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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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인기작이었다.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은 학교 시절 폭력을 당한 뒤 선생님으로부터 오히려 폭행을 당한다. 선생님은 피해자인 동은이 아니라 힘센 부모를 둔 가해자들을 대놓고 편들었다. 이 드라마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면서 학교폭력 문제에 우리 사회가 더 큰 관심을 갖게 됐다. 로봇개, 안전대책이냐 노동자 감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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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무안국제공항에서 하게 된 질문들 무안국제공항에 내려가는 내내 한 사람을 생각했다. 무안공항 1층에는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있다. 179명의 위패와 사진 중에서 광주KBS 김애린 기자와 그의 남편 목포MBC 안윤석 PD의 천주교식 위패를 찾았다. 김 기자는 내가 한 대학에서 인권 강의를 하던 때인 2013년 1학기에 두 친구와 같이 내 수업을 들었다. 그 세 친구는 내 수업을 최고라고 평가했고, 강의가 끝난 뒤에도 집회 현장에서 반갑게 만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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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노란봉투법’으로 기업문화를 바꾸길 기대하며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전후로 ‘괴담’이 언론을 뒤덮었다. 주로 재벌과 대기업의 입장을 대변해온 경제지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사설과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원청기업들을 상대로 쟁의행위가 상시적으로 발생해 원·하청 간 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라거나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마저 사실상 봉쇄된다면 산업 현장은 무법천지가 될 것”이라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주장을 그대로 복제하거나 과장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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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불의 시정할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바란다 광복절을 앞두고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단행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민생사범들을 중심으로 사면이 있을 거라는 소식이 주로 전해진다. 생계형 범죄자를 비롯해 민생사범들을 중심으로 사면하겠다는 것이야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 특별사면에서, 윤석열 정부에서 탄압을 받았던 이들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소식도 같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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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인권’을 지우려 했을까?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인 남영동 대공분실이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서 지난 6월10일 개관했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의 M2관이 그곳이다. 예전에 남영역에서 바라볼 때 대형 가림막 사이로 보이던 검은색의 7층 건물은 역 승강장에서도 훤히 보인다. 그만큼 가까운 곳에서 사람을 불법 체포해서 고문을 가하고, 간첩을 조작하고, 그러다가 스물두 살 박종철의 숨을 멎게 만든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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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평등의 토대 위에 세워질 민주주의 21대 대선 결과를 보고 우울했다. 내란을 종식하기 위한 6개월간의 투쟁 뒤에 치러진 대선 결과로는 믿기 어려웠다.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에게 그만큼의 표가 나올 수 있는가? 이재명 후보는 50%를 넘지 못했고, 유일한 진보 후보였던 권영국은 1%도 넘지 못했다. 내란당인 국민의힘의 ‘압도적 패배’를 바랐던 나의 기대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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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미래에도 죽은 자가 산 자를 도울 수 있게 하려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10일까지 세 차례의 쿠데타가 있었다. 지난해 12월3일 밤 느닷없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표로 내란이 시작된 것이 첫 번째 쿠데타였다. 두 번째 쿠데타는 조희대 대법관이 저지른 사법 쿠데타였다. 세 번째는 국민의힘에서 경선 절차를 통해 선출된 대선 후보를 교체하기 위한 막장 드라마였다. 세 번의 쿠데타는 모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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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28세 청년 활동가 P에게 P야, 내란의 밤부터 지난 파면 결정까지 이어진 광장에서 스태프가 되어 뛰어다니는 너를 보았다. 폭설이 내리고, 살을 에는 북풍이 몰아치는 남태령과 한남동에서 밤을 지새우는 너를 SNS를 통해 보았다. 그 밤을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하지만, 그때 밤을 같이 지새우지 못한 미안함보다 더 큰 미안함이 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쓴다. 28세의 청년 활동가인 너는 내게 물었다. 열일곱살에는 세월호 참사, 스물두살에는 이태원 참사를 겪은 1997년생인 너. “우리 97년생은 저주받았어요. 세상은 바뀔까요?” 내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었겠니? 인권운동 오래 한 것밖에 내세울 게 없는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바뀌겠지, 아마 변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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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윤석열 파면 뒤에 ‘계몽시민’이 해야 할 일 “저는 계몽되었습니다.” 윤석열 변호를 맡아서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한 김계리 변호사가 헌법재판소 최종변론에서 한 말이다. 그 뒤에 시민들은 유행처럼 이 말을 패러디했다. 그런데, 계몽이라니? 김계리 변호사는 역사에 등장한 ‘계몽주의’ 다음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알고 있을까? 계몽주의 시기에 계몽된 시민들은 시민혁명의 주체가 되어 중세와는 다른 근대를 열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를 부정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생각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계몽이었다. 한마디로 왕과 귀족이나 평민들이 모두 평등하다는 급진적 사고로 계몽하는 일이었다. 결국 김계리 변호사는 단어를 잘못 선택한 것이다. 그는 반동을 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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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겨울 공화국’에서 ‘수거’되지 않기 위하여 나는 불안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12·3 비상계엄의 날 이후 아내는 24시간 TV를 켜놓는다. 잠잘 때는 TV를 끄라고 해도 “뭔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불안하다”고 한다. 대통령이 감옥에 가 있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불안한 마음은 줄어들지 않는다. 난데없는 12·3 비상계엄 이후 77일째다. 그날 밤 여의도 국회 앞으로 시민들이 달려왔고, 응원봉을 들고나온 2030세대가 여의도의 밤을 신나는 축제판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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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윤석열씨, 그만 감옥 갑시다 38년 전 오늘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하다 죽었다. 그의 나이 22세였다. 12·3 비상계엄이 성공했다면, 그건 38년 전처럼 누군가 고문을 당하다 죽을 수 있는 나라가 되었을 거다. 사찰과 도청, 검열과 강제납치와 고문이 일상이 될 것이다.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간첩으로 조작되고, 의문사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나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아니 지금쯤 전쟁이 났을 수도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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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추억의 내란, 현실의 내란 1주일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 ‘1년 같은 하루’의 나날들이다. 느닷없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뒤 2시간 만에 국회는 계엄 해제를 결의했다. 아찔한 장면들이 여럿 있었고, 긴박한 시간이 이어졌다. 밤 12시경 국회 앞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시민들이 그 밤중에도 여의도 국회로 달려오고 있었다. 시민들은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섰고, 출동한 계엄군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6시간 만에 윤석열은 계엄 해제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