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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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최저임금법 차등적용은 인종차별 3월21일은 유엔에서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인 1960년 3월2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샤프빌(Sharpville) 지역 경찰서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인종별로 거주지를 나눈 뒤 지정된 구역을 벗어나면 항상 ‘통행권’을 소지해야 한다는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 <통행제한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우리는 통행증이 없으니 모두 체포하라며 경찰서로 모여들었고, 어느새 그 숫자가 수천 명을 넘어섰다. 참여자가 늘어나면서 시위 분위기도 점점 격앙되었고, 경찰은 저공비행 전투기까지 동원한 해산 작전 과정에서 도망치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공식 집계로 69명의 민간인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샤프빌의 학살’로 불리는 이 사건은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로부터 6년 뒤 열린 1966년 유엔 총회에서는 모든 종류의 인종차별을 철폐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샤프빌의 학살이 있었던 3월21일이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로 공식 선언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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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법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 영화 <가버나움>이 지난주 관객 10만명을 넘었다. 화려한 캐스팅과 세련된 마케팅이 스크린을 앞뒤에서 밀어주는 상업 영화가 아닌 이른바 ‘다양성 영화’로서는 의미 있는 숫자다. 영화는 가난한 부모가 출생등록을 하지 않아 서류상으로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12세 빈민가 소년의 삶을 통해 빈곤과 난민 등 우리 사회에서 감추어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작년 프랑스 칸(Cannes)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오르고,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역대 가장 오랜 시간이라는 15분의 기립박수 기록을 세운 영화 <가버나움>에는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 영화 속 등장인물과 비슷한 삶을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소년은 실제 현실에서도 합법적인 신분이 없었던 시리아 난민 소년이었고, 다른 배우들도 실제 난민이거나 빈곤과 가난을 견디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연기는 전문 배우들보다 더 능수능란하며, 관객의 마음을 빼앗아 간다.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아온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눈빛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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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대낮에 끌려간 학생들 중국에서 대학생들이 잡혀가고 있다. 대낮에 그것도 학교에서. 목격자들에 따르면 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저항하는 학생을 강압적으로 연행했다고 한다. 중화인민공화국헌법 제37조는 중국공민은 인민검찰원의 승인이나 결정 또는 인민법원의 결정이 없이는 체포되지 않고, 불법 구금 및 그 밖의 방법으로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규정하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이 몇 달째 찾아 나서고 있지만 소식이 없다. 문명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명백한 불법체포이고 인권침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금껏 이렇게 불법 연행된 학생과 노동자가 무려 서른여덟 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인류 최초로 달의 뒷면에 우주선을 날려 보낸 2019년 중국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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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정규직·한국인이 아니란 이유로 세 살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는 차 속에서 처음 들었다. 전기를 만드는 화력발전소에서 참혹하게 숨진 스물넷 청년 비정규직의 이야기를. 애간장이 끊어지는 부모의 절규도 전해 들었다. 슬프고 미안한 마음보다 부끄러움과 분노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밤늦게 공장을 순찰하며 고속으로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떨어진 석탄을 주워 담다 사고를 당했다. 혼자 있었다. 옆에 안전스위치를 눌러 기계를 멈출 한 사람만 있었더라도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지하철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꽃다운 청년을 떠나보낸 것이 불과 두 해 전이다. 그도 혼자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고, 비정규직이었다. 사고 이후 두 해가 지나는 동안 천만촛불이 광장을 뒤흔들고 정권도 교체되었지만 열악한 노동 현장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위험한 작업은 하청업체에 헐값에 넘겨지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 위험을 혼자 견디며 목숨을 걸고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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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민수야 미안해, #iamsorry 중학교 학생들에게 노동인권 교육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노동법이 나름 전공분야이긴 하지만 강의 대상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중2 100명이라고 하니 처음엔 망설여졌다. 하지만 얼마 전 한 학생이 고깃집에서 몇 시간 동안 불판을 닦았는데 시급이 아니라 불판 하나당 100원으로 쳐서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겠다고 했다. 일하는 청소년에게는 정확한 법률지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부당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사장’이라는 힘 센 어른에게 ‘쫄지 않고’ 따져물어볼 용기가 더 필요한 경우가 많다. 교육을 하면서도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그냥 참지 말고 뭐라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짧고 강렬한 e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선생님 혹시 주민등록번호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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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한 뼘의 성장 중국동포 ㄱ씨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 화물차를 운전하는 그는 그동안 아파트 출입구 경사로에서 가까운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차를 주차했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그는 출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일반 주차구역에 차를 주차한다. 주민센터에서 나눠주는 노란색 ‘장애인 전용 주차표지 스티커’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스티커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ㄱ씨의 장애인 주차표지 스티커에는 ‘재외동포/외국인’이라고 구별되어 표시되어 있는데, 지나가던 아파트 주민들이 ㄱ씨의 차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보면서 ‘이제 외국인이 장애인 주차장까지 다 차지하고 있다’며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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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나는 김윤덕입니다 여기 서류에 남겨진 김윤덕이라는 사람이 있다. 경상북도 경산군 하양읍 남하리에서 1926년 7월에 태어난 이 사람은 태어나고 무려 10년이 지난 후인 1936년 4월에 출생신고가 되었다. 6남매 가운데 장남이었는데, 첫째부터 셋째까지 위로 3명은 넷째가 태어난 해인 1936년에 함께 출생신고가 되었다. 이후 계속 같은 주소지에서 살다가 1956년 10월17일 태어난 장소와 같은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 사실은 30년이 지난 1990년 9월경 신고됐다. 출생신고도 사망신고도 매번 늦었던 이 사람은 최소한 기록상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사망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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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최저임금 인상이 뜨거운 이슈다. 지난 7월 최저임금위원회가 2019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인상된 시급 8350원, 월급(209시간 기준) 174만5150원으로 발표한 이후 노사 양측 모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으로 사업주가 알바 노동자와 함께 일하는 편의점과 같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아쉬운 점은 많은 언론 보도에서 인상된 최저임금이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였는지는 빠진 채 인상에 따른 부담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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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초보아빠의 육아일기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한 달이 조금 더 지났다. 생후 30일이 막 지난 2번 꼬마와 요즘 부쩍 동생을 향한 질투로 마음고생이 심한 세 살 1번 꼬마의 앙육자로 살아가는 일상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1번 꼬마를 키우며 육아를 어느 정도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둘이 되니 차원이 달라졌다. 우선 하루의 시작이 언제인지가 불분명하다. 잠자는 시간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시간마다 울어대는 신생아 수유노동은 새벽이 되면 그 절정에 달한다. 새벽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준 뒤 2번 꼬마가 금방 잠이 들면 나도 모르게 실실 웃으며 자리에 눕는다. 반쯤 좀비가 된 상태로 아침을 마주해 1번 꼬마를 깨워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 등원을 시킨다. 어린이집 선생님과 소통하고 아이의 소식을 전해주는 키즈노트에 댓글을 남기는 것도 아직은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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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이방인을 환대하는 지혜 제주도에 찾아온 예멘 난민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난민 보호를 반대하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38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유럽도 복잡하다. 얼마 전 이탈리아는 지중해에서 구조된 난민 600여명을 태운 배의 입항을 거부했고, 헝가리 극우정권은 난민을 돕는 개인과 단체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었다. 존재의 부정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는 난민 숫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올해 6월 발표한 글로벌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까지 전쟁과 폭력 그리고 박해로 인해 생겨난 난민은 6850만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보다 많은 숫자다. 2017년 한 해 동안 1620만명이 새로 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의 공포에 의해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고, 이들이 여러 이유로 점점 더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러모로 비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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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선생님들과 인권교육을 하면서 ‘우리는 언제 인간이 존엄하다고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관해 토론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몸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 나이가 많은 어르신을 위한 요양보호시설, 노숙인의 자활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시설과 같은 사회복지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식상한 결론을 예상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교과서 같은 결론을 넘어 오랫동안 서로 갑론을박 토론을 이어갔다. 현장에서는 국회, 정부, 언론 등 우리 사회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관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결정이 많아지고 있는 점을 가장 많이 우려했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두텁게 보장되기 위해서는 몇몇 사회복지시설이 마련하고 있는 기초적인 수준을 넘어서, 그 사회가 구성원인 인간을 무시하지 않고 있음을 서로 확인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인간이 사회에서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도구로 이용당하지 않고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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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법 없이도 살 당신에게 평범한 사람들에게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는 것은 그 자체로 공포다. 경찰서나 검찰청 입구에 들어선 순간부터 심리적으로 움츠러든다. 수사관을 마주하여 자리에 앉으면 피의자, 소환, 체포, 임의동행, 진술거부권 등 이해하기 쉽지 않은 전문 용어들이 등장하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사실 질문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고 대답하는 경우보다 묻는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대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조사를 시작해 장시간 질문과 답변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방금 전에 무슨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는지조차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 혼돈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