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우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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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저작권 보호와 출판의 자유 1896년에 파리에서 설립된 국제출판협회(IPA)는 저작권을 존중하고 올바르게 적용되도록 하는 데 힘을 쏟았다. 120년이 넘도록 저작과 관련된 권리들을 저자와 출판사가 공정하게 나누는 표준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어 왔다. ‘문학과 예술 작품 보호를 위한 베른 협약’을 기준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 협회가 재산권의 분배에만 관심을 갖고 활동했다면 단순한 이익 단체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오래 가지 못하고 기울지 않았을까? 이제는 스위스의 제네바로 본부를 옮긴 이 협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정신은 ‘출판의 자유’이다. 아마도 이 뜻을 굳건히 지키지 않았다면 65개국의 수천개 출판사들이 가입해서 활동하는 국제적 위상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가입한 나라를 인구로 따지면 56억명에 해당한다. 1947년에 설립된 대한출판문화협회(KPA)가 IPA에 가입해서 활동한 햇수가 60년이 넘었다. KPA의 가장 중요한 활동도 IPA와 마찬가지로 두 축으로 진행된다. 저작권과 출판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 그런데, 이 두 가지 활동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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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검색할까? 정리할까? 내가 쓰는 e메일 서비스는 2004년 만우절에 시작되었다. 베타서비스에는 이미 사용자가 된 사람들의 초대를 받아야 가입할 수 있었다. 당시에 나는 웹메일보다는 메일을 컴퓨터로 끌고 와서 저장하고 쓰는 것을 선호했다. 하지만 천성이 게을러, 정리를 잘하지 않아서 주어진 메일 용량의 압박이 있었고 컴퓨터 저장장치에 받아 둔 메일들이 노트북을 바꾸는 과정에서 오히려 다시 접근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 시작하는 e메일 서비스는 정리할 필요 없고 지울 필요도 없다고 광고했다. 필요하면 찾으면 된다. 나는 그 ‘정신’에 따라 그 이후엔 메일을 지우지 않았고, 광고 메일까지 내 계정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남들은 차고 넘친다는 공짜로 주는 용량을 넘어 매달 돈을 내면서 쓰레기들을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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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희곡을 읽자 희곡은 연극의 대본이다. 따라서 연극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다. 하지만 희곡은 하나의 완결된 문학 작품이기도 하다. 문학의 중요한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은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일인데 어쩐 일인지 출판되는 희곡집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내로라하는 문학 출판사들도 어쩌다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희곡들을 모아 선집을 내는 경우는 있어도 현장에서 상연되는 뜨거운 목소리를 담는 경우는 드물다. 문학으로서의 희곡이 독자를 잃고 공연의 대본으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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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새해엔 ‘합리성의 승리’를 지난 주말에 광화문을 지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시위대와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라’는 시위대의 대립을 보았다. 두 그룹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가고 그 과정에서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은 가능할까? 올해 초에 비슷한 문제를 화두로 삼아 한해를 지나면서 내내 고민했지만 의미 있는 답에는 전혀 가까이 가지 못했다. 생각이 주변만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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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서울국제도서전 ‘흥행 프로젝트’ 이달 초에 있었던 이스탄불 국제도서전을 찾은 관객은 60만명이 넘는다. 직접 가서 보기 전에는 믿지 못했다. 주로 전문가들이 모이는 도서전이지만 규모에서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주말의 일반 관객을 합해도 20만명가량 오는 것을 생각하면 상상이 어려웠던 탓이다. 그런데도 터키의 출판인들이나 관료, 정치인들은 아직도 숫자가 모자란다고 입을 모았다. 개막식에서 터키출판협회장과 이스탄불 시장은 인구 1500만명에서 60만명밖에 오지 않은 것은 해야 할 노력이 많이 남아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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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동지’들 세계 최대의 책 잔치라 일컬어지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는 상업적인 저작권 거래도 활발하지만 출판인들을 대상으로 한 회의들도 많이 열린다. 출판의 현황이나 새로운 경향을 읽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콘퍼런스도 이루어지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전략을 논의하는 모임도 열린다. 그리고 출판산업의 구조를 뒷받침하는 모임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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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잠자는 교실을 깨우자 나는 학교 다니면서 교실에서 잠을 자지는 않았다. 밤에 잠을 충분히 잤을 뿐 아니라, 교실에서 잠을 자는 것을 학교 선생님들이 가만히 두지 않았다. 호통과 날아드는 분필 등 다양한 장치가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딴짓을 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비인간적인 인권유린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끊임없이 딴짓을 추구하기는 했다. 수업시간에 도시락을 까먹고 야한 책도 돌려 보았다. 한 반에 70명씩이나 시루의 콩나물처럼 바글바글했지만 젊음이 모여 있던 그곳에는 생기가 있었다. 기운들이 부딪쳐서 싸움도 일어나고 에어컨도 없는 교실에서 여름을 나면서 서로의 땀 냄새를 공유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좀비들이 모인 것처럼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공부든, 친구든, 아니면 딴짓이라도 재미난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학교에까지 와서 잠을 잘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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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2017 베이징국제도서전 지난주 수요일 아침, 출장을 떠날 때 서울엔 비가 오기 시작했다. 마침 더위가 꺾여가고 찬바람 맛도 본 터라 더위와 먼지에 시달릴 베이징으로 가야 하는 처지를 불평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뉴스에 나오던 중국의 먼지 소식은 뿌연 먼지가 가득한 베이징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10여년 전에 경험했던 베이징은 너무 더웠다. 예상은 빗나갔다.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내렸을 때 볼을 스쳐간 바람은 서늘했다. 게다가 먼지도 없었다. 하늘은 깃털구름 하나 걸린 예쁜 파란색. 단, 며칠간 허락된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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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숨은 저자의 이름 찾기 박물관에서 관객들이 만나는 것은 누군가가 그곳에 놓아둔 물건들이다. 공간을 나누고 적당한 것을 고르고 그것들의 배치를 통해 이야기를 만든다. 물건들 하나하나가 가진 이야기들을 더 큰 이야기로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경험을 제공한다. 앞에 전시되는 물건들을 고르고 남은 것들, 혹은 다음 전시를 위해 준비를 하는 물건들을 넣어두는 수장고를 어쩌다 들어갈 기회를 잡으면 보물섬에라도 상륙한 듯 들뜬다. 보통은 볼 수 없는 것들을 본다는 우쭐대는 마음에다 은밀한 뒷면을 본다는 짜릿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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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편견을 배우는 인공지능 50년 전에 출간된 아서 클라크의 에서 우주선을 움직이는 인공지능 컴퓨터 ‘할9000’은 자존심을 지키려다 실수를 한다. 그 실수를 덮기 위해서 점점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할9000’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던 선장은 컴퓨터의 신경을 구성하는 칩을 하나씩 제거한다. 하나씩 제거할 때 인공지능 ‘할9000’의 대사는 처음 배웠던 것들을 추억하면서 점점 어눌해진다. 100년 전에 태어나 인터넷이나 우주정거장 같은 기술의 결정체들이 등장하기 전에 미리 언급한 것으로 유명한 클라크의 여러 예언들 중에서 내겐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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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미래’를 외면한 트럼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은 내가 가 본 세계 여러 곳의 자연사박물관 중에서 가장 예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전시를 하고 있다. 입장하면 만나는 대형 홀에 가득한 동물들의 박제는 홍수 앞에서 모든 종의 생명체를 보존하려고 했던 노아의 고민을 웅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박물관 전체에 기상 현상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가끔은 번개도 치고 밝기도 바뀐다. 2015년 12월12일 타결된 파리기후협약을 상징한다. 이 협약은 지금 국가로 인정받는 197개국 중에서 시리아와 니카라과를 제외한 195개국이 서명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지구 온도를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서 2도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한 이 협약은 작년 11월4일부터 포괄적인 구속력을 가진 국제법으로 효력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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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서울국제도서전 참가를 권유함 고백을 하나 하자면, 지난 3월에 서울국제도서전 진행을 책임지기 전에는 도서전 참가가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학출판사의 운영을 맡고 있었고 작가들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을 독자들과 만나게 하는 것이 여러 해 동안 해 온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데도 도서전의 가치나 의미에는 깜깜했다. 막상 행사를 주관하면서 많은 출판사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입장이 되니 내가 왜 서울도서전에 무심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