 않냐 묻지 않아준 너에게 날개를 펼치면 아름다운 세상을 만날 수 있는데, 왜 날지 않냐고 아무리 말해줘도 도무지 날고 싶지 않은 파랑새가 있다. 슬픔이 너무 깊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파랑새는 그저 홀로 숲의 그림자 속에서 침잠할 때가 가장 편안하다. 어느 날 수풀 사이를 걷다 사냥꾼에게 붙잡힌 파랑새는 인간들의 눈요기가 되다 버려진다. 도시의 뒷골목에 쓰러져 있는 그에게 다가온 건 발목에 쇠사슬을 찬 플라밍고. 플라밍고는 파랑새를 데리고 도시에서 탈출한다. 다시 숲으로 돌아온 파랑새는 예전처럼 외롭지 않다. 플라밍고는 파랑새가 날지 않는다고 다그치지 않는다. 둘은 함께 걷고, 열매를 따먹고 서로에게 기대어 잠이 든다. -
그림책 엄마와 나, 서로에게 달려가고 있어요 # 트럭에 실린 채 옮겨지던 아기 여우가 우연히 열린 철창을 빠져나온다. 여기가… 어디지? 낯선 도시 한가운데 혼자 남은 아기 여우는 겁에 질린다. 엄마인 것 같아 달려가 보면 옷 가게에 걸린 모피코트이거나 털이 복슬복슬한 커다란 개일 뿐. 이리저리 헤매어도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풀이 죽어 공원을 배회하는데 한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나를 트럭에 실었던 남자다! 아기는 자전거 뒤를 쫓아 달린다. 그 남자가 들어간 농장의 문이 잠겨버려 돌아설 수밖에 없는 아기 여우는 숲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기의 마음은 오직 하나로 가득 찬다. ‘엄마 너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