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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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집회와 시위의 민족 우리 이제 집회의 민족이라고 하자. 흥이 많아 놀기도 잘하고, 성질이 급해 배달도 잘하지만, 역시 우리는 시위에 능하다. 뜻이 유사한 사람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면서, 서로 의지를 확인하며 행동하기를 좋아한다. 무려 일주일 사이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서 거대 집회 세 개를 가뿐히 치르고, 월요일이면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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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조국 사태와 언론 개혁 조국은 이제 한 장관 후보자의 이름이 아니다. 최순실이 그랬듯이, 사태와 정국을 수식하는 관형어가 됐다. 후보자를 둘러싼 공격과 방어, 비난과 옹호, 기대와 절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모두 내릴 수 없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형국이다. 이른바 ‘조국 정국’은 우리 현실이 얼마나 누추한지 드러냈다. 촛불 이후의 정부란 혁명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제도개선도 힘에 부쳐 하는 허약한 정권이란 걸 보여줬다. 우리가 자랑하는 자유와 민주의 제도들이 실은 얼마나 위태로운 지경인지도 폭로했다. 눈앞의 정쟁도 걱정이지만, 교육, 검찰, 그리고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개혁이란 말보다 더 낡은 말이 없다. 언론 쪽이 특히 그렇다. 철마다 개편이 이루어지고, 정권마다 개혁안이 나온다. 그래도 진정한 개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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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논변이 귀하고 비유가 헐한 나라 작금의 사정이 구한말 같다고 한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전과 같다고도 한다. 인민이 분열하여 정파적으로 싸우는 모습이 해방 직후와 다름없다고 한다. 동족상잔 전쟁이 벌어지기 전 상황과 유사하다는 주장마저 나오는 판이다. 난리가 나겠다는 경계심을 표현한 건지, 난리가 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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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어떻게 훌륭한 언론인이 되는가 여보게 이 박사, 도대체 공정한 뉴스라는 게 뭐요? 20년 전 학위를 마치고 KBS에 첫 직장을 잡아 일할 때 받은 질문이다. 중견 언론인의 진지한 요구였기에 최선을 다해 응답하고 싶었지만, 갓 박사논문을 마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아직도 그분을 기억한다. 며칠이 지나도 응답 없는 나를 두고, 박사도 별것 없다는 듯한 표정을 던졌다. 덕분에 그때부터 공정함이 무엇이고, 뉴스 공정성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 탐구하게 되었다. 이후 나는 논문도 몇 개 발표했고,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일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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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불편부당하게 요구하기 피리 한 개를 두고 다투는 세 아이가 있다. 첫째 아이는 자신만이 피리를 불 수 있다고 말하고, 그래서 자기가 피리를 갖는 게 좋겠다고 주장한다. 둘째는 다른 아이들은 부자이고 장난감이 많지만, 자신만 장난감이 없다며 피리를 요구한다. 셋째 아이는 ‘그 피리를 만든 이가 바로 나’라고 말한다. 만든 사람이 가져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누가 피리를 가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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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기자와 전화하는 법 오후 2시께 울리는 전화에 낯선 번호다. 서울대 이준웅 교수님이시죠? 맞습니다만. ○○일보 기자 김철수입니다. 네, ○○일보 김, 철, 수, 기자님. 일부러 이름을 또박또박 확인해서 이쪽에서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묻는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오늘 국회에서 이만저만한 일로 논란이 일고 있는데, 한말씀 해주실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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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대화의 힘을 믿는 자세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유시민과 홍준표가 유튜브에서 공동 채널을 열어 맞대결을 펼친다고 한다. 유시민의 <알릴레오> 쪽에서 공통 주제를 정해서 토론하자고 제안했고, 홍준표의 <홍카콜라> 제작진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단다. 볼 수 있다고 해도 5월 말 이후에나 가능하다던데, 생각만 해도 재밌겠다. 우리나라 좌우를 대표하는 최고의 입담꾼이 겨루는 논전을 생생한 날것으로 볼 수 있다니 말이다. 매가리 없는 지상파 방송토론이나 관전평에 그치는 종편토론을 넘어선 진정한 토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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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저열한 정치가 뉴스거리가 되어야 하나 “그는 악명을 떨치길 바라겠지만, 우리 뉴질랜드는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이름조차 부르지 않겠다.” 백인 우월주의자의 테러로 참혹한 희생을 치른 뉴질랜드의 총리가 의회에서 결연하게 선언한 말이다. 과연 우리는 그 백인 우월주의 테러분자가 누군지 모른다. 오직 참혹한 비극을 맞아 차분하게 그러나 영웅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뉴질랜드 국민을 기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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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정치탄압의 위험한 ‘전유’ 북한군 특수부대가 5·18에 개입했다고 한다. 독일 기자 힌츠페터는 간첩이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한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이 영웅이란다.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39년이 지나고, 제6공화국이 출범한 지 32년이 경과한 대한민국 국회의 공청회에서 나온 말들이다. 시민들은 물론 공청회를 주최한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이런 주장을 얼마나 믿을지 의아하다. 주장이라는 게 근거가 있어야 평가할 수 있는데, 근거는커녕 주장조차 일관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한군이 참전한 작전이라면 전투라 불러야지 ‘폭동’이든 뭐든 될 수 없겠다. 북한군의 침투를 막지 못한 당시 국군은 어찌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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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규제만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말로 이름 붙이기도 귀찮다는 듯이 ‘오버더탑’ 또는 ‘오티티’라 부르는 대상이 있다. 넷플릭스, 유튜브 TV, 네이버TV, 아프리카TV 등을 아우르는 용어다. 사람들은 이를 인터넷 방송이라 부르는데, 생김새도 하는 일도 방송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오버더탑이 방송과 닮았으니 방송처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흥하고 있다. 다만 실제로 어떻게 규제해야 할지 방법은 모른 채 그러하다.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 토론회에서 방송법 개정을 통해 오버더탑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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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사기언론과 진정한 폭로자 이것은 오보가 아니다. 가짜뉴스도 아니다. 허위조작정보라고 할 수도 없다. 엄정한 취재와 유려한 글쓰기로 이름을 떨치던 한 언론인이 쓴 기사가 허구라는 사실이 언론사 자체 조사로 드러났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7년간 탐사물과 피처물을 쓰면서 존경받던 클라스 렐로티어스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다. 렐로티어스는 2018년 독일 언론인상 피처부문 수상자다. 이 상이 아니더라도 그는 고품격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그가 칭찬받던 바로 그것, 즉 상황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 인물에 대한 접근, 절묘한 인용문들이 허구였다고 한다. 그는 취재 장소에 가지 않고 상황을 그려내는 재주를 가졌고, 당사자를 만나지 않고도 인품을 묘사하는 마술을 부렸다. 취재한 내용에 여기저기 그럴듯한 내용을 보태서 작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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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위협적인 인간의 존엄성 세계적으로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의 득세가 뚜렷하다. 터키의 에르도안, 헝가리의 오르반,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등이 대중의 지지를 받아 선거로 집권에 성공했다. 유럽에서 극우 정당의 발호가 두드러진다. 난민 포용정책을 반대하는 극우파가 득세하는 현실을 보며 메르켈은 더 이상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트럼프는 중간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