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우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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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책만 팔아선 어려운가? 지난주,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국제아동도서전이 열렸다. 이런 종류의 행사로는 세계에서 가장 전통 있고 규모가 큰 이 행사에 우리나라의 참여도 활발하다. 볼로냐는 중세 시절부터 유럽의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대학교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2월 작고한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가 이 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기호학을 가르쳤다. 한국에서 볼로냐로 가는 직항이 없어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한번 갈아타야 한다. 개막 전날 프랑크푸르트에서 볼로냐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수많은 한국 사람들과 함께 탔다. 이 사람들은 어떤 꿈을 안고 이 도서전을 찾았을까? 열 시간을 훌쩍 넘긴 여정에 지쳤을 법한데도 표정에 담긴 긴장과 기대를 읽을 수 있었다. 무엇일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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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서점, 쉼터이자 배움터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자의식 때문인지 어디를 가든 그곳의 서점을 찾는다. 먼 곳, 먼 시간에서 온 사람을 만나면 그가 거쳐 온 서점 이야기를 듣는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맨부커상을 수상한 데보라 스미스의 고향은 영국 셰필드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 돈카스터라고 했다. 돈카스터를 도시라고 표현했더니, 그는 도시라고 하기엔 부족한 요소가 많다고 정정했다. 유럽의 도시에는 대개 교회와 시청을 중심으로 광장이 있다. 그 광장은 장이 서는 곳이고 시민들의 뜻을 전달하는 곳이다. 그리고 도시라면 그 주변에 우체국, 은행, 마트, 그리고 펍이 있고 다양한 상점들이 자리잡고 있다. 자족적인 삶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요소들 중에서 부족한 것이 있으면 다른 마을이나 도시에 의존해야 하니 도시라 부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곳엔 서점도 없었다. 그는 기차를 타고 서점을 다녔다. 런던이 아니라 굳이 셰필드에 서점과 출판사를 낸 그의 결정에 이런 기억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었던, 먼 거리의 서점이 그를 번역가, 문학가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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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문화적 다양성의 조건 서울 변두리 출신인 내게 TV나 라디오를 넘어서는 유년 시절의 문화적 체험은 영화관을 가는 일이었다. 지금처럼 지하철이 사방에 깔려 있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버스 노선이 어디든 데려다 주던 시절이 아니었다. 역촌동 거쳐, 무악재 넘어 종로 쪽에나 가야 개봉관이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고 타는 데 제법 시간이 많이 걸렸다. 꿍쳐둔 세뱃돈을 끄집어내든, 아버지 구두를 닦아 돈을 타내든 수를 내서 입장료를 마련하면 단성사, 서울극장, 명보극장 같은 개봉관에 갈 수 있었다. 인기 있는 영화이면 줄을 서서 표를 사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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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자연사박물관에서의 하루 새해를 맞아 연재를 시작하는 코너의 이름이 ‘산책자’로 정해졌을 때 이곳저곳 어슬렁거린 기록을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요즘은 밖에서 살랑대는 바람을 맞으며 걷는 호사를 누리기 힘들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미세먼지의 습격은 밖으로 나설 용기를 꺾어 버린다. 하나의 크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을 터인데 엄청난 양의 먼지들이 하늘을 덮어 빛을 가리고 풍경을 찌그러뜨린다. 이런 때는 지붕 밑으로 피신하는 것이 상책이다. 피난처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은 자연사박물관이다. 그곳에 들러 공룡에게 인사하고 지구와 생명의 역사를 따라서 혹은 거슬러 산책을 하는 것은 늘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