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최신기사
-
정동칼럼 정치인은 ‘신시내투스’의 미덕을 정치학자인 브라이언 클라스가 쓴 <권력의 심리학>에는 신시내투스라는 인물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기원전 5세기에 로마를 구했다는 인물이다. 당시 로마는 외적의 침입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그래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지도자를 추대하기로 했는데, 당시에 은퇴해 있던 장군이자 정치인인 신시내투스라는 인물이 지목되었다. 로마 사람들이 신시내투스를 찾아가서 부탁하자 그는 책임감에 마지못해 자리를 수락했다. 그의 임기는 6개월이었다. 그는 로마군을 이끌고 외적을 무찌른 후 자신의 역할이 끝나자 취임 한 달도 안 되어 사임했다. 그리고 자신이 농사짓던 농장으로 돌아갔다. 20년 후 로마에는 또 다른 위기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로마 내부에서 발생한 위기였다. 돈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은 자가 공화국을 뒤엎고 왕정을 세우려는 음모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도 팔순이 넘은 신시내투스가 21일간만 자리를 맡아서 위기를 해결하고 물러났다고 한다. 리비우스는 <로마사>에서 신시내투스에 대해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있을 때 유일하게 희망을 걸었던 청빈한 사람’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신시내티’시의 도시명은 신시내투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
정동칼럼 내란 이후, 기본부터 다시 머잖아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될 것이다. 탄핵 심판은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인데, 위헌·위법한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대통령을 파면하지 않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윤 대통령을 파면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친위쿠데타를 일으켜도 된다’고 허용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권력자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다른 헌법기관을 침탈하고 마비시키는 것은 민주공화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소 우여곡절이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윤 대통령은 파면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보수-진보의 문제도 아니다. 최소한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유지하려고 해도,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대통령에 대한 파면은 불가피하다.
-
정동칼럼 보수, 반국가세력과 단절해야 영화 <변호인>에서 배우 송강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역할을 맡아서 열연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애꿎은 학생들을 연행해서 고문한 공안 경찰을 증인 신문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증인이 말하는 국가란 도대체 뭡니까? 국가는 국민입니다. 그런데 증인이야말로 그 국가를 아무 법적 근거도 없이 탄압하고 짓밟았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이 장면은 민주공화국의 본질을 잘 설명한다. 국가는 국민이다.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권력자는 민주공화국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3일 밤 윤석열은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며 내란을 일으켰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무장 군대를 난입시켜 주요 정치지도자들을 체포하고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계엄포고령을 발표했다.
-
정동칼럼 자치입법권 포기한 지방자치 1991년 지방자치 부활 이후 33년이 지났다. 흔히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표현하는데, 과연 지방자치로 인해 주민들의 삶은 좋아졌을까? 지방자치를 통해 생긴 긍정적 변화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조례가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예를 들면 한때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학교급식 조례 제정 운동을 통해 친환경 무상급식이 확대됐다. 농촌지역에선 농민수당 조례 제정 운동을 통해 적은 금액이나마 농민들에게 농민수당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정보공개제도, 주민참여예산제도 같은 중요한 제도들도 지역에서부터 조례로 시작되어 국가적인 법제화로 이어졌다. 1991년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행정정보공개조례가 최초로 제정되었고, 이는 1996년 국가 차원의 정보공개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2003년부터 광주광역시 북구, 울산광역시 동구 등지에서 시작된 주민참여 예산제도는 이후에 지방재정법 개정을 통해 전국적으로 의무화되었다.
-
정동칼럼 대통령 탄핵 요건에 대한 검토 필요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당장 대통령 탄핵을 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탄핵요건에 대한 검토는 필요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탄핵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탄핵절차는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갈등과 혼란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전적인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 대통령 탄핵은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절차이다. 요건도 까다롭다. 대통령이 실정(失政)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탄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탄핵소추를 했다가 기각되면, 오히려 정치적 혼란만 커질 수 있다. 따라서 거대 야당 소속 정치인이 지금 시점에서 탄핵을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지금은 정치권 바깥에서 탄핵에 대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대통령의 권력남용에 대한 견제 효과도 있을 수 있다. 탄핵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운영 방식을 바꾼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
정동칼럼 정당법과 군사쿠데타의 잔재 정치권에서 지구당 부활이 논의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거대 양당 간의 의견 차이가 크게 없는 듯하다. 지난 1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만났을 때도, 20년 전 폐지됐던 지구당을 부활하자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당법을 손보려면, 제대로 손봐야 한다.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고 정치다양성을 훼손하는 군사쿠데타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해방 직후 미군정은 미군정령 제55호로 ‘정당에 관한 규칙’을 공포했다. 이 규칙에서는 정치적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3인 이상의 단체는 정당으로 등록하게 했다. 그런데 미군정은 이 규칙을 근거로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일부 정당들의 등록을 취소하기도 하는 등 권한을 남용했다. 그런데도 이 규칙은 1950년대까지 존속했다. 1958년 조봉암의 진보당이 해산된 것도 이 규칙에 의한 것이었다.
-
정동칼럼 ‘알권리’ 후퇴시킬 행안부의 입법예고 1998년 정보공개법이 시행된 이후 26년이 지났다. 그동안 긍정적인 변화들도 있었지만, 비밀주의의 벽은 여전히 견고하다. 검찰, 법무부, 대통령비서실, 감사원 같은 기관들은 국민 세금을 쓰면서도 정보는 공개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여러 건의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이 진행 중이다. 공공기관이 정보공개를 거부하면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의신청, 행정심판, 행정소송이다. 그런데 이의신청은 정보공개를 거부한 기관이 스스로 재심사를 하는 제도다.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행정심판을 해도,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 자기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행정부 소속인 행정심판위원회도 정보공개에는 소극적인 것이다.
-
정동칼럼 행정심판, 업체 위한 제도가 돼서야 행정심판이란 제도가 있다. 행정청의 위법·부당한 처분으로 침해된 국민의 권리·이익을 구제한다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제도다. 행정소송보다는 걸리는 시간이 짧고, 인지대 등 비용도 안 든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현실에선 국민 권익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영리를 추구하는 업체의 이익을 위한 제도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대법원 판결보다 행정심판 재결이 우위에 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월 경상북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어떤 폐기물업체가 경주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심판에서 업체 손을 들어줬다.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하려고 하는 업체가 경주시에 폐기물관리법에 따른 ‘사업계획서 적합통보 신청’을 했는데, 경주시가 부적합 통보를 한 것에 대해 제기한 행정심판이었다.
-
정동칼럼 그린워싱의 극치, 산업폐기물 매립 서울에서 친환경과 ESG를 표방하는 대기업이 농촌에서는 농지를 없애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유해성이 강한 산업폐기물을 매립해서 돈을 벌려고 한다. 그로 인해 고령의 주민들이 땡볕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고, 불안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바로 SK그룹 얘기이다. SK에코플랜트는 충남 예산군 신암면 등 충남지역 5곳에서 산업단지와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묶어서 밀어붙이고 있다. 그 산업단지 명칭이 ‘그린 콤플렉스’다. 환경오염의 우려가 큰 산업폐기물을 땅에 묻는 사업을 ‘그린’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
정동칼럼 일당지배 선거제도 타파해야 총선이 끝난 후 부산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선거제도 개혁 운동을 할 때 만났던 분이다. 이번 부산지역 총선 결과를 두고 ‘선거제도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전화를 끊고 부산지역의 득표율과 의석비율을 확인해 보았다. 부산지역에 배정된 지역구 의석 18석 중 국민의힘이 17석을 차지했다. 그런데 득표율을 보니 53.86%였다. 부산지역 민심은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국민의힘을 지지한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부산지역에 배정된 의석의 94.44%를 싹쓸이했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가 낳은 결과다.
-
정동칼럼 ‘대권 없는 나라’를 고민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 마지막 부분을 보면, 권력구조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대통령 중심제를 지지해 왔고, 특히 4년 중임제의 정·부통령제를 주장해 왔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밝힌다. 그는 “대통령제하에서 10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독재자들이 비극적 종말을 맞았지만 그 후로도 독재자나 그 아류들이 출현했다. 이를 막기 위해 이제는 대통령 중심제를 바꾸는 것도 고려해 봄 직하다”며 “이원집정부제나 내각 책임제를 도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
정동칼럼 ‘지차비소’ ‘지기비소’를 권함 어느 선거 당시에 있었던 일이다. 투표하러 갔는데, 막상 투표소에 들어가서도 찍고 싶은 후보가 없었다. 그래서 투표용지를 백지상태로 투표함에 넣고 나왔다. 그날 저녁에 최악의 후보가 당선됐다는 개표방송을 볼 때까지도 그렇게 후회하지는 않았다. 정작 후회가 시작된 것은 시간이 좀 흐른 뒤였다. 세상이 더 나빠지고, 그렇게 나빠진 세상이 사람들의 삶을 더 악화시킨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투표를 할 때 갈등이 생기는 경우는 계속 있었다. 늘 투표장에는 갔지만, 여러 장의 투표를 하는 선거에서 일부 투표용지는 백지로 넣기도 했다.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가 늘 분명하게 있는 유권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이런 고민을 한 번쯤은 해 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