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경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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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 구석기 시대 예술가 동굴 벽화를 그린 사람은 누구일까? 물론 기록이 없기에 당시 그림을 그린 예술가를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어떤 사람인지 상상해볼 수 있을 뿐이다. 동굴 벽화는 동굴 깊숙한 곳에 그려져 있다. 구석기인들은 주로 출입이 용이한 입구에서 생활했기에 벽화가 그려진 장소가 깊숙하다는 것은 특별히 소중한 공간이었다는 의미다. 마치 현대의 성당이나 신전처럼 신성한 장소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동굴 벽화는 사제나 제사장처럼 신성한 공간을 관리하는 주술사가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흥미로운 점은 주술사의 성별이다. 미술사학자 양정무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처럼 오래된 조각에 여성이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주술사는 여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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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 가장 흔한 구석기 흔적, 손바닥 가장 오래된 손바닥 도상은 약 5만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지역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사실 손바닥 그림은 세계 곳곳의 구석기 유적에서 자주 발견된다. 대부분은 손바닥을 벽에 대고 입으로 염료를 뿜어서 손의 윤곽이 드러나는 스텐실 기법을 활용했다. 그럼 전 세계 구석기인들은 왜 손바닥을 그렸을까? 구석기 시대는 문자가 없던 시절이라 그 의도를 정확히 읽을 수 없다. 그래서 미술사학자 양정무는 “원시미술을 볼 때는 상상력을 동원해야”한다고 말한다. 우리도 마음껏 상상력을 동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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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 동굴벽화로 살펴본 라스코의 역사 역사는 보통 문헌에 기록된다. 사람들은 생각을 주로 문자로 기록하기에 역사가들은 문헌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살피고 구성한다. 만약 문자가 없으면 어떻게 역사를 기록할 수 있을까. 이럴 땐 그림이 유용하다. 아이들처럼 그림으로 그리고 말로 보완하면 된다. 대표적으로 구석기 시대가 그랬다. 구석기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그렸다. 동굴 벽에 그려진 그림들이 그 증거다. 만약 이들에게 역사가 있었다면 그림으로 사실을 기록하고 구전으로 전승하며 역사를 계승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구석기 동굴벽화는 미술적 가치만이 아니라 문헌적 가치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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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 신에서 스테이크까지 1940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프랑스 몽티냑 마을 소년들이 강아지를 찾던 중 거대한 벽화가 그려진 동굴을 발견했다. 이 동굴이 그 유명한 ‘라스코 동굴’(사진)이다. 약 2만년 전에 그려진 라스코 동굴벽화는 원시미술을 대표한다. 벽화에는 말과 사슴 등 여러 동물이 등장하는데 가장 눈에 띄는 동물은 머리에 뿔이 달린 가로 길이가 약 4m인 소이다. 이 소는 오록스종으로 스페인 투우에 등장하는 거친 황소들의 조상이다. 구석기인들은 왜 거대한 소를 그렸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 그 이후의 역사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약 1만년 전 차탈회위크 유적에 거대한 소를 그린 벽화가 있다. 학자들은 차탈회위크 사람들이 소를 숭배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약 5000년 전 크레타섬의 신화에 전설적인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등장한다. 머리는 소이고 몸은 인간인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타 문명의 상징이었다. 미케네 문명의 왕자 테세우스는 이 상징을 죽이고 미노스 문명을 정복한다. 이후 그리스 문명의 신들은 동물이 아닌 인간의 형상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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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 동굴에서 발견한 신화 인간의 조상은 누구일까? 이 문제에 크게 두 가지 대답이 있다. 하나는 신, 다른 하나는 동물이다. 전자는 창조론, 후자가 진화론이다. 불과 150년 전까지 사람들은 인간의 조상은 신이라고 믿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자 “우리의 조상이 원숭이냐”며 크게 반발했지만 다윈의 진화 가설들이 검증되면서 이젠 ‘창조’보다 ‘진화’ 스토리를 믿는 사람이 더 많다. 디자인의 본질은 스토리에 있다. 인간은 경험에 기반한 상상력을 동원해 자신들의 존재를 이야기로 구성한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수천년의 시공간을 초월해 하나의 집단으로 결속한다. 사실 진화론도 최근의 발견이 아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진화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단군신화가 대표적이다. 단군의 어머니 웅녀(熊女)는 본래 곰이었다. 웅녀는 신의 아들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 이렇듯 단군신화는 인간이 신의 자녀라는 창조론과 인간이 동물의 자녀라는 진화론을 적절히 조화시킨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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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 가장 오래된 예술, 춤 무심코 TV를 켰는데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이 음악에 맞추어 즐겁게 춤을 추는 장면이 나왔다. 방송 제목은 <생로병사의 비밀-치매혁명 프로젝트>였다. 방송 내내 의사, 뇌과학자를 인터뷰하며 춤이 치매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이라 주장한다. 요약하면 단순한 동작의 운동보다 복잡한 동작인 춤이 뇌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어쩐지 뇌발달이 가장 활발한 어린아이들은 춤을 많이 춘다. 어르신들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춤을 권장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춤을 빼놓고 대중문화를 논할 수 있을까. 춤은 아이돌이나 클럽의 전유물이 아니라 가장 오래되고 일상적인 예술이다. 예나 지금이나 각종 행사와 의례에서 춤을 춘다. 나는 예술을 크게 ‘춤’과 ‘건축’으로 구분한다. 두 분야는 모방대상이 다르다. 건축가는 조상의 건축형식을 모방하지만 자유로운 몸짓인 춤은 명확한 모방대상이 없다. 그래서 춤은 신내림 무당처럼 신의 영감이 몸에 깃든 것이라 여겨졌다. TV 인기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맨 앞줄 어르신들이나 록밴드 공연의 관객들은 마치 신의 영감을 받은 듯 춤을 춘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무사의 신이여.”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도 일리아스를 읊기 시작할 때 신을 암시했다. 이들은 모두 모방이 아닌 영감에 의해 몸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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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 광화문 현판 ‘광화문’은 세종대왕이 붙인 이름으로 그 뜻은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이다. 광화문은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등 우리 역사의 수난 속에서 훼손과 복원의 곡절을 겪어왔다. 문화재청은 지난 8월14일 광화문 현판 글자의 원래 색상이 금박이었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현재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된 현판을 떼고 새 현판을 달 것”이라고 발표했다. 옛것의 복원을 내세운 것이지만 이에 대해 다른 시각들도 있다. 한재준, 강병인 등 디자인계 많은 인사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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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 버려지는 조각, 투빌락 인간은 왜 조각을 할까? 조각은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활동을 넘어 인간의 내면적 이상을 담는다. 무덤이나 성전을 지키는 이집트의 ‘아누비스’와 아시리아의 ‘라마수’도 구석기 시대의 ‘사자인간’처럼 독특한 형상을 가진다. 아누비스의 머리는 자칼이다. 라마수의 머리는 인간이지만 몸은 사자이고 날개가 달려 있다. 이렇듯 인간의 내면적 상상은 주어진 감각 재료들을 조립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디자인 이론가인 빅터 파파넥은 북극의 원주민 이누이트족을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로 꼽는다. 이들에게 예술이나 디자인 개념은 없지만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누이트족은 생존을 위해 디자인한다. 얼음 벽돌로 조각된 이글루는 로마의 아치형 돔을 연상시키지만 기능은 훨씬 뛰어나다. 밖의 온도가 영하 40도를 넘나들어도 이글루 내부 온도는 영상 20도를 유지한다. 이누이트족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조각을 한다. 10㎝ 크기의 작은 조각이지만 제법 디테일이 살아 있다. 특이한 점은 세울 받침이 없어 손에서 손으로 전하며 감상된다. 즉 손으로 만지며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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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 사자 인간은 누구일까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 독특한 모양의 조각을 소개한다. 몸은 인간인데 얼굴은 사자다. 지금까지 이런 형상의 생명체가 발견되거나 보고된 적이 없다. 아마 사자 인간이 조각되었던 수만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피엔스는 경험한 적이 없던 이 형상을 어떻게 조각할 수 있었을까? 하라리의 논리를 살펴보면, 어느 순간 인간 집단이 커지기 시작했다. 큰 집단을 응집시키기 위해선 먹고사는 문제를 초월하는 새로운 가치가 필요했다. 가령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라고 말하고 허구적 신화나 신을 만들어 믿음을 유도하고 질서를 유지했을 것이다. 하라리는 이를 인지 혁명이라 말하고 사자 인간 조각을 증거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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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 동굴에서 아파트까지 “더운 한여름 피서로 동굴이 인기입니다.” 장을 발효시키는 자연동굴에 관람객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동굴 관리자는 한여름에도 실내 온도가 16도로 유지된다며 자랑한다. 머루를 발효시키기 위해 조성된 인공동굴 온도도 비슷하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하고 왜 구석기인들이 동굴에 거주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동굴은 배후지로서 안전했을 뿐만 아니라 추운 날 따뜻하고, 더운 날 시원한 최적의 생활 공간이었던 것이다. 19세기 중반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 동굴 벽화가 발견되었다. 특히 프랑스 남부 베제레 계곡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베제레 계곡은 석회암 지역이다. 벽화가 발견된 동굴 중 상당수도 석회동굴이었다. 왜 그럴까? 석회벽이 밝은 흰색이라 그림 그리기 좋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의 뼈가 칼슘(Ca)이기에 같은 칼슘인 석회가 친숙했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시멘트의 주원료도 석회다. 구석기인들의 동굴과 현대의 건축재료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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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 인류 최초의 디자인, 주먹도끼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의 뜻은 ‘두 발로 보행하는 원시인’이다. 이들은 나무와 뼈, 돌 등 다양한 재료로 도구를 만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와 뼈로 만든 도구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돌만 남았다. 그것이 바로 주먹도끼다. 주먹도끼는 1797년 영국 고고학자 존 프레리에 의해 최초로 발견된 후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유형의 주먹도끼가 발견되고 있다. 주먹도끼 덕분에 사람들은 구석기 시대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주먹도끼는 돌로 깨서 만든 타제석기와 정교하게 갈아서 만든 마제석기가 있다. 전자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고 후자는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오면서 제작 기술이 발달했다. 형태는 대부분 유사하다. 손잡이가 둥글고 끝이 뾰족하며 좌우가 대칭이다. 정성스레 갈아서 만든 마제석기의 경우 대칭성이 더욱 뚜렷하다. 혹시 구석기인들은 ‘대칭’을 의식했을까?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일관된다. 수십만년 전 인류에게 대칭이라는 개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칭을 좋아했다는 증거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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