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우
이음출판사 대표
최신기사
-
주일우의 내 인생의 책 ⑤바람계곡의 나우시카 - 미야자키 하야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를 바라보면서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호하다고 느낀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책장을 처음 넘겼을 때 마주친, 마스크를 한 소녀의 얼굴은 잊을 수 없었지만, 믿을 수도 없었다. 이 책의 배경은 서구의 산업문명이 시작한 지 1000년 만에 붕괴한 세상이다. 고도화했던 기술문명은 한번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고 붕괴의 여파로 중독된 땅은 생명력을 잃고 불모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작은 그룹으로 모여 살 수밖에 없었다. 불모의 땅에 사는 식물들은 독성을 지닌 포자를 공기 중에 퍼뜨리고, 마스크가 없다면 사람들은 생명을 잃는다.
-
산책자 믿지 않지만, 믿는 것 1987년 유엔의 환경과 개발을 위한 세계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 ‘우리 공동의 미래’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이란 말이 처음 사용되었다. 늘어나는 인구와 에너지 사용 때문에 환경에 부담을 많이 주기 시작한 시점에 뭔가 절묘한 해법을 제시한 것 같은 이 말의 인기는 대단했다. 신문, 방송, 잡지를 가리지 않고 해설이 잇달았고 너도나도 설명과 방안을 내놓았다. 나도, 덩달아 잘난 체하면서 세미나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 말을 곧잘 인용했다. 세상을 사는 방법을 뿌리부터 바꾸겠다는 결심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타협안이었다.
-
산책자 100년 전 한국문학 ‘번역’하기 초등학교 시절, 동화와 만화의 세계를 지나 소설의 세계로 진입할 때, 근대 한국문학 명단편들을 접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처음 읽는 소설들이 한국 작가들이 쓴 소설이기를 원하셨다. 번역된 소설보다 한국 소설을 권하신 이유는, 우리말을 배우는 과정에 있는 아이에게 한국 작가들이 고민해서 공들여 써내려간 단어와 문장들을 만나게 하고 싶으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말을 잘 익히고 나서, 번역 글을 만나면 훨씬 좋을 것이라고도 했다.
-
산책자 당신의 세계관 요즘, 화제성에서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등장인물들은 만화 속 세상에서 산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작가가 독자들에게 보여질 ‘스테이지’에 끌어내면 기억을 잃고, 작가가 준 대사를 읊는다. 로맨스 만화라 남주, 여주, 서브남, 엑스트라 등의 역할에 따라 주어진 설정값이 있고 스테이지에서는 그것을 벗어날 도리가 없다. 하지만 ‘스테이지’ 바깥인 ‘섀도’에서는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을 하면서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에 의문을 지닌, 자아를 가진 캐릭터들이 있다.
-
산책자 한 도시, 같은 책 읽기 21세기 초, 이젠 한참 전이지만 그때 강의에서 20세기 영화를 예로 들면서 수업을 하면, 학생들은 어리둥절해했다. 강의에 영화를 끌어들여 쓰는 이유는, 나와 학생들이 모두 본 공통의 텍스트 위에서 이야기를 하면 주제에 대한 이해가 쉬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학생들이 보지 않은 영화 이야기를 해서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내 또래 친구들에겐 익숙한 영화들이 학생들에겐 낯설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 생긴 해프닝. 그 이후에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생기면 나와 듣는 사람이 어떤 공통의 텍스트를 가지고 있을지 생각을 많이 한다.
-
산책자 퍼블리셔스 서클 대한출판문화협회(KPA)는 국제출판협회(IPA), 국제지적재산권기구(WIPO)와 함께 개발도상국의 출판인들을 지원하는 퍼블리셔스 서클(Publishers Circle)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돈을 모아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출판인들을 초청하고 그들에게 우리나라의 출판 시스템과 운영방식, 저작권의 구매와 거래 방법 등을 교육한다. 퍼블리셔스 서클은 전 세계적으로 운영된다. 유럽의 출판사들은 아프리카의 출판사들과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비상교육이 첫 번 프로그램을 주관하고 다른 출판사들이 다음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
산책자 쇠못 자석 금지된 위험천만한 놀이가 기억났다. 쇠못으로 자석 만들기. 기차 레일 위에 쇠못을 올려놓고 레일에 귀를 댄다. 멀리서 기차가 다가오면 기찻길 아래 숨어 지나가길 기다렸다.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쇠못은 종잇장처럼 얇게 펴졌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이 쇠붙이가 자석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이 아니지만 이 쇠붙이는 딱지나 구슬로 교환할 수 있는 소중한 녀석. 누구 쇠못이 더 센 자석이 되었는지 견주는 것도 재미있었다. 나름 스릴도 있고 소득도 짭짤했다.
-
산책자 ‘재미’ 너머 현대 과학이 설명하는 세계는 냉혹하고 삭막하다. 아니, 사실은 무심할 뿐인데, 대체로 정에 주린 우리들은 그런 태도조차 차갑게 느낄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믿고 있는 설명에 따르면, 138억년 전에 생긴 우주는 언젠가는 멸망할 것이고 거기서 살아남을 생명은 아무것도 없다. 무심한 세계 위에서 물리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입자들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살아갈 의미를 찾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
산책자 볼테르상 내일모레면 서울국제도서전의 문이 열린다. 400개가 넘는 출판사들이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1년간 준비한 비장의 카드들을 일제히 꺼내 놓을 것이다. 주최하는 입장에서도 공들여 준비한 것들을 내놓아야 한다. 이즈음엔 모든 준비를 끝내고 느긋해야 하는데, ‘볼테르상’ 시상식 준비는 끝까지 마음을 졸이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 상은 출판의 자유를 위해서 희생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출판인들에게 전 세계 출판인들이 뜻을 모아 주는 것이다.
-
산책자 책 구독 서비스 책과 관련된 구독 서비스 몇 개가 시작되었다. 이미 음반시장은 음원시장으로 바뀌면서 음악을 굳이 소유하지 않고 매월 정해진 요금을 내면서 듣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제작물들도 구독 서비스가 회원 수를 늘리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들도 월정액을 지불하는 방식의 ‘구독’을 해야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바야흐로 구독 전성시대이다. 주거지 월세에 전기, 수도료 외에도 만만치 않은 휴대전화 요금까지 생각하면 콘텐츠의 ‘구독’ 때문에 지갑은 점점 얇아지고 그것을 다시 채우기 위한 분투가 애달프게 이어져야 하는데, 책도 ‘구독’을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
산책자 타인의 치통 중국 출장길에 치통 때문에 고생을 했다. 난생처음 겪는 치통이었다. ‘두통, 치통, 생리통에…’를 외치던 진통제 광고 문구 때문에 익히 치통이라는 고통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아픈 것인 줄은 처음 알았다.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에 있는 산둥출판그룹을 방문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지난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꽃다발까지 들고 마중을 나온 그쪽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진통제를 구해 달라고 부탁해서 범용 진통제를 얻었지만, 별달리 고통을 줄이진 못했다. 한시라도 빨리 말 통하는 한국으로 돌아가 치과에 가서 고통의 시간을 줄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중국을 방문한 일행들과 단체비자를 받아서 간 까닭에 혼자서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
산책자 출현(Arrival) D-86. 2019년 서울국제도서전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전시를 원하는 출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얼리버드 신청이 며칠 전에 마감되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일반 참여를 위한 길은 열려 있다. 깜빡, 신청을 놓쳤다면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다. 이번 도서전의 주제는 ‘출현’이다. 2017년에는 ‘변신’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출판이 사양 산업이 아니라 미래를 짊어질 콘텐츠 산업의 핵심이라는 것을 선언했다. 작년에는 실제로 책에서 출발한 콘텐츠들이 ‘확장’이라는 주제 아래서 어떻게 다른 영역들로 넘어가고 상호작용을 하는지 보여주려고 했다. 올해는 이렇게 다시 정의한 출판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등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책의 미래를 보여주고 싶다. 무엇이 ‘출현’할까? 무엇이 우리를 찾아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