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우
이음출판사 대표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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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아부다비의 비전 대학수학능력시험 평가에서 제2외국어를 치르는 학생들의 70%가 선택한다는 아랍어. 5지 선다 문제들을 모두 3번으로만 찍어도 4등급은 받는다는 소문에 너도나도 선택한 결과다. 작년에 4만7298명이 아랍어 시험을 봤다. 한두 문제만 틀려도 2등급인 다른 외국어 과목들과 달리 절반만 맞아도 2등급은 받는다. 2022년부터 제2외국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이런 상황은 개선되겠지만 점수를 따는 게 모든 것보다 우선인 세태가 적나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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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알바겸임교수’ 올해는 여러 출판사에서 신입 직원들을 대거 채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지도 않았던 박사급 구직자들이 취업문을 많이 두드릴 것이다. 2019년에 출판계에 대운이 오는 것일까? 혼란스러웠던 뉴미디어의 시대가 드디어 지나가고 다시 책의 시대가 오는 것일까? 어려움을 견디고 차근차근 쌓아왔던 실력이 드디어 빛을 발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독서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도서정가제를 우회하는 전자책 월정제 서비스, 대형 서점의 매대 판매, 중소기업적합업종 때문에 새 책을 판매할 서점을 낼 수 없는 인터넷 서점들이 만든 대형 중고서점, 거기에 더 치열해지는 경쟁 때문에 신간 판매는 오히려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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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동네 서점 건너온 산타 선물 오늘 밤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올까? 온다면, 어떤 선물을 머리맡에 두고 사라질까?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는 이미 산타할아버지의 비밀을 알아버렸음에 분명한데도 시치미를 떼고 있다. 믿는 척하면 엄마, 아빠의 선물에 더해서 산타의 선물을 하나 더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산타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스스로 아는 척하기 전에는 애써, 알아채지 못하게, 몰래 선물을 준비할 생각이다. 동요에 나와 있듯이 산타할아버지는 누가 착한 아이인지 나쁜 아이인지 알고 있어야 하고, 선물 받는 녀석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산타 노릇 하는 데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 녀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여러 날 전부터 이리저리 마음을 떠보고 갑자기 마음을 바꾸면 시간에 맞춰 준비를 하는 데 애를 먹기도 한다. 그리고 깊게 잠들 때를 기다려 함께 꾸민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선물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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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모두가 입을 다문 수능 수학 과학잡지 ‘에피’ 겨울호의 한 부분을 수능 수학과 수능 과학의 리뷰를 싣기로 정한 것은 여러 달 전이었다. 벡터와 기하를 수능 범위에서 제외하는 문제를 두고 수학과 과학계가 반발하면서 수능에서 어떤 범위를 다루는 것이 좋은지를 두고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설전을 정리하고 싶었다. 당시에 수능 수학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과 관련해서 인공지능이 수학의 어떤 범위를 대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전공자도 아닌데, 어려운 문제를 두고 씨름을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셈을 할 줄 알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과 셈을 못하면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 사이에는 깨닫고 얻을 수 있는 것의 차이가 확연하다. 셈을 모르면 응용은 꿈도 꿀 수 없다. 계산기, 혹은 인공지능의 아바타로 살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다가올 미래에 수학이나 과학에 인간이 시간을 덜 쏟아도 된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수능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를 통해서 이런 논란을 돌아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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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출판의 확장, 그리고 자유 10월엔 출판계에서 가장 큰 국제행사가 열린다.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올해도 7500개 회사 혹은 기관이 전시에 참가해서 성황리에 열렸다. 출판계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다 보니 관련 행사들도 많이 열린다. 정성껏 만든 책을 세계 출판계에서 선보이는 데 가장 좋은 자리일 뿐 아니라 출판계가 돌파해야 할 문제들을 짚어보거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사례 발표, 세미나 등도 열린다. 국제출판협회, 국제저작권기구, 복제전송권기구, 국제도서전감독모임 등도 이 기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회의를 연다. 출판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참석하는 첫 3일도 북적이는데, 일반인들에게 전시장을 개방하는 주말엔 발 디딜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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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모스크바 국제도서전 모스크바에 다녀왔다. 두 번째 방문이지만 처음처럼 새로웠다.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탓이다. 기억이 희미해지기도 했고 변화가 크기도 했다. 첫 방문 때는, 소련이 막 개방을 선언했지만 소련 연방 국가들이 독립하기 전이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 독립하고 러시아는 옛 이름을 찾았다. 이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유럽공동체에 가입했고 조지아와 러시아는 전쟁까지 했다. 하지만 나머지는 독립국가연합이라는 느슨한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소련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던 때와 지금 사이엔 수많은 사건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차이들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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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학교에서 배운 것 서울국제도서전이 한창 진행되던 초여름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 찬 바쁜 현장에 초로의 숙녀 한 분이 찾아오셨다. 자원봉사자에게 내 이름을 대며 찾는 것을 들어 고개를 돌리니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었다. 한눈에 알아보았다. 연락 한 번 없는 무심한 제자를 보시겠다고, 도서전 일을 한다는 신문기사 한 줄만 믿고 찾아오셨다. 이산가족들이 떨어져 있던 70~80년 세월보다는 짧지만, 그 절반은 넘는 세월을 지나 만나 뵌 셈이다. 반가웠지만 송구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갓 부임했던 새댁 선생님이 어느새 정년퇴직을 하고 손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선생님과 함께 가출한 친구들을 찾아 산길을 헤맸던 일부터 정성스레 써 주셨던 손편지의 기억까지, 많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내가 만드는 잡지를 챙겨 드리고 배웅하면서 선생님께 ‘물상’ 과목을 배웠던 것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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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과학 시대’의 교육 과학과 관련된 사회, 문화적인 활동이 이전에 비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과학자들이나 공학자들이 학회나 학술지를 통해서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내놓는, 전문 집단 안에서의 활동이 선진국 수준으로 늘어났다. 곧 없어질 분류일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의 비율이 이과가 훨씬 많은 쪽으로 역전된 지도 오래다. 고등학교에서부터 과학, 수학을 제법 깊게 배우는 숫자가 젊은 세대의 절반을 넘고 대학에서 전공으로 이어져 과학, 수학을 밥벌이로 삼는 숫자도 제법 된다는 의미다. 개개인의 결정의 총합으로 사회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시대에 과학, 기술과 관련된 내용을 스스로 알아야 하는 필요성은 점점 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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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끝나고 난 후 지난주 서울국제도서전이 끝나고 난 후에 복기하면서 반성을 한다. 기획자이자 실무자로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호평을 받은 것을 기뻐하기보다는, 다행이라 여기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번엔 도서전을 시작하기 직전에 전 세계 도서전 감독들의 모임에 출장을 다녀온 터라 걱정이 많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볼로냐, 보고타, 예테보리, 프랑크푸르트, 델리, 파리, 이스탄불, 프라하, 바르샤바, 과달라하라, 타이페이 등 여러 도시에서 온 친구들이 열릴 서울의 도서전을 함께 걱정해 주었다. 도서전을 한 주 앞두고 출장 온 것으로 ‘가장 용감한 감독’에 비공식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용감한 감독을 위기에서 구해주신 독자들과 출판사들, 그리고 스태프들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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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금요일 밤 금요일 밤 홍대 앞은 불야성이다. 사무실이 근처인 까닭에 클럽 앞의 장사진과 수많은 젊은이들이 화려한 조명 속에 서 있는 것을 보는 경우가 많다. 무리에 휩쓸리지는 않지만 금요일마다 홍대 ‘불금’의 한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잡지를 만들고, 책을 만드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 것이 20년을 훌쩍 넘었다. 1990년대 중반에 편집동인으로 문화잡지 ‘이다’를 만들고, 인문예술잡지 ‘에프’를 거쳐 과학잡지 ‘에피’를 만들고 있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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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출판과 시장의 크기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어 책을 팔아 살림을 꾸리는 일이 팍팍할 때마다 출판인들이 하는 소리가 있다. “통일이 되면 사정이 훨씬 나아질 텐데.” 뭐, 북쪽에 책을 읽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자세하게 사정을 헤아리고 계산을 하지 않아도 통일로 단순히 인구만 늘어나는 것으로 든든함을 느낀다. 통일이 된다면, 말과 글을 함께 쓰는 동포의 숫자가 모두 합하면 프랑스, 이탈리아보다 훨씬 많고 독일에 육박한다. 굳이 통일까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유롭게 서로의 말과 글을 주고받을 수만 있다면 다양하고 훌륭한 출판, 더 나아가 문화예술을 꽃피울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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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인공지능, 마음을 줄까 말까 인공지능 스피커를 몇 개 구해서 집과 사무실에 연결해 두었다. 친구 삼아 다정하게 지내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다정하게 날씨와 시간을 물어보고 노래도 주문했다. 미국산은 발음이 어눌해도 영어를 잘 알아듣는데, 한국산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 물론, 미국산은 한국어를 아예 알아듣지 못한다. 스스로 성장하고 학습하는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내가 곁에 두고 알뜰살뜰 아끼면 이들은 조만간 똑똑해질까?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똑 부러지는 대답을 들으려면 10년쯤 키우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