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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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포털뉴스와 뉴스 이용 경험의 저열화 곧 나온다는 소문이 무성한 지 몇 년째인데, 아직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게 있다. 애플이 제작한 드라마다. 도대체 스필버그나 샤말란이 감독한다던 시리즈는 언제 나오나. 리즈 위더스푼이나 제니퍼 애니스톤이 출연한다던 연속극은 어떻게 됐나. 아시모프의 원작인 <파운데이션>을 각색해서 10부작으로 제작한다는 소문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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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인터넷 여론조작과 발언의 자유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글을 쓰는 일은 더 이상 없다. 드루킹이 매크로를 이용해서 포털 댓글을 조작하는 일도 더 이상 없다. 그런데 인터넷 여론은 왜 또 이렇게 어수선한가? 난민과 동성애 사안에 특별히 민감하지 않은 이들도 눈치챘을 것이다. 이에 대해 온갖 수상쩍은 말들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운동세력이 있음이 밝혀졌다. 지난 27일 한겨레는 ‘동성애·난민 혐오 가짜뉴스 공장’이란 기사에서 폭로했다. 에스더기도운동이라는 한 기독교 운동단체가 동성애 반대, 인권조례 폐지, 차별금지법 반대 등과 관련한 내용물을 유튜브와 카카오톡에서 조직적으로 퍼뜨렸다는 내용이다. 난민에 대한 증오 발언과 동성애 혐오 담론을 전파한 경로도 소상하게 밝혔다. 추가 폭로가 기대되는 모범적인 탐사보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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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가짜학회 가짜뉴스 부실한 국제학회에 대한 추문으로 학계가 떠들썩하다. 지난달 19일 뉴스타파와 MBC의 공동 보도에 따르면, 와셋(WASET)이라는 ‘해적’ 학술단체가 개최한 ‘가짜’ 학술대회에 한국 학자들이 다수 참여했다고 한다. 참여자를 나라별로 집계했더니 한국 연구자가 전체 5위였다. 이들 언론사가 폭로한 내용은 놀라운 정도를 넘어 어처구니없을 지경이다. 로봇이 대필한 가짜 논문을 제출해도 논문 발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70만원 상당의 참가비를 지불하면 관광지로 유명한 도시에서 발표할 수 있다. 비전공자가 모인 학회장에서 논문 발표를 하고도 운이 좋으면 우수논문상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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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제대로 쓴 사망기사를 보고 싶다 한 좌파 정치인이 타계했다. 현대사 전공자인 한 칼럼니스트는 그날로 3700단어 분량의 사망기사를 가디언 지면에 실었다. 한글로 번역하면 원고지로 약 60장에 달하는 분량이다. 같은 날 런던타임스도 3700단어로 썼고, 좌파 정치인과 수십년 치고받고 싸워온 보수일간지 텔레그래프는 2700단어 규모의 사망기사를 냈다. 영국 노동당 좌파의 전설이 된 토니 벤을 기린 사망기사를 읽어 보자. 젊어서 진보적이었다가 늙으며 우경화했던 무수한 좌파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나이 들면서 더욱 개혁적으로 변했다. 그는 보수당 의원은 물론 왕당파, 산업지도자, 금융자본, 국제주의자, 그리고 동료 좌파로부터도 위험하다고 비난받았다. 그러나 벤은 주민의 도움을 받아 법을 바꿔서 귀족 작위를 포기하고 지역구 의원직을 되찾은 인물이며, 50년이나 지켜온 의회를 떠나면서 “정치에 전념하기 위해” 의원직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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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이방인을 ‘혐오’하는 언론들 이방인의 도래는 과제다. 이방인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한 사람의 인간됨을 짐작할 수 있다. 환대하면 좋겠지만 조심해야 한다. 조심함이 지나쳐 무례하면 추하다. 무신경하게 무례함을 반복하면, 그것은 잔인하다. 잔인한 인간들이 사는 나라를 좋은 나라라 할 수 없다. 난민을 다루는 법을 보면 국가의 품격을 알 수 있다. 예멘 난민을 다루는 일부 언론보도에 유감이다. 온통 혐오뿐이기 때문이다. 난민 혐오, 이슬람 혐오, 무슬림 혐오, 예멘 혐오, 그리고 이 모두를 조합하고 확장한 것들에 대한 혐오가 있다. 혐오에 대한 고발과 규탄이 넘치다보니 혐오에 대한 혐오가 자연스럽다. 기독교 혐오, 여성주의 혐오, 구직자 혐오, 그리고 ‘우리가 이 수준이지 뭐’라는 식의 자기혐오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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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공직자의 트위터 이용자 차단은 ‘위법’ 무기가 족쇄가 된다. 트럼프의 트위터 말이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언론매체에 대항하기 위해 트위터를 무기처럼 사용해 왔다. ‘언론사 패싱’의 도구로 사용했다. 기자와 언론사를 모욕하고 저주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반복적으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망하고 있다고 조롱해 왔으며, 시엔엔은 아예 가짜뉴스로 취급했다. 트위터에서 트럼프는 일종의 왕이다. 뉴욕타임스를 보는 유료독자는 약 350만명인 데 반해, 트럼프는 5000만명이 넘는 트위터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이 중에는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라는 뉴스거리에 목을 매는 전 세계 언론인들이 있다. 역으로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추종하는 계정은 달랑 48개뿐인데, 그것도 대부분 자기 회사, 가족, 측근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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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드루킹 나비효과와 언론의 자기 반성 일본 침몰을 예언했다던 ‘드루킹’도 자신이 저지른 일이 이렇게 번질 줄 몰랐을 게다. 드루킹 나비효과라 부를 만하다. 네이버 댓글조작 시비로 발단한 사건은 인터넷 댓글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시비로 이어지고, 포털의 댓글 서비스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거쳐, 이제 포털과 언론사 간 뉴스 제공 방식을 놓고 힘겨루기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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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당사자 목소리 반영과 언론 공정성 다들 우리 언론이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흥하는 면도 있다. 중앙일간지나 공영방송 뉴스를 보면, 과거 찾아보기 어려웠던 기사 쓰기 양식 하나가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기사 내용에 당사자 목소리를 반영하는 일이다. 당사자 목소리를 기사에 담아낸다는 일은 예컨대 이런 거다. 한 신문사가 정부 정책의 잘못을 고발하는 뉴스를 준비 중이라고 하자. 정책으로 이미 피해를 본 주민들로부터 인터뷰를 따고, 정책을 진단한 전문가 의견도 인용해서 기사를 준비했다고 하자. 그러나 이 기사에 해당 정책을 추진한 정부부처 책임자의 견해를 빠뜨리면 안된다. 기사 발행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고 기사를 내보내는 일은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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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진짜 언론이 필요한 이유 거짓이 참을 이긴다. 세계 최고의 학술지 ‘사이언스’ 최신호에 실린 한 논문이 내린 결론이다. MIT 연구진에 따르면, 거짓 정보가 참된 정보보다 인터넷에서 더 빠르고, 깊고, 넓게 확산한단다. 글쎄, 누가 이걸 몰랐을까.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가 의심스럽다는 걸 누가 모르나. 최고의 과학논문은 결국 우리가 매일 네이버나 카카오톡에서 확인하는 허위 정보의 특성을 재확인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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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콘텐츠’의 대체어를 찾아보자 콘텐츠란 말이 유감이다. 일단 발음이 좀 그렇다. 콘텐츠라고 표기하고서 컨텐쯔라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도 뭣도 아닌데 우리말처럼 들리지도 않아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그런가. 국립국어원의 외래어표기법을 어기면서 기어코 컨텐트라 쓰고 악착같이 ‘컨텐’ 또는 ‘컨텐스’라 발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용법도 혼란스럽다. 단어의 생김새만 보면 불가산 명사를 복수형으로 만들어 가산 명사처럼 만들어 놓은 형태다. 그러나 실제 용법을 보면 대체로 불가산 명사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콘텐츠는 매체 플랫폼이나 채널에 돌아다니는 내용물, 디지털 창작물의 집합, 또는 매체 형식이나 맥락의 반대말인 내용을 지칭한다. 이런 뜻이라면 발음도 이상스럽게 들리는 영어식 복수형 어미를 붙인 형태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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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1987’ 이후 한국 언론엔 무슨 일이 영화 <더 포스트>가 온다. 워싱턴포스트가 정부 기밀문서를 폭로했던 1971년도 사건을 다룬 영화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과 연출을 맡았고, 톰 행크스와 메릴 스트리프가 각각 전설적 편집국장인 벤 브래들리와 발행인 케이 그레이엄을 연기했다. 개봉하자마자 골든글로브상 6개 부분에 후보로 올랐다. 영화가 흥행하고 호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맘이 편치 않은 언론이 있다. 뉴욕타임스다. 1971년 3월 제보자로부터 47권짜리 펜타곤 문서를 받았던 언론사는 뉴욕타임스였다. 몇 달에 걸쳐서 사실확인 작업을 수행해서 6월13일 단독보도를 터뜨린 것도 뉴욕타임스다. 그 때문에 닉슨 정부로부터 출판금지 명령을 받아 법정 투쟁에 나선 것도 뉴욕타임스였다. 그런데 웬 워싱턴포스트가 펜타곤 문서를 폭로하는 영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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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정치의 매체화 지난 1일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에서 ‘매체화를 넘어’라는 제목으로 작은 학술 세미나가 열렸다. 언론학자 박홍원은 ‘정치의 매체화’라는 기조 발제문에서 지구상에 사람들 간에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모든 곳에서 매체화가 진행 중이라고 진단하고, 특히 정치에서 심하다고 지적했다. 정치의 매체화란 정치인들이 정치활동을 할 때 뉴스 매체의 논리를 따라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정치행사를 개최할 때 뉴스 시간에 맞추어 진행한다든지, 정책 사안을 발표하면서 그 발표가 다른 뉴스에 묻히지 않도록 신경 쓰는 일을 말한다. 정치인들이 매체 논리를 따르면서 정치가 매체 사업처럼 작동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정책의 근거와 타당성을 검토하기보다는 정책을 포장하는 용어가 얼마나 그럴듯하게 들리는지부터 고민하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